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2. 사냥꾼.(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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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82)
빠르게 한 판 조지긴 했지만, 벌써 30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러한데... 테이블에 돌아오자 맥주를 홀짝이는 세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나가서 작업이라도 해 보던가... 쯧.
내가 유경은을 데리고 나갈 때부터 술이 없었기에.
맥주라도 한 병씩 사다가 마시는 중인가 보다.
술이 떨어졌음에도 내 테이블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저 내버려둔 모양.
나와 유경은이 나타나자 불안한 눈빛을 한, 두 쌍의 눈동자가 따라온다.
이영훈의 얼굴은 셋이 경쟁할 때의 전투력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나갔다 오는 시점에서 이미 마음을 내려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녀석은 한창 어울릴 당시 저 홀로 ‘새’가 되는 상황을 많이 겪었기에 이 정도는 견딜 수 있는 방어력이 견고하다.
셋이 놀면 성공하는 쪽은 나와 김동운.
처음에는 의리를 따지며 배려를 했지만, 계속되는 이영훈의 실패에 과감히 버리는 패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익숙해진 이영훈도 이제는 당연시 하는 상황이고.
셋 다 헛물만 켤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내가 자리에 앉자 이영훈이 슬쩍 다가와 옆구리를 쿡 찌른다.
“새끼~”
“크크큭~”
내가 킥킥거리자 이영훈도 덩달아 큭큭 거렸다.
이놈은 쉽게 타오르는 만큼 포기도 상당히 빠르다.
그러다가 재수 좋으면 뭐 하나 주워 먹고 하는 거 아니겠어?
유경은이 자리에 착석하자 눈치를 보던 두 남정네가 경쟁이라도 하듯 말을 붙이고 있었다.
밖에서 둘이 뭘 하고 왔는지 상당히 궁금한 모양.
빤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텐데도 ‘설마’ 라는 가능성에 자기합리와를 시키고 있는 모양이다.
“경은이 노리고 있었나 보네?”
내가 모른 척 이영훈에게 슬쩍 묻자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새끼~ 너 때문에 조졌잖아.”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클럽으로 온 거냐?”
“아~ 몰라~ 지들 좀 논다고 경은이한테 보여주고 싶었나보지.”
“그래? 그런데 내가 보기엔 경은이가 더 클럽 고단순데?”
“어? 그게 그렇게 돼?”
“키킥~ 아무튼 그렇다. 그래도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다.”
“어? 너 가려고?”
“응. 가야지. 너는 어떻게 더 놀 거냐?”
“몰라. 저 둘이 더 있고 싶다면 있는 거고. 여기 테이블 우리가 써도 되냐? 기왕 온 김에 성공해야지.”
“써라. 술 한 병 시켜 줄 테니까. 주구장창 니들 입에 들이붓지 말고 여자들을 먹이라고.”
“오오~ 이 새끼~ 요즘 잘 버나 본데?”
그 와중에도 진드기처럼 유경은에게 달라붙어 뭐라 뭐라 씨불이는 두 사람이 보인다.
유경은의 표정은 간절한 둘과는 달리 상당히 안 좋아 보인다.
“형~ 인한이가 술 한 병 준 데. 더 놀다 갈 거지?”
“어? 진짜? 고... 고맙다. 잘 마실게.”
“감사합니다.”
술 시켜준다는 것은 고마운 것 같은데 눈초리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어? 인한아. 저기 너 만난다는 누나 아니야?”
“어?”
이영훈의 말에 뒤돌아보니 상연누나가 테이블로 다가와 인사를 한다.
“영훈씨라고 했죠. 안녕하세요.”
다가온 상연누나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향한다.
“안녕하세요~ 제수씨~”
이영훈의 입에선 곧바로 제수씨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원체 능글맞은 성격이기에 이 정도 붙임성은 자연스럽게 장착하고 있었다.
상연누나도 제수씨라는 말이 좋게 들렸는지 얼굴에 화색이 돈다.
순식간에 테이블 주변으로 환한 아우라가 발산하는 느낌이다.
다소 어두운 상황에서도 이곳을 힐끔거리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제수씨. 여기는 저랑 일하는...
이영훈이 함께 온 이들을 소개했고 상연누나는 웃는 낯으로 한 명씩 인사를 건넸다.
유경은에게 집중하던 둘의 입은 잔뜩 헤벌쭉 벌어져 있다.
이 클럽의 여자들 전부를 뒤져 봐도 상연누나 정도의 여자는 없을 거다.
아니, 연예인이 와도 꿀릴 텐데?
연예인들 대부분은 화면발로 인해 생각보다 상당히 말랐다.
실제로 보면 상연누나처럼 선명한 굴곡을 보기는 어렵다.
상연누나가 나타나자 어색한 표정으로 힐끔거리는 두 남자.
이영훈은 백화점에서 그런 식으로 보고, 정식으로 보는 것은 처음임에도 붙임성 있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참... 말도 잘하는데 여자가 안 꼬여.’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친구들의 애인에게 잘 보이는 것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말이다.
“영훈씨 더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하세요.”
“네? 인한이가 술 한 병 시켜준다는데.”
“상연이가 시켜준다고 할 때 시켜. 상연이가 여기 사장이야.”
“뭐? 여기 사장이라고? 우씨~ 그랬던 거야. 와... 제수씨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렇게 젊은 여자가 사장이라는 말에 두 남자와 유경은도 놀란 얼굴이다.
보이는 것만으로는 오히려 우리또래 이하로 보이니 말이다.
그런 상연누나를 보는 유경은의 얼굴이 다소 침울해진다.
