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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88화 (88/297)

〈 88화 〉 2. 사냥꾼.(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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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59)

내 눈에만 보이던 것들이 명확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색으로 보이던 것들이 문자형식으로 느껴졌었다.

둘 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었는데 이것들이 익숙해지면서 정보들을 조합해 뇌에서 편한 쪽으로 수치화를 시키게 된 것 같다.

신뢰 : 100

애정 : 100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당연하다 자부하고 있었지만 막상 신뢰와 애정에 100이라는 수치를 확인하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괜찮아?”

“서방님... 잘 모르겠어요. 모... 몸속에서 기운이 이상해요... 흐윽...”

진실.

혼란 : 75

‘혼란? 지금상태가 상당히 혼란스럽다는 건가?’

나는 수지의 볼을 살살 쓰다듬으며 물었다.

“어떤 식으로 이상해?”

“요... 요기가 느껴지지 않아요. 그런데... 제 모습이...”

그러면서 시선을 꼬리로 가져갔다.

불안한 얼굴로 바라보는 모습에 손을 살짝 잡아 준다.

“진정하고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봐.”

“네? 네...”

수지는 기운에 집중이라도 하는지 큰 눈을 꼭 감았다.

나는 그런 수지의 알몸을 천천히 바라본다.

수지의 몸에 집중을 하자 처음 보이던 것처럼 성감대들이 떠오른다.

한동안 문자로 인식되었던 것이 다시 색으로 변했다.

인식하기 편한 쪽으로 스스로 최적화를 시키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더욱 집중을 하자 수지의 단전에 들어 찬 기운이 확인이 된다.

마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웅크리고 있는 느낌.

조심스럽게 수지의 단전에 손을 올려본다.

두근.

화들짝.

나는 화들짝 놀라며 올렸던 손을 빠르게 회수했다.

손까지 저릿하게 만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의 집약 체.

마치 실타래를 풀어대듯 수지의 전신으로 올올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기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모아 집중하는 수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듯 이마에 땀방울이 올올이 배어 나왔다.

‘이거 심각한 거 아냐?’

마마도 수지의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마마에게 연락을 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제발 별일이 아니길 바라며 수지의 눈부신 나신을 눈에 담는다.

그러던 중 수지의 단전에 똬리를 틀고 있던 기운이 더욱 거세게 기운을 뽑아내기 시작한다.

직접 피부로 느낄 정도로 커져가는 기운에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물린다.

“흐으윽! 서... 서방님! 기운이... 기운이... 아... 안 돼! 꺄악!”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뜬 수지가 비명 성을 내뱉었고 이를 본 나는 황급히 수지에게 뛰어 들었다.

파앙.

수지에게 다가들던 나는 터져 나오는 기운에 부딪치며 그대로 튕겨 나가 버렸다.

휘이익.

쿠웅.

“큭!”

무방비한 상태로 벽까지 밀려나 부딪치며 속이 뒤틀린다.

그만큼 강하게 반발력이 상당했던 탓이다.

쩌저적.

투툭. 툭.

빠르게 몸을 일으키니 갈라진 벽면에서 콘크리트 조각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수지야!”

“서방님! 보... 보지 마세요! 흐으윽!”

‘왜...?’

이윽고 악을 쓰며 보지 말라는 수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수지의 몸 전체로 올올이 자라나기 시작하는 새하얀 털.

당황으로 휩싸인 수지의 붉은빛 눈동자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이런 모습을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수지의 몸을 뒤덮던 새하얀 털이 얼굴까지 타고 올라가며 완전하게 전신을 뒤덮는다.

“아... 안 돼... 흐어엉...”

수지의 울음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완전히 맨탈이 붕괴라도 된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털이 전신을 전부 뒤덮고 수지의 몸도 점점 덩치를 불리며 변해간다.

마치... 저건...?

구미호...?

­흐아아아앙!­

수지의 울부짖음에 원룸의 공기가 진동했다.

너무도 구슬픈 그 울음소리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완벽한 구미호의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알 수 있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여우의 모습은 아니다.

사모예드와 여우를 섞어놓은 것 같은 모습.

그 와중에도 수지는 더욱 덩치를 불려갔다.

드드드드드.

지진이라도 난 듯 원룸이 진동한다.

건물이 계속해서 흔들리자 밖이 소란스러워진다.

­뭐... 뭐야!­

­꺄아아아! 피... 피해!­

­지진이야! 지진!­

계단을 울리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통로를 울렸다.

“크하아아앙!”

이제는 원룸의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커진 모습에 위압감마저 든다.

하나였던 꼬리는 구미호라는 말에 걸맞게 아홉 개가 돋아나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쿠웅. 쿵. 쿵.

구미호로 변한 수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바닥이 울리고 흔들리는 꼬리에 부딪힌 가구와 벽이 부서지고 갈라졌다.

번쩍.

눈부신 빛이 시야를 암전시켰다 서서히 잦아든다.

“하악.... 하악... 하악...”

혀를 길게 문 구미호가 힘겹게 숨을 헐떡인다.

집안을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구미호의 모습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구미호의 붉은 눈이 나를 향해 시선을 옮긴다.

[서방님...]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에 떨리는 눈으로 구미호가 된 수지를 바라봤다.

