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는 다보여-89화 (89/297)

〈 89화 〉 2. 사냥꾼.(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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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60)

우선적으로 정욱아저씨와 카페마들렌에서 시간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마마에게 전화를 건다.

얼마 울리지 않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

여전히 매혹적인 음서의 마마였다.

­무슨 일인가요.­

막상 마마의 음성을 듣자 심장이 사정없이 뛰기 시작한다.

정신이 요기로 오염된 것은 아니지만, 수지는 구미호가 되어 버렸다.

이것을 마마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불안한 마음이다.

“그게... ”

과장하나 보태지 않고 수지에 대한 것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했다.

나 자신의 변호를 위해 약간이라도 과장이 섞인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 속에는 성교 중 수지를 반요의 모습으로 변하게 했다는 말도 포함되었다.

마마에게 호통을 듣던, 맞아 죽던 간에 나에게 중요한 것은 수지였다.

절대로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마마는 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묵묵히 그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이야기를 모두 마친 나는 침묵 속에서 마마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인한군의 이야기는 잘 들었어요.­

꿀꺽.

그 침착함이 오히려 더욱 긴장을 끓어오르게 만든다.

제발 괜찮다는 말 한마디만 들려오길 간절하게 바랐다.

­저도 직접보지 않는 이상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네요. 일단, 월성촌으로 오도록 하세요.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상태를 들어보니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탁하고 맥이 빠져 버린다.

얼마나 듣고 싶었던 소리인가.

“하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감사합니다. 우리 딸아이를 생각하는 인한군의 마음이 느껴지네요.­

통화를 종료하자 마마가 보내주는 위치가 휴대폰으로 전송되어 왔다.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조금은 안도의 마음으로 마들렌으로 들어간다.

딸랑. 딸랑.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눈을 동그랗게 뜬 연지가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오빠! 안녕하세요!”

이제는 제법 목소리에 힘이 들어갈 줄도 안다.

연지의 옆에 웅크려 얼굴을 묻고 있던 윤지가 반가운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오빠!­

나는 티 나지 않도록 살짝 미소를 지어 주었다.

성큼 다가와 내 주위를 얼쩡거리며 신나서 떠드는 윤지.

­와! 어? 이... 강아지가...? 아닌데...? 뭐지? 영물? 그런 거예요? 너무 귀여운데 되게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역시 오빠는 힘순찐 이야!­

나에게만 들리는 음성으로 떠드는 터라 연지는 들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두통이 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낸다.

“연지 잘 지냈지?”

“네? 네네!”

“그래도 오늘은 머리 깔끔하게 묶었네?”

연지가 볼을 붉히며 쭈뼛거린다.

“그... 그냥...”

“예쁘네,”

“네? 네? 그... 그럴 리가...”

“큭큭~ 뭘 또 그렇게 부끄러워하냐? 그런데 왜 안경은 그대로야?”

연지가 양 손을 꽉 쥐고는 몸을 배배꼰다.

“아...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요...”

­어? 우리 언니 얼굴 빨갛다! 오~ 힘순찐 오빠가 제법이네?­

‘내가 찐따로 보인다는 거야?’

버럭 하고 싶지만 연지 앞이기에 애써 참아냈다.

“와~ 강아지인가 봐요? 오빠가 키우시는 거예요?”

“어? 그... 그렇지? 하하하~”

“처음 보는 종 같아요. 정말 귀여워요. 만져 봐도 돼요?”

“그건... 나중에 조금 예민해서.”

“아...”

“예가체프 있어? 두 잔 부탁할게.”

“마침 저번 주에 볶아 놓은 것 있어요. 헤헤~”

해맑게 웃는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연지의 머리로 손이 갔다.

움찔.

다가오는 내 손에 깜짝 놀란 듯 몸을 들썩이는 연지.

나도 그 모습에 가던 손을 멈췄다.

그러곤 어색하게 팔을 접으며 턱을 긁었다.

완전히 붉게 달아오른 연지의 얼굴이 보인다.

“이런~ 미안.”

“아... 아니에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전 괜찮아요!”

진실.

괜찮다면서 슬쩍 머리를 들이밀어 오지만 살짝 어색해져서 손을 뻗기가 그랬다.

호감 : 70

신뢰 : 55

애정 : 15

나에 대한 관심이 제법 괜찮다는 것이 보인다.

확실히 색깔이나, 막연하게 신뢰 호감 이런 문자보다 편해졌다.

저 숫자가 100% 적용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긍정적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귀신에게도 보일까?’

커피를 주문하고 테이블로 이동하며 옆에서 얼쩡거리는 윤지를 들여다본다.

호감 : 55

신뢰 : 75

애정 : 15

미연시 게임처럼 세세하고 정확하게 표현되지는 않지만 꽤 편하다.

상대가 나에게 갖는 감정과 성감대, 진실과 거짓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능력이라는 생각이다.

이 능력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을 하는 것일까?

­뭘 그렇게 봐요? 제가 예쁜 건 알겠는데 그거 미성년자 성희롱이에요?­

“너 살아 있으면 미성년자 아니거든? 그리고 이 오빠가 귀신한테 들이 댈 정도로 굶주리지는 않았단다.”

­베~~~­

윤지가 혀를 내밀며 내 말을 부정한다.

­그런데 살이 빠진 건가? 뭐~ 조금은 샤프해졌네요.­

“내가 좀 볼매야.”

­무슨 말을 못해~ 에휴~ 그런데 그 새끼는 어떻게 됐어요?­

“얼마나 지났다고. 알아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넵! 꼭! 꼭! 혼내주세요!­

“그리고 손님 오면 언니한테 가 있어. 정신 사나우니까.”

