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2. 사냥꾼.(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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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85)
섹스 할 때 좋은 점이라면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눈앞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날이 지난 것은 아니지만, 수지에 대한 걱정은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 떠올라 가슴을 진탕으로 망가트린다.
운동할 때만큼은 머릿속이 말끔하게 청소라도 되는 듯 깨끗하게 비워진다.
확실히 섹스도 칼로리를 많이 소모하는 만큼 운동이라 부를 수 있는 모양이다.
새벽 내내 괴롭혔기에 내가 일어나 운동을 마치고 올 때까지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간밤의 나는 아무리 상연누나라도 버티기 힘들었을 거다.
몇 시간이나 절정이라는 쾌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니 말이다.
“으으응.,.”
고운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 살며시 눈을 뜨며 마주쳐오는 시선.
막 일어난 모습도 내 여자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예쁘다.
“일어났어?”
“으응... 자기야 몇 시야?”
“12시.”
“벌써...?”
클럽이 마칠 때까지 그곳에서 머무르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늦은 밤에 들어오기에.
상연누나가 일어나는 시각은 보통 8시에서 9시 사이다.
아무리 체력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잠을 자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더군다나 간밤에는 많이 무리하기는 했지.
“하음... 오전 운동은 물 건너갔네.”
“자기 전에 운동 많이 해서 괜찮아.”
“이~ 짐승~! 배 안 고파?”
“대충 먹자. 먹을 게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부스스 일어난 상연누나가 모닝키스를 거부하며 욕실로 향한다.
양치를 하고 나와 주방으로 향한 그녀가 간단하게 빵을 굽기 시작했다.
노릇한 빵 냄새가 거실을 가득매울 즈음.
“자기야. 와서 먹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간밤에 수고한 소파에 앉아 아직 남아 있는 흔적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한다.
평화롭다.
이곳에 수지가 돌아와 영원히 이런 평화가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버터로 구운 식빵을 입에 넣고 우유를 들이켜 목으로 삼킨다.
“셀러드도 먹어야지~”
상연누나의 말에 말 잘 듣는 아들처럼 셀러드를 듬뿍 집어 입에 가져갔다.
“어이구~ 착하네~”
“상연아.”
“응?”
“훈련 제대로 받아볼래?”
갑작스러운 내 말에 동그랗게 눈을 뜨고 바라본다.
“제대로 받는 건 뭐야?”
“그냥... 정욱 아저씨에게 제대로 받아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
“자기 훈련시켜 준 그 분?”
상연누나는 정욱아저씨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직접 대면한 적은 없었다.
“응... 앞으로 내 일 도와주기로 하셨어. 조직원들 훈련도 시키고.”
“그래? 잘됐다.”
그리고 나대명에 대한 일도 상연누나에게 풀어 놨다.
이미 자신이 겪은 일이기에 그렇게 놀라는 눈치는 아니다.
다소 방법이 다를 뿐.
“남자에게도 가능하구나. 음...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혹시, 자기 다른 여자랑 해도 그런... 거야?”
“어...?”
그것을 물을 줄은 몰랐기에 조금은 당황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속일 것은 아니기에, 그저 있는 대로 말해 준다.
“응... 그렇다고 극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누나는 조금... 특별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지?”
“정말?”
특별한 케이스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눈과 입이 반달을 그린다.
누구라도 특별한 취급은 즐겁게 만드는 모양이다.
“응. 그래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는 것 같아. 윤주누나랑 승아랑 예린이도 이 전보다 확실히 몸 상태가 좋아진 것 보면 말이야.”
“흐으응... 자기 완전히 귀한 영약이네?”
“그... 그렇게 되나?”
“나 혼자 아껴먹어야 되는 거 아니야?”
“하... 하하하...”
“아무튼. 난 자기가 뭘 해도 상관은 없어. 윤주언니나 승아나, 예린이나... 그 셋이 자신들의 입장을 받아들였지만, 다른 여자들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잖아?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 그런 부분은 조심해 주었으면 좋겠어.”
“어? 으... 응.”
나는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유경은이 떠올랐던 탓이다.
“그리고 나. 자기 말처럼 훈련 받아볼게. 사실, 내가 내 힘을 주체하지 못하겠어. 운동하면서 이 힘을 전부 사용할 수도 없고. 차라리 그 분한테 훈련받을래.”
“그래. 다른 조직원들은 기초적인 것을 봐줄 거고, 나사장하고 자기는 집중적으로 받게 될 거야.”
수지의 말에 따르면.
상연누나의 음기는 비정상적이기에.
음기를 탐하는 요괴에게 노려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자기 몸 하나 정도는 지킬 정도로 단련해 놓는 것이 좋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을 해결하고.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에 소파로 향한다.
나대명사장.
전화를 받자 굵직한 나대명의 음성이 들려왔다.
대표님.
“네. 나사장님.”
지금, 고 고문님 만나 뵙고 있습니다. 고문님이 만나 뵙기를 원하시는데 마들렌에 가시기 전에 시간 괜찮으십니까?
