소설리스트

내 눈에는 다보여-81화 (81/297)

〈 81화 〉 2. 사냥꾼.(52)

* * *

2. 사냥꾼.(52)

감각이 위험을 알려온다.

지금, 이곳에 강일파 대부분이 몰려와 있지만, 지척에 웨어비스트가 셋이나 있다.

실시간으로 오대석의 생각이 읽히고는 있지만, 백프로 신뢰할 수는 없는 일.

감정이라는 것이 잠깐 사이에도 변덕스럽게 움직이는 것이다 보니 조심할 수밖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나는 여유로운 척을 하며 스트레이트잔의 양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독한 양주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들며 알싸한 감각이 위까지 전해진다.

잠시 뜸을 들이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그 대답에 오대석이 낮은 신음을 흘린다.

“으음...”

무언가 골몰히 생각하는 듯 숨 막히는 침묵이 흐르고.

살기가 없는 탓에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쉽지 않았을 텐데?”

오대석의 물음은 어찌 인간이 정염귀를 묻었냐는 질문이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에 그 정도 정염귀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사실, 죽다 수지덕분에 살기는 했지만...

이런 허장성세정도는 필요하다고 본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정말 직접 처리했다고? 놈의 정체를 아나?”

갑자기 부산스러워진 입이 질문을 연달아 퍼부었다.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 말에 오대석의 감정이 경계를 그린다.

웨어비스트라면 사냥꾼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반은 인간, 반은 곰인 오대석.

수지는 별생각 없이 인간이 되는 것에만 목표로 살았기에 자세하게는 알지 못했다.

그저 웨어비스트는 곰, 늑대, 호랑이로 나누어진다고 알고 있었다.

몇 번 마주친 적도 없다고 했다.

확실히 느끼기에도 오대석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쉽지 않아 보였다.

어찌어찌 오대석을 내가 상대한다 해도 밖에 있는 이들이 조직원들을 박살 낼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오대석을 지원할 것이다.

“후훗. 그런데 흑곰파의 세력에 발을 디뎠다고? 하긴, 겁 많은 버러지 구상두 따위와는 다르겠지. 사냥꾼이라고 알고 있나?”

“사냥꾼은 아닙니다.”

그 대답으로 이면의 세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밝힌 것과 같다.

“쯧. 어느 종족이냐.”

“보시는 것처럼 인간입니다.”

“초인인가?”

움찔.

그 말에 갑자기 가슴이 떨려온다.

나처럼 능력을 갖춘 인간.

불안과 설렘이 함께 공존하는 오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말 없는 모습에 오대석이 온더락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는다.

꿀꺽. 꿀꺽.

나는 계속해서 매직아이를 이용해 오대석의 반응을 살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튀어 나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나에 대해서 들은 것은 있나? 아... 구상두놈에게 들었을라나?”

대체적으로 나처럼 본질을 볼 수 있지 않다면, 기운을 사용하기 전에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글쎄요.”

“정말 술 마시러 왔기를 바란다.”

“당연합니다.”

“구상두가 사라진 것에 사냥꾼 운영자들이 움직이지 않은 것을 보면, 다른 세력 쪽이라 봐도 되겠군.”

“말씀드릴 입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흑곰파와 척을 질 생각은 없습니다.”

“부디 그러길 바라네. 나는 그렇게 자비로운 성격이 아니니 말이야.”

순간, 오대석에게서 뻗어 나온 기세가 나를 덮친다.

살기가 뒤섞인 흉포한 기운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황급히 뇌기를 끌어올려 이를 견딘 나는, 오대석을 날카롭게 쏘아봤다.

“흠... 일종의 경고라 봐도 무방해.”

뇌기가 뻗치자 머리까지 열기가 뻗어 올라 왔지만 애써 눌러 담았다.

지금의 기세로 오대석의 무력이 생각보다 훨씬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살기도 바로 흩어져 버렸기에 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오대석이 별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더 즐기다 갈 건가?”

저 혼자 질문하다 끝내는 모습을 보며 안면에 주먹을 꽂아 주고 싶은 마음을 또 한 번 눌러 담는다.

“충분히 즐겼으니 이제 가려고 합니다. 아! 그리고 정실장과 아가씨들은 바로 데려가겠습니다.”

돈도 펑펑 쓰고 무시까지 당했는데 챙길 건 확실히 챙겨 갈 요량이었다.

“강사장 뒤에 있는 이들도 같은 생각이겠지?”

오대석은 내 뒤에 누군가 있다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대화하는 내내 그런 기색을 읽었기에 태연하게 답한다.

“뱉은 말은 지킵니다.”

나는 자리를 털고 먼저 일어난다.

그 모습을 오대석이 고개만 슬쩍 들어 바라봤다.

“만나 뵈어 영광이었습니다. 그럼, 다음에 좋은 자리에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지.”

내가 슬쩍 고개를 숙여 보이곤 밖으로 향했다.

90도로 허리를 꺾을 것까지는 없다.

나도 엄연히 강일파 보스로 마주하고 있으니.

그저 체급이 다르기에 조금 사릴 뿐이다.

