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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87화 (87/297)

〈 87화 〉 2. 사냥꾼.(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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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58)

요동치던 뇌기가 뻗어나간다.

팔과 아랫도리로 이어지던 가느다란 선이 팽창하며 엄청난 고통을 동반했다.

억지로 혈관을 넓히듯 거침없는 움직임에 머릿속까지 찌릿할 정도다.

뇌기의 움직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평소에는 닿지 않았던 전신 구석구석을 누비며 선을 만들어낸다.

무수히 많은 뇌기의 통로가 몸속에 지도를 그리듯 그려져 나간다.

“크으읍!”

하물며 장기에까지 침범을 하는지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피피픽.

뇌기가 지나며 전신의 모공에서 핏물이 배어 나온다.

커다란 구멍이 자리한 곳에선 뭉텅뭉텅 쏟아져 나왔다.

“흐읍!”

눈, 코, 입, 귀.

“쿨럭... 쿨럭!”

눈에 흐르는 피고 인해 세상이 붉게만 보인다.

그 와중에 경기하는 수지의 모습이 보였다.

“수... 수지...”

죽을 것 같은 고통은 둘 째 치고서라도 어쩌면 수지도 정상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수지의 안위에 대한 것으로 머릿속이 꽉 들어찼다.

힘겹게 몸을 이끌며 수지에게로 다가간다.

“허억... 허억...”

조심스럽게 수지의 몸을 흔드는 내 손은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이것이 고통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수지에 대한 걱정으로 인한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계속해서 경기를 일으키며 노란 실금을 줄줄 흘리는 수지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진다.

‘제발... 수지야... 으으윽...’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

다행히 숨은 제대로 쉬는 것 같다.

그저 과한 뇌기로 인한 혼절이라 생각이 들었다.

‘다... 다행이야...’

“크허헉!”

그렇게 안도감을 느끼며 긴장감이 조금 풀리자 더욱 커다란 고통이 밀려든다.

그리고 몸 밖으로 터져 나오는 뇌전.

파지직. 파직. 파파팟.

나는 힘껏 몸을 날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갑자기 튀기 시작하는 뇌전이 수지에게 영향을 줄까 싶었기 때문이다.

“크아아아악!”

모든 혈맥이 터져 나가는 고통에 바닥을 대굴대굴 구른다.

직접 죽음을 겪어 봤고, 죽을 상황도 있었지만 여전히 죽음이란 단어는 두려움을 자아낸다.

그러던 뇌기가 몸의 중앙을 타고 빛살처럼 빠르게 솟구친다.

쾅.

뇌를 두드리는 어마어마한 충격.

그 충격에 나는 죽음을 직감한다.

이렇게 죽게 되면 그들을 볼 수 있을까?

어쩌면 정말 천국이라는 곳이 있어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천국이 있다면 그 착하고 성실한 가족들 곁으로 갈 수 없을 거다.

이미 내 손은 시커멓게 더럽혀졌으니 말이다.

영원할 것 같던 고통의 시간도 지나갔다.

그 보단 온몸의 감각이라는 것 자체가 남아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지금의 내 정신이 과연 내 것인지, 아니면 그저 허공을 배회하는 정신체인지 모를 정도의 몽롱함.

가족을 해친 정염귀에 대한 복수심마저 점점 무뎌져간다.

무뎌지는 복수심만큼 새로운 것이 떠올랐다.

나에게 찾아온 사랑하는 이들.

‘서방님’ ‘서방님’ 하며 나를 향해 강아지처럼 안겨드는 수지가 떠올랐다.

‘난 언제나 자기를 믿어.’ 내가 무엇을 하든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는 상연누나도 떠오른다.

‘아들처럼 생각해도 되겠느냐?’ 그럴 리는 없지만, 정욱아저씨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하게 지원해주던 성기형, 남들에게는 철벽녀지만 나에게는 제법 살갑게 다가왔던 나연누나, 커피의 맛을 알게 해 준 연지, 믿어지지 않지만 진짜 귀신 윤지...

밉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불알친구인 영훈이, 요즘 연락이 안 되지만 성기형만큼 나를 생각해주던 준이형...

생각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았구나...

아까웠다.

짧은 회귀를 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억이 돌아온 순간부터 복수에 목을 매었던 그 시간이...

차라리 내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을...

어쩌면 하늘에 있는 가족들도 그 것을 더 원하지 않았을까?

뭐 이제는 후회한들 되돌릴 수 없겠지만 말이다.

[우리 수지 잘 부탁한다고 했죠? 어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마마의 호통이 머릿속을 울리는 것 같다.

[인한군이 없으면 우리 수지도 무사하지 못하다는 걸 알 텐데요?]

경고성을 울리는 마마의 음성.

내가 죽고 나서의 수지를 떠올리자 정신이 번쩍 든다.

“커억! 컥! 컥! 아... 안 돼!”

벌떡.

“으으윽...”

어찌나 급하게 몸을 일으켰는지 전신으로 퍼지는 미약한 통증에 눈가를 찌푸린다.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 대해 떠올린다.

‘갑자기 뇌기가...’

수지와의 관계 후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키던 뇌기.

몸은 통증이 많이 가라앉은 듯 기절하기 전의 고통은 없었다.

그저 아릿한 통증이 남아 있을 뿐.

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침대 위로 시선을 가져갔다.

“수지야...?”

부름에 대답이 없는 수지는 새근새근 숨을 내뱉으며 한결 편해진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수지를 천천히 흔들어 본다.

