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는 다보여-119화 (119/297)

〈 119화 〉 2. 사냥꾼.(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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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91)

먼저 전화를 건 것은 연지.

나는 연지에게 정은식의 처분에 대한 것을 물었다.

그 처분에 있어 동생의 시신을 찾기 위해선 경찰의 손을 빌려야함도 알렸다.

그렇게 되면 당장 정은식을 죽이는 것은 좋은 판단이 아니기에.

울분을 참아내며 끅끅 거리던 연지.

­그럼... 그놈은 평생 감옥에서 썩는 거죠?­

“그래. 절대로 이놈이 나올 일은 없을 거야. 만약에 나오게 된다면 오빠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을 처리해주지.”

­흐... 흐흐흑... 아니에요. 윤지의 시신을 찾을 수 있으면 되었어요. 제가 너무 저만 생각한 것 같아요... 끄으윽... 오빠한테 누군가를 죽여 달라고 하다니... 제가 미쳤었던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해요.­

“아니야. 정은식 같은 놈은 언제라도 그런 일을 또 할 놈이야.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세상에 도움이 될 놈이야. 그러니 네가 죄송할 필요는 없어.”

­끄으윽... 흐윽... 정말 감사합니다. 오빠...­

연지와의 통화를 마치고 먼저 침상위의 여자를 살폈다.

많은 학대를 당한 것인지 몸은 삐쩍 말라 있고 곳곳은 붓고 멍으로 가득하다.

정신을 놓은 것인지, 잠이 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아 있으니 다행이다.

여자를 바로 눕혀주고 담요 비슷한 것이 있어 몸 위에 덮어 주었다.

그리고 밧줄을 찾아내어 놈의 손과 발을 묶었다.

이 지하 창고 안에는 밧줄 뿐 아니라 가학적인 성기구들이 한 편에 즐비하게 널려 있던 것이다.

놈이 왜 깨어나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귀를 소멸시키며 충격을 받은 것이겠거니 했다.

일단, 지하창고를 나와 문을 닫고는 별채로 올라왔다.

별채라고는 해도 웬만한 가정집처럼 꾸며진 주택 같았다.

아귀가 말한 서재로 들어서 책장에 숨겨진 버튼을 찾아 누른다.

털컥.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가 나고.

책장을 옆으로 밀자 드르륵거리며 벽이 드러난다.

한눈에 보기에는 평범한 회색의 벽.

자세히 살펴 네모나게 그어진 선이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

조명이 그리 밝지 않아 그냥 본다면 맨 벽일 따름이다.

가로세로 1m에 가까운 벽을 꾸욱 누르자 또다시 들려오는 소리.

딸깍.

커다란 네모 모양의 벽이 불쑥 튀어나왔다.

옆의 벽면과는 달리 나무로 만들어진 가벽.

그것을 떼어내자 드러나는 금고.

크다.

과연 이 안에 그놈이 숨기고 싶은 것만 있을까?

‘흐흐흐... 좋은 일하는데 보너스는 필요한 법이지.’

아귀가 알려 준 비밀번호를 누르자 드르륵 하며 금고가 개방되었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화려한 광채를 뿜어내는 금괴.

‘와... 쓰바... 뒤가 구린 놈들은 금괴를 모으는 게 취미인가?’

나는 희희낙락하며 금괴를 하나하나 빼 내어 숫자를 세었다.

지문이 남을까 싶어 장갑까지 착용했기에 내 손은 거리낌이 없었다.

그렇게 나온 금괴는 다섯 덩이.

뒤쪽으로 꽉 들어차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사람 욕심이란 것이 끝이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다섯 개만 해도 충분히 억 소리 나는 금괴이거늘.

어찌 되었든 금괴를 빼내고 오만 원 권 현금다발도 차곡차곡 옆에 쌓아 놓는다.

금괴의 두께 때문인지 안은 겉보다 훨씬 작다.

그렇게 쌓인 현금다발은 오십 개.

“이 새끼는 숫자 5를 좋아하나?”

그렇게 중얼거리기는 했어도 무려 5억이 넘는 현물이 들어와 버렸다.

안 그래도 건물을 사고 내 생에 타 볼 수나 있을까 싶었던 벤틀리를 사면서 깨졌던 돈을 일부 만회했다.

“이제 제일 밑에 칸인가?”

가장 비좁은 밑에 칸에 손을 넣어 전부 끄집어낸다.

우르르 딸려 나오는 장부.

대충 훑어보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비리장부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누구에게 얼마나 주었다가 적힌.

“얼씨구? 서장놈 말고도 뇌물 먹은 놈이 제법 많은데?”

국회의원도 있고, 시청의 계장 등도 있다.

형사도 있고, 더 나아가 검사까지 있는 것이 사이즈가 제법 묵직해 보인다.

날짜를 보아하니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모양이다.

더 있었으면 더 고위직도 매수했을라나?

이것들은 나보다는 정욱아저씨가 판단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일단은 혹시 모르니 한 장 한 장 전부 사진을 찍어둔다.

“일기가 없는데?”

나는 밑에 칸의 안까지 손을 쭉 밀어 넣어 제대로 훑어보았다.

그렇게 딸려 나온 것은 가죽다이어리 하나와 부드러운 융으로 만들어진 손바닥만 한 주머니 하나.

먼저 가죽다이어리를 열어 내용을 확인해 봤다.

“이런... 미친 새끼...”

