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2. 사냥꾼.(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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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89)
가장 큰 문제라면 경찰이 끼어 있다는 것.
하지만 이십 년을 넘게 대한민국이라는 법치국가에서 살아온 내가 경찰간부에게 손을 댄다는 것은 여간 거림직한 것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살인으로 위협을 당하더라도 과한 대처는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다.
정상참작의 경우 감형이 가능하기는 하나 참으로 불공정하다 볼 수 있다.
그런 것으로 보았을 때, 이미 내가 저지른 일은 처벌대상이다.
그에 더해 개인이 증거도 없이 경찰간부의 범죄정황을 빌미로 처벌을 한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하... 웃기는군.’
이미 살인을 해 놓고서 경찰이라는 감투에 쫄리는 내 자신이 우스웠다.
살인에 대한 죄악을 따진다면, 일반인이든 경찰이든 죽였다면 그 것이 바로 죄다.
정말 살인이라는 것으로 생후 지옥에 떨어진다면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거기에 숫자 하나를 더 보탠다고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그놈은 아무리 경찰서장이라고 하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놈.
자신의 지위를 망각하고 본인의 이득을 위해 씻을 수 없는 더러운 일을 은폐한 악질이다.
어쩌면 강간사이코패스보다 그 사건을 알면서도 은폐한 민중의 지팡이가 더욱 더러운 새끼가 아닐까?
내 나쁜 머리로는 여기까지의 생각이 한계다.
옳고 그름을 논하기에는 내 학력이 너무나 보잘 것 없다.
그냥 그놈까지 해치운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나대명사장.
“여보세요.”
대표님. 정은식은 자택으로 귀가했습니다. 귀가 후 집 뒤에 있는 별채로 향하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cctv가 생각보다 많이 깔려 있어 안쪽까지는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cctv정도로는 나를 막을 수 없다.
어차피 뇌전으로 조져 오작동을 유발할 수 있으니.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경찰서장 구용식도 파악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칠성파 김용인지 강용인지도 지워 버리도록 하죠. 그 일은 나대명사장이 맡아주었으면 합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죄 없는 아이들의 살인을 은폐하는데 도움을 준 이들입니다.”
대표님이 무엇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이 전보다 훨씬 만족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큰 죄를 저지른 놈들이니만큼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구용식에 대한 것부터 부탁드립니다. 강용은 조금 늦어도 상관없겠죠. 그 일은 나사장님 선에서 아무 때나 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나대명과의 통화를 마치고 건물 안을 둘러보며 적당히 걸칠 것이 있는지 찾아본다.
3층에 살던 할아버지가 그냥 버리고 간 것인지 삼선 슬리퍼와 색이 변한 가벼운 바람막이가 보인다.
나름 변장이라면 변장일까?
삼선슬리퍼야 대충 산 것인지 사이즈는 큰 문제가 아니다.
바람막이가 꽤 작았는데 지퍼를 잠그지 않는다면 걸칠 만은 하다.
모자를 벗고 이제는 제법 자란 머리카락으로 눈을 가리자 완벽한 노동자의 모습이 되었다.
‘난 변신의 귀재인가?’
옷 하나로 사람이 이렇게나 달라 보일 수 있다니, 옷을 막 걸쳐 입어 본 적이 없어 새삼스레 깨닫는다.
이쪽으로 이동하며 찍혀 있을 cctv엔 내가 마들렌에 있는 것으로만 기록 될 터.
cctv가 없는 사각지대로 최대한 멀리 이동한다.
내가 이렇게 용의주도하다니.
나조차 놀랄 정도다.
cctv를 피하면서도 일부러 등을 구부정하게 만들어 종종걸음으로 나아갔다.
전부 고장을 내면 그 것도 문제가 되기에 최소한만 고장 낼 거다.
뭔가 탐정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짜릿한 스릴마저 느껴진다.
그렇게 20여분이나 되는 동안 cctv를 파악하며 이동했고 지갑을 꺼내 본다.
