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냥꾼.(98)
2. 사냥꾼.(98)
아무래도 마마에겐 정보통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앞으로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지는... 정말 괜찮은 거죠?”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연락을 할 터이니. 그러니 재깍재깍 연락을 받기 바랍니다.-
“그럼요. 당연합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나의 예비 장모님.
지금 내 모습이 보이지는 않을 테지만.
나는 어느새 갓길에 차를 세우고 휴대폰을 공손히 들고 연신 굽실거리고 있다.
아마도 나에게 가장 대하기 어려운 이가 있다면 마마가 아닐까?
괜히 연락했다가 수지 목소리는 듣지도 못하고 본전도 못 뽑은 것 같다.
“휴우... 어렵다. 어려워...”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대화를 조금 더 나누고.
전화를 끊고 다시금 운전대를 잡았다.
벤틀리의 엑셀을 밟자 거짓말처럼 조금 전의 난감했던 상황이 잊어진다.
면허를 딴 것은 꽤 오래되었지만, 자차가 없다 보니 경력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런데도 운전대를 잡으며 이렇게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보면.
사실 나는 타고난 드라이버가 아닐까?
내 원래 성격이 이랬던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변화가 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긍정적인 것은 좋은 것이니까.
나는 그러게 히히 낙낙하며 카페 마들렌으로 향했다.
***
“오빠... 오셨어요.”
조금은 허탈해 보이는 연지의 모습.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꼬박꼬박 나와서 이렇게 매장을 살피고 있다.
현장 노동을 해 봐서 아는데, 가게 주인이나 관계자나 저렇게 나와서 꼼꼼하게 신경 쓰는 경우는 드물다.
간혹 있다면 도가 지나칠 정도로 지적하는 참견쟁이 정도일까.
“연지 힘이 없어 보이네?”
그 말에 억지로 웃음을 띄워 보지만 핼쑥해진 얼굴은 가리지 못했다.
그 토실토실했던 볼 살이 저렇게나 빠져 버리다니.
“아니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피해자들의 시신이 묻힌 곳은 곧 발굴을 시작한다고 한다.
이미 입주자가 들어 선 곳이 태반이기에 이에 대한 합의가 진행되는 상황.
그래도 그 합의는 신속하게 이루어질 듯하다.
누구도 시신이 묻혀 있는 건물 위에서 살고 싶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알고도 외면한 그놈 가족들도 전부 벌을 받을 거야.”
“네... 그런데 오빠. 옆에 윤지 있나요?”
연지의 물음에 나는 윤지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일단, 저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일을 벌일 수는 없기에, 창고로 사용하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그러곤 역시나 시무룩해 져 있는 윤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언니를 따라 덩달아 기분이 다운이 된 것 같다.
윤지가 슬그머니 내 손을 잡아 오고.
나는 윤지에게 뇌기를 주입해 준다.
형상을 드러내는 윤지를 보며 연지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흐흐흑... 윤지야...”
윤지는 그런 언니의 어깨를 감싸고 토닥여주었다.
-언니... 울지 마. 잘 풀렸잖아.-
“흐흐흑... 하지만... 윤지 네가 너무 불쌍해... 흐엉엉~”
두 자매를 두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담배를 한동안 피긴 했었는데.
끊은 이후로 오늘따라 유난히 매캐한 담배 연기가 생각난다.
두 자매의 모습에서 나와 인아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만 같다.
너무나도 어릴 때의 기억이기에.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는 어린 인아의 모습은.
그저 조그마한 체구에 새하얀 피부의 단발머리 아이의 모습이다.
인아의 눈, 코, 입은 완전히 지워지기라도 한 것처럼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사진이라도 남아 있다면 항상 머릿속에 그려 넣을 수 있었을 텐데.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그저 아빠, 엄마, 인하. 세 단어와.
찢겨지던 부모님과 울부짖던 인아의 음성.
“크크큭...”
그들을 기억하는 것조차 나에게 사치이거늘.
나도 모르게 주제넘은 생각을 하고 말았다.
홀로 몸을 숨기고 살아남은 주제에.
어린 동생의 울음소리를 외면한 주제에.
오로지 내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영전에 그 빌어먹을 놈의 목을 바치는 것.
세상의 모든 정염귀는 모두 잡아 바치리라.
“오빠...?”
언제 나왔던가?
조금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연지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머리를 흔들고는 마른세수를 해 경직된 얼굴을 풀었다.
손바닥에 악귀처럼 일그러진 안면이 와 닿는다.
“괘... 괜찮아요?”
겁이라도 집어 먹을 걸까?
“어? 하하... 괜찮아.”
뒤의 열린 창고 틈 사이로 희미해져가는 윤지의 모습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윤지에게 뇌기를 더 전해준다.
다시금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윤지.
나는 두 자매를 향해 안쓰러운 표정이 되어 버린다.
마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혹시... 윤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연지가 물어온다.
조금은 떨떠름한 얼굴이 되어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이기에.
아니, 귀신자체를 윤지 이외에 본 적이 없기에.
정말이지 곤란하기 그지없네.
-오빠도 모르는 거예요?-
이런 말을 해도 되려나 모르겠다.
마마와 통화를 하며 윤지에 대해 이야기를 건네 보았다.
마마는 이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을 알고 있었는데.
“아마도... 성불하게 되지 않을까...”
-혹시... 제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가요?-
“오빠... 그 말이 정말이에요?”
