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2. 사냥꾼.(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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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63)
나는 눈을 감고 수지에 대한 걱정을 한 쪽으로 밀어둔다.
그리고 단전에 꿈틀대는 뇌기에 집중했다.
마마가 경계하던 진해진 뇌기의 향.
확실히 기운을 느끼는 것이 이 전보다 예리해졌다.
뇌기는 억지로 봉해진 것처럼 으르렁거린다는 느낌인데, 아무래도 이로 인해 기운이 겉으로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수지에게 정신이 팔려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도 정상인 상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뇌기가 만들어놓은 선들에 집중했다.
혈관처럼 전신으로 퍼져나간 미세한 통로들이 감각에 잡힌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이 통로로 미약한 뇌기가 시냇물처럼 흐르고 있다.
이 좁은 통로들은 단전에 웅크리고 있는 뇌기를 전부 소화하지 못하고 꽤 힘겹게 버틴다는 느낌이 든다.
이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이 통로들을 확장해야 중앙에 있는 놈이 잠잠해질 것 같은데?’
또다시 도심에서 아침의 그런 난리가 난다면 꽤 난감한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아침의 그 일로도 골치가 아픈 마당이다.
이렇게 인적이 드문 산 속에 들어온 김에 적당한 곳을 찾아 뇌기를 방출해 보기로 했다.
우선 언제나 사용했던 대로 팔을 향해 뇌기를 밀어 넣는다.
인식을 하자마자 어느새 통로를 통해 진입한 뇌기가 손끝에서 스파크를 튀긴다.
파지직. 파직. 파직.
이 전에도 뇌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에 만족을 했지만, 지금은 확연하게 다른 느낌이다.
마치 손가락을 움직이듯 자연스럽게 뻗어 나오는 뇌기에 희열까지 느껴진다.
손가락을 접듯 뇌기를 회수하자 어느새 단전으로 들어가 뭉치는 뇌기.
뇌기가 불만이라도 있는 듯 으르렁 거리길 주저 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도 생각이 될 정도다.
‘밖에 나가고 싶다는 말이냐? 그럼 그렇게 해주지.’
이번에는 양팔과 양다리에 동시에 뇌기를 보낸다.
비좁은 통로를 통과한 뇌기가 단숨에 모습을 드러내며 스파크를 발생시킨다.
“대단한데?”
손과 발에서 느껴지는 뇌전의 힘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인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는 이 느낌에 희열감이 차오른다.
지금 주먹을 뻗는다면 수지의 앙증맞은 발길질처럼 통나무 정도는 우습게 부숴 버릴 것 같았다.
생각과 동시에 주먹을 뻗어 두꺼운 나무 기둥을 향해 뻗어냈다.
콰앙.
퍼서석.
시커멓게 그을린 나무의 잔해들이 사방으로 터져 나간다.
그럼에도 주먹으로 전해지는 충격은 크지 않다.
나는 두 다리를 박차고 힘껏 뛰어올랐다.
타앗.
부웅.
창고 안가에서 뛰었던 그 날과는 확실히 다르다.
무려 5M높이를 가뿐하게 뛰었다가 착지했다.
이번에는 어지러운 숲 속을 힘껏 달려 나가 본다.
엄청난 속도로 숲을 가로지르며 발과 주먹에 뇌전을 마구 밀어 넣었다.
콰앙. 콰앙.
휘이익. 휘이익.
내지른 주먹에 나무들이 힘없이 박살나고 빠르게 그 사이를 지나며 귓가로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으르르르릉.
산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마음껏 뇌기를 발산했다.
하지만 단전에 뭉쳐 있는 뇌기는 아직도 모자란다는 듯 더욱 으르렁 거린다.
계속해서 사용할수록 점점 과부하가 걸리는 듯 통증이 동반되기 시작한다.
‘으윽...’
내 몸이 기운을 저부 감당하기엔 벅차다는 것을 느낀다.
알 수 없는 위기감에 기운을 갈무리하려 하는데, 뇌기는 이를 받아들일 마음이 없어 보였다.
‘이... 이 자식이!’
피핏.
순간 머리가 띵하고 울리며 코에서 피가 터져 나온다.
몸이 부풀어 오르는 감각에 정신도 아찔해진다.
‘안 돼... 또 이럴 수 없어!’
나는 뇌기를 갈무리하기보단 그냥 터트리는 것을 선택했다.
단전의 뇌기를 전신으로 마구 퍼트려 보낸다.
좁은 통로를 비집고 밀려드는 뇌기가 입구를 마구 긁어대며 엄청난 통증을 유발했다.
“크으으...”
번쩍. 번쩍.
눈앞을 시퍼렇게 물들이는 뇌전이 시야마저 가려 버린다.
이미 뇌기가 지나는 통로들은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짐을 느낀다.
“으아아아악!”
파지지직.
퍼퍼퍼펑.
파지직. 파직.
뇌기의 소용돌이.
좁은 통로를 억지로 확장시키며 터져 나온 뇌전이 숲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결계 근방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결계의 입구 주변을 초토화시켰을 것이다.
나는 조금이라도 뇌기를 소진하기 위해 미친 듯이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나무가 터져 나가고 땅이 움푹움푹 파였다.
콰콰쾅.
