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냥꾼.(99)
2. 사냥꾼.(99)
몰캉.
나는 그저 여성의 가녀린 팔뚝을 잡았을 뿐인데.
그녀의 위쪽은 보기보다 더 푸짐한 것인지 손등위로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살짝 당황한 나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어찌할까 고민하는데.
“길옆까지만 도와주시면 돼요.”
절뚝이며 살짝 눈을 찡그린 여성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눈썹과 작지만 반듯한 코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충분히 눈이 돌아갈 미인.
“바쁘실 텐데 가 보셔도 돼요.”
안쓰럽게만 들리는 여인의 음성에 괜히 심장이 콩딱콩딱 뛰었다.
어찌 보면 나도 생각에 빠져 한눈을 판 상황.
그런데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더욱 와 닿았다.
“정말 괜찮겠어요? 저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는데 병원이라도 한 번 가보죠.”
“전... 정말 괜찮아요.”
“아니면 집이 어딥니까? 근처까지라도 데려다줄게요.”
그 말에 당혹스러운 얼굴이 된 여성.
내가 너무 앞질러 갔나?
정체도 모를 남자에게 집을 노출시키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으니.
더군다나 이런 미인임에야...
세상은 험하고 무서운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험하고 무서운 것에 포함이 되지 않지만.
이를 알릴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아... 제가 한국에 살지 않아서...”
하지만 여성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의 말이었다.
외국인 이었던가?
“외국 분 이셨구나. 그런데 한국말을 엄청 잘하시네요? 관광오신 거예요?”
“그건... 아니고. 어머니 고향이 한국이긴 한데... 사시는 곳은 잘...”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고로 지금은 어디도 의지할 곳이 없다는 말.
대한민국 남자의 표본으로서 국위선양을 할 시간이다.
“그럼. 더욱 병원에 가 보셔야겠네요. 외국에서 아프면 그것만큼 서러운 것도 없어요.”
그녀는 이런 호의조차도 부담되는 듯,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너무 죄송해서...”
“같이 가시는 게 저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네... 그럼... 염치불구하고... 신세 좀 질게요.”
그나저나 한국말 오지게 잘한다.
아...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라고 했지.
나는 여성을 보조석으로 부축해 문을 열어 주고는 조심스럽게 앉혀준다.
어쩔 수 없이 이곳저곳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살짝 흠칫 거리는 것이 꽤 순진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운전석으로 돌아와 탑승을 하고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이름이 어떻게 돼요?”
“네? 이름이요?”
“저는 강인한 이라고 합니다. 정말 수상한 사람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믿음직한 미소도 한 번 날려주었다.
내 얼굴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지.
내가 웃을 때는 그 순박한 미소에 다들 뻑이 가곤 했으니 말이다.
여성 역시 조금은 경계를 놓은 모양.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전... 리엔... 이라고 해요.”
“리엔~ 예쁜 이름이네요.”
중국이름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 후로 이어지는 침묵.
이 상황이 어색한지 목덜미가 살짝 붉어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사고가 났다는 생각에 내 운을 저주했던 것이 조금 전인데, 아무래도 내 여자 운은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모양이다.
보면 볼수록 묘한 매력이 있는 여자다.
정신이 없어서 리엔의 정보를 확인하지 못했는데, 병원에 도착해 한 번 봐야겠다.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뚜렷하게 주시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렇게 동네의 정형외과를 찾아 도착하게 되었고.
나는 주차를 함과 동시에 후다닥 내려 그녀를 부축해 준다.
“고... 고마워요.”
그러곤 재빨리 그녀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정보와 함께 그녀의 성감대도 적나라하게 드러날 테지.
기대감에 바라보던 나는 순간 당황스럽게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니요. 어서 들어가 검사부터 받죠.”
큰 병원이 아니기에.
손님들은 동네 노인들이 전부인 것 같다.
그래도 사람이 많지 않아 오랜 시각은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외국의 신분이기에 보험이 되지 않아 가격이 꽤 나왔지만.
지금의 나는 부자다.
어색한 상태로 대기하던 와중, 리엔의 차례가 되었고.
의사의 요청으로 인해 엑스레이를 찍어 보기로 했다.
그런 그녀를 기다리며 조금 전 확인한 정보를 떠올린다.
리엔.
호감 : 57
신뢰 : 0
애정 : 0
여기까지야 별다를 것이 없다만.
우선적으로 성감대가 보이지 않는다.
나이를 표기할 때 슬쩍 본 결과 그녀의 나이는 23세.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한국 나이로는 25세다.
그런데 성감대가 없다는 것은.
저 나이 때까지 자위도 한 번도 안 해봤다는 소리인가?