“아. 아저씨랑 같이 계세요? 어딘데요?”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아니에요. 아저씨도 계신 데 제가 직접 갈게요.”
아... 그럼...
나대명과 통화를 마치고 상연누나와 나갈 준비를 했다.
빠른 준비를 위해 씻자마자 흰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상연누나.
머리에는 흰색 챙 모자를 써 시간을 대폭 줄였다.
저런 스타일로 입은 것은 처음이기에 꽤 신선하게 보인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은 너무나 매끄럽다.
꾸민 것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모습.
누가 보면 대학생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오~”
“왜? 괜찮아?”
“응~ 이렇게 귀여운 모습도 있었어?”
“히힛~ 정말?”
“누가 보면 나보다 동생인 줄 알겠는데?”
“으으~ 그건 아니지~”
“정말, 풋풋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계속되는 칭찬에 얼굴까지 붉어지는 모습이 딱 새내기 대학생 같다.
“그만해~ 부끄럽게~”
“그럼~ 나도 모자~”
우리는 커플처럼 함께 모자를 쓰고 밖으로 향했다.
***
상연누나와 함께 약속장소로 향했다.
강일유통.
3층짜리의 낡은 건물 위로 말끔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원래 있던 사무실에 간판만 새로 해서 달아 놓은 듯하다.
조직에서 대한 주류의 술을 강북곳곳에 유통하기에 겉으로는 유통회사가 맞기는 하다.
엘리베이터가 없기에 계단을 올라 3층으로 향한다.
1층과 2층은 술부터 해서 온갖 잡다한 것들이 들어차 있고, 조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당시, 어두웠던 탓에 내 얼굴을 기억하는 조직원들이 소수인 만큼 모르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얼굴이 많이 팔려서 좋을 것도 없고.
공급계약이라던가 이런저런 업무도 보기에 일반인들도 자주 드나든다.
따라서 조직원의 말투도 생각보다 공손했다.
“나사장님 뵈러 왔습니다.”
“아... 혹시, 오신다던.”
미리 나사장에게 귀 뜸을 받은 조직원이 위층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의 안내로 우리를 저지하는 조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안내한 조직원이 노크하며 문을 열어 주자 나대명과 정욱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벌떡 일어난 나대명이 급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 온다.
이러지 말라 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나보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그리고 사모님.”
허리를 들어 올리며 나대명의 손이 듬성듬성 거뭇하게 자란 머리를 한 번 슥 하고 쓸어 올린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뻔했다.
고르지 못하게 자라는 모습이 꽤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고개를 든 나대명의 얼굴은 뿌듯함 그 자체.
자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아저씨.”
“그래. 왔구나. 옆에 분은 전에 말했던...?”
“네. 인사 해. 이야기했지? 내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안녕하세요. 이상연이라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아버님?”
조금은 많이 나간 것 같기는 하지만 정욱아저씨의 날카로운 눈이 심하게 요동을 친다.
‘와... 저런 표정 처음인데?’
울컥한 것 같은 표정에 얼굴에 경련이 일어난 듯 움찔거렸다.
“아... 아버님... 그... 그렇게 되나... 요?”
아저씨가 말까지 저렇게 더듬다니.
훈련을 시킬 때 그 험악함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인한씨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신데, 당연히 저에겐 아버님과 같죠.”
어쩜 이렇게 예쁜 말을 골라서 할까 싶다.
“껄껄껄~ 그렇군요.”
호탕하게 웃던 아저씨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괜히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였고, 아저씨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하게만 보인다.
그때.
‘으응?’
고정욱.(가족)
호감 : 100
신뢰 : 100
애정 : 100
‘가족? 이건 또...?’
아저씨가 보내는 나에 대한 믿음.
나대명때는 경황이 없어 몰랐으나, 아저씨에게서 아지랑이 같은 것이 뻗어 나온다.
아주 따뜻한.
가족에게서나 느낄 법한 그 따뜻함이 느껴지는 아우라다.
그리고 그 아지랑이와 같은 아우라와 내 안의 뇌기가 공명했다.
나는 놀란 얼굴로 나대명과 상연누나를 바라본다.
나대명.(권속)
호감 : 100
신뢰 : 100
충성 : 100
이상연.(가족)
호감 : 100
신뢰 : 100
애정 : 100
가족과 권속이라는 말이 붙었다.
어찌 보면 비슷하면서도 선이 그어진 말.
애정과 충성에 따라 갈라지는 것인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팔을 들어 올리자 푸른 뇌기가 손을 타고 튀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볼 수 있는 시퍼런 뇌전이.
“상연누나는 나가 있고. 나사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죠?”
그러곤 영문 모를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정욱아저씨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임에도 아저씨는 순순히 손을 내주고는 맞잡은 손을 타고 자신에게로 번져오는 뇌기에 미간을 일그러트린다.
“크으윽...”
이내 뇌기는 나대명때와 마찬가지로 정욱아저씨의 전신을 푸르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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