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는 다보여-90화 (90/297)

〈 90화 〉 2. 사냥꾼.(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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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61)

확실히 오랜 시간 요괴들과 대적해 오다 보니 감각이 예민한 모양이다.

나는 주변을 경계하며 다가오는 정욱아저씨의 상태를 확인한다.

호감 : 60

신뢰 : 79

애정 : 98

애정이라는 것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소 의외이기는 했다.

색으로 확인하던 것과 수치로 확인하는 것은 새로운 기분이다.

아저씨의 애정이 설마?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런 것처럼 나에게 아들을 투영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테이블까지 다가온 아저씨가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이 안에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군.”

나는 아저씨의 말에 조금 놀랐다.

윤지귀신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이다.

“불순한 의도는 아닌 것 같지만.”

“그런 것도 느낄 수 있나요?”

“간혹 느껴지는 경우가 있지. 불순한 것들은 파악하기가 더 쉬워. 하지만 이 안에 있는 것은 적대감은 느껴지지 않는군. 퓨리 다크니스를 주사하면 볼 수 있겠지만 그럴 정도는 아니야. 그나저나 안색은 괜찮은 것 같군.”

“아? 네... 그렇죠... 죄송합니다.”

“아니다. 내가 더 주위를 살폈어야 하는데... 그런데 놈들이 노린 이유는?”

호로록.

나는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담아 돌리고는 삼킨다.

그리고 그날의 일을 메시지에 적은 것보다 자세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아저씨는 팔짱을 낀 채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이런 생활을 하는 사냥꾼들 중 정상인이 있기는 힘들지. 내 전직이 법과 연관되어 있지만 지금은 사냥꾼이다. 법의 잣대로 너를 판단할 생각은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저씨의 말을 경청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하다 보면 꼬리를 잡히고 말 거다. 법이란 것이 악인이라도 죽이는 것은 이야기가 틀려져.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항상 몸을 사리길 바란다. 그저 이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

“네...”

“그리고 뒤처리를 사냥꾼 웹에 의뢰할 수밖에 없었다. 사냥꾼 웹의 운영자도 믿을 수 있는 인물은 아닐 거다. 이리저리 조심해서 이곳에 왔다만, 꼬리가 붙는다는 것을 느꼈다.”

“꼬리... 요?”

“아마도 운영자 쪽에서 붙인 것이겠지. 나도 그저 물건구매와 정보를 위해 이용만 했기에 그들의 정확한 의도는 모른다. 다만... 꼬리가 붙은 것을 보면 그놈들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은 장담할 수 없겠구나.”

마마에게도 한 차례 듣기는 했지만,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자들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그 안가는 폐기하려 한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서로 만남을 자제하는 것도 좋을 듯 하구나. 너는 당분간 몸을 사렸으면 좋겠다.”

무뚝뚝한 얼굴 위로 걱정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런 정욱아저씨의 시선이 옆 의자에서 고로롱 거리며 자는 수지에게로 향한다.

“그 동물은...?”

“아... 그게... 흠...”

“보통 동물은 아니군. 말하기 곤란한 것이냐?”

“조금... 그러네요... 나중에 설명 드릴게요.”

“그래.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럼 이만 헤어지자꾸나.”

급작스럽게 몸을 일으키려는 정욱아저씨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잠시, 상의 드릴 일이 있어요.”

어정쩡하게 일어났던 아저씨가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말해 보라는 듯 턱을 살짝 들어 보인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 이내 마음을 정하고 입을 열었다.

“아저씨도 말씀하셨지만... 이 안에 귀신이 있습니다.”

“역시... 그렇군...”

“전... 그 귀신이 정확하게 보여요.”

그 말에는 꽤 놀란 눈치다.

“으음...”

“그리고 대화도 가능합니다.”

“그렇군...”

정욱 아저씨의 얼굴은 꽤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쁜 귀신은 아니에요. 저기 카운터 보이시죠? 이 가게 사장의 동생입니다.”

그러곤 윤지에게 벌어졌던 일들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는 정욱아저씨의 얼굴에 처음으로 분노라는 감정이 드러난다.

가족들의 불행과 경찰이었다는 과거의 기억이 더욱 부채질을 했노라 생각된다.

“그... 렇군...”

그리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밝힌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나처럼 극단적인 판단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놈을... 죽일 겁니다.”

“흐음...”

낮게 탄식하는 아저씨의 음성.

“반대는 하지 않으시는군요.”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라도 빠진 듯 아저씨는 별말이 없었다.

나는 정욱 아저씨의 침묵을 끈기 있게 기다린다.

“꼭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거냐.”

“휴우... 일단 죄송합니다. 너무 극단적이었네요.”

“아니다.”

“사실, 저도 그놈과 대면하지 않는 이상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에요.”

아저씨는 한동안 멍한 얼굴로 커피를 마셨다.

이런 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표정이다.

아저씨의 표정이 이리저리 변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새로워 보인다.

그만큼 나에 대한 마음이 깊은 것일까.

