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2. 사냥꾼.(7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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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73)
충성도에 대한 것을 확인했기에.
김명기에게 온갖 서류를 쥐어주며 나머지 일을 처리하게 만들고.
아직 약속 시간이 남았기에 대한 주류를 들렸다 마들렌으로 향하기로 했다.
상연누나는 출근 전 운동하러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떠났고.
넘치는 힘을 발산할 방법이 운동이다 보니 거기에 재미가 들린 것 같다.
당연히 상연누나를 믿기는 하지만 운동하는 곳에는 으레 짐승들이 많아 조금 신경이 쓰이기는 한다.
아무래도 날 잡아 한 번 따라가 봐야 할 것 같다.
침 흘리는 놈들에게 주인이 있음을 확실히 도장 찍어 주고 와야겠다는 생각이다.
이런저런 생각 중, 대한 주류에 도착했고.
나대명과 함께 2층의 사장실로 향했다.
바쁜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올라가자, 유희철 상무라는 이가 올라와 그동안의 보고를 올린다.
자연스럽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지시를 내리는 나대명.
나는 들어도 알 도리가 없어 그저 멍하니 둘의 대화를 경청했다.
대한 주류의 대부분을 도맡아 하는 이가 저 유희철이라는 상무이며 굵직한 것은 나대명이 처리하고 있었다.
충분히 자신이 끌어 나갈 수 있음에도 나에게 넘긴 것인가?
구상두파 시절부터 해왔던 일이라 익숙한 것일 뿐이라는 나대명.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나.
“나사장은 전에는 뭐 했어요?”
“과거를 물으시는 겁니까?”
별말도 아니건만 진중해지는 그의 눈빛과.
송골송골 맺혀 나오는 정수리의 윤기.
“그냥. 궁금해서요.”
“앞에 앉겠습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나대명은 결제하던 서류를 놓아두고는 내가 앉아 있는 소파 맞은편으로 와서 조심스럽게 앉았다.
“형님... 아니, 회장님.”
“그 호칭 좀 그런데... 차라리 대표님 이런 거 어때요?”
“네. 대표님.”
“좋네요.”
“사실... 제가 공부를 엄청 잘했습니다.”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어이없는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긴, 나도 초등학생시절 공부를 잘했다.
“하하하... 저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도 했던 사람입니다.”
“아...”
그리곤 믿어지지 않는 말에 괜히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긁었다.
그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언제나 1등을 놓쳐 본 적이 없던 그.
더군다나 운동까지 잘했기에 인기 또한 상당했다고 한다.
그때는 머리 숯도 많았고 얼굴도 나름(?) 반반해 이성에게도 인기가 많았다고...
‘이 정도면 자뻑 수준인데?’
어찌 되었든 평탄한 삶을 살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겨 버렸으니.
그 흔하디흔한 신파의 한 자락이 나대명에게 닿은 것이다.
간암판정을 받은 아버지와 몸이 좋지 못한 어머니로 인해 진학하게 된 서울대를 휴학하게 되었으며, 돈을 벌기 위해 가리지 않고 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운동신경이 좋았던 그에게 지인이 넌지시 꺼낸 말.
아마추어 격투기 대회에 나가보는 것 어떻겠냐는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고 한다.
상금은 무려 천만 원.
두 달 뒤에 있을 그 시합은 그에게 구명줄과 같은 대회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한 번 도전이나 해 보자고 속성으로 운동을 배웠고.
그에게 운동을 가르치던 관장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배워나갔다고 한다.
하늘의 도움이 있었던지 결국 그는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다.
많으면 많고 적으면 적다 볼 수 있는 그 돈은 아버지의 치료를 조금이나마 연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파가 그렇듯 그러한 노력에도 아버지는 결국, 세상을 떠났고.
잔병치레가 많았던 어머니 또한 그 충격에 아버지를 따라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그때의 충격으로 심각한 탈모가 오게 된 나대명은 대머리가 되고 말았다.
‘장르가... 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던 그에게 다가온 이가 구상두였다.
