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2. 사냥꾼.(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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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62)
강원도의 산자락을 빠르게 해치고 나간다.
처음 발걸음을 했음에도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품 안에 있는 수지 덕이다.
[서방님. 여기서 오른쪽.]
팔에 안긴 수지의 안내에 따라 숲을 해쳐 나가길 1시간 여.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공간의 일그러짐이 눈에 들어온다.
창고에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지금은 저 현상이 결계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안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경계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영화의 3D영상과 같은 신비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다.
“와... 진짜 신기하다.”
[어? 서방님은 결계가 보여요?]
나는 수지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저기 일렁이는 모습으로 경계가 보이잖아.”
[그게...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게 아닙니다...]
“저기 일렁이고 있는 게 안 보인다는 말이야?”
[역시... 우리 서방님은 대단하십니다.]
그 말에 감탄을 내뱉는 수지였다.
이 눈은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건지 알 수가 없다.
“하... 하하하...”
안 보이는 것보다는 당연히 좋은 것이라 여겼기에 그저 웃음으로 때웠다.
[정확히 어디서 어디까지 보이나요?]
나는 결계가 보이는 경계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와아~ 그렇게나 정확하게~]
“수지는 어떻게 보이는데?”
[저는 보인다기보다는 기운을 읽는 거예요. 가까이 다가가면 파악할 정도로 볼 수는 있지만, 이 거리에서는 무리입니다.]
“그래? 마마정도 되면 나처럼 볼 수 있지 않나?”
[그렇지는... 않을 걸요?]
그 말에는 다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 눈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뛰어난 능력을 지닌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확하게 결계의 경계에 멈추어 섰다.
“여기서 기다리면 되나?”
[네. 마마도 도착한 것을 느꼈을 거예요.]
나는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는 수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수지의 새하얀 털은 솜사탕처럼 녹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몸이 이상하거나 하진 않지?”
[네. 점점 적응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느낌이 순종 구미호들이 느끼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런 모습은 처음인가 봐?”
[네. 저는 특이한 경우니까요.]
수지는 떨어진 낙엽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말했다.
벌써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지 푸른 잎들은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붉게 물들고 있었다.
숲의 맑은 공기는 절로 기운을 북돋아주는 것만 같다.
내 안의 뇌기가 절로 정순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꺄하하~ 재미있어요~]
수지는 고양이라도 되는 양 바닥의 나뭇잎들을 두 발로 차 내며 놀고 있었다.
모습이 바뀌면서 정신연령도 퇴화를 한 것일까?
겨우 낙엽에 저리도 신이 날까 싶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베어 나온다.
“조심해~ 그러다 구르면 다쳐.”
너무 작은 솜뭉치 같은 모습이라 괜히 걱정이 앞선다.
어느새 내 머릿속에선 그 거대한 구미호의 모습은 사라졌는가보다.
[꺅~ 꺅~ 날아간다~]
수지가 나뭇잎을 쳐 내자 팔랑팔랑 공중으로 나부낀다.
훌쩍.
이를 놓칠세라 훌쩍 뛴 수지가 그 앙증맞은 발을 휘둘렀다.
굵은 통나무 근처에서 팔랑거리는 나뭇잎을 정확하게 손톱으로 꿰어내는 수지.
그래도 힘이 남았는지 수지의 앞발이 통나무를 가격한다.
콰지직.
앙증맞은 발에 가격 당했다고 하기에는 꽤 과격한 소리에 놀랐다.
‘콰지직?’
수지의 귀여운 모습을 휴대폰에 담던 나는 통나무의 상태를 보고는 입이 쩌억 벌어진다.
[꺄하~ 잡았닷!]
‘허... 허허허...’
내 엄지손가락만한 앞발로 후려친 나무가 반절이 넘게 뜯겨나가 있다.
수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바닥에 착지하고는 손톱에 껴 버린 나뭇잎을 빼려는지 양 발을 공중에 휘두르고 있었다.
쩌저적.
그때 몸통이 뜯겨나간 나무가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기울어졌다.
‘어?’
우지지직.
그러곤 나뭇잎에 정신이 쏠린 수지를 향해 쓰러지기 시작했다.
“수지야!”
깜짝 놀란 내가 몸을 날리며 수지를 불렀고, 수지는 나뭇잎이 붙은 앞발을 들고는 나를 향해 시선을 옮긴다.
그 사이 나무는 완전히 넘어져 버렸고, 나는 간발의 차이로 수지를 감싸곤 몸을 굴렸다.
쿠웅.
“허억... 허억... 허억...”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거칠어진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서... 서방님?]
“조심해야지! 큰일 날 뻔했잖아!”
웅크린 몸을 일으키며 털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수지를 들어 올렸다.
[흐응... 죄... 죄송합니다. 서방님...]
“키잉... 키잉...”
고개를 푹 숙인 수지의 붉은 눈망울에 습기가 어린다.
그 애처로운 모습에 순간 심장이 울렁거렸다.
너무나도 귀여운 모습에 더 이상 호통도 치지 못하겠다.