룸의 문을 열고 나가자 걱정스러운 표정의 나대명과 조응수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정윤주와 예린 승아까지 같은 표정으로 자리하고 있다.

“누가 죽기라도 했어요? 표정들이 왜 그래? 갑시다. 그리고 정실장이랑 둘도 따라 와.”

***

별 탈 없이 흑곰파 보스의 정체를 확인하고 나왔다.

조직원들은 모두 돌려보내고, 나대명에게 정실장과 아가씨들의 케어를 맡겼다.

뇌기가 가라앉자 조금은 이성적으로 돌아온 것 같다.

생각보다 마음도 차분해졌고 쓸 대 없는 자책감도 모두 털어 버렸다.

김동운이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는 것이 계속해서 마음을 압박했었지만 깨끗하게 날려버린다.

충분히 죽어 마땅한 놈이었다.

빌어먹을 놈.

제대로 이성이 돌아온 지금, 오늘의 행적을 곰곰이 떠올려다 봤다.

행여나 실수한 부분은 없는지.

여러 부분을 생각하고 생각했다.

정욱아저씨가 문자를 읽었다면 당연히 알아서 처리했을 거다.

아저씨가 처리하기 전에 누군가가 발견한다면 문제가 되었겠지만.

아저씨라면...

절대로 경찰에 넘기지는 않겠지...

조금 죄송스러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

이것을 주워 담을 생각도 없다.

오늘 분리수거도 안 되는 쓰레기 넷을 보내버렸고.

아직 보내야 할 놈이 한 놈 더 있었다.

오성건설 정은식.

그렇게 쏟아지던 비는 어느덧 그쳤고 어두운 하늘 위에는 별 하나 반짝이지 않는다.

당장에 달려가 놈을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나사장을 부르고 꺼 놓았던 휴대폰부터 다시 켰다.

주르륵 쌓여 있는 부재중 전화.

대부분이 정욱아저씨의 번호였고.

상연누나와 수지가 걸어온 것도 있었다.

그중, 정욱아저씨에게 먼저 전화를 걸기로 했다.

전화벨이 울리기 무섭게 정욱아저씨의 음성이 들려온다.

낮은 쇳소리가 낀 거친 목소리.

처음에는 꽤 거슬리게 들렸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안정이 되는 음성이다.

­몸은 어떠냐.­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한 추궁보다는 상태에 대해 먼저 물어 오는 아저씨.

“멀쩡해요.”

­그래. 그러면 됐다.­

씁쓸함이 배어 있는 그 목소리에 이상하게 목이 매어온다.

“시... 식사는 하셨어요?”

나도 모르게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시각은 이미 밤 12시를 향해 가고 있거늘.

괜한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래. 먹었다. 무리하지 마라.­

울컥.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걱정해주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친척들에게도 외면당했기에 알 수 없던 감정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네... ”

­뒤처리는 끝났다. 내일 보자꾸나.­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워낙에 무뚝뚝한 성격인데 아저씨도 나름 애를 쓴 느낌이다.

그만큼 나를 생각해 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끊어진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네... 내일 뵐게요... 죄송합니다...”

***

집으로 돌아와 몸부터 깨끗하게 씻었다.

그러곤 상연누나와 수지를 불렀다.

아직 스카이 클럽에 있던 상연누나는 금방 오겠다고 했고, 잠에 취해 있던 수지도 내가 부르자 바로 오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연누나가 수지까지 픽업해 데리고 도착했다.

나는 둘에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걱정과 불안이 뒤섞인 상연누나와는 달리, 수지는 오히려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 그놈들은 나쁜 놈들입니다! 죽어 마땅합니다!”

목청을 높이며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는 통에 흔들리는 가슴이 유난히 시선에 사로잡힌다.

확실히 보통의 인간과는 사고방식이 다르기에 마음이 한시름 놓인다.

행여, 나를 살인자처럼 바라볼까 두려웠었다.

스윽.

내 손등위로 포개지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상연누나의 눈동자와 마주친다.

“나는 당연히 널 이해해. 네가 죄책감을 느낄까 그게 더 걱정이야. 그날... 그 일 이후로, 평범하게 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이런 일 때문에 네가 나를 멀리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야. 내 말 이해하지?”

나는 그런 상연누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준다.

그녀에게서 보이는 진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무한한 신뢰를 받는다는 것이 이런 기분인가 싶었다.

“나... 나도! 아니, 저도 서방님이 더 가까워지면 좋겠습니다!”

나는 얼굴까지 벌게져 말하는 수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역시나 그녀에게서도 진실이 비춰진다.

“오구~ 그래~ 우리 수지 너무 기특하네?”

“서... 서방님? 저는 서방님의 딸이 아닌 아내입니다.”

그런 수지가 너무 귀여워 덥석 안아버렸다.

“당연히 내 여자지!”

“꺄악~ 으~ 서방님 품 좋습니다아~ 하아~”

고개를 돌려 상연누나를 보니 나와 수지를 바라보며 푸근한 미소를 보내오고 있었다.

나도 마주 보며 미소로 화답한다.

나는 가슴 안에서 앙탈 부리고 있는 수지를 품에서 떼어 놓고는 정은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봤던 이윤지라는 중딩귀신과 그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털어놓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