유경은이 상연누나를 넘기에는 너무 높은 곳에 있다.
“제수씨~ 저 샴페인~ 그 뭐냐. 유명한 건데~ 그런 것도 괜찮아요?”
“그럼, 돈 페리뇽도 한 병 시켜드릴게요. 호호호~ 자기는 어떻게 할 거야? 영훈씨랑 더 놀 거야?”
“아니. 나도 들어가야지.”
상연누나도 볼일 다 봤겠다.
내 음심은 한 번으로 풀리지 않았다.
“그럼, 차에 가 있을게. 영훈씨도 나중에 봬요. 다른 분들도 재미있게 노시고요.”
상연누나가 인사하고는 뒤돌아 밖으로 향한다.
상연누나를 주시하던 떨거지들이 기회를 잡겠다는 생각에 달라붙는 것을 직원들이 저지하는 것이 보인다.
내 여자지만 정말이지 뿌듯한 마음이다.
“인한아~ 진짜 잘 마실게. 그런데 제수씨 좆나 부자였구나? 좆나 예쁘고 좆나 돈 많고! 너 빨리 결혼해야겠는데?”
“헛소리 말고. 연락해라. 난 이만 갈게. 재미있게 놀다 가세요.”
“아? 네... 네.”
“잘 마시겠습니다.”
주방보조라던 이는 자연스럽게 말을 놓더니 갑자기 존대를 한다.
나는 그저 씨익 웃어 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때, 유경은도 눈치를 보더니 황급히 일어났다.
“저... 저도 이만 가 볼게요. 내일 봬요.”
내가 가려하자 자리가 불편한지 덩달아 인사를 하는 유경은.
큭큭 거리는 이영훈과 벙 찐 표정의 두 남자가 보인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다.
나와 유경은이 수상했는데, 갑자기 내 애인이 나타나고, 내가 가려하자 유경은이 덩달아 간다는 상황.
‘무슨, 막장 드라마 같네.’
등을 돌리고 나오자 뒤에서 유경은이 내게 붙으며 묻는다.
“오빠... 여... 연락하실 거죠?”
“가끔~ 한 번씩 보자~”
“네!”
순한 얼굴에 비해 얘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
하긴 세상에 정상인 인간이 얼마나 될까.
나부터가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두고두고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한 번씩 맛봐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던 사이 어느새 당도한 출구.
“그럼, 조심히 들어가고. 클럽 함부로 다니는 거 아냐. 그러니까 오빠 같은 사람한테 먹히잖아.”
“저... 전 오빠한테는 먹혀도 괜찮아욧!”
“오빠 같은 사람 찾아서 매일 다니는 거 아냐?”
“아... 아니에요. 이제 안 가요. 오빠 같은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요?”
“하하하~ 알겠다. 그럼, 진짜 간다?”
“네! 안녕히 가세요!”
나는 고개까지 숙이며 인사하는 유경은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걸어 나갔다.
내 앞으로 주차장에서 빠져나온 벤스가 멈춰 선다.
보조석으로 가 문을 열고 자리에 앉자 상연누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기. 이제는 너무 거리낌 없는 것 같은데?”
“오늘 뜨거운 밤 보내려고 예행연습 좀 했어.”
“흐응~ 말이나 못하면~”
“내가 꼭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라니까?”
“그럼, 뭔데?”
“기운이 들끓어.”
“풋... 자기는 언제나 들끓지.”
“그런 말이 아닌데... 흠.”
상연누나는 그저 내가 혈기 왕성하다는 소리로 들리는가보다.
아마 그날 이후로 증세가 심해지는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취하게 된 날.
사냥꾼들과 김동운을 세상에서 지워 버린 그날을 기점으로 말이다.
“내일 정은식 만날 것 같아.”
“정은식? 혹시... 그?”
“응.”
“그래... 난 언제나 자기 편 인 거 알지?”
“고마워.”
“고마우면 그만큼 사랑해 주면 돼.”
나는 운전에 집중하는 상연누나의 옆얼굴을 바라본다.
이런 여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만 봐~ 뚫어지겠다.”
내가 너무 빤히 바라보자 부끄럽기라도 한 듯 얼굴을 붉힌다.
“예뻐서 그렇지~”
“흥~”
“그리고 말이야...”
“왜 뒷말을 끌고 그래? 수상하게?”
“흐흐흐~ 나 주말에 놀러 갔다 와도 돼?”
상연누나의 눈이 게슴츠레 하게 변한다.
“놀러 가는데 굳이 허락까지?”
“성기형이 나 일 그만둔 거 핑계로 놀러 가자면서 펜션을 잡았다잖아.”
“그래? 그럼 다녀오면 되잖아.”
“그렇지? 히히~ 2박3일인데~”
“왜 그러나 했더니~ 요거요거~ 혹시, 자기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 여자 분도 가니?”
또르르.
내 눈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아마도는 무슨. 다녀 와. 그런 거로 자기한테 부담되기 싫다고 했잖아. 오늘도 가만히 있는 거 보면 모르겠어?”
진실.
솔직히 그렇게 말은 했지만 정말로 진실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거짓과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지금.
상연누나가 정말로 대단하구나 싶다.
“고마워~ 히히~”
“이럴 때만? 대신 오늘 각오 해.”
“넵! 마님! 오늘 힘 한 번 제대로 써 보겠습니다!”
나는 악셀을 밝고 있는 뽀얀 다리에 시선을 가져갔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각선미다.
저 각선미를 타고 올라가면 민둥산이 있다는 것은, 오로지 나밖에 알지 못한다.
내 아랫도리는 벌써부터 볼록하게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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