­싫은데~ 아저씨 옆에서 놀 건데~­

“그럼, 네 복수고 뭐고 다 없어.”

­췟! 알았다고요!­

“그리고 아저씨 아니거든?”

­흥~ 네~ 알겠네요~ 오빠?­

윤지랑 투닥거리고 있자니 연지가 커피를 들고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쉿.”

­흥!­

“오빠, 여기 커피요.”

“오~ 땡큐~ 그리고 앞에 잠깐 앉아볼래?”

기왕 온 김에 수지를 고용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볼 참이다.

비록 지금은 구미호의 모습이지만, 나는 수지가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마마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기에 더욱 믿을 수 있었다.

그 말에 화색을 띄며 조심스럽게 의자를 당겨 앉는다.

“무슨 일로...”

“혹시 직원 한 명 써 볼 생각 없어?”

“직원이요? 그... 그건... 아무래도...”

“너무 부담 갖지는 말고. 커피를 배워 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서.”

“아... 그래도 형편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공짜로 사람을 부릴 수는 없잖아요.”

아무래도 가게를 꾸려 나가는 것 자체가 부담인 터라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있다.

내가 투자 명목으로 돈을 융통해 빛을 값아 주고 공동으로 마들렌을 운영하는 것.

사실, 장사가 되던 안 되던 크게 상관은 없었다.

일단은 정은식의 더러운 돈을 빼 버리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어쩌면 오지랖이랄 수도 있겠지만, 윤지의 이야기를 듣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연지 같은 숨은 보석을 그런 사이코패스 변태 새끼가 건드리게 놔 둘 수도 없고.

“그럼, 내가 투자하는 것은 어때?”

“오빠가요?”

“응.”

그 말에 연지의 얼굴이 더욱 걱정스럽게 변한다.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되어 정은식에게 빚을 지고 있기에 불편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연지의 처지에서는 정은식에게 돈을 빌린 것이나, 새롭게 나에게 빚을 지는 것이나 매한가지겠지.

“조금 신중하게 생각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오빠에게 부담 드리기도 그렇고. 죄송하지만... 그 제안은 거절해야 할 것 같아요...”

진실.

연지는 확실히 부담을 갖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계속 유지하기 힘들지 않아?”

“그... 그건 그런데...”

“난 장사가 안 돼도 계속 카페를 계속 유지할 생각이야.”

“네? 왜... 왜?”

“별다른 이유는 없어. 연지 네 커피가 맛있어서.”

“겨우 그런 이유로요?”

“그게 왜 겨우 그런 이유야? 연지 네 커피는 오빠 입에 딱 맞는걸. 그리고 오빠한테 그 정도는 부담도 아니야.”

연지의 얼굴이 더욱 복잡해진다.

윤지는 상기된 얼굴로 내 눈앞에 따봉을 연발하고 있었다.

“오빠가 일단 네가 빌린 돈 정도를 투자 할게. 대신 너는 내 지인에게 일을 가르쳐 주면 좋겠어. 그렇다고 무작정 가게를 놀릴 생각은 아니야. 홍보도 하고 가게가 잘 될 수 있도록 노력은 해야지.”

그 말에 연지의 눈동자에 습기가 들어찬다.

“저... 저한테 왜 그렇게까지... 흐윽...”

“어? 연지 우는 거야?”

“아... 아니에요! 훌쩍.”

“하하하~ 오빠 사기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 그래서 우는 거 아니에요.”

“농담이고~ 진지하게 생각해 봐. 생활하는데 문제가 있으면 점장으로 근무해도 돼. 월급 정도는 줄 수 있으니까.”

그 말에 화들짝 놀라기까지 한다.

“그건! 너무 민폐예요. 저... 정말 열심히 해 볼게요! 오빠 조언대로 스타일도 바꾸고...”

“그래. 진즉에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냐.”

“죄송합니다...”

“헐~ 네가 나한테 왜 죄송해?”

“그래도... 아무튼 정말 그래 주신다면 오... 오빠랑 해 보고 싶어요...”

“어? 나랑 하고 싶다고?”

은근하게 묻자 연지의 얼굴이 폭발할 듯 벌겋게 변했다.

아무리 순진하다 해도 24살이나 되었으니 알 만큼은 알 거다.

­으악! 이 오빠 순진한 얼굴을 하고 늑대였어!­

“엥? 왜 그렇게 얼굴이 빨게?”

그 농담에 더욱 얼굴이 빨갛게 변하는 연지였다.

나는 분위기가 무르익은 마당에 확실하게 매듭짓기로 한다.

“그 삼촌이라는 분 시간 내서 모셔 봐. 아 참, 그런데 얼마 빌린 거야?”

“오... 오천만원이요...”

“그래? 알겠어. 그럼, 확실히 오빠 투자 받는 건 맞는 거지?”

“네... 감사합니다.”

“아니야. 진짜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딸랑. 딸랑.

그때 입구 문이 열리며 정욱아저씨가 들어왔다.

방울 소리를 들은 연지가 벌떡 일어난다.

“아저씨 도착했네~ 일단 그렇게 알고 있을게.”

“네... 오빠. 감사합니다.”

연지가 뒤돌아가며 정욱아저씨에게 인사를 한다.

옆에는 실실거리는 윤지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윤지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너도 가 봐.”

­히잉~ 네~ 오빠 사랑해용~!­

나는 카운터로 향하는 윤지귀신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윤지와 스쳐 지나던 정욱아저씨가 윤지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곤 날카롭게 기세를 끌어올린다.

윤지도 이에 화들짝 놀랐는지 부리나케 카운터 뒤로 이동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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