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는 다보여-116화 (116/297)

〈 116화 〉 2. 사냥꾼.(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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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88)

정은식의 투실투실한 얼굴 살이 분노로 푸들푸들 떨렸다.

눈빛만 보자면 이미 나를 백 번 죽이고도 남았을 만큼 살벌하다.

정은식.(적)

호감 : 0

신뢰 : 0

살의 : 100

그나마 있던 호감이 전부 깎여 버리고 적의가 살의로 변해 버렸다.

정보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놈의 살의가 느껴진다.

그리고 놈에게 언뜻 비치는 일그러진 존재의 모습이 드러났다.

놈의 모습이 아닌, 마치 놈의 그림자처럼 일렁이는 무언가.

‘이건... 또 뭐야?’

분명 놈을 처음 봤을 때 이런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놈이 살의를 표출하자 다른 존재의 모습이 언뜻 겹쳐 보인다.

그리고 그림자에 이어진 가느다란 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실은 어딘가를 향해 길게 이어져 있다.

흠칫.

내 곁으로 슬쩍 다가왔던 윤지가 정은식을 보며 몸을 떤다.

그때, 정은식의 눈동자가 윤지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간다.

‘뭐야? 윤지를 보는 거야?’

유리알처럼 희번덕거리는 눈은 사람의 눈이라 볼 수 없을 만큼 번들거린다.

잠시 윤지가 있던 곳을 주시하던 정은식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착각인가?

“돈이 필요한가? 필요한 게 뭐야!”

잠시 드리워졌던 그림자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정은식으로부터 이어진 가느다란 선은 아직도 눈에 보인다.

“돈?”

“그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어?”

“있지. 그냥 네가 하는 짓이 사람 같지 않아서 죽여 버리고 싶을 뿐이야.”

으드득!

정은식의 앙다문 입술 사이로 이 갈리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흘러나온다.

“크크큭... 그래. 그래서 어쩔 건데? 날 죽이겠다고? 아니면 잡아넣을 건가? 내가 그랬다는 증거라도 제시해 보시지. 나는 절대 그런 적이 없으니 말이야.”

“됐고. 네 계좌로 연지가 빌린 돈은 보내도록 하지.”

“연지? 크크큭~ 그래 그런 사이었나 보군. 설마 둘이 깊은 관계까지 간 건가? 으드득! 절대로 이 일은 그냥 넘기지 않을 거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이제 꺼져라.”

나는 저놈과 이어진 실이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다.

일단은 돌려보낸다.

그리고 오늘 밤.

놈을 심판한다.

나에게 악인을 심판할 권리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은식을 대면 해 본 결과.

이놈은 말로만 듣던 사이코패스 이상이다.

놈에게 느껴지는 살의가 그러했고, 놈의 눈 깊숙이 숨어 있는 더러운 욕망은 절대로 멈추지 못할 더럽고 역겨운 것이었다.

정은식은 나와 연지를 한차례 쓸어 보고는 휙 하고 몸을 돌려 나갔다.

밖에서 나대명과 이야기를 주고받던 사내 둘이 후다닥 그의 곁으로 따라 붙는다.

정은식이 나가는 것을 본 나대명이 황급히 안으로 들어섰다.

“정은식 미행하세요. 절대로 들키지 않도록. 육체 적응은 좀 했나요?”

“네. 대표님. 처음보다 확실하게 적응했습니다. 그럼, 바로 따라붙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나대명이 정은식을 미행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나대명이 떠나고 테이블로 다가오는 연지.

“오빠...”

“네 계좌번호 줘 봐. 연지 너 정은식 계좌번호 있지?”

“네.”

난 연지의 계좌에 돈을 송금하고는 연지의 계좌를 통해서 정은식에게 5000만원을 넣어 버렸다.

“감사... 합니다.”

“아니야. 앞으로 잘해보자고.”

“네... 죄송해요. 삼촌이 그렇게까지 하실 줄은 몰랐어요.”

“삼촌은 무슨. 개새끼지.”

“네?”

“연지 너에게 해 줄 이야기가 있어. 그 전에 뭔가를 보여 줄 건데, 절대로 놀라거나 하지 마.”

영문 모를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끄덕이는 연지.

내가 무엇을 할지 안 모양인지 윤지가 후다닥 옆으로 달라붙는다.

솔직히 보통 사람에게도 보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일단은 시도는 해 봐야지.

연지는 윤지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증거라면 윤지가 바로 증거.

나는 윤지의 손목을 붙잡고는 뇌기를 흘려보낸다.

파지짓.

“헉! 오... 오빠?”

허공에 갑자기 스파크가 뛰자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연지를 보며 앉으라고 손짓한다.

“놀라지 않기로 했잖아?”

“네? 네... 죄송합니다.”

파짓.

­흐으으응~ 기분이 너무 이상해요~­

윤지의 투명했던 몸이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아직은 보이지 않는지 연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팔을 주시하고 있었다.

스파크가 튀는 손이 그저 신기한 눈빛.

파지짓.

­하으응~ 짜릿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요상한 비음까지 흘려내는 통에 괜히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그때, 연지가 놀란 듯 경악성을 내지른다.

“허... 허어억!”

우당탕탕.

어찌나 놀랐는지 뒤로 벌러덩 나자빠지기까지 한 그녀.

넘어졌던 연지가 후다닥 몸을 일으키며 완전히 선명해진 윤지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유... 윤지... 우리 윤지가... 어... 어떻게... 흐윽...”