그 안에는 놈이 처음 살해했던 윤지부터 해서 그동안 해 온 범죄들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했는지부터, 어떻게 납치를 해 강간하고 무슨 방법으로 죽였는지까지.

마지막으론 시신의 처리를 한 방법까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나신으로 죽어 있는 피해자들과 찍어 놓은 사진이 전부 붙어 있었다.

다만, 처음으로 일을 저질렀던 윤지의 사진만이 없을 뿐.

“와... 이 새끼 그냥 죽여야 하는 거 아냐?”

다이어리를 보며 나는 제대로 현타를 맞아버렸다.

나도 사람을 죽여보긴 했지만, 그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충격이다.

이놈은 태생이 요괴보다 더 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사람의 마음속엔 요괴들이 하나씩은 있지 않을까?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목격한 것 같아 속이 매스껍다.

두 번 보기는 싫지만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뱉어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카메라에 모든 페이지를 전부 담았다.

혹시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하기는 한 건데.

작정하고 은폐하면 이런 게 소용 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 은폐한 놈들도 지옥을 보게 될 거다.

아니, 그때는 아무런 거리낌도 두지 않을 작정이다.

“후우... 씨발...”

나는 마지막으로 융으로 만들어진 주머니를 들어 본다.

그렇게 무겁지는 않다.

생긴 것은 으레 나오는 물방울 다이아인지 뭔지가 들어 있을 것 같은 주머니다.

주머니의 조여진 입구를 벌려내자 그 안에서 영롱한 빛이 내 눈을 자극한다.

“와따! 눈 부셧!”

일말의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로 다이아가 들어 있다니!

나는 태어나서 다이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이것이 그 귀한 다이아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것이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들어 있다.

못 해도 50개는 넘는 것 같은데?

하나를 꺼내 조명위로 들어 본다.

크기는 정말 작다.

새끼손톱의 반도 안 되는 크기.

“이게 말로만 듣던 물병인가 뭔가 하는 다이아?”

나는 멍한 얼굴로 빛에 반사되는 다이아를 한동안 바라봤다.

“난... 부자다... 으헤헤헤헤! 난 부자라고! 허억... 허억...”

절로 숨이 차오르고 거칠어진다.

로또를 맞는 기분이 이런 기분인가?

건물을 사고, 차를 사고, 클럽의 지분을 받고, 대한 주류의 대표가 되었지만.

실제로 내 것인가 하는 애매한 기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내거다.

내 주머니에 넣어 가져나가면 그대로 내 재산이 된다.

금괴와 현찰과, 다이아가 전부 내 것인 것이다.

“이거 하나에 얼마나 하지?”

나는 별채에 몰래 숨어들어 뒤지고 있다는 것도 망각하고 다이아에 대해 검색해 봤다.

지금 내 정신은 온통 다이아에 쏠려 버렸다.

“오오오~ 보통이 오 육백 만원? 1캐럿? 이 새끼가 이렇게 숨겨 놓은 거면 값어치가 더 나가는 거겠지?”

상태에 따라 수 천 만원도 호가한다고 나와 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확실히 보통의 다이아가 아니다.

하나에 이 천 만원씩만 계산해도 최소 10억이다.

난 오늘 쓰레기의 집에서 못해도 15억을 벌어들인 셈이 된다.

건물과 차 값을 퉁 치고도 남았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주머니에 다이아 주머니를 소중하게 넣었다.

그리고 현찰과 금괴를 담을 가방을 찾아본다.

“오~ 저건 똥가방 이잖아?”

가방을 집어 금괴와 돈을 넣으려던 나는 멈칫하고 만다.

생각해 보니 저런 걸 거지같은 차림으로 들고 다니는 것은 너무 눈에 뛴다.

현찰 5억이 들어가기에는 터무니없이 작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상당히 큰 검정 캐리어를 찾아내어 그 안에 돈과 금괴를 차곡차곡 쌓았다.

캐리어가 꽤 큼에도 안은 현찰로 금세 가득 차 버렸다.

전부 담은 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정욱아저씨에게 전화를 건 나는 정은식의 집에 왔음을 알렸다.

그리고 알아낸 것과 증거를 확보했노라 일렀다.

­물론, 죽어도 모자란 놈이지만. 현명한 판단을 했구나.­

아저씨는 내가 무작정 죽이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는 목소리였다.

“이 일을 처리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일단, 그 장부와 다이어리는 금고에 넣어 두고 정리한 후 나오도록 해라.­

“아직 그놈의 마누라랑 딸이 남았어요.”

­네 마음은 안다만... 지하의 여성은 빨리 구해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아저씨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끊고 아저씨가 말한 대로 정리한 후, 별채를 빠져나왔다.

조심스럽게 걸어 본채까지 도착해 보니 처음 들어올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지금 시각은 9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가정주부가 여태 들어오지 않다니.

직업도 없는 년이 어디서 뭘 하는 거야?

캐리어가 크기는 하지만 내 능력으로 담을 넘는 것 정도는 누워서 떡먹기다.

고양이처럼 담을 넘어 망가트린 cctv들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왔다.

정의 실현도 하고 건물 값과 차 값도 벌고 뜻 깊은 하루라는 생각이 든다.

­말씀하십시오. 대표님.­

“정은식 마누라랑 딸 어디 있는지 파악 됩니까?”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기왕이면 주말이 되기 전 빌어먹을 것들을 전부 단죄하고 싶은데 말이야...

말끔한 기분으로 이번 주말을 보내게 되면 참으로 기분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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