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2. 사냥꾼.(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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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72)
별생각 없이 오기는 했는데.
막상 전시장 앞에 서 있으니 심장이 두근거리며 요동을 친다.
죽음까지 경험했던 내가 겨우 이깟 것에 떨고 있나 싶은 생각에 피식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괜히 혼자 최면을 걸어본다.
난 부자다~ 난 부자다~
그 모습이 다소 웃기게 보였는지 상연누나가 옆에서 은은하게 미소 짓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미소로 반기며 안내하는 딜러.
다소 아쉬운 부분이라면 딜러가 전부 남자라는 것.
전시된 차를 슥 하고 훑어보니, 이 넓은 공간에 단 세대가 전시되어 있다.
딱 보기에도 역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차체.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플라잉습, 물산, 벤테이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서 주워들었던 이름이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구경을 해 본다.
“커피 한 잔 하시겠습니까?”
꼼꼼하게 구경하던 중 딜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딜러가 우리를 매장 안에 마련된 카페로 안내했다.
“오~”
매장 안에 이런 카페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이런 미니카페까지 운영을 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
이렇게 고급스럽게 운영할 정도로 차가 많이 팔리나 싶기도 하다.
카페를 마시며 가격과 이런저런 것들을 전해 듣는다.
그저 하는 말에 억 소리 나는 가격들이 나오고.
어째 이면 세계보다 더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본이 3억 이상에 색상 선택이나 휠 선택에 가격이 소폭 상승한다.
내 처지에서 그 가격이 소폭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괜히 마음이 불안해져 슬쩍슬쩍 상연누나에게 눈치를 주었다.
계약하기로 한 건물가격이 10억인데, 이러다간 차 가격으로 그 금액의 반에 가까운 비용이 들게 생겼다.
차는 산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취득세며 보험이며 이런저런 세금이 빠져나가니 그 정도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이런저런 옵션을 골라 완성한 태블릿 안의 차를 감상했다.
확실히 멋지기는 한데... 굳이? 라는 생각이 든다.
한 번 미쳐서 수 천 만원을 탕진해 보기는 했지만, 지금은 무려 0이 하나 더 붙는다.
“커피 한 잔 하시면서 이야기 나누고 계십시오.”
눈치 빠른 직원이 슬쩍 자리를 피해 주고 나는 상연누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슨... 그냥 중고차나 하나 사서 타고 다닐래.”
“자기 보니까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그냥 이거 하자~”
“건물가격에 반이 나가게 생겼는데?”
돈은 순조롭게 들어오고 있다.
강일파도 상명파를 흡수하며 세를 불렸고, 스카이클럽도 점점 더 호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당연히 대한 주류도 창고를 채우기 무섭게 쭉쭉 비워내고 있다.
그렇다고 억 단위의 돈을 이렇게 쉽게 쓴다는 것이 상상이 가질 않는다.
사실, 완전히 내 것이라는 인식도 희미하고.
그저 아직은 얼떨떨하다.
“흐응~”
“그리고 기다리는 것도 너무 오래 걸리고. 최소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데, 나는 그냥 당장에 탈 차가 필요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휴대폰에 진동이 울린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누구야?”
확인해보니 나대명이었다.
벌써 건물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나 싶었다.
“여보세요?”
형님. 안에 계십니까?
“네?”
아! 죄송합니다. 지금 벤틀리전시장 앞에 와 있습니다.
“네. 안에 카페에 있습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아침에 한차례 통화를 하기는 했는데 벤틀리 전시장에 간다는 것을 듣고 온 모양이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뭘 또 허락을 받나싶어 대충 말을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인데?”
“앞에 와 있다고 들어온다네.”
그때, 딜러가 나대명과 한 사람을 더 데리고 우리가 있는 테이블로 왔다.
나대명과 조직원으로 보이는 사내가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그리고 이어서 상연누나에게도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밖에서 형님소리 좀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더니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는 고개를 드는 두 사람.
그 모습에 직원의 표정이 살짝 어색하게 변하는 것이 보인다.
아마도 내가 차를 구입하리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모양.
직원의 이리저리 바뀌는 표정이 살짝 기분이 상하면서도, 나대명과 조직원으로 인해 괜히 우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흠흠... 앉으세요.”
“네. 회장님.”
회장님이라... 어제 스카이 클럽에서도 들었던 소리다.
그때는 그냥 괜히 거북감이 들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귀에 착 하고 달라붙는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이십 대의 청년인 모양이다.
이렇게 우쭐해지는 것을 보니 말이다.
나는 그 옆의 조직원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우리 구면이죠?”
“네? 넵! 김명기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너무나 우렁차게 말하는 통에 주위의 시선이 우리를 향한다.
워낙에 사람이 없어서 더 주목을 받아 버린 듯하다.
하긴, 여길 방문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수는 없겠지.
그는 나대명과 살아남은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한 명은 클럽 일을 보고 한 명은 나대명을 따라다니는 모양이다.
나는 우물쭈물하는 딜러를 향해 두 잔의 커피를 더 부탁했다.
카페 마들렌보다야 훨씬 맛이 떨어지지만 나름 마실 만은 하다.