그 여파가 어찌나 강한지 커다란 바위마저 잘게 부서져 마구 터져 나간다.
나의 몸부림은 한참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이에 소실된 나무만 수 십 그루는 될 듯 했다.
***
“허억... 허억... 허억...”
전신이 욱신거리지만 기어코 빌어먹을 뇌기를 잠재웠다.
아직도 거대한 힘이 느껴지지만 흉포하게 날뛰던 것을 멈추었다.
덜덜 떨리는 팔다리로 인해 바닥으로 털썩 주저앉는다.
주변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
이 산의 주인이 따로 있다면 기절하고 자빠질 광경이다.
어쩌면 산 주인은 마마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정도는 이해해 주겠지.
어찌 되었든 원 없이 발산한 탓에 욕구 불만을 풀기라도 한 듯 얌전해졌으니 다행이다.
어느 정도 숨을 돌리자 몸 안을 제대로 관조해 본다.
이 전보다 두 배는 커진 통로가 느껴졌다.
걸레짝처럼 너덜거리던 것도 서서히 아물어 감을 느낀다.
얽혀 있던 통로들도 더욱 촘촘하게 형성된 듯하다.
이로써 어느 정도 위기는 넘긴 것일까?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없음이 답답하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이 옷이 멀쩡하다는 것.
그 난리가 났음에도 멀쩡한 옷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저 축축한 땀에 흠뻑 절여졌을 뿐이다.
휴대폰을 꺼내 보니 전원이 나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으응? 이러면 집에 어떻게 가지?”
혹시나 해서 휴대폰의 전원을 길게 눌러봤다.
그러자 꺼졌던 휴대폰이 빛을 뿌리며 로딩이 시작된다.
“허... 신기하네.”
아무래도 이 뇌전이 내 몸에 밀착된 것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모양이다.
“뭐... 이런 억지가...”
내 몸의 신비는 아직도 알아낼 것이 많은 것 같다.
***
수지를 남겨두고 서울로 향하는 시각은 꽤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뇌기를 더욱 수월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창밖을 지나는 경치를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수지의 일이 있더라도 하려던 것은 진행을 해야 했다.
나대명 사장.
얼마 울리지 않아 나대명의 음성이 들려온다.
네. 형님. 말씀하십시오.
한때는 나를 죽이려고 했고,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던 이.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충성을 하는 인물이다.
이 번에 만난다면 그의 의중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겠지.
나는 카페 마들렌을 인수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이에 대해 알아보라 일렀다.
그렇게 통화를 마친 나대명이 얼마 후 다시 연락을 취해왔고.
형님. 위치를 보아 그리 시세 가 비싼 지역도 아니고, 그리 크지도 않아 건물을 통으로 매입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건물을요?”
네. 이미 부동산에 매물로 나온 지 꽤 된 것 같습니다. 카페 마들렌 이외에 1층2층 전부 공실이고, 3층은 주인이 사는데 내 놓은 가격 보다 싸게 매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와 통화하는 사이 건물에 대해 알아보던 나대명의 말에 잠시 고민한다.
부동산에 나와 있는 가격은 9억.
나에게는 입이 떡 하고 벌어질 엄청난 금액이다.
‘그러고 보니 텐프로에서 술값으로 수 천 만원을 난리기도 했네.’
거기에 더해 아가씨들의 빛도 값아 주었다.
확실히 그 날 내 정신은 내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도망가지는 않겠지?’
기왕 그렇게 된 거 본전이상은 뽑아야 하는데...
“그 정도 자금이 있습니까?”
네. 보유금은 충분합니다. 어떻게 진행할까요?
“네. 차라리 그렇게 하세요.”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아 돈이 얼마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대명에게 건물 매입을 진행하라 일렀다.
안 그래도 수지가 구미호로 변하면서 집이 엉망이 되었다.
건물을 매입하면 내가 3층에 들어가 살면 될 것 같다.
3층 전체를 주인이 쓰고 있었다면 거주 공간으로는 상당히 넓겠구나 싶다.
건물이 내 소유가 되면 정은식에게 돈을 돌려주고 그냥 장사하면 될 일이다.
무료로 장사하게 해 준다는데 정은식이 왈가불가 할 이유조차 없어진다.
한 번쯤은 얼굴을 마주해야 될 것 같으니, 직접 봐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 후에 죽일지 말지를 정하는 것도 좋겠다.
지은 죄를 보자면 죽여 버리는 것이 맞는데, 어쩌면 평생 감방에서 썩는 것도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그건 그때 생각하자.’
서울에 당도하자 어느덧 어둠이 드리우고 있었다.
오늘 하루가 일주일은 지난 듯 길게만 느껴진다.
스카이 클럽에서 내린 나는 정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슬슬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
후줄근한 모습으로 정문으로 다가서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조직원 한 명이 인상을 쓰며 저지한다.
그러더니 화들짝 놀라며 길을 비켜주었다.
“어... 어서 오십시오. 형님.”
“네. 일 열심히 하고 있네요.”
나는 손을 흔들어주며 안으로 들어섰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놀러 온 것도 아니고 즐거운 시간은 무슨...
나는 쿵쿵 울리는 클럽의 비트를 들으며 사장실로 향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상연누나의 집에 머물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차도하나 구입해야 할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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