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는 다보여-118화 (118/297)

〈 118화 〉 2. 사냥꾼.(90)

* * *

2. 사냥꾼.(90)

막 놋쇠향로에 손이 닿을 찰나, 그 안에서 요기가 뭉텅하고 빠져나간다.

‘어라?’

어찌 되었든 향로를 잡아들기는 했는데.

안을 살펴보니 허연 잿 가루 같은 것들이 가득 들어 있다.

“크아아아! 네 이놈!”

나는 고성을 지르는 정은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에도 충분히 불쾌한 기운을 뿜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기운이 더욱 강해진 것 같다.

슬리퍼 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얼굴 위.

놈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 되어 당장에라도 피 눈물을 줄줄 흘려 내릴 것만 같다.

아귀처럼 일그러진 살벌한 얼굴과는 달리 몸은 통통하니 보통의 살찐 중년인과 같아 우스꽝스럽다.

“내가... 이따위 몸을 차지하기 위해 그 오랜 세월을 보낸 줄 아느냐! 으아아아아! 빌어먹을 개 같은 새끼!!!”

별로 많지도 않은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발광하는 정은식.

놈이 발광할 때마다 출렁이는 뱃살과 그리 대단치 않은 양물이 덜렁거렸다.

“넌 정체가 뭐야?”

발광하는 놈을 향해 슬쩍 정체를 묻는다.

요기를 풍기고 있으니 요괴인 것은 확실하고.

자기 몸이 없어 인간에게 기생을 하는 모양인데.

음기를 탐하는 것을 보니 정염귀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느껴지는 요기는 구상두에 비해 참으로 보잘 것 없다.

구상두를 상대할 당시의 나였다면 조금은 고전했을 법도 하지만, 지금 내 상태라면 언제든 처리할 자신이 있다.

“크으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네놈을 찢어발기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어!”

대가리가 딸리는 것인지 당연한 말을 되뇌는 놈을 보며 다시 묻는다.

“그래서. 넌 뭔데?”

하지만 놈은 나에게 자신의 정체를 말해 줄 용의가 없는 것 같다.

분노라도 하는 것인지 요기를 끌어올리며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은 모습.

일단은 패고 시작하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다.

아무래도 저 침상위에서 정신을 못 차리는 여성도 문제이고 하니 말이다.

­크어어~ 죽어라!­

완전히 요괴가 된 듯, 인간의 음성과는 다른 이질적인 울림의 목소리.

마치 영화에서처럼 음성위에 음성이 덧씌워진 느낌이다.

죽으라는 외침과 함께 침까지 흩뿌리며 놈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후우웅.

일개 중년인의 몸에선 나올 수 없는 스피드와 힘이 느껴지는 주먹질이다.

확실히 사냥꾼이냐 물으면서도 자신감에 차 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퓨리다크니스를 주사했던 제임스에 비견되지 않는가.

그렇다고 정욱아저씨만큼 강하지는 않다.

제임스라는 놈의 무력이 깜댕이나 총잡이보다 강했던 것으로 보아, 그 놈이 약한 놈은 아니었겠지 싶다.

그렇다고 정은식의(?) 아니, 그냥 요괴라고 해야 하나.

요괴 놈의 공격이 나에게 위협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땡강. 캉. 캉. 캉.

나는 놋쇠향로를 던져 버리고는 허리를 살짝 굽히며 고개를 비스듬하게 젖혔다.

아슬아슬하게 어깨 위를 지나가는 주먹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 발을 한 발자국 뒤로 빼며 몸을 틀고는 눈앞을 지나간 팔목을 붙든다.

뿌드득.

­크억!?­

팔목을 악력으로 쥐어짜자 당혹스러운 놈의 눈동자가 들어온다.

나는 놈을 향해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릿하게 웃어 주었다.

씨익.

놀란 놈이 팔을 빼 내려 악을 쓰지만 내 완력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나는 팔목을 잡은 그 상태로 반대쪽 주먹으로 팔꿈치를 향해 올려친다.