“김명기씨도 앉으세요. 그렇게 서 있으면 너무 눈에 뛰잖아요.”
“넵!”
“그런데 여기까진 무슨 일로 오셨어요?”
그 물음에 나대명이 답했다.
“계약건도 있고, 차도 구입하신다고 하셔서 왔습니다. 그리고 여기 명기가 앞으로 회장님의 운전기사를 담당할 예정입니다.”
“운전기사요?”
“네.”
“에이~ 그렇게까지는 필요 없어요.”
“아닙니다. 회장님이 본격적으로 활동하시면 노리는 놈들도 있을 것이고, 급한 일이 있으실 때 옆에서 부릴 사람도 필요하실 겁니다. 그러니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그 일도 함께 겪었으니...”
말끝을 흐리는 나대명.
그리고 이어지는 김명기의 간절한 음성이 들려왔다.
“부...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모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내가 거절하자 안절부절못하며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모습이 꽤 안쓰럽다.
“후우... 그럼, 일단은 그렇게 하도록 하죠.”
“가... 감사합니다!”
“김명기씨 그렇게 긴장 안 하셔도 돼요.”
“네... 회장님. 그리고 말씀 낮춰주십시오.”
내가 다소 난감한 표정을 해 보이자 나대명이 대신 입을 열었다.
“형님보다 한 살 어린 친구입니다. 어제 정수완이랑도 이야기 나누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녀석이랑 둘이 동기입니다.”
유독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 나이가 들어 보이나 싶다.
아니면 내가 동안인가?
“아...? 알겠습니다.”
“그럼, 차는 구입하셨는지요.”
“출고까지 최소 1년이 걸린다고 하네요.”
“네... 아마도 그럴 거로 생각했습니다. 마음에는 드십니까?”
“뭐, 누구나 타 보고 싶은 차 아닌가요? 전 그냥 당장 탈 것이 필요해서.”
그때, 직접 커피를 가져온 딜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 그러면... 당장 차를 받아 보실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내가 어디 재벌의 아들이라도 된다고 여겼는지 딜러는 어떻게 해서든 차를 팔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어머~ 정말요?”
직원의 말에 반색하는 상연누나.
이를 말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회장님소리까지 들은 마당에 괜히 난감한 마음을 눌러 담았다.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직원을 향해 슬쩍 눈을 흘기고는 태연한 척 커피를 들이킨다.
‘쩝... 열라 맛없네.’
“작년에 주문했던 분이 개인적인 일로 문제가 좀 생겼거든요. 그 차량이 마음에 드시면 빠르게 타 보실 수 있습니다.”
정말 간절한 사람은 혹할 만한 제안.
휠 추가교체에 외관은 미드나잇에메랄드, 내부는 버건디와 베이지 조합의 차량이었다.
확실히 딱 마음에 들기는 한다.
이 차를 타고 다니는 상상을 해 보니 절로 웅장해지는 기분.
“회장님, 마음에 드십니까?”
나는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헤헤~ 우리 자기~ 마음에 쏙 들었나 보네?”
그래도 너무 비싸기는 하다.
직원딜러의 말에 계약금만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3억이 훌쩍 넘어가는 가격이었다.
이에 나대명이 슬쩍 귓가에 말을 흘린다.
“구입은 대한 주류법인으로 하겠습니다. 절세방법도 있으니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 사업 확장도 하고 하려면 회장님의 얼굴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실 저는 이 차도 모자란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조금은 벙 찐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재벌도 아니고 끽 해야 강북에서 방귀 좀 뀌면서 이런 차가 모자란다고?
“1년에 이 삼백 대가 넘게 나가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몰라서 그렇지 이 정도 타는 사람들 많습니다. 웬만한 중소기업 주인이면 이런 차 몇 대는 소유하고 있습니다.”
결국 꿈에서나 그리던 차를 구입하기로 한 나.
막상 계약서에 서명하고 나자 이상하게 몸이 나른해지는 기분이다.
“점심 이후에 건물 계약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함께 가면 되겠네요.”
나는 인생최대의 플렉스를 하느라 출장 나갔던 정신을 되돌리고는 나대명과 김명기부장의 상태를 확인해 본다.
나대명
호감 : 90
신뢰 : 95
충성 : 90
나대명의 현재상태를 확인하고는 상당히 놀랐다.
상연누나나 수지도 아니고 전부 90을 넘어서는 건 처음 본 탓이다.
김명기
호감 : 85
신뢰 : 90
충성 : 95
김명기는 다른 건 나대명에게 조금 떨어지지만 충성만큼은 조금 더 높았다.
이러면 둘 다 배신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것이겠지?
그런데 조금 궁금해지는 것은 충성도가 5라도 충성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
기왕 본 김에 상연누나도 한 번 봐주고.
이상연
호감 : 100
신뢰 : 100
애정 : 100
절로 미소가 나오게 만드는 수치였다.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는 완벽한 내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이 한순간에도 감정의 변화가 오가는데, 한 치의 틈도 없는 백 퍼센트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수지가 하루빨리 돌아와 수지의 정보도 확인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분명히 상연누나와 같은 수치일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일단, 밥부터 먹으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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