윤기 흐르는 새하얀 털이 하늘거리며 아지랑이처럼 기운을 뿜어내는 모습은 전설의 신수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실로 신비하고 아름다운 자태이긴 하나, 그보다 절망이라는 단어가 나를 억압한다.

나는 떨리는 몸을 주춤거리며 한 발 한 발 수지에게 다가간다.

“수지야...”

털썩.

나는 다리에 힘이 탁하고 풀리며 그대로 수지의 발 앞에 털썩하고 주저앉아버렸다.

주르륵.

눈가를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인간이 되고자 했던 수지는 구미호가 되어 버렸다.

이 모든 것이 나 때문에 일어났다는 생각에 자책감이 몰려온다.

“나... 나 때문에... 크흑...”

절망스럽다.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미 어떠한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숨이 넘어갈 듯 꽉 막혀온다.

[서방님... 서방님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되고도 마음을 진정시킨 듯 나를 위로해 왔다.

“나 때문이야... 전부... 나 때문에...”

후욱.

고개를 숙이고 있는 얼굴에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얼굴을 내린 수지가 커다란 혀로 내 얼굴을 핥았다.

내 눈물을 닦아주려던 것인 것 같은데, 커다란 혀는 오히려 얼굴 전체를 적셔버린다.

[허... 헉... 죄... 죄송합니다. 서방님...]

용서를 비는 수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큼지막한 붉은 눈동자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구미호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눈이다.

“수지야... 크흑...”

나는 양팔을 벌려 수지의 목을 껴안는다.

하지만 목의 둘레가 어찌나 두꺼운지 내 양팔로도 전부 안을 수 없었다.

내 품에 쏙 들어오던 수지가 이렇게나 커지다니...

잠시 그 상태로 내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던 수지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우선... 이곳을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벌어졌기에 결계를 치는 것은 무의미할 것 같습니다.]

나는 안고 있던 팔을 풀며 손으로 얼굴을 쓸어 눈물을 닦아냈다.

[일단, 마마에게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지의 희망적인 말이 그저 나를 위로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돌아오는 것이 가능했다면 지금이라도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래. 마마에게 가자.”

[잠시... 시도해 볼 것이 있어요.]

수지가 눈을 감고 무언가에 집중한다.

그러자 또다시 눈부신 빛으로 휩싸이는 수지의 모습.

커다란 빛 덩어리가 조금씩 덩치를 줄여갔다.

“어...?”

빛이 줄어들며 커다란 수지의 몸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경악의 눈으로 그 광경을 눈에 담는다.

계속 줄어들던 수지는 새끼 강아지만큼 작은 크기까지 줄어든다.

“어... 어떻게 된 거야?”

[그냥 알게 되었어요.]

주먹보다 작은 얼굴을 들고 올려다보는 수지의 모습은 너무나 귀여웠지만, 이 귀여움을 즐길 수 없다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한 개로 줄어든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작은 혀로 내 손바닥을 핥는다.

“어? 그럼, 사람으로도?”

[아니... 그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희망이 있는 거 아냐?”

[그렇겠죠?]

수지가 폴짝 뛰어 내 어깨에 올라탔다.

새끼 강아지만한 몸으로 엄청난 도약력이다.

어찌 되었든 희망이라는 단어가 마음을 가득 채운다.

위용 위용 위용.

그때 귀를 울리는 사이렌 소리.

일반사람들보다 뛰어난 청각이기에 밖에 우르르 몰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집안을 돌아본 나는 약간의 난감함을 느꼈다.

수지가 커지면서 밀려난 가구 등은 대부분 부서져 있었고, 벽도 여기저기 쩍쩍 금이 갔다.

[죄송합니다...]

수지가 어깨 위에서 애처로운 모습으로 고개를 푹하고 숙였다.

“네 잘못 아니야. 괜찮아. 일단, 최대한 몰래 빠져나가 보자.”

[네... 그런데... 저 너무 보기 흉하지 않나요...]

혀를 길게 물고 헥헥거리며 나를 향한 시선.

피부가 보이지는 않지만 왠지 얼굴을 잔뜩 붉히고 있을 것만 같다.

“아니야. 아까는 정말 아름다웠고, 지금은 너무 귀여워.”

[흐윽... 서방님...]

“나는 우리수지가 어떤 모습이라도 항상 옆에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서방님...]

일단은 도망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것을 설명할 길은 없었고, 보험은 들어 있을 테니 자연재해로 보상을 받지 않을까 싶었다.

인기척을 피해 밖으로 나온 나는 수지를 가슴에 안았다.

이렇게 안고 있으면 그저 반려동물이라 생각하지 싶다.

보송보송한 털이 한결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지금은 이런 모습이지만 당연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퓨우... 서방님... 졸려 워요.]

“어?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려줘야지.”

찢어져라 입을 벌려 하품을 한 수지가 눈을 껌벅거리며 말한다.

그 모습이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

[하지만... 으으... 못 참겠... 푸우...]

이내 품속에서 잠이든 수지를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나는 조급해 미칠 것 같은데... 정말 환장할 일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품에 파고든 수지를 바라본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 흰털 뭉치가 수지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하아... 일단 어디라도 들어가 있자. 아무래도 마마에게 연락부터 해야겠네.”

그런 내 눈에 카페마들렌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정욱아저씨를 잠깐 만나기로 했었던 것도 떠오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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