구상두는 아마추어 대회를 참관하던 중 나대명의 실력에 감명을 받았고, 조직으로 스카우트를 제안 했다.
하지만 아무런 의욕도 없던 나대명은 도망치듯 군대로 들어갔고.
모든 걸 잊고 싶은 마음에 누구보다 열심히 군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제대를 하고 나자 또다시 딜레마에 빠진 나대명은 격투기에 빠져 미친 듯이 운동에만 열중했다.
몸을 움직일 때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던 것.
그렇게 미친 듯이 운동에 열중하다 보니 대한민국의 최대 격투기 단체인 KFC에서 랭킹 2위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한 일정을 소화했기 때문일까?
잦은 어깨부상에 결국은 이마저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때 나대명을 알아 본 구상두가 또다시 그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해 왔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그때부터 조직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드리운 나대명이 머쓱한 듯 반질한 머리를 긁었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누구 하나만 기구하다 할 수 없는 게, 모든 사람이 각자의 시련을 겪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 시련의 크기를 감히 누가 제단 할 수 있겠는가.
“고생하셨네요.”
“하하하... 뭐, 고생이 무색하게 이제는 구제받을 수 없는 인간이 되어 버렸지만요...”
그의 눈에는 조폭의 삶을 사는 자신에 대한 짙은 회한이 물들어 있다.
회귀 전 악귀 같은 얼굴로 사람을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았던 그.
그때의 나대명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구상두의 명령으로 행하던 살인.
“사람... 몇이나 죽여 봤습니까?”
“네?”
한동안 침묵을 고수하던 나대명은 이내 결심을 한 듯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일곱... 총 일곱이었습니다.”
진실.
“그렇습니까? 일반인들 이었나요?”
그동안 이렇게 심도 있게 이야기해 본 적 없어 몰랐는데, 대머리라서 그렇지 제법 반반한 얼굴이기는 했다.
처음보다 살도 많이 빠진 것 같고.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보다.
“조직과 관련된 이들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일반인은 없습니다.”
진실.
그가 일반인을 죽음으로 내 몬 것은 회귀 전의 내가 유일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나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 괘씸하다 못해 분노가 치솟는 일이지만.
눈앞의 나대명과 회귀 전의 나대명은 확실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구상두... 그날을 기억하고 있지요?”
그 질문에 나대명의 음성이 살짝 떨려온다.
“네...”
“헛것이라 생각하나요?”
“아닙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명기와 수완이도 기억하는 일입니다.”
“앞으로 그런 놈들을 또 보게 될지 모릅니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대표님도 평범한 분이 아니시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명기와 수완이도 각오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나대명의 눈빛은 조금 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마치 단단한 돌멩이를 연상시키는 굳건한 눈빛.
수지와 상연누나 그리고 정욱 아저씨를 제외하곤 나에 대해 조금이나마 아는 이.
“일단, 서울부터 접수해볼까요?”
“대표님...?”
“물론, 언제까지 깡패로 남아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서울을 발판으로 양지에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나사장이 많이 도와주세요.”
“양지...”
작게 읊조리는 나대명의 눈이 순간 활활 타오른다.
아니, 기질이 변한다고 해야 하나?
그의 기운이 확연하게 느껴지는 기분.
덩달아 내 몸도 나대명의 기운에 자극을 받았는지 활활 타오른다.
단전에 똬리를 틀고 있던 뇌기가 전신을 누비며 시원하게 질주했다.
그렇다고 이전처럼 고통을 주거나 무언가가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나대명을 바라보며 씨익하고 웃음 지었다.
그에게 손을 내밀어 보인다.
내가 내민 손과 내 시선을 번갈아 바라보던 나대명.
나대명도 마주 미소 지으며 내 손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파지직. 파직.
‘어...?’
나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 단전을 질주한 뇌기가 나대명을 잡은 손으로 뻗어나간다.
그 바람에 헛바람을 들이킨 나.
“헙!”
손의 혈관을 타고 흘러간 뇌기의 양이 범상치 않았다.
CCTV를 파괴할 정도의 수준이 아닌.
어쩌면 사람 하나 골로 보내고도 남을 만큼의 양이었다.
