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2. 사냥꾼.(87)
* * *
2. 사냥꾼.(87)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툭하니 말을 내뱉는다.
“댁이 건물 인수한 사람이우?”
역시나 정은식의 말투도 퉁명스럽기 그지없고.
고개를 살짝 치켜올 올리며 눈을 내리까는 모습도 껄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면서 슬쩍슬쩍 나대명의 눈치를 보는 것이, 나와의 상관관계를 유추하는 듯싶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말은 전해 들으셨는지요?”
“흥! 듣고 말고가 어디 있소. 우리 연지한테 바라는 게 뭐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되묻는다.
“바라는 것이라니요?”
“아니, 장사도 안 되는 가게 인수해서 월급까지 줘 가며 챙겨 준다는데, 어디 그게 정상이라고 할 수 있나? 댁하고 알고 지낸 것도 얼마 안 되었다면서?”
“그게 그쪽 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내가 마들렌 커피가 맛있어 투자하겠다는데? 정 안 되면 제 개인 바리스타로 고용할 생각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 아니야? 젊은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들어? 피붙이도 못 할 호의를 왜 쌩판 남인 어린친구가 하느냔 말이야!”
이미 작정하고 왔는지 정은식은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그럼, 왜 남인 정은식씨가 연지씨 일에 이렇게나 끼어드는 겁니까? 판단은 본인이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연지씨와 정확하게 말을 끝내고 계약서도 작성했습니다만? 읽어보셨다면 절대로 불리한 계약이 아니라는 것을 아실 텐데요.”
“뭐? 뭐? 정은식씨? 너 몇 살이야? 어? 어린놈이 보자보자 하니까!”
삿대질까지 하며 개 거품을 무는 모습에 당장에 면상을 후려 버리고 싶을 정도다.
윤지역시 정은식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 한기에 카페 안이 다 오싹할 정도.
연지 또한 불안한 얼굴로 좌불안석이 되어 있다.
“이보쇼. 대표님께 놈놈 하는 건 자제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만?”
결국 눈썹을 꿈틀대며 나대명이 한마디 쏘아 붙였다.
이에 정은식이 움찔하며 슬쩍 뒤로 돌아본다.
그러자 뒤에 있던 남자 둘이 일어나 다가오며 그의 뒤로 선다.
“대표님? 흥! 아주 꼴깝들을 떨고 있구만. 당신은 뭔데?”
“말조심하라고 했수다.”
나대명이 험악한 표정으로 한 발자국 내딛자 두 사내도 이에 질세라 험악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데도 그들의 눈에 은연중 깔린 두려움이 비친다.
살이 빠지고 전기마사지를 좀 받으면서 얼굴이 꽤 샤프해졌지만, 저 대머리라는 것이 생각보다 인상을 흉흉하게 만드는데 한몫하고 있다.
두 사내는 그런 나대명을 보며 긴가민가하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혹시... 나... 대명 선배님 아니신지...”
그중 한 사내가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며 슬쩍 물어왔다.
“내가 나대명 맞소만. 거기 동생들 나를 아는가?”
“헉... 가... 강일파 보스이신... 저는 강용형님 밑에 있는...
“안녕하십니까. 저는...”
나대명이 누군지 알아채자마자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소개를 하는 두 사내.
구상두파를 이어받고 상명파까지 합친 나대명의 세력은 이 전의 구상두파를 뛰어 넘었다.
“강용...?”
나대명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 예전 지역모임당시 참석 하셨는데...
“뭐, 얼굴 보면 알 수도 있겠지.”
나대명과 두 사내의 대화에 정은식의 얼굴 표정이 상당히 재미있게 변한다.
이런 것은 예상에 두지 못했을 거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해가자 정은식이 헛기침하며 말을 꺼냈다.
“큼... 흠흠... 이... 일단, 연지랑 둘이 이야기 좀 하겠소.”
연지에게 눈짓을 하자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사람이란 자신의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기에.
일단은 그녀의 의지를 다져야 한다.
“그러시죠. 흐음...”
그러곤 팔짱을 끼며 의자에 기대앉았다.
정은식은 내가 자리를 비켜 주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엉덩이를 무겁게 붙이자 눈치를 보며 슬쩍 일어난다.
연지도 그를 따라 일어나며 둘이 함께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연지야. 잘 생각해 봐라. 저놈 저거 아주 수상하지 않느냐.
보통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 거리지만, 내 귀에는 정은식의 음성이 똑똑히 들려왔다.
“대표님. 이 친구들 데리고 밖에 나가 있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여주자 나대명이 두 사내를 바라본다.
엉거주춤 서 있던 두 사내가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곤, 나대명을 따라 카페 밖으로 향했다.
나대명과 두 사내가 나가고, 연지와 정은식의 대화에 집중한다.
사... 삼촌... 저는 삼촌이 이렇게까지 하시는 게 더 이상해요...
뭐... 뭣! 내... 내가 널 얼마나 챙겼는데! 너 힘들 때 도움을 준 것은 저놈이 아니라 나야!
그건... 정말 감사드려요... 하지만 저도 어린애가 아니고 제 갈 길은 제가 선택하고 싶어요.
절대 안 돼! 그건 내가 허락 못한다!
하... 도대체 저 새끼는 왜 연지를 포기 못 하는 거야?
그것이 궁금하면서도 저 빌어먹을 새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오빠... 나... 저... 저 인간 정말 죽여 버리고 싶어요...
오오시발!
윤지의 모습은 실로 기괴해 보였다.
머리는 산발이 되어 날리고, 눈은 피를 머금은 것처럼 붉다.