동그랗게 부릅떠진 눈 끝으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어... 언니... 내 목소리 들려?­

“윤지야! 흐으윽! 드... 들려! 이게 어떻게... 정말 윤지 맞아?”

­응. 나야. 윤지... 흐흐흑...­

“윤지야... 허엉엉... 어떻게 된 거야... 흐엉엉...”

윤지를 향해 손을 뻗으며 그녀를 품에 안으며 카페가 떠나가라 울었다.

­흑흑흑~ 언니~ 언니랑 진짜 대화할 수 있을 줄 몰랐어... 엉엉엉~­

나는 두 자매를 보여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연지와 윤지는 한참이나 그렇게 서로를 보듬으며 말없이 울었다.

그렇게 극적인 재회를 만끽한 연지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야기는 정은식에 관한 것이었다.

“어... 어떻게 그런...”

어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온몸을 바들바들 떠는 연지를 보며, 나와 윤지는 진정할 때까지 말없지 지켜봐 주었다.

“그것도 모르고... 흐흐흑... 언니가 잘못했어... 윤지야... 흐흐흑... 그런데도 윤지 너는 이 못난 언니 옆에 있었구나... 흐흐흑...”

­언니... 그만 울어. 언니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잘못은 그 새끼가 한 거야! 그러니까 그만 울어!­

“끄으으... 끄윽... 오빠... 정말... 정말 너무 화가 나서 죽을 것 같아요...”

매섭게 치켜뜬 연지의 눈.

연지에게도 이런 표정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후우... 그 새끼는 꼭 벌을 받게 될 거야.”

연지의 눈은 분노와 원망 증오가 뒤엉켜 이글이글 타올랐다.

“꼭... 그렇게 만들 거예요. 아니...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리고 싶어요!”

그리 말하는 연지의 음성은 살을 애일 정도로 한기가 몰아친다.

그만큼 그녀의 분노가 크다는 것이겠지.

“그렇게 될 거야.”

“끄으으...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죠? 네? 오빠.... 오빠는 보통 사람이 아니잖아요! 방법... 방법을 알려주세요! 알려만 주신다면 오빠를 위해 뭐든지 할 게요! 제발... 흐흐흑... 제발 부탁드려요...”

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내 다리에 매달리는 연지를 보며 입안이 씁쓸해진다.

이렇게 순하고 착한 아이가 누군가를 이토록 증오하며 죽이고 싶어 하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지만은 않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연지와 같겠지만.

내 마음이 그러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놈은... 내일의 해를 보지 못할 거야.”

그 말에 연지의 고개가 번쩍하고 들린다.

“저... 정말이죠? 오빠! 그 말 정말이죠!?”

나는 그런 연지의 몸을 일으켜 앉히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

돌발 행동을 보일지 몰라 상연누나에게 연지를 맡겼다.

그리고 조용한 카페 마들렌에 앉아 그동안 나대명이 보내왔던 정은식에 대한 자료를 훑어본다.

거기에는 가족에 대한 내용도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이정은.

정은식의 처.

43세.

특이사항 : 21세에 정은식과 결혼해 1녀를 두었음.

꾸미기를 좋아하며 호빠출입이 잦음.

정은식의 범행에 가담했다는 정황이 있음.

­­­­­­­­­­

정서라.

정은식의 딸.

22세.

특이사항 : 결혼 전, 정은식과의 관계에서 낳은 딸.

이정은과 마찬가지로 사치를 즐기며, 학창 시절부터 온갖 패악질을 일삼아 옴.

학교의 일진 출신으로 00중학교, 00고등학교 자살사건과도 연관이 있어 보임.

참으로 젖 같은 집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와 딸 모두 사람의 죽음과 연관이 되어 있다.

강북 경찰서장 구용식.

50세.

특이사항 : 형사시절부터 정은식과 관계가 깊어짐.

정은식과 연관되고부터 별다른 줄이 없음에도 빠른 진급.

조사하는 동안에도 정은식으로부터 박스를 건네받은 정황을 두 차례 포착.

예전 정은식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구용식은 정은식이 강간 후 살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것을 은폐해주는 조건으로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칠성파 보스 김용.

45세.

특이사항 : 노원구에서 활동하던 조직.

대부분의 수익원이 심부름센터의 운영에서 나왔음.

정은식의 일을 전담하면서 많은 수익을 낸 것으로 예상.

최근 5년 사이 급격히 세력을 늘리며 노원구의 대부분을 장악.

건설현장에서 모습을 자주 보임.

쓸어버려야 할 놈들의 리스트.

정은식이 내일의 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확정이다.

그리고 놈의 아내와 딸.

나는 아내와 딸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정은식의 돈으로 온갖 사치를 부리며 젊은 남성에게 미친년.

학창 시절부터 사이코패스 기질을 보인 미친 딸년.

정은식의 처는 43세의 나이임에도 상당히 동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몸에 투자를 많이 한다는 소리겠지.

사진 상으론 서른 중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

말 그대로 중년의 미부라고 할만 했다.

그리고 정은식의 딸은 대학생.

나름 서울권에 있는 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엄마를 닮아 상당한 외모의 소유자.

흠이라면 눈초리가 제법 사납게 보인다는 것.

“미친 새끼... 지 딸년 뻘 밖에 안 되는 어린 애들을 강간하고 죽이는 놈이라니. 너는 죽어서도 지옥해이다. 씨발놈아. 그리고 네 와이프랑 딸년은 내가 제대로 손 봐 줄게.”

으르르르릉.

단전에 똬리를 튼 뇌기가 거칠게 으르렁 거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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