주먹에 실린 뇌전이 선명한 뇌전을 품고 적중했다.

쩌억.

빠각.

­크아악!­

팔꿈치에 적중하며 뼈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놈의 팔이 덜렁하고 떨어져 내린다.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덜렁이는 팔을 반대 손으로 붙잡고 주춤주춤 물러나는 정은식.

나는 그대로 놈에게 바짝 다가들어 발로 힘껏 걷어찼다.

퍼억.

­쿠워억!­

우당탕탕.

발길질에 차인 정은식이 바닥을 몇 바퀴나 구르곤 벽에 부딪치며 멈추었다.

놈의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뚜벅. 뚜벅.

나는 구석에 찌그러진 놈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지하 특유의 울림이 발자국 소리를 섬뜩하게 만드는 것만 같다.

­오... 오지 마! 자... 잠깐!­

놈은 자신이 이렇게 쉽게 나가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상당히 당혹스러워 했다.

나머지 팔을 휘저으며 버둥거려보지만, 이 지하공간은 뒤의 철문을 제외하고는 빠져나갈 곳 하나 없다.

“이 새끼. 좆나 약하네? 다시 묻지. 네 정체가 뭐냐?”

지척까지 다가온 나를 보며 두려움으로 물드는 놈의 얼굴.

이런 놈이라면 상당히 수준이 낮은 요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나는 아귀다!­

“아귀? 너도 여성의 음기로 연명하는 놈이냐?”

­그... 그렇다.­

“그럼, 정은식이 여자를 강간하고 죽이는 것도 네가 시킨 일인가?”

그 물음에 놈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가는 게 보인다.

어떠한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처우가 갈릴 것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저렇게 대가리를 굴리는 것을 보니 아직 매의 강도가 약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스산한 눈빛으로 놈을 바라봤다.

“준비가 안 됐나보네. 일단 맞고 시작하자.”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정은식이 황급히 말을 꺼냈다.

­자... 잠깐! 말한다! 아... 으아아악! 그만!­

뇌전을 머금은 내 손과 발이 놈의 전신을 두드렸다.

죽일 생각마저 하고 왔기에 거침없이 내려치고 밟았다.

어차피 요괴가 빙의되어 있기에 쉽게 죽지는 않을 거다.

퍼억. 퍼억. 퍽퍽퍽.

­끄아악! 아악! 컥! 컥!­

바닥을 기며 손과 발을 벗어나 보려하지만 놈은 절대로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얼마나 두드렸을까?

살아 있는 샌드백을 두고 마음껏 스트레스를 날려 버린 기분이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질문에 즉각적인 답을 하길 바란다.”

나는 위협적으로 뇌전을 한 번 튀겨 주었다.

파지직.

­히끅!­

놀란 놈이 걸레가 된 몸을 잔뜩 움츠렸다.

하지만 입만은 아주 멀쩡한 상태로 두었다.

어눌한 발음만큼 듣기 짜증나는 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 뒤로 놈은 내가 하는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을 해 주었다.

윤주를 죽이게 된 것은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이후로 정은식의 본성이 깨어났다는 것.

윤주를 묻을 때 발견한 놋쇠향로의 요기는 정은식을 본성에 더욱 충실하게 만들었고, 그의 악행을 더욱 부추기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정은식이 납치해 겁탈하고 살해한 여성만 16명.

정은식에게 빙의된 요괴에게서 사체들이 매장된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쯤 되니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바다나 강에 매장된 시신들은 수습할 수 없겠지만, 정은식이 공사 현장에 묻은 시신들은 파내어 찾아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윤주의 시신도 찾아내어 묘비에 묻어 줄 수 있을 거다.

문제는 이미 완공되어 입주가 끝난 건물의 바닥을 파내야 한다는 말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경찰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욕심 많은 요괴새끼가 왜 정은식 마누라랑 딸은 안 건드렸지?”

