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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114화 (114/297)

〈 114화 〉 2. 사냥꾼.(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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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86)

예상했던 대로 모든 수치가 100을 찍는 순간 상대방의 육체를 진일보 시킬 수 있었다.

문제라면 그 후에 찾아오는 뒤처리의 문제.

남녀차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째서 남자만 이리도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지 모르겠지만.

여자에게서 나지 않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그랬다면 냄새가 무서워 성관계조차 하지도 못 할 것 같다.

나대명에게는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정욱아저씨와의 공명이 끝난 후 상연누나와 잠시 밖으로 대피를 했다.

‘이해해 달라고. 내 덕에 머리카락이 났잖아?’

나대명의 일을 떠올려 본 결과.

저 냄새가 빠지는 것은 한 두 시간으로는 턱도 없다.

상연누나와 근처의 커피숍으로 들어와 메시지를 보냈다.

뒤처리하고 천천히 이쪽으로 오라고.

“이런 식으로 변화가 되는 구나? 뭔가 알 것 같기도 해.”

“알 것 같다고?”

“응. 자기가 사정할 때 온몸에 전기가 오거든.”

“그건 누나가 절정에 올라서 그런 거 아냐?”

짐짓 모르는 척 태연하게 묻자, 상연누나의 얼굴이 벌겋게 변한다.

“그건 아니거든!?”

밤에는 그렇게나 요부처럼 굴면서 절정이라는 말에 얼굴을 붉힌다.

여자라는 존재는 참으로 이중적이 모습이 짙다는 생각을 하며.

쓰기만 한 아메리카노를 한 입 들이켰다.

“자기는 언제부터 그런 힘이 생긴 거야?”

궁금했을 법도 하건만 이제야 넌지시 물어온다.

“그러게... 언제부터였을까...”

그냥 막연하게 회귀를 하며 이런 능력들이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더욱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확실히 나 자체가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지냈던 보육원은 그리 좋은 곳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 한 끼 먹는 것도 감지덕지.

그런데도 어디 한 번 아파본 적이 없었다.

다치더라도 상처회복도 빨랐을 뿐더러.

열약한 상황 속에서도 키도 쑥쑥 잘 자랐다.

물론, 영양분의 한계가 있었는지 180을 넘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훌쩍 넘었으니 상관없나?

내 안에 들끓는 뇌기.

아마도 내가 벼락을 맞은 것과 관련이 있겠지.

벼락이라면...

어렸을 적에도 이미 한 번 맞아 본 경험이 있다.

내 안의 뇌기가 벼락을 불러 온 것인가.

아니면 벼락이 뇌기를 만들게 된 토대가 된 것인가.

생각할수록 뭐가 먼저인지 알쏭달쏭하다.

두 번째 벼락을 맞고 죽었을 때.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어떻게 회귀를 할 수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어찌하여 색이라는 것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알게 된 것인지.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처음의 색이 보이던 그것이 베타테스트라도 되는 듯, 계속해서 업데이트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색으로 보였다가, 문자로 보였다가, 지금은 수치와 색을 섞어 더욱 적절하게 바뀌었다.

더군다나 거짓과 진실을 확인할 수 있기까지.

사실, 이러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많았지만, 괜찮은 척해도 내 정신은 괜찮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급작스럽게 변하는 주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를 은연중 미루어 왔는지도 모르겠다.

타인까지 육체를 초월하게 만드는 능력과, 아직도 변해가는 정보창.

세상에 숨겨진 이면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나는 아직 그 전부를 들여다보지 못했다.

분명히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세상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겠지.

그렇기에 이러한 능력이 부여된 것이 아닐까?

처음에는 막연히 신기했을 따름이고, 두려웠으며, 복수의 기회가 생긴 것에 환호했다.

하지만 복수하나만을 하기 위해 이 힘이 주어졌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자기야, 표정이 못 생겨졌어.”

생각에 빠져 있던 내 귓가를 울리는 충격적인 음성.

“뭐?”

“푸훗~ 충격 받은 얼굴이네.”

쩝...

나는 입맛을 다시며 즐겁게 웃는 상연누나를 바라본다.

이 정도면 괜찮게 생긴 거 아닌가?

얼굴도 샤프해졌고 볼수록 괜찮은 얼굴인데.

그래도 여자들한테는 제법 인기가 많았다고.

수지나 상연누나 정도는 아니지만, 내 아랫도리를 거쳐 간 여자들만 일렬종대로 세우면 연병장 반 바퀴는 될 거라고.

“나 정도면... 괜찮지 않나...?”

“히히히~ 농담인 거 알지? 우리 자기가 매력이 쩔지~”

“아니 얼굴 말이야!”

“그러니까~ 매력 있다고~”

“아니~ 매력 말고.”

“순하게 괜찮게 생겼지.”

이거 은근히 열 받는다.

아무리 얼굴이 잘나 봐야 좆질 제대로 못 하면 의미 없다 생각하며 살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내 여자한테는 잘 생겨 보이고 싶은 게 남자다.

“.......”

“꺄악! 귀여워!”

입이 댓 발 나온 내 얼굴을 갑자기 꼬집어 잡고는 이리저리 흔드는 상연누나.

오히려 내 눈에는 그런 상연누나가 더 귀여워 보였지만.

나는 심통 난 척 얼굴을 풀지 않았다.

“이렇게 멋지고 귀여운 남자가 내 남자라니~ 너무 행복한 거 있지~”

“췟. 됐거든?”

“히히~ 진짠데~ 그러니까 내가 한눈에 뻑 가서 그날 자기 따라간 거 아니겠어?”

그렇게 생각하니 괜스레 뿌듯함이 들고 일어난다.

얼굴과 돈으로 밀어붙이는 수많은 짐승들 사이에서 승자는 나였다.

