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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103화 (103/297)

〈 103화 〉 2. 사냥꾼.(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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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75)

인상 좋은 노부부.

카페 마들렌에서 만난 건물주는 순박한 인상의 노부부였다.

조금 외지긴 했어도 11억이면 상당한 메리트가 있는 가격이었다.

처음에는 몰랐으나 뒤편으로 나 있는 30평 정도의 땅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가격을 더 후려치려고 했으나 건물을 처분하고 일부는 기부, 나머지로 시골로 들어가 소소하게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낸다는 말에 한 푼도 깍지 않는 것으로 정했다.

어차피 건물을 매입하는데 현찰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나야 이런 부분에 있어서 잘 알지 못 하지만 나대명은 능숙하게 일 처리를 하고 있었다.

왜 그가 지금보다도 어린 나이 때부터 조직의 2인자로 군림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그 자리에서 통장으로 매입대금의 10프로를 노부부의 통장으로 보내주었다.

나대명의 말로는 대출을 이용해 나머지 잔금을 치를 것이라고 한다.

확인해 본 결과 현찰은 충분히 쌓여 있기는 하지만 굳이 밝혀지지 않아도 되는 그 돈을 쓸 필요는 없다고.

나중에 유용하게 쓰일 일이 있을 것이라 했다.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인 이유는 상연누나의 수중에 있는 돈을 쓰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구상두가 기거하던 집에는 금고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는 스무 개의 골드바와 현금 10억 원이 들어 있었다.

또한, 구상두와 자신만이 아는 별장의 지하에는 거대한 금고가 하나 더 있다고 한다.

카페 마들렌으로 오는 길에 나대명이 밝혔기에 이제야 알 수 있던 사실.

나는 굳이 왜 이제야 알렸느냐 묻지 않았다.

그런데도 세 가지 수치가 100을 찍은 나대명은 스스로 입을 열었는데, 처음에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내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려고 했고, 이에 기회가 생기면 밝히려 했다고 한다.

문제라면 지하 금고는 구상두의 지문과 비밀번호가 필요한데 구상두는 이 세상에 없는 인물. 금고가 워낙에 단단하기에 폭탄이 터져도 끄떡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건, 나중에 확인해 보면 되겠지.’

그 사이 모든 절차를 마쳤고 이제는 은행에 가서 대출을 일으키면 된다.

어차피 위임을 해도 되기에 내가 직접 움직일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은행이 끝난 시간이라 일을 볼 수도 없었다.

나대명의 말로는 4시가 지나도 전화하면 6시까지 일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미 시각은 6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은행이 6시까지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러니까 세상은 불공평 한 거야.’

그렇게 따지면 보통 사람은 지니지 못한 내 힘도 불공평하기는 하다.

다만, 나는 힘에 대한 대가는 충분히 치렀다고 생각한다.

가정이 있던 그 시절로 돌아가 평범하게 살 수 있다면 이런 힘 따위 없어도 되지 않을까?

물론, 상연누나와 수지가 생겼기에 이제는 되돌아간다 해도 후회가 남겠지만.

내 인생의 한쪽에 자리한 두 여자가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하지 못하겠다.

“젊은 사장님. 부디 사업 번창하시기 바랍니다.”

노부부 중 할아버지가 거친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해 온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건물 싸게 주셔서 제가 더 감사드리죠. 혹시나 시골 내려가셔서 난감한 상황이 생긴다면 여기 나사장님에게 연락 주시면 도움주실 겁니다.”

“홀홀홀~ 그런 일이 뭐에 있겠소. 말만이라도 고마우이~”

손을 저어 괜찮다는 노인의 말에 나는 나대명에게 눈치를 준다.

나대명이 품에서 명함을 꺼내 노인에게 건넸다.

내가 카페에 들어서면서부터 주위에서 알짱거리던 윤지는 계약이 완료되자 신이 나서 방방 뛰고 있었다.

연지도 카운터에서 이 쪽을 향해 신경이 쏠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건물주와 내가 만나고 있으니 당연히 궁금하겠지.

그렇다고 선뜻 다가와서 물을 정도로 경우가 없거나, 활발한 성격이 아니다.

­으히히~ 이제 오빠가 이 건물 주인이니까~ 우리 언니 걱정 없겠다~­

나는 연신 재잘대는 윤지를 향해 날파리 쫓듯 손을 휘저었다.

“으음~ 날파리가 있나. 어디서 웽웽 거리네.”

계약을 마친 노부부가 인사를 건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나와 나대명도 일어나 인사를 나누며 카페 앞까지 배웅했다.

노부부는 시골에 집이 있었기에 이사를 한 상태였고 3층은 비워진 후였다.

나는 그냥 들어와서 살아도 문제가 없었지만, 나대명은 극구 인테리어를 하겠다며 맡겨 달라고 했다.

그래서 입주는 넉넉하게 2주 뒤에 하는 것으로 정했다.

카운터 쪽으로 시선을 가져가자 한껏 궁금함으로 물든 연지의 눈동자가 보인다.

하지만 나대명 때문에 다가오지는 못 하는 모양.

“오늘 수고했어요.”

“네. 대표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비어 있는 2층은 어떻게 하실 건지...”

나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나대명은 아예 2층과 3층을 주거지로 꾸미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었다.