말이 좋아 성불이지.
죽음에 이르고 그 영혼이 어찌 되는지, 살아 있는 이들이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정말 윤회하게 되는지, 아니면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인지.
천국이나 지옥이 있어 그곳으로 향하는지 말이다.
그 물음에는 마마도 쉬이 답을 주지 못했다.
알고 있음에도 말을 아끼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나는 불행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던 탓에.
“좋은 곳으로 가게 될 거야.”
거짓말하고 말았다.
아... 몰라. 내가 신도 아니고. 정말 모르겠다.
사후의 문제를 내가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신이 있다면 순리대로 어떻게든 되겠지 싶다.
그나저나 연지는 어디에서 생활하는 것일까.
“연지야. 사는 곳은 어때?”
“네?”
“위에 2층 3층 전부 주거 공간을 만들고 있거든. 여의치 않으면 들어와 살아도 되는데.”
“그... 그건... 너무 신세를 지는 것 같아서...”
“출근하기에 더 좋지 않나? 아무튼 잘 생각해 봐. 복지차원에서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어.”
“네. 오빠.”
그 말에는 윤지도 신이 난 모양이다.
-와아! 역시 오빠는 멋있다니까?-
어쩌면 윤지는 내가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얼굴을 깠던 것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괜히 틱틱 거리는 초딩과 같은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시 나는 괜찮게 생긴 게 맞는 것 같다.
“너무 가게에만 붙어 있지 말고. 바람도 쐬고 그래.”
이연지.
호감 : 70 ->80 ->90
신뢰 : 55 ->70 ->100
애정 : 15 ->45 ->89
-------
이윤지.
호감 : 55 ->90 ->95
신뢰 : 75 ->65 ->99
애정 : 15 ->40 ->87
그렇게 자매들의 정보도 확인하고 마들렌을 빠져나왔다.
역시 친분다지기를 좀 해 줘야 느는군.
‘오늘 볼일은 벌써 끝난 것 같은데?’
커피 한 잔 하고 싶었지만, 오픈 때까지는 맛을 볼 수 없겠지.
아마도 내가 부자가 될 것을 예상하고 내 입맛도 고급스럽게 변했던 모양이다.
나의 입은 이제 고급원두가 아닌 이상 마시기를 거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일이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연누나와의 여행.
물론, 단둘은 아니지만 어떻게 해서든 좋은 기회를 잡아 봐야지.
그런 핑크빛 상상에 너무 심취해 있던 탓일까?
빌어먹게도 차 앞에 뛰어드는 여자를 보지 못하고 급브레이크를 잡고 말았다.
끼이익.
-꺄아악!-
“허억! 씨발! 조... 좆 됐다!”
언제 사람이 튀어나왔단 말인가?
운전을 많이 해 보지 못한 만큼.
사고에 대한 대처 또한 무지하다.
초보에 가까운 주제에 너무 오만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조졌네! 으으으~”
심장이 벌렁 이고 운동장 백 바퀴를 돈 것만큼 숨이 거칠어진다.
머릿속이 멍하고 등으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설마 크게 다친 건 아니겠지?
차에 무언가가 부딪치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내 차가 좆나 비싸서 그런 충격 따위는 감지하지 못 했을 수도 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후다닥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괘... 괜찮아요?”
나의 애마 벤틀리 밑에 인어처럼 넘어져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이 보였다.
검은 단발에 반듯하게 자른 앞머리.
여성의 얼굴은 창백할 정도로 하얗게 질려 있다.
아니, 손이나 치마 밑으로 드러난 피부를 보자니 원래 이렇게 창백한가 싶기도 하다.
살짝 찌푸린 눈매는 전형적인 동양인처럼 무쌍의 눈임에도 양 옆으로 길어 묘한 매력을 뿜어냈다.
갸름한 얼굴과 붉은 입술을 살짝 깨문 여성의 모습은...
좆나 예쁘다.
잠시 여성의 모습에 넋이 빠졌던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흐윽...”
“호... 혹시 부딪혔나요?”
나는 차의 범퍼와 여성을 번갈아 가며 물었다.
내 차가 좆나 좋아서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차와의 충돌은 없었던 것 같다.
혹시... 이거... 좋은 차만 노린다는 그런 거 아냐?
“아니요... 흐으... 놀라서 넘어진 것뿐이에요.”
잠시 불순한 생각을 했던 것이 미안하게, 여성은 놀라서 넘어진 것이라 이야기했다.
이런! 양심적이고 예쁜 여자였군.
아무래도 내가 너무 앞질러 생각한 것 같다.
이런 예쁜 여자가 보험사기를 칠 리 없겠지.
이 여자는 그냥 길을 지나던 예쁘고 착한 여자임이 분명하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다리를 살펴본다.
‘괜찮은 것... 같은데...’
“움직일 수 있나요?”
내 물음에 힘겹게 움직여보던 여성.
“아앗... 저... 정말 죄송합니다. 멀쩡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아프네요.”
음... 그럴 수 있지.
부상이 꼭 겉으로 드러나지만은 않으니까.
더군다나 이런 예쁜 여자는 뼈가 약하기도 할 테니까.
“제가... 부축을 좀 해 드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차가 오는 것을 못 봐서... 괜히 민폐를 끼쳤네요.”
역시 예쁘면 성격도 이렇게 착한 건가?
나는 조심스럽게 여성의 팔을 잡아 부축해 주었다.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