‘아... 안 돼!’
나는 서둘러 뇌기를 회수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해보지만.
이미 손을 타고 흘러나온 뇌기가 나대명의 두 손을 감싸버렸다.
“대... 대표...”
파지직. 팟팟팟.
나대명의 두 손을 감싼 뇌기가 그의 전신을 덮어 버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경악하며 눈을 부릅뜬 나대명의 눈동자가 흰자를 훤히 드러낸다.
파직 거리며 스파크를 튀겨 대는 뇌기에, 닭이 기름에 튀겨지듯 나대명의 전신이 마구 들썩이며 경기를 일으켰다.
‘크으으... 그만해!’
나의 바람과는 달리 뇌기는 나대명이 거품을 물고 소파에 쓰러질 때까지 멈춰지지 않았다.
“크허헉... 컥... 컥...”
스르륵.
풀썩.
나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옷은 멀쩡했으나, 그의 상태는 완전한 혼절상태였다.
그리고 코를 찌르는 엄청난 악취가 풍겨 나왔다.
“윽! 무슨 냄새야!”
코를 쥐어 막으며 냄새의 근원지를 찾았다.
그리고 그 냄새가 나대명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후다닥 뒤로 물러나 황급히 창문이란 창문은 전부 열었다.
검은 양복은 눅눅한 습기를 머금고 있고, 흰색의 셔츠는 검게 물들어 있다.
아직도 돌아간 눈과 거품을 물고 있는 입.
그리고 자연적으로 시야에 잡히는 나대명의 정보.
호감 : 100
신뢰 : 100
충성 : 100
이곳에 도착할 때만 해도 변화가 없던 정보가 갑자기 모두 100을 찍어 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저러다 죽기라도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멀리서나마 살펴보니 가슴이 고르게 오르내리는 것으로 보아 안정을 되찾은 것 같기는 하다.
냄새가 너무 지독해 다가가지도 못하고 119를 불러야하나 싶을 쯤.
나대명의 눈이 번쩍하고 뜨여진다.
“허어억!”
동시에 몸을 튕기듯 벌떡 일어난 그.
쿵.
그 힘에 공중으로 치솟은 나대명은.
맨들맨들한 정수리를 천장에 충돌시키고는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뭐... 뭐야? 저건?”
2. 사냥꾼.(74)
나대명은 강인한의 손을 맞잡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바탕 꿈이라도 꾼 것 같았다.
마치 귀찮은 육신을 벋어 던지고 홀가분하게 자유를 만끽한 영혼의 느낌.
깃털처럼 가벼운 몸과 천장에 머리를 부딪쳤음에도 별다른 충격도 없었다.
온몸에 솟아오르는 힘은 저 두꺼운 콘크리트바닥을 단번에 깨부술 수 있을 것만 같다.
“대... 대표님... 이건...?”
떨리는 음성으로 나대명이 강인한을 바라봤다.
미간을 잔뜩 좁히고 코를 쥐어 막고 있는 그의 모습에 그제야 나대명도 지독한 악취를 맡는다.
“읔! 이 냄새... 제 몸에서?”
나대명을 바라보며 강인한이 말했다.
“화장실에 가서라도 좀 씻고 오세요. 숨을 쉴 수가 없네요.”
“헙... 알겠습니다!”
나대명이 화장실로 달려 들어가고 강인한은 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후아... 이제야 살 것 같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곰곰이 나대명에게 벌어진 일을 생각하던 그.
그와 손을 맞잡기 전의 그 열기.
무언가 나대명과 공명을 한 것 같은 기분.
어쩌면 여인들과 관계를 맺을 때처럼 뇌전의 기운이 무언가를 변화시킨 것일까?
강인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남녀 간의 섹스는 그만큼 서로의 마음을 공고히 다져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상연누나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정윤주나 예린 승아도 효과를 체험했다.
그렇다면 남자는?
지금의 나대명과 같이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변화는 주체는?
나대명의 정보는 모든 수치가 100으로 조정되어 있었다.
나에 대한 완전한 믿음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기에 뇌전의 힘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나 단점이라면 여자와는 다르게 너무나 지독한 악취.