­그건... 이놈이 뜻밖에 가족을 끔찍이 생각하는 탓에...­

거참... 사이코패스 새끼도 자기 가족만큼은 중요하다는 건가?

거기에 더해 마누라는 정은식의 일을 알고 있다는 것과, 딸은 정은식의 성향을 닮은 것인지 사이코패스 기질이 다분하다고 한다.

‘역시 그년들도 그냥 놔두어선 안 되겠어.’

“놈이 살인했다는 증거, 경찰서장과의 유착에 대한 자료정도는 있겠지?”

그 물음에 아귀의 얼굴이 푸들푸들 떨렸다.

­그것이 공개되면 나는 감옥에 가게 되잖아!­

이놈은 내가 살려줄 것이라 여기는 건가?

나는, 놈이고 정은식이고 절대로 살려 둘 생각이 없는데 말이다.

아직 들을 것이 있는 만큼 그러한 내색은 하지 않았다.

“오래 살았다면서? 너한테는 찰나에 불과한 거 아냐?”

­아... 안 돼! 이놈의 몸에서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그 방법은 감옥에 가서 찾아보는 게 어때?”

­나... 난 너에게 협조했다! 그러니 그것만은!...­

나는 주먹을 들어 보이며 뇌전을 튀겨댔다.

파지직. 파지직.

“내가 이 주먹으로 정염귀도 튀겨 버렸거든? 너도 그렇게 되고 싶은 건 아니지?”

실제로는 수지의 공이 크지만, 이 놈이 알 턱이 없으니 그냥 지껄였다.

지금이야 구상두가 다시 나타난다 해도, 제압할 자신이 있기에 마냥 거짓말은 아니지.

­저... 정염귀...­

놈의 반응으로 보아 정염귀가 놈 보다 급수가 높은 요괴임이 분명하다.

나는 위협적으로 놈의 눈앞까지 주먹을 들이밀었다.

­마... 말하겠다! 그러니 그 주먹을 치워라!­

참으로 목숨에 집착이 강한 놈이라는 생각을 하며 주먹을 살짝 뒤로 물려준다.

놈은 자포자기라도 했는지 정은식이 숨겨 놓은 증거들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제 놈에게 더 이상 들을 것은 없었다.

이제는 뒤처리를 할 시간.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뇌기로 저 아귀 놈을 소멸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정은식은...

정말로 감방으로 보내버리는 것을 좋을까?

16명이나 납치 강간하고, 살인 매장을 했으면 몇 년 형이나 받으려나?

살아 있는 동안 나오지는 못하겠지?

다만, 걸리는 것이라면 연지에게 장담했던 것.

정은식은 내일의 해를 못 볼 것이라 한 말이다.

나는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는 것과 두 놈을 없애버리는 것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생각을 마친 후, 정은식에게 빙의한 아귀의 목을 덥석 부여잡았다.

­커... 커커컥... 무... 무슨... 짓...­

부릅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발버둥 치는 놈을 보며.

“일단, 너부터 소각 좀 시키자.”

­야... 약속... 커억...­

“뭐라고? 난 너랑 약속한 게 없는데?”

그리고 놈의 목을 잡은 손으로 뇌기를 보낸다.

새파란 뇌기가 놈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크어어어어!­

몸을 마구 떨려 게거품을 푸는 아귀는 눈동자까지 허옇게 변해 버렸다.

이러다가 정은식까지 죽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뭐, 죽어 버리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렇다면 원래대로 되는 것이니 크게 상관은 없다.

털썩.

전신에 허연 연기를 뿜어내며 정은식의 몸이 축 하고 늘어졌다.

놈에게선 더 이상 어떠한 요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코에 손을 가져가 숨을 쉬는지 확인해 봤다.

‘명줄 한 번 기네. 아직 살아 있군.’

그렇게 아귀를 처리한 나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