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2. 사냥꾼.(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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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97)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3층의 사무실로 향했다.
일단, 정욱 아저씨와 나대명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모습에 조금은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조응수.
하지만 지금 이야기는 그가 알기에는 곤란한 이야기.
아마도 알게 모르게 자신의 위치에 대한 불안감이 보이는 모습이다.
안타깝긴 해도 완전히 날 믿으라는 속마음밖에 전해 줄 것이 없다.
이러고 보니 무슨 사이비 종교의 교주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일단, 내가 알던 검사에게 사건을 맡겼다. 그리고 뉴스에서와 같이 제대로 터트렸더구나.”
“그런 분과의 인맥이 남아 있으셔서 다행입니다.”
“나도 썩 믿지는 못했다만, 이렇게 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지.”
“네.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그래... 그건 조금 더 생각해 보자. 그리고 피를 묻히지 않고 해결한 것은 칭찬하도록 하마.”
“사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죽이고 싶다는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욱아저씨의 눈이 살짝 반원을 그리는 것은 내 착각일까?
“그래. 아무튼 잘했다.”
정욱아저씨는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쁜 얼굴이다.
“내가 준 가방은 살펴보았느냐?”
“네? 아직...”
“앞으론 기본적인 무장은 하고 다녔으면 싶구나.”
“네...”
“그리고 재수씨는 내가 잘 가르쳐 보도록 하마.”
“네. 부탁드려요.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네요.”
정욱아저씨가 알겠다며 사무실을 나가고 이제 나대명과 나만이 남았다.
“나사장님. 아저씨 차부터 좀 바꿔드렸으면 좋겠네요. 괜찮은 suv있으면 하나 마련해 주세요. 험하게 모시는 편이라 튼튼한 것이면 좋겠네요.”
“네. 대표님.”
“그리고 어제 말씀드린 다이아는 이 거예요.”
나는 융 주머니를 나대명에게 내밀었다.
집에서 상연누나와 실실거리며 몇 번이고 개수를 세 보았던 물방울다이아.
정확하게 65개가 들어 있었다.
“호오... 평범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요? 나사장님은 그런 것도 볼 줄 알아요?”
“몇 번 접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뒤쪽으로 거래를 해야 하므로 수수료가 상당히 들 겁니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처분해 주세요. 그런 거 그냥 갖고 있으면 괜히 찝찝해서.”
그중 다섯 개는 따로 빼서 주머니에 넣었다.
상연누나에게 목걸이를 만들어 준다고 했기에 넉넉히 빼놓았다.
물론, 수지 것도 만들어야 할 테고 또 쓸 곳이 있겠지 싶었다.
“정서라는 잘 감시하고 있죠?”
“네. 뉴스가 터지고 칠성파에서 접근하려는 것은 잘 막았습니다. 칠성파는 조만간 확실히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런 나대명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런데... 구상두의 별장금고는 언제 가 보실 것인지...”
“그거 폭탄으로도 안 터진다면서요? 구상두 지문도 없고. 천천히 해도 됩니다. 일단 다녀와서 한 번 가보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요즘 조이사는 어때요?”
그 물음에 나대명이 잠시 뜸을 들인다.
“음... 훈련은 열심히 하는데... 아무래도 조금 서운한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그래요? 나가시면서 조이사님 좀 불러 주세요.”
“네? 혹시... 조이사에게도 힘을 주실 생각이신지...?”
나대명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흘러나온다.
“크크큭~ 그거 아무한테나 되는 거 아니에요.”
“저... 정말입니까?”
그러면서 머리를 슥 하고 한번 문지른다.
그날부터 버릇이라도 된 것인지 머리를 문지르는 횟수가 늘어났다.
까끌까끌해지는 그 기분이 좋기라도 한 건가?
“서로 간에 완벽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아~ 그... 그럼. 대표님도 역시 저를 그렇게나 믿어 주신다는!”
나대명의 눈이 히어로를 본 초딩처럼 반짝였다.
그 모습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남자에게 저런 눈빛을 받는 것은 아주 어색하다.
여자라면 몰라도...
“뭐... 그... 그렇다고 해 두죠. 조이사님이 확실히 필요한 사람은 맞죠?”
“네. 원래부터 머리도 좋았고, 그러면서도 주먹도 잘 씁니다. 조직을 통솔하는 데 탁월하기에 꼭 필요한 인물입니다.”
“흐음... 나사장이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조이사님 불러 주세요.”
“네. 대표님.”
나대명이 슥 일어나며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린다.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남의 약점을 두고 웃을 정도로 개념이 없지는 않다.
머리를 쓸어 올릴 때 저 뿌듯한 표정을 보고 어찌 웃을 수 있겠는가.
기왕이면 완벽하게 자랄 것이지... 쯧.
어째 헤이아치처럼 주변머리만 자라는 것이냐...
나대명이 나가고 얼마 안 있어 조이사가 우물쭈물하며 들어온다.
독대를 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그의 얼굴이 처음보다 환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네. 거기 앉으세요.”
조이사가 조심스럽게 소파에 앉는다.
“많이 서운하시죠?”
“네? 아... 아닙니다. 하하하... 그럴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다 알아요. 그렇다고 조이사님을 따돌린다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대표님. 정말 그런 것 아닙니다.”
나는 애써 아니라 부정하는 조이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표정에서 잘 드러나는 성격인 것 같다.