그 와중에 이런 말을 들었음에도 신뢰가 올라갔다.

애정도 완전하게 100을 찍어 버린다.

호감 : 60

신뢰 : 85

애정 : 100

“나는... 흠흠... 인한이 너를 믿는다.”

여전히 걸걸한 목소리지만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음성이다.

염려가 묻어나는 아저씨의 말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터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그리고 복수에 대한 것도 조금은 놓아 보려고 합니다.”

그 말이 의외였는지 아저씨의 눈이 살짝 커졌다 돌아왔다.

정말 오늘 다채로운 표정을 보이는 아저씨였다.

“정말이냐?”

“네... 언젠가는 그 놈이 나타날 것이라 생각해요. 다만... 복수에만 너무 목매지 않고 주위도 좀 돌아보려고 합니다.”

수지와의 관계 후 알 수 없는 업그레이드를 겪으며 죽음을 경험했다.

그제야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이 생각이 났고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연지와 깊은 관계는 아니지만 연지같은 이들이 정말 많을 거다.

일부러 찾아다닐 생각은 없지만, 보고서도 모른 척 할 생각은 없다.

“자... 잘 생각했다. 그놈을 찾는 건 이 아저씨가 다 하마.”

“아니요. 이런 말 드리기는 주제넘지만... 저는 아저씨도 좀 내려 놓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천천히... 우리 천천히 해요... 그놈을 잡아 죽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렇게 복수에만 매달리는 것을 하늘에 있는 가족들이 원하지는 않을 거예요.”

“후우... 생각... 해... 보마...”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았기에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다.

“그놈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어쩌면 꽤 영향력이 있는 위치에 있을지도 모르지요. 참고로 강남 흑곰파 강대식도 인간이 아니더라고요.”

“그렇군...”

“아저씨. 우선 우리도 힘을 갖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힘?”

“네... 웬만한 입김 정도는 막을 수 있을 만큼. 그러려면 돈이 많이 필요할 것 같네요.”

“그렇겠지.”

“그래서 돈을 벌어보려고 합니다. 아저씨도 저를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정욱 아저씨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저씨가 제 옆에서 아버지처럼 계셔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차가운 눈동자가 잘게 떨리기 시작한다.

“그... 그게...”

말까지 더듬는 아저씨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나는... 나는...”

“여기 옆에 윤지라는 귀신이 있거든요? 이런 아이들의 억울함도 풀어 주고... 복수에만 매달리는 것보다 보람이라는 것도 생기지 않겠어요? 거절하셔도 상관은 없어요. 그래도 저는 아저씨를 아버지처럼 생각할 거니까요.”

정욱 아저씨의 눈가에 습기가 어리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어느새 슬그머니 다가와 얼쩡거리던 윤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훌쩍인다.

아저씨의 신뢰도 90을 찍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호감까지 쭉쭉 올라가더니 80을 찍는다.

“크음... 생각해 보도록 하마. 오늘은 이만 가 보지.”

어색하게 일어선 정욱아저씨가 인사를 하며 뒤돌아 나간다.

나도 일어나 아저씨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딸랑. 딸랑.

아저씨가 마들렌을 나서며 맑은 방울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하아...”

의자에 털썩 앉은 나는 괜히 머쓱해져 귀 밑을 긁적였다.

괜히 가슴이 간질간질하고 얼굴도 달아오르는 것 같다.

아마 아저씨도 같은 마음일 거로 생각한다.

지금 내 기반은 강북의 조폭보스다.

이제는 정말로 인정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손에 들어온 이 세력이 아니라면 돈을 벌 일이 요원하다.

그리고 정욱아저씨가 옆에 있어 준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강남의 흑곰파만 해도 확인된 웨어비스트만 셋이었다.

강일파의 조직원이 아무리 훈련에 매진한다 해도 웨어비스트를 상대할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아저씨라면 조금은 안심이지...’

훈련당시 퓨리다크니스를 주사하지 않고는 내 신체 능력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오로지 죽이기 위한 전투였다면 다른 양상이 나왔을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지금의 내 육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나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훌쩍...­

“너는 왜 울고 있어?”

­몰라~ 그냥 이상하게 눈물이 나.­

“무슨 말인지 알기는 하고?”

­이 씨! 그냥 난다고! 바보 오빠야!­

토라진 윤지가 연지의 곁으로 가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나는 아직도 고로롱 코를 골며 자는 수지는 안아 들었다.

“끼이잉~”

강아지처럼 칭얼거리는 수지가 눈을 뜨며 눈을 마주쳐왔다.

“스르릅!”

길게 문 혀를 황급히 넣으며 당황스럽게 말한다.

[서... 서방님! 제가 얼마나 잠들었나요?]

“큭큭큭~ 더 자도 돼. 마마하고 연락했어.”

[정말이요? 후음... 그럼 저는 조금 더 잘게요. 이상하게 계속 졸려워요...]

나는 솜뭉치처럼 웅크리는 수지를 가슴에 안고 몸을 일으켰다.

수지가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택시를 불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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