나는 수지를 소중하게 품에 앉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휴우... 심장 튀어나올 뻔했다. 저 나무 보이지?”
[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훌쩍... 네...]
“수지야. 네가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 다쳤으면 어쩔 뻔했어.”
[네... 히잉~ 죄송해요... 훌쩍.]
“그런데... 어떻게 그 작은 발로 저렇게 만들었지? 휘유~ 수지야 앞으로 발 휘두르는 거 조심하자. 그 앙증맞은 발에 맞아 죽기는 싫다.”
[서방니임~ 히잉~]
수지가 작은 얼굴을 내 손에 비비곤 할짝거리며 손을 핥는다.
뭔가 성격이 동물처럼 변한 것은 맞는 것 같다.
별일이라면 별일이랄 수 있는 사건이 지나가고 수지는 조신하게 내 품에 안겨 있었다.
다만, 그 특유의 호기심을 버리기 힘든지 낙엽이 떨어진 때마다 헥헥 거리며 시선을 가져가는데 절로 한숨이 나온다.
‘설마... 정말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괜한 불안감을 억지로 욱여넣은 채 마마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십여 분이 흐를 쯤, 결계의 한 부분이 요동을 친다.
그러곤 문이 열리듯 요동치던 부분이 밀려나며 공간을 만들어 낸다.
[마마!]
수지가 내 품에서 폴짝 뛰어내리며 마마를 향해 뛰어 들었다.
수지라는 것을 알아 챈 마마가 두 팔을 벌려 뛰어오른 수지를 안아 들고는 수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쪽머리를 만들어 비녀를 꽃아 고정시킨 머리.
연보라색의 저고리.
하얀 바탕에 연보라색 도라지꽃이 수놓아진 치마.
한복을 입고 있는 마마의 모습은 한 폭의 동향화를 연상케 했다.
그 숨 막히는 아름다움에 절로 넋이 나갈 것 같다.
“심각해 보이지는 않아 다행이구나.”
[마마! 어서 모습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조금 기다려 주겠니?”
[네!]
수지와 대화를 마친 마마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사건의 원흉이나 마찬가지인 터라 마마의 시선을 마주치기가 껄끄러웠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자니 마마가 괜찮다는 듯 부드러운 어조로 말한다.
“인한군.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상태를 보니 큰 문제는 아닌 듯 보여요. 인한군의 말대로 요기도 느껴지지 않네요. 딸아이의 몸 안에 정기가 가득한 것을 보니 수행을 마쳤을 때 오는 변화일수도 있겠군요. 아마 정기를 다루는 것이 익숙지 않아 생긴 현상으로 보입니다. 인한군이 아니었더라도 이렇게 되었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마마의 말에 숙여졌던 고개가 번쩍 들려진다.
“정말입니까?”
“수지는 당분간 월성촌에서 정기를 다루는 수련을 쌓아야 할 것 같네요.”
“그렇다면 저도...”
함께 하겠다 말하려던 것을 마마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무리일 것 같네요.”
“무리라니요? 마마 전 수지 곁에서 떨어질 수 없어요.”
[마마! 서방님이랑 같이 있도록 해 주세요!]
수지도 내 의견과 같은 듯 마마를 향해 호소했다.
그런 마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조금은 곤란한 표정의 마마를 보며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마마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 이유는 내가 풍기는 뇌기의 향기 때문이었다.
이 전에는 그리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으나 지금은 그 향기가 매우 진해졌다는 말이다.
수련을 쌓고 있는 구미호들이 혹하고 달려들 정도로.
“그... 그런...”
말을 하는 마마의 얼굴에도 약간의 홍조가 피어오른 것이 보인다.
“구미호를 벗어난 저까지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인한군이 월성촌에 들어오면 다소 난감한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아...”
“아직은 확신이 서지 않기에 인한군을 월성촌으로 들이지 못하는 점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당연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걸릴 것 같나요?”
“그것은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대신 수지에 대한 것은 수시로 연락을 드리겠어요.”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흑... 마마... 서방님...]
수지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는지 더 이상 칭얼거리지는 않았다.
다만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마마의 품을 벗어나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이별이 너무 아쉽다는 듯 내 품을 파고들며 얼굴을 비벼오는 수지.
그 모습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마음을 정리한 후 다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수지야. 수지가 노력하면 빨리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열심히 마마의 지시에 따르자.”
[흐윽... 네...]
“수지야. 그만... 이리 오렴.”
마마의 말에 아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핥아오던 수지가 마마에게로 옮겨 갔다.
그 작은 뒷모습이 너무나 쓸쓸해 보인다.
내 마음도 씁쓸하기 그지없다.
“인한군. 그럼 연락드리겠어요.”
“네.”
마마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자 나도 꾸벅 허리를 숙였다.
미래의 장모님에게 고개만을 숙여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결계 안쪽으로 두 모녀가 사라지자 마음 한쪽이 휑하게 비어 버린 것 같다.
적막한 숲속이 더욱 적막해진 것만 같았다.
마마의 표정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것을 볼 때, 별문제는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다만,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문제일 듯하다.
모녀의 시간과 내 시간은 공평하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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