오만 원 권 한 장과, 만 원권 다수가 들어 있음을 확인하고는 택시를 잡아탔다.
그렇게 당도한 정은식의 주택근처.
택시에서 내리며 cctv들을 살핀다.
나름 부촌으로 알려진 동네이다 보니 cctv의 숫자가 상당했다.
사각지대가 없는 곳이 생각보다 많기에 몇 개 정도는 어쩔 수 없이 뇌전으로 태워 버렸다.
이미 어두워지고 있어 고장을 알게 되더라도 오늘은 출동하지 않으리라 본다.
부촌답게 길거리에 세워진 차가 많이 않아 다행이다.
그래도 간혹 보이는 차에는 뇌전을 두 방씩 먹여주었다.
차의 전기장치가 망가지는 것은 미안 하지만, 내 정체가 탄로 날 일말의 가능성도 지워 버려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정은식의 집 앞에 당도했다.
00로 12길 46
대문 앞에 있는 cctv를 고장 내고 주변을 살필 후,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다.
2m가 넘는 담장이지만 내가 넘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
타악.
마당에 조심스레 착지를 하고 주변을 돌아보자 정원은 꽤 비싸 보이는 조경으로 가꾸어져 있다.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하기에 움직이기 편하다.
cctv의 빨간 불빛 또한 그 위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나는 카메라를 하나하나 망가트리며 주택의 뒤편으로 돌아 들어간다.
마누라랑 딸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지 별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뒤로 돌아 들어가자 정은식이 들어갔다던 별채가 나온다.
놈이 별채로 이동한 것은 상당한 시간이 지났건만...
조심스럽게 다가가 살펴보니 별채 또한 별다른 기척이 없다.
‘이런... 그사이 외출이라도 한 거야?’
그런 의문을 나타낼 때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쾌한 기운이 느껴진다.
찐득하게 살갗에 들러붙는 느낌이 신경을 자극한다.
‘뭐야... 이 기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별채를 돌면서 살펴본다.
그때, 조명하나 없는 뒤쪽에 지옥으로 가는 입구처럼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눈앞을 흐리는 어두운 기운이 지하로부터 연기처럼 피어올라 흩어진다.
‘요기?’
정염귀와 마물, 그리고 수지로 인해 요기를 겪어 봤기에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왜 여기서 요기가?’
정은식은 분명히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다만, 그에게 검게 드리워졌던 그림자.
그것이 요기와 관련이 있던 것인가?
아니면 사람에게 빙의하는 종류의 것이 존재하거나.
지금껏 내가 느꼈던 요기 중 가장 강렬했던 것은 수지의 요기.
지금의 요기는 구상두였던 정염귀에도 비할 바가 아니다.
귀신이라면 잡귀?
말 그대로 잡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천천히 발을 내딛어 계단을 하나하나 밝고 내려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계단을 밝고 그 어둠을 뚫고 내려가자 육중한 철로 만들어진 문이 나타났다.
밖에서 걸어 잠굴 수 있는 자물통은 열려 있는 상태.
‘이 안에 있군.’
두텁고 육중한 철문으로 닫혀 있지만 귀를 기울이자 안의 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온다.
흐으윽.. 흐으으으...
미약하게 들려오는 누군가의 흐느끼는 소리와.
푸적. 푸적. 푸적.
너무나도 익숙한 어떠한 질펀한 소리가 귓가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크아아! 감히! 감히! 개 같은 년 놈들이! 수년을 기다려왔건만!
짜악.
히익!? 헥... 흐으으으으...
무언가를 손바닥으로 후려친 소리와.
말을 해 봐! 이 걸레 같은 년아!
흐... 사... 사려...
이런 쌍 년이!
짜악.
하악!
정은식의 목소리로 짐작되는 거친 음성.
놈은 또 다른 희생자를 납치해 이 지하에 가두고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쓰벌 놈이?’