깊은 잠에라도 빠졌는지 반응이 없다.

몸은 안정을 되찾았는지 경기도 일으키지 않았다.

“휴우...”

절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일까.

나는 조금은 두려움을 담고 조심스럽게 뇌기를 느껴본다.

찌릿.

전신에 미세하게 퍼져 있는 뇌기의 기운이 느껴졌다.

단단하게 뭉쳐 있는 단전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통신망을 구축한 느낌이다.

‘뭐야? 이건?’

항상 뇌기를 사용하던 것처럼 주먹으로 보내 본다.

의식을 하는 순간 터치는 스파크.

파지직.

“허업!”

나는 차례차례 연결된 모든 곳에 뇌기를 보내봤다.

팔, 다리, 아랫도리, 발바닥, 등.

보낼 수 있는 곳은 모두 보내 본다.

마치 내 의지대로 움직이듯 수월하게 옮겨 다니는 뇌기에 짜릿한 기분마저 든다.

“어... 어떻게 된 거야?”

게임으로 치차면 레벨업이라도 한 기분이다.

몸 또한 엄청나게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몸무게라도 줄어든 걸까 싶어 체중계에 몸을 실어보았다.

150kg.

내 무게를 표기할 수 없었기에 150kg까지 측정 가능한 체중계를 구입했더랬다.

그런데 최고중량을 표시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오히려 늘었다고?”

거울로 후다닥 달려가 얼굴과 몸을 살핀다.

살짝 둥그스름해 순박해 보이던 얼굴은 오히려 젖살이 빠진 것처럼 살짝 샤프한 느낌이 난다.

“음... 역시 잘 생겼어.”

그리고 몸 또한 조금 더 날렵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살짝은 커 보이던 근육들이 더욱 압축이 된 느낌.

아주 만족스러운 모습이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하게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꿈틀거리는 힘.

“죽이는데?”

씰룩.

나도 모르게 입가가 씰룩이고 있었다.

고개를 내려 당당하던 아랫도리에 시선을 가져갔다.

“우왓!”

더욱 묵직해 보이는 양물의 모습에 탄성이 터져 나오다.

크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발기되지 않았음에도 굉장히 단단해 보인다.

잡고 휘두르면 둔기라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도 수지와의 섹스 중에 어떠한 자극이 있었고, 그 계기로 인해 레벨업이라도 한 모양이다.

‘이런 게 기연이라는 건가? 수지야 말로 나에게 날아든 기연이겠지! 흐흐흐.’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침대로 다가 갔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자는 수지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기절한동안에도 실금을 한 모양인지 지린내가 솔솔 올라온다.

그런 수지의 몸을 안아 들어 욕실로 향했다.

살과 살이 닿는 느낌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부드럽다.

수지도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전체적인 골격이 더 둥그스름해졌다.

뿐만 아니라 거대하던 가슴도 더욱 빵빵해진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뭐... 뭐가 이렇게 커... 대박...’

얼굴을 가슴으로 가져가 심장 소리를 들어 본다.

더욱 부푼 유방에 얼굴을 바짝 묻고 나서야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콩. 콩. 콩.

‘심장 소리마저 귀엽네?’

“그런데 왜 안 일어나는 거야? 모습도 안 돌아오고... 이상하네.”

수지의 모습은 여전히 백발에 꼬리를 달랑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요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다.

모습이 변하고도 요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좋은 일이겠으나 확신은 할 수가 없다.

심장도 잘 뛰고 숨도 새근새근 잘 쉬고 있으니 별일은 없으리라 본다.

아니, 별일이 없어야 한다.

일단은 씻겨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수지를 정성스럽게 씻기고 욕조에 잠시 둔 후, 방 안을 정리했다.

그리고 깨끗하게 정리한 침대 위에 눕혀 놓는다.

모든 것을 마쳤는데 여전히 수지는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은 조금씩 초조함으로 물들어갔다.

“마마에게 연락해야 하나?”

조마조마한 마음을 달래며 기다리길 두 시간여.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에 확인해보니 정욱아저씨다.

“네. 아저씨.”

­아직 움직이지 않았군.­

여전히 무뚝뚝하고 걸걸한 음성이다.

“네. 아무래도 오늘 안가에 들리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 몸은 괜찮나?­

“네...”

­다행이군. 안가는 앞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하자. 그리고 괜찮으면 내가 그쪽으로 가도록 하마.­

“이쪽으로요?”

­그래. 그때 커피숍에서 잠깐이라도 볼 수 있나?­

“아... 그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아마도... 오후쯤이 될 것 같다.­

아저씨는 오후에 카페 마들렌에서 보기로 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안가는 앞으로 사용하지 말하는 말을 한다.

그 이유는 만나서 물어보면 되겠고...

이미 오전이 지나 정오를 향해가고 있다.

잠자는 공주님처럼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수지의 기다란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그리고 갑자기 몸을 찌르르 울리는 기묘한 감각이 전해졌다.

“뭐... 뭐야!?”

또다시 몸에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긴장하는데, 떨리던 수지의 눈꺼풀이 번쩍하고 뜨여졌다.

“수지야...?”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이 전의 눈동자가 피처럼 붉었다면, 지금은 마치 보석처럼 반짝이며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는 것만 같다.

찌릿.

그리고 머리를 작게 울리는 통증.

“서방... 님...?”

“어...?”

수지와 내 시선이 얽혀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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