‘여자한테 저런 냄새가 안 난다는 것이 다행이네.’
그렇다면 오대석처럼 뛰어난 수하들을 밑에 두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대석은 내 뒤에 누군가가 있다 여겨 상황을 주시하는 것일 뿐.
텐프로에서 에이스 실장과 에이스 아가씨 둘을 빼 온 것에 좋은 감정이 있을 턱이 없다.
어차피 놈도 내가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
강인한의 얼굴이 더욱 진중해진다.
‘만약 정욱 아저씨도 변화를 시키게 된다면?’
아주 든든한 아군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욱 아저씨의 육체 능력은 일반인이라 보기 힘들 정도이니 변화되었을 때는 어느 정도가 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아저씨가 나를 100프로 믿게 된다면 알게 되겠지.’
그때, 나대명이 쭈뼛거리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최대한 씻는다고는 했지만 문제는 입고 있는 옷.
노폐물의 악취가 얼마나 지독한지 어지간해서는 지워지지 않을 듯하다.
“대표님... 아무래도 새 옷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네. 밖에서 바람 좀 쐬고 있을게요.”
***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대한 주류 주변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이곳에서 스카이클럽까지는 대략 17km.
강북 일대는 대부분 20km 안쪽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땅 값이 그렇게 싼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붐비지 않는 장소도 있기에 서울보다 살기 좋아 보이기도 한다.
나중에는 이 부근 넓은 땅을 사서 커다란 대 저택을 지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일대의 5천 평 정도가 대한 주류의 토지로 되어 있는데, 나중에 건축가능 여부를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보면 구상두가 참으로 알뜰살뜰하게 모았구나 싶다.
정염귀가 구상두처럼 행동하기는 참으로 어렵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 숨겨진 본능을 참기 어려운 요괴가 바로 정염귀다.
뭐, 덕분에 나는 상연누나와 강일파를 얻었다.
놈이 안다면 지옥에서도 땅을 치고 통곡하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허공에 주먹을 뻗고 발을 차올린다.
누구도 보는 이 없기에 안심하고 전력으로 내뻗었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뇌기가 주먹과 발에 실리고 공기가 터져 나간다.
파앙. 파앙. 파앙.
잡다하게 배웠던 격투기의 기술들이 손과 발을 타고 유려하게 펼쳐졌다.
고급동작까지는 배우지 못했음에도 최적의 경로를 따라 발과 주먹이 내질러졌다.
휘이이잉~
마침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렸다.
‘언제 이렇게 자랐지?’
젖살이라도 빠진 것처럼 얼굴이 샤프해졌기에 조금은 꽃미남처럼 보이려나?
“후후훗~”
홀로 자뻑을 하고 있지만, 어떠한가?
누가 뭐라 할 것도 아니고.
불끈.
한 차례 몸을 움직였더니 아랫도리에 묵직한 반응이 온다.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발기하는 덕에 간간이 입던 트렁크 팬티는 입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지간히 커야 말이지.”
나는 내 분신을 톡톡 두드려 주고는 입맛을 쩌업하고 다셨다.
더 심해지면 무협지의 색마라도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이제 가면 되려나?”
시간을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이미 건물주와의 약속 시간이 지나버린 시간.
뭐, 나대명이 알아서 대처를 했으리라 본다.
***
“대표님.”
사장실의 창문은 아직도 전부 열려 있었다.
그래도 냄새는 거의 다 빠진 모양.
나대명도 새로운 옷으로 말끔하게 갈아입었다.
“좋아 보이네요.”
나대명은 완전히 몸을 숙여 허리를 굽히고는 한참이나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의 맨질맨질했던 정수리 부근은 거뭇한 부분들이 보이고 있다.
“정말 감사합니다. 크흐흑...”
저 커다란 사내가 눈물지을 일이 뭐가 있을까.
“머리가... 크흐흐... 머리가 납니다... 크흥흥흥...”
다 큰 사내가 고개를 숙이고 훌쩍이고 있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지는 않지만, 분위기상 말리기도 뭐 하다.