굳이 세를 주어 봤자 드나드는 사람들로 시끄럽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나사장 말대로 하죠.”

“네. 대표님. 그럼 옆의 공실은 어떻게 하실 건지.”

나는 멀뚱거리고 있는 카운터의 연지를 한 번 더 바라봤다.

‘일단, 쟤도 좀 꾸미고...’

“옆을 터서 이어 버리죠.”

“그럼, 카페 마들렌으로 1층을 전부 사용하시겠다는 겁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네. 2주가 모자라면 더 쓰셔도 돼요.”

“알겠습니다. 그럼 대표님.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나와는 달리 나대명은 하루가 바쁜 사람이다.

거기에 더해 오늘 대한 주류까지 완전히 맡겨 버렸으니 앞으로 더 바빠지겠지.

조직의 일도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라 생각한다.

‘조응수... 한 번씩 만나서 길들여야겠는데.’

나대명의 말로는 조응수는 꽤 뛰어나다고 했다.

그 말에는 나도 인정을 한다.

구상두라는 인외의 존재가 있음에도 강북지역의 2인자로 군림한 이다.

그런 사람이 평범할 리 없지.

거기에 더해 패배를 시인하며 쿨하게 전권을 넘겨 버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 댁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전 여기 사장하고 이야기 좀 하고 갈게요. 먼저 들어가세요.”

그 말에 나대명이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카페를 빠져나갔다.

나대명이 빠져나가자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서 있는 연지.

붙임성 있게 다가와 궁금증을 풀 성격은 되지 못하는 덕에 그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 했다.

그제야 느릿하게 몸을 움직여 다가오는 그녀.

“앉아.”

“네? 네...”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

“네.”

“이 건물 내가 매입했어.”

“네에?”

놀란 토끼마냥 눈을 부릅뜬 모습이 상당히 귀엽다.

“이 건물 내가 매입했다고.”

“오... 오빠... 부자셨어요...? 설마... 저 때문에 건물을...? 아니... 저따위 때문에 그러실 리는 없고... 어...?”

안절부절못하는 연지의 머리에 손을 얹어 헝클었다.

“헙!”

다소 놀라긴 했지만, 이번에는 얌전히 머리를 맡기는 그녀.

“내가 연지한테 반해서 건물을 샀다고 생각한 거야?”

그 질문에 당황해 잔뜩 붉어진 얼굴로 말을 더듬거렸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저... 흑...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큭큭 거리며 말을 이었다.

“크크큭~ 지진 났다는 말 들었지?”

“네? 네... 들었어요.”

“그때, 내가 살던 곳이 엉망이 되었거든.”

“헉! 다치신 곳은 없어요?”

“보시다시피 멀쩡해. 그래서 살 곳을 구할 겸, 위에 내가 쓰려고.”

“아? 네...”

서운해 보이는 기색은 그저 내 생각이겠지?

“그리고 카페는 옆에까지 터서 1층 전체를 사용할 생각이야.”

“네?”

“그러니까 당분간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은데?”

“오... 오빠?”

당황한 모습의 연지.

윤지는 오히려 신이 났는지 옆에서 방방 뛰고 있었다.

­꺄아~~~ 역시 잘생긴 남자는 화끈해~­

가만히 보면 연지는 이렇게 순둥한데, 저 어린 계집은 여우가 따로 없다.

나는 윤지를 말끔히 무시하고는 연지에게 눈을 돌렸다.

“삼촌에게는 이야기 했어?”

“아... 아직... 너무 혼란스러워서...”

아마도 많은 고민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다.

어쩌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내 제안을 거절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아니면, 나한테 삼촌 휴대폰 번호를 주던가.”

“아... 아니... 제가 오늘 꼭 연락해 볼게요.”

“에휴... 연지야. 그렇게 소극적이어서 어떻게 해. 기회는 네가 스스로 잡는 거야. 사람이 살아가면서 기회가 세 번은 온다고 하잖아. 네가 미적거리다 내가 마음이 바뀌면 어쩔 거야? 넌 그 기회 중 하나를 날려 버릴 수도 있다고. 오빠가 사기꾼 같거나 그런 거야?”

“아... 아니요! 절대로 그런 건 아니에요!”

“흠... 혹시 A4용지랑 펜 좀 주겠어?”

내 주문에 연지가 A4용지 대신 깨끗한 노트와 펜을 가져 왔고.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네가 점장으로 이곳을 맡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월급은 꼬박꼬박 주도록 할게. 어때?”

“네? 그... 그건... 오빠가 너무 부담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고개를 푹 숙인 모습.

“일단 내가 계약서를 쓸 테니까 판단해 봐.”

그러곤 펜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

내용은 연지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적어나갔다.

1. 점장의 월급은 월 300만원으로 하며 1년을 보장해 준다.

2. 카페 마들렌의 순이익이 월 1000을 초과하게 되면 초과된 수익금의 20프로를 점장의 인센티브로 책정한다.

3. 카페 마들렌의 영업이익에 손해를 보더라도 점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4. 사장이 인사권을 가지고 있지만, 점장의 의견을 우선시한다.

5. 영업에 대한 모든 것을 점장과 상의해서 결정한다. 단, 복장에 대한 것만은 사장의 의견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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