“결국은 나한테 반해 놓구선~ 흐흐~”

“풋~ 드디어 웃네.”

그러곤 양손으로 꼬집고 있는 내 얼굴을 당겨 뽀뽀를 한다.

쪽.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 모습을 힐끔거리는 이들이 보인다.

아마도 풋풋한 대학생 커플인 줄 알겠지?

내 얼굴도 나름 동안이니까. 라는 건 내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내가 너무 골똘히 생각하며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잠깐 욱하긴 했지만, 그건 내 기분을 풀어보려는 상연누나의 배려였던 모양이다.

역시 이래서 연상연상 하는 건가?

상연누나에게선 언제나 내가 우선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커피 두 잔을 시키고 한참을 꽁냥 거리는 것에 눈총을 받을 즈음.

눈치에 못 이겨 디저트와 추가 음료를 주문해 먹고 있자, 나대명과 정욱아저씨가 안으로 들어섰다.

정욱아저씨의 더욱 단단해진 눈빛과, 은연중 피어오르는 기도가 바뀌었음을 느낀다.

“말은 들었지만. 상상 이상이다.”

두 시간이나 지나서 나타난 것으로 보아, 힘을 시험해 보고 온 모양이다.

“어때요?”

“놀라울 정도야... 처음... 이면을 마주했을 때만큼 말이다.”

그 정도란 말인가?

수지야 원래부터 강한 존재였기에 알 수가 없었고.

상연누나 같은 경우는 조금씩 변화가 되어 갔다.

나대명의 경우 일어나면서 펄쩍 뛰며 머리가 천장에 부딪힌 것을 보기는 했는데.

“많은 고민을 했었다. 변해가는 내 육체도 슬슬 한계를 보이고 있었지.”

그러곤 나대명과 상연누나를 슬쩍 바라본다.

이곳에서 이야기해도 되냐는 뉘앙스.

“그냥 편하게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고개를 끄덕인 정욱아저씨가 말을 이어 나갔다.

“퓨리다크니스... 그 저주받은 약을 주사했을 때 이상인 것 같구나.”

그것이 상연누나나 나대명도 같은지는 알 수 없다.

아저씨가 사냥꾼 생활을 한 것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생사를 오가는 전투와.

약으로 변해 버린 육체.

“정말 다행이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잘 부탁하마. 어쩌면 머지않은 시점에 끝났을 내 목숨.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 보겠다.”

얼굴에 살이 없어 음영이 잔뜩 졌던 아저씨의 얼굴도 꽤 부드럽게 변했다.

어렸을 적 나에게 사건에 대해 묻던 그 얼굴이 보이는 것도 같다.

그렇게 앞으로 조직원들의 훈련과, 나대명 상연누나의 집중훈련을 부탁하고.

시각은 훌쩍 흘러 정은식과의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정은식을 만난다는 것에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의 정욱아저씨.

나대명이 함께 간다는 말에 조금은 안도하는 표정이다.

터억.

막 일어나 나가려 하는데 정욱 아저씨가 아까부터 가지고 있던 보스턴백을 나에게 건넨다.

“이건 뭐예요?”

궁금함에 가방에 손을 가져가자.

정욱 아저씨가 고개를 젓는다.

“여기서 말고. 조용한 곳에서 열어 보거라. 몸을 지키는데 필요한 몇 가지를 넣었다.”

그 말만으로 이 안에 뭐가 들었을지 상상이 되었다.

총이라도 넣어 놓은 걸까?

“네.”

***

정욱아저씨는 퓨리다크니스를 경험하며 육체를 초월해 본 경험이 있기에.

지금에 적응하는 것은 상당히 빠를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실험해 볼 것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자기야. 그럼, 무리하지 말고. 일 잘 보고 와.”

상연누나도 할 일이 있기에 그렇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나와 나대명은 정은식을 만나러 카페마들렌으로 향했다.

마들렌 앞에 당도하자 계단을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작업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인테리어를 시작한 모양이다.

“주거 공간부터 손을 보고 있습니다. 마들렌은 연지씨와 인테리어 업자가 의견을 조율해서 구상은 잡았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1층도 공사를 시작할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네요.”

원래 손님이 많지는 않았지만, 단골들이 불어나는 추세였기에 가게의 통 유리에는 임시휴무라는 글자가 크게 걸려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후덕한 중년인과 힘 좀 쓰게 생긴 두 남자가 구석의 테이블에 앉아 있다.

그리고 중년인의 앞에 쩔쩔매며 난처한 얼굴로 앉아 있는 연지의 모습이 보인다.

정은식.

나대명이 휴대폰으로 보내주었던 사진과 일치한 모습이다.

나와 나대명이 안으로 들어서자 일제히 쏟아지는 시선.

두 남자가 우리를 슬쩍 주시를 하며 신경을 곤두세운다.

아무래도 빡빡머리의 나대명이 고만고만하게 보이지는 않기 때문일 거다.

반면 정은식의 표정에는 온갖 불쾌함이 가득하다.

정은식.

호감 : 15

신뢰 : 0

적의 : 80

얼굴 표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적의가 80에 이르는 정보창.

“인한 오... 아니... 사장님.”

연지가 안도한 얼굴로 나를 부르려다 정은식의 눈치를 보고는 호칭을 사장님으로 바꾼다.

연지의 뒤에서 차가운 한기를 뿜으며 노려보는 윤지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지금껏 보아오던 어떤 모습보다 살벌해 보이는 얼굴.

정말 영화에서나 보던 귀신의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나 역시 적개심이 이는 가운데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자연스럽게 테이블로 다가 갔다.

“안녕하세요. 강인한입니다.”

‘드디어 보는 구나. 개새끼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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