나는 말없이 어색함을 애써 달래며 그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크흑...”
“앞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당연합니다. 제 마음은 대표님의 것입니다!”
으응? 마음을 줄 필요까지 없는데... 저 눈빛을 보자니 이의를 달기도 애매해진다.
어찌 되었든 든든한 수하가 생긴 것 아닌가.
이를 생각해 애써 참고 참았다.
“마치 새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이 힘! 대표님께서 제 몸 안에 계십니다!”
나는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까지 참아낸다.
말을 해도 꼭 저런 단어를 써야 했을까... 오우... 젠장.
“성심성의껏 대표님을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이 머리... 크흐흑...”
갑자기 머리 이야기로 넘어가며 또다시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에 나는 황급히 그의 입을 막았다.
서른이 넘어 서른 중반의 남자가 우는 모습은 정말이지 꼴도 보기 싫었다.
아름다운 여자도 아니고 말이야... 쯧.
“자~자~ 진정하세요. 우리 지금 늦지 않았어요?”
“아! 건물 계약은 5시에 카페마들렌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부동산에서 안 해도 됩니까?”
“아시다시피 제가 생각보다 다재다능합니다.”
자화자찬을 하는 나대명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과거를 이야기하고 나서부터 자신을 포장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진 것 같다.
그래... 서울대 중퇴라도 서울대는 서울대니까.
나는 발도 못 디뎌본 대학을 다녔다는 것부터가 먹고 들어가는데, 무려 서울대니 말 다 했지 싶다.
전에 말하길 대한 주류의 일도 하다 보면 차차 익숙해진다고 했던가?
꼭 내가 익숙해져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이렇게 능력 있는 수하가 생겼는데 말이다.
나에 대한 모든 믿음이 100을 찍었고 나로 인해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육체까지 소유하게 되었다.
더불어 보너스로 탈모까지 고치게 되었으니 그의 믿음은 아주 공고하다 못해 광신도가 되었다 해도 무방했다.
“대한 주류는 나사장이 신경 좀 써 주면 좋겠네요.”
“네? 대표님이 출근하시지 않고요?”
나는 자못 심각한 얼굴을 해 보인다.
“음... 제가 신경 쓸 게 많습니다. 큼큼... 강일파는 조응수이사가 있으니 어떻게든 돌아가지 않겠어요?”
“하지만... 완전히 믿기에는...”
“왜 배신이라도 때릴까 싶어서요? 그럼, 나사장님은 완전히 믿을 수 있나요?”
“허... 헙! 대... 대표님! 제 목숨은 이미 대표님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절대로 그런 있어서도, 아니!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나는 그를 향해 빙그레 웃어 주었다.
“알아요. 그냥 해 본 말입니다. 그리고 조응수 이사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배신? 하려면 해 보라고 하지요. 그 뒤를 감당할 수 있다면.”
그 말에 나대명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그렇겠습니다.”
“그럼, 우선적으로 강북부터 깨끗하게 청소해 보죠.”
“깨끗하게 청소... 요?”
“조폭이라는 것들이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자는 겁니다. 어때요? 할 수 있겠어요?”
나대명이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맡겨만 주신다면!”
“든든하네요. 그리고 조만간 고문역으로 한 분 모실수도 있어요. 아마 안면이 있으실 건데, 고정욱 형사님 알죠?”
“네.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분이 힘을 보태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를 생각하는 것처럼 대해주시면 좋겠네요. 저에게는 아버지같은 분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자~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요?”
황급히 달려가 뒷좌석을 열어 주는 나대명.
나는 그의 호의에 웃어 주며 차에 탑승했다.
나대명의 신체 변화를 보며 이전과는 달리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막막하던 무언가가 뚫리는 느낌.
나를 보조할 수 있는 이들을 둘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완전한 충성을 받을 수 있는 수하가 계속해서 생겨난다면 그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한 편으로는 퓨리 다크니스를 이용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되었다.
나는 편한 마음으로 창밖의 경치에 시선을 두다가 천천히 눈을 감는다.
30분 정도 눈을 붙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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