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2. 사냥꾼.(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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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78)
질척거리는 성기형을 겨우 보내놓고.
하나의 메시지를 받았다.
이연지.
[오빠... 내일 시간 괜찮으신가요? 삼촌이 이쪽으로 오신다고 하는데...]
[ㅇㅇ그럼 내일 마들렌으로 갈게. 몇 시?]
[오후 5시에 괜찮아요?]
[그래. 그럼 내일 5시까지 갈게.]
연지와의 톡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정욱아저씨.
“네. 아저씨.”
그래. 나다.
“별일 없으시죠?”
아무래도 누군가 뒤를 밟는다는 그 말이 신경이 쓰였다.
괜찮다. 너는 괜찮냐?
“저야. 문제없습니다.”
그래. 네가 제안한 것 생각해 보았다.
정욱 아저씨의 칼칼한 목소리가 조금은 부드럽게 들려온다.
네가 제안한데로 해 보려한다.
“정말이요? 감사합니다. 아저씨!”
아니다. 내가 더 고맙지... 그리고 내가 합류하는 것은 꼬리를 잘라 내고 해야 할 것 같구나.
“아저씨한테 꼬리가 붙었다면 이미 저까지 드러나지 않았을까요? 혼자는 위험하니 강일파와 연계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기왕 이렇게 되신 것 훈련사범역할도 맡아주시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 강일파는 건들거리는 조폭답지 않게 나대명의 지휘 하에 훈련에 열중중이다.
아무리 그래도 실전을 위한 훈련은 정욱아저씨를 따라가지 못한다.
나대명이 변화를 하고 어느 정도로 육체 능력이 향상되었는지 정확하게 확인은 못했지만, 정욱 아저씨라면 좋은 사범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다.
나는 나대명이 어떠한 계기로 변화하게 되었으며 이를 확인해 달라고 말했다.
물론, 매직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내 기운이 그에게 흘러 들어갔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은 정욱아저씨의 음성이 호기심으로 물들었다.
그 말이 정말이냐?
“네. 제 힘이 무언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어쩌면 아저씨도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의 인간이 아무리 지옥 같은 훈련을 견딘다 해도 인외의 존재들을 당해내기란 쉽지 않다.
놈들을 상대하려면 결국은 퓨리다크니스에 손을 데야 하는데 문제는 그것이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것.
결국은 한낱 마물이 되어 또 다른 사냥꾼에게 사냥을 당하게 된다.
아저씨도 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은 나에게 협조하기로 했으나 결국은 그가 목표로 한 것이 있기에.
퓨리 다크니스를 사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아저씨가 나로 인해 변화를 겪는다면 더 이상의 퓨리 다크니스는 필요가 없을 것이다.
뒤가 찜찜한 놈들이 만드는 것인 만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일단, 나사장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결국은 조폭인데 믿어도 되겠느냐?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저씨도 한 번 만나 보시고 판단해 보시면 좋겠네요.”
알겠다. 그럼, 그 자의 연락처를 보내 주거라.
“같이 만나 보지 않고요?”
굳이 그럴 필요 있나. 내가 따로 연락해 보도록 하마.
통화를 마치고 나대명의 연락처를 보내 주었다.
그리고 나대명에게 전화해 정욱아저씨에게 연락이 갈 거라는 것을 알렸다.
“와... 나 생각보다 엄청 바쁘네? 아... 나연누나한테도 연락해야지.”
그리고 나연누나에게 이번 주 토요일 일정에 대해 톡을 남겼다.
***
띠링.
김나연은 메시지 도착 알림음을 듣고는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강인한.
[누나, 이번 주 토요일~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아는 사람 별장으로 가기로 했어~ 아침 8시에 출발할 건데. 어떻게 할래? 내가 데리러 갈까?ㅎㅎ]
“신났네~”
간다고 확답을 준 것도 아니건만, 강인한은 이미 기정사실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메시지에서 느껴지는 기대감이 그녀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데리러 온다고?
김나연은 어떻게 답을 할까 고민했다.
갈까 말까 고민을 하긴 했지만, 망설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안 그래도 요즘 그녀의 약혼으로 집안이 뒤숭숭하기에.
약혼날짜가 정해진 지금 아무리 성인이라도 외박을 곱게 볼 리 없다.
“하아... ”
가문의 반푼이로 태어나 볼 것이라곤 외모밖에 없는 그녀의 운명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나마 김나연이 이 나이까지 자유를 누린 것은 나름 아버지의 배려였다.
다른 가족들에게는 불량품 취급을 당했지만,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럽게 태어났기에 그 무뚝뚝한 김나연의 아버지가 끼고 돌았던 것이다.
하지만 정해진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외모라도 타고 났기에 상대측의 장남에게 선택을 받았다.
그런 그녀를 형제자매는 시기했지만, 그것은 절대로 김나연이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김나연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던 그녀의 아버지는 이 일에서만큼은 그녀의 편이 되어 주질 않았다.
평범한 능력으로 태어난 그녀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이 방법밖에 없다고 굳게 믿고 있던 탓이다.