아니면 내 앞이기에 숨기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물론, 내 눈을 속일수는 없지만.
“조직이 합쳐지며 어느 정도는 경쟁의식도 가졌을 것인데, 나사장은 앞서가는 것 같고. 많이 초조하고 불안하겠습니다.”
“그... 그건...”
“하지만 이유가 좀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유가 있으실 거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개념 치 마십시오.”
“조이사님이 조직원들을 끌고 스카이클럽에 쳐들어 왔을 때가 생각나네요.”
그 말에 조이사의 얼굴이 살짝 붉게 상기된다.
시선을 한 군데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모습.
“죄... 죄송합니다.”
“하하하~ 이미 지난 일인데요 뭐~ 전 그날 조이사님이 남자답게 패배를 인정하고 이렇게 끝까지 남아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앞으로 서로 조금만 더 믿고 의지했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조만간 정말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조이사의 고개가 번쩍하고 들렸다.
그의 눈빛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눈빛.
그렇다고 그것이 직위나 욕심에 사로잡힌 모습은 아니다.
“저... 정말입니까? 나사장처럼... 저도...?”
나는 그리 말하는 조이사를 보며 살짝 놀랐다.
조이사는 생각보다 눈치가 훨씬 좋은 듯하다.
나대명의 변화를 보고, 정욱아저씨를 보며 무언가를 짐작한 것일까?
‘이 아저씨 눈치 장난 아닌데?’
그렇다면 희망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조이사의 충성도가 나쁘지는 않지만, 여기서 확실히 올려야 할 이유가 있으니 말이다.
“조이사님이 모든 걸 바쳐 날 믿게 되는 날. 지금 생각하시는 것이 이루어 질 겁니다.”
이건 뭐... 정말 사이비 교주가 된 것 같다.
나를 믿어라. 그리하면 얻을지니... 도를 믿으십니까? 의 새로운 버전같다.
“가... 감사합니다. 대표님. 정말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조응수의 정보를 한 번 더 살펴본다.
조응수.
호감 : 75 〉 78
신뢰 : 72 〉 80
충성 : 65 〉 87
이렇게나 쉽게 올라가는 걸.
앞으로는 더 자주 만나 관리를 좀 해 줘야 할 것 같다.
이것이 내 사람이기에 잘 오르는 것인지, 아니면 전부 잘 오르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시야에 거슬리는 이것을 종일 켜 놓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리고 이렇게 정보를 살피다 보면 정신력이 상당히 소모되는 듯 머리가 욱신거리기도 한다.
무엇이든 대가가 없을 수는 없겠지.
어찌 되었든 권속으로 각성할 후보로는 조응수가 가장 유력하다.
성기형도 조만간 100을 찍을 것이라 보지만, 애초에 어둠으로 끌어들일 생각은 없다.
그렇기에 각성시킬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거만한 얼굴의 오대석이 떠올랐다.
여자 셋을 데리고 무사히 나온 것은 내 뒷배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
어쩌면 슬슬 내 뒷배가 없다는 것을 눈치 챘을지도 모른다.
그 때는 놈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일은 벌어져봐야 할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이길 수 있을까?’
포악한 그의 기세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더군다나 그는 혼자가 아니다.
겉으로는 강남 최고의 조직을 이끌고 있고, 웨어비스트 수하들이 있다.
현재 내 전력은 나와 나대명, 그리고 정욱아저씨.
그날 본 오대석의 부하는 둘이지만, 그 둘이 전부라는 보장은 없기에.
내 전력도 빨리 보강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곰 새끼. 그날 쫄았던 건 꼭 갚아주마.’
서울 전역의 밤거리를 맑고 쾌청하게 바꾸어 주겠다.
그나저나 마마나 수지한테서는 연락한 번 없군.
먼저 전화라도 걸어봐야 하나 싶다.
진득하니 기다리지 못한다고 호통을 치시진 않겠지.
지하에서 운동하는 상연누나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나왔다.
연지의 일도 처리했으니 그녀를 한 번 봐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김명기가 보인다.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네. 대표님.”
“오늘은 안에 들어가서 쉬어.”
“하지만...”
“새 차도 생겼는데 혼자 드라이브 좀 할게. 운전은 다음 주부터 부탁해.”
다소 난감해 하는 김명기를 억지로 들여보내고 애마가 된 벤틀리의 시동을 건다.
으르르르릉~
아~ 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배기음.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지 아니한가~
거리를 빠져나가며 휴대폰의 연락처를 뒤적여 마마의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마마라는 이름을 클릭해 전화를 건다.
한 참이 울려서야 들려오는 목소리.
인한군.
마마의 차분한 음성에 나도 모르게 안도했다.
수지는 별일 없이 잘 지내리라 생각되었기에.
“저... 수... 수지는 잘 있나요?”
후훗. 많이 초조했나 보군요.
그 말과는 달리 뻘 짓을 좀 많이 하고 다니긴 했다.
하지만 애써 내색할 필요는 없지.
“네.”
딸아이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인한군은 일을 벌인 모양이던데. 잘 처리했나 보더군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뉘앙스.
저도 모르게 등줄기를 타고 차가운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네? 네... 네...”
딸아이는 아직 통화할 상황은 아닙니다. 인한군도 조신하게 잘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네요.
“그... 그럼요! 명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