귀신이 산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살에 직접 와 닿는 오싹함.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는 느낌에 일이 나도 나겠구나. 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죽여 버릴 거야!
불길한 기운을 풀풀 풍기며 정은식에게로 향하려는 윤지의 팔목을 붙잡았다.
“어...?”
윤지도 내가 팔목을 붙잡자 뒤돌아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동시에 산발이 되었던 머리칼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눈도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귀신 팔을 붙잡았어?’
오... 오빠?
놀란 것은 나만이 아닌 듯, 윤지도 자기 팔목과 내 얼굴을 연신 번갈아 본다.
뇌기.
내 손을 통해 뇌기가 윤지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다.
당황한 윤지가 외친다.
기... 기운... 찌릿한 기운이 들어와요!
“아... 알아!”
나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뇌기가 윤지에게로 넘어가며 반투명해 보이던 윤지의 모습이 점점 선명해진다.
나는 황급히 밖으로 나간 나대명과 사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멀찍이 떨어져 무언가 대화에 집중하는 모습.
그리고 연지와 정은식.
둘도 이 쪽에는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다시 윤지에게 시선을 돌리자 거의 사람처럼 모습이 드러나 있다.
이... 이게 어떻게...
만져지고 보인다.
나는 윤지를 잡았던 손을 놓아 버렸다.
그러자 그녀에게로 주입되던 뇌기가 끊겨 버리고.
다시금 투명하게 변해가는 모습이다.
오빠! 나... 나 선명해졌었죠? 네?
“그래. 그런 것 같다.”
그럼, 저 언니한테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네? 오빠!
“그래... 어쩌면...”
해 줘요! 다시 모습이 보일 수 있게 그 기운을 보내줘요!
“일단, 진정하고. 기다려 봐.”
어떻게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뇌기가 영향을 준다는 것은 확실하다.
정말 윤지의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도 보이는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90프로 확률로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당장에 윤지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참는 게 좋을 것 같다.
“때가 되면 시도해 보자.”
오빠... 흐응...
“아무런 준비 없이 네 모습이 보인다면 네 언니가 많이 놀랄 거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봐.”
네...
잠깐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나는 다시 연지와 정은식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정은식의 어조는 더욱 격양되어 있었다.
아무튼 안 돼! 그러니 그렇게 알아!
사... 삼촌... 도대체 왜 그렇게...
분명히 말했다. 안 된다고!
막무가내로 연지를 몰아붙이는 정은식.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두어 봤자 끝도 없어 보인다.
내가 일어나 카운터로 다가가자 짜증으로 뒤섞인 정은식이 고개를 돌렸다.
“적당히 이야기 끝냈으면 마무리하죠.”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은식이 대답했다.
“우리 연지는 내가 챙기겠소.”
정은식의 단정적인 대답에 연지를 슥 하고 바라본다.
“연지씨 생각은 변함없죠?”
“네? 네... 사장님.”
“연지씨는 저와 일하겠다는데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연지씨, 삼촌이 도대체 왜 이러신 답니까?”
“저... 저도 잘... 삼촌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지...”
“이야기는 끝. 연지씨가 미성년자도 아니고. 돈 보낼 계좌 알려주세요.”
“뭐!? 안 된다고 했어!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어?”
또다시 지랄병이 도진 정은식을 바라보며 연지에게 말했다.
“연지씨. 잠깐 저쪽으로 가 주시겠어요? 삼촌분하고 이야기 좀 할게요.”
“네? 네!”
불안한 눈빛으로 연지가 자리를 피했다.
그런 연지의 팔을 붙들려는 정은식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이게... 뭐 하는! 놓지 못해?”
연지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정은식의 귓가에 낮게 으르렁거렸다.
“야이 개새끼야. 신사처럼 구니까 내가 신사로 보여?”
“뭐... 뭐라고...?”
“아가리 닥치라고. 그 더러운 주둥이 더 털면 그냥 죽여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내 욕설에 얼빵한 얼굴이 된 정은식을 매섭게 노려본다.
설마, 내가 이런 식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을지는 몰랐던 모양.
“네... 네가 깡패야? 사람을 이렇게 압박해도 돼?”
“응. 나 깡패야. 너도 깡패 데리고 왔잖아. 그럼 너도 깡패냐? 우리 깡패적인 대화를 나누어 보자.”
“이... 이이익! 네가 이러면...”
“쉿. 조용히 해. 지금 네 옆에 윤지가 화난 얼굴로 있으니까.”
“뭐? 유... 윤지!?”
“윤지 몰라? 네가 죽인 연지 동생 이윤지.”
그 말에 정은식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진다.
아마 인생을 통틀어 가장 놀란 얼굴이라 봐도 될 듯하다.
“무... 무슨 말이야! 내가 죽인 윤지라니! 유... 윤지는 실종 됐어!”
“흥! 강간하고 콘크리트로 덮어 버린 거 다 알고 있어. 씨발 놈아. 그거 알아? 니 새끼가 뭍을 때 윤지는 살아 있었다는 거?”
정은식의 얼굴은 이제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잔뜩 질려 있었다.
그러던 놈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를 찾는다.
그 모습이 마치 가면이라도 덧씌운 느낌이다.
“어린 친구가 소설을 쓰고 있군.”
“소설? 사실 고민이 좀 많았어. 연지는 네가 동생을 죽였다는 걸 모르니까. 그리고 연지가 그 말을 믿게 할 증거도 없었고 말이야.”
“증거? 무슨 증거가 있다는 말이냐? 크흐흐흐~ 벌써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건가?”
“윤지 말고도 한둘이 아니더군.”
“내 뒷조사라도 하고 다니나? 네 정체가 뭐야?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