이런 경우는 마마를 빼고 처음 접해보기에 조금 당황스럽다.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녀에게서 보이는 검은 아우라와 같은 현상은 뭘까?
겉모습은 변함이 없는 것을 보니 사람인 것은 확실한데...
거참 묘하게 울렁이는 느낌이었단 말이지.
‘이런 비슷한 걸 언제 한 번, 느껴봤던 것 같은데...?’
마마?
아니다.
마마는 그저 범접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검게 물들인 머리가 하얗게 탈색되어 보였었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즈음.
검사를 하고 나온 리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은 절뚝이는 모습에.
황급히 다가가 그녀를 부축한다.
“괜찮아요...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그런 리엔의 검은 눈동자와 시선이 얽힌다.
마치 영혼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검은 동공은 블랙홀처럼 끝없는 나락처럼 느껴진다.
“인한씨...?”
“아? 네... 하하... 일단 결과는 기다려 보죠.”
“고마워요.”
“뭘요. 혹시 한국은 어머니를 찾으러?”
“모르겠네요. 아마도 찾을 수 없을 거로 생각해요.”
“아...”
어둡게 가라앉는 그녀를 보며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냥 어머니의 고향이라도 보고 싶어 한국을 찾은 건가?
뭔가 비밀에 쌓인 여인처럼 보여 그것이 궁금해진다.
신비녀 컨셉인가?
내 눈빛을 읽었는지 리엔이 살짝 미소를 머금는다.
청초하게 핀 달빛아래의 꽃이 이러할까.
“그냥, 이루고 싶은 게 있어요.”
“한국에서요?”
“네.”
“아주 중요한 것인가 봐요?”
“후훗... 인한씨는 저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가 보네요?”
“네? 그... 그냥. 하하하...”
“맞아요. 아주 중요해요. 꼭 이루고 싶고, 이뤄야만 하는 거죠.”
주어가 빠진 말이다 보니까 말이 붕 뜨는 것만 같다.
그녀의 말은 진실이라 보이고 있었지만.
뭔가 답답함만 더해간다.
“리엔씨.”
간호사가 찾는 소리에 리엔을 부축하고 의사의 앞에 앉는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없고.
갑자기 넘어지면서 신경이 놀란 것 같다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며.
진통제를 처방해 준단다.
그렇게 병원을 나와 옆의 약국에서 약까지 사서 챙겨주고.
막상 헤어지려니 이상하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
이것도 인연이긴 한데...
“괜찮으면 식사 한 끼 대접해도 될까요?”
내가 고민했던 말을 꺼내주는 센스.
역시 인연이라는 것은 이렇게 수월하게 척척 진행이 되는구나 싶다.
“식사 좋죠. 그런데 그 말은 제가 먼저 꺼내려고 했는데.”
“네?”
“그냥 제가 식사까지 대접하는 걸로 하죠.”
“그건... 이렇게 도움주신 것도 고마운데. 밥은 제가 살게요.”
“누가사든 일단 먹으러 가요.”
“네...”
그녀를 차에 태우던 중 신고 있는 힐에 눈이 갔다.
그렇게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부상 입은 발에 좋지 않아 보였다.
“먹을 거 생각해 봐요. 한국에서 먹고 싶었던 거나... 뭐 그런 거. 잠시 어디 좀 들렸다 가게.”
그렇게 차를 움직여 도착한 곳은 한 스포츠 브랜드의 매장.
그곳에 차를 세우자 리엔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진다.
“발 사이즈 어떻게 돼요?”
“아... 설마. 전 괜찮은데.”
“어서요. 여기 오래 세워두면 벌금 내야 해요.”
“240사이즈...”
키에 비하면 아담한 편인가?
그렇게 매장으로 들어가 가장 편해 보이는 것으로 집어 들었다.
대충 계산을 마치고 나와 차에 올라타곤 리엔에게 신발을 건넨다.
“고마워요...”
얼굴에 홍조까지 띄우는 모습이 고백이라도 받은 것 같은 표정이다.
여자를 유혹하려면 사소한 것부터 신경을 써주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이 방면에서 나는 전문가와 같다.
“자~ 그럼. 먹을 것은 생각해 봤어요?”
“아니, 잘 몰라서...”
“음... 뭐든지 잘 먹어요?”
“네.”
“혹시 장어 좋아해요?”
“장어?”
“네. 민물장어. 모르면 인터넷 검색해 봐요.”
잠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리엔이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을 것 같아요. 먹어 본 기억이 있어요.”
물론, 장어는 내가 애용하는 음식이다.
그녀가 괜찮다고 하니 다행이다.
혹시 알아?
오늘 또 다른 역사를 만들게 