놈에 희생당한 이들은 대부분이 나이가 어린 여성들.
아니 그중에는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대로 철문을 박차며 안으로 돌진했다.
콰앙.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귀를 울렸고.
누구냐! 아니! 너는!?
손발이 묶인 엣 되 보이는 여성의 위에서 양물을 꽂아 넣고 고성을 지르는 정은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철문이 열리자 확연하게 느껴지는 요기와.
눅진한 공기에 스며든 지하특유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거기에 더해 은은하게 밀려드는 대소변의 냄새가 불쾌감을 하층 더 자극한다.
“이런... 미친놈...”
눈이 반쯤 풀린 여성의 나체엔 수많은 멍과 상처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지하 공간 끝.
중간에 자리한 협탁과 그 위에 올려 진 놋쇠 향로에서부터 정은식에게로 이어진 가느다란 실선.
그 실선을 타고 정은식에게 이어지는 요기의 흐름이 보인다.
카페마들렌에서 요기를 느끼지 못한 이유는.
그 거리가 거리인 만큼 제대로 닿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것이 무엇이든 간에 요기를 담고 있다는 것은.
삯 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뇌기로 저것에 타격을 줄 수도 있는 일.
“어떻게... 네놈이 이곳에 온 것이냐! 나를 미행했구나! 크흐흐흐~ 그래 오히려 잘 됐다. 네놈만큼은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지. 감히 수년을 공들인 결과물을 그렇게 망가트려 버리다니.”
여성의 몸에서 떨어져 침상에서 훌쩍 뛰어내린 정은식이 나를 향해 눈을 번들거린다.
놈의 눈빛은 마들렌에서 보았던 눈빛이 아니었다.
아니, 잠시잠깐 지나갔던 그 눈빛과 닮아 있다.
“망가트리다니. 내가 무엇을 망가트렸다는 거지?”
놈이 하는 말에 의문이 들어 뇌기를 돌리며 물었다.
“귀신들린 붙은 년의 음기가 찰 때까지 기다렸건만. 네놈이 연지 그 년과 관계를 맺지 않았느냐!”
“귀신들린 붙은 년?”
“네놈은 사냥꾼이 아니더냐? 그래서 접근한 것 아니냐! 아무리 사냥꾼이라지만 혼자 이곳에 잠입하다니. 더군다나 아무런 무기도 없이 말이야. 크흐흐흐흐.”
놈은 아무래도 날 사냥꾼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생각해도 상관없기에 두 주먹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저 빌어먹을 새끼는.
연지에게 윤지의 귀신이 들러붙었다는 것을 알고는 음기를 키우기 위해 살을 찌우고 있었다는 것.
참으로 정염귀와 다를 바가 없다.
저놈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궁금한 것은 일단 제압하고 묻기로 했다.
나는 징그럽게 웃으며 양물을 덜렁이는 정은식을 지나쳐 몸을 날렸다.
“무기가 왜 없어. 이 새끼야!”
나는 그대로 발을 차올려 삼선 슬리퍼를 발사시켰다.
쒜에엑.
지금껏 이런 삼선슬리퍼소리는 없었다.
공기를 찢어발기며 쏘아져 나가는 삼선슬리퍼가 정은식의 얼굴로 날아든다.
총알처럼 쏘아지는 그 모습에 나 또한 잠시 넋을 놓을 뻔 했다.
“아... 아닛! 비... 비겁한!”
비겁함을 외치는 요괴라니.
어이없으면서도 대꾸할 값어치가 없기에.
삼선슬리퍼를 상대하는 정은식을 지나쳐 향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뇌전을 품고 향로를 향해 다가서는 손.
그리고 등 뒤에서 발악하는 외침이 들려온다.
“아... 안 돼! 멈춰!”
퍼억.
“꾸에엑! 내 얼굴!”
슬리퍼에게 얼굴을 내준 정은식의 비명이 지하를 어지럽힌다.
병신.
멈추란다고 멈추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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