평범한 그녀에게 줄을 설 세력이 없기에, 그녀를 끝까지 비호해 줄 수 있는 이는, 출중한 능력이 있는 남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남편의 그늘에서 그녀가 무사하게 지내기를 바랄 뿐이었다.
김나연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울리지 않아 중후한 음성이 들려온다.
네. 아가씨.
“아버지 좀 만나러 가야겠어요.”
네. 준비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5분도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울렸다.
똑똑똑.
“네.”
문이 열리며 단정한 반백의 노신사가 고개를 숙여 보였고.
“가죠.”
김나연은 바로 몸을 일으켜 주차장으로 향했다.
국산이지만 억대에 달하는 대형세단 v90 차량의 뒷좌석을 구집사가 열어 주었다.
김나연이 자연스럽게 몸을 싣자, 조심스럽게 문을 닫은 구집사가 운전석으로 향했다.
“출발 하겠습니다. 아가씨.”
그렇게 빠져나간 차가 도착한 곳은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 일명그룹 사옥.
서초구에 자리한 커다란 사옥에 v90이 들어서는 것을 저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김나연은 구집사를 따라 오너일가만이 이용하는 통로를 사용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엘리베이터의 최상층에 당도하여 곧바로 회장실로 향하는 그녀.
비서실의 비서들이 그녀의 등장에 후다닥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연락받았습니다. 일단 안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김나연이 고개를 끄덕이고.
인터폰을 든 비서가 회장실로 연락을 취하고 이내 방문허가가 떨어졌다.
“드시지요.”
비서의 안내를 따라 김나연이 회장실로 들어섰다.
그녀가 들어서자 무뚝뚝한 표정이었던 중년인의 입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이제 마흔 중반으로나 보일까 싶은 인물.
그런데도 그의 얼굴은 웬만한 배우 못지않을 정도로 잘 생겼다.
그는 바로 대한민국 3대 그룹 중 하나를 이끄는 수장 김우혁 회장이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그의 나이는 환갑에 달했지만 보이는 모습은 중년이라 하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젊어 보인다.
“그래~ 우리 딸이 애비를 직접 찾아왔구나. 거기 않거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의 등장에 김우혁의 올라간 입가는 좀처럼 내려오질 않는다.
“아버지.”
“어허~ 아버지라니~ 아빠라고 불러 보렴~”
김우혁의 말에 김나연의 표정은 냉기를 풀풀 풍겼다.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알지만, 가문에 매여 팔려 가는 신세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만 좀 하세요. 제 나이가 몇인데.”
“허허허~ 애비 눈에는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식인 게야.”
“그럼... 부탁하나 들어 주세요.”
“그럼~ 아빠라고 불러 보거라~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들어줄 테니. 흐흐흐~”
누가 본다면 이 사람이 과연 일명그룹의 회장인가 싶을 정도로 헤픈 모습이지만, 유독 그는 김나연에게 약했다.
도대체 저 주책은 좀처럼 고쳐 질 생각이 없다.
그러면 정략결혼 같은 것을 어떻게 해 주던가.
“아... 아빠... 부탁이 있어요.”
결국 아빠라는 호칭을 사용한 김나연이 눈을 질끈 감았다.
별것도 아니라 볼 수 있지만, 왠지 그녀의 얼굴은 홍시처럼 달아올랐다.
“아빠... 흐흐흐~ 좋아~우리 딸~ 아빠한테 무슨 부탁을 하고 싶은 거냐.”
“저... 주말에 여행 좀 다녀올게요.”
“그럼~ 다녀오면 되지~ 우리 딸. 하하하~”
“자고 올 거예요.”
김나연의 외박선언에 김우혁의 얼굴이 잠시 굳어진다.
“그... 그... 곧 약혼식인데 외박은 좀 그렇지 않느냐.”
“아버지는 조금 전에 한 약속도 어길 생각이세요!?”
“허... 아무리 그래도. 그쪽에서 안다면 좋게 생각할 수가 없지 않겠냐.”
“요즘 세상이 조선 시대도 아니고. 정말 그 결혼이 저에게 행복할 거로 생각하시는 건가요?”
김나연의 말에 김우혁의 얼굴이 다소 우울해진다.
수년째 도돌이표를 찍었던 문제.
결국 부모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지만.
마음 한편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도 그 자존심 높은 상대측의 장남이 수년을 애걸복걸했기에 가능한 성사였다.
“결국은 아버지의 뜻에 따르기로 했잖아요. 그러니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여행 한 번 다녀오고 싶어요.”
“그건... 이미...”
마지막이라며 그녀에게 주었던 시간.
그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순순히 김우혁의 말을 따르기로 했었다.
“아빠... 부탁드려요.”
김우혁은 결국 김나연의 아빠라는 말에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알겠다... 대신... 조용히 다녀 오거라.”
그 말에 김나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벌써 이십 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딸이지만, 그 미색은 전혀 바람이 없다.
아니 약혼과 결혼을 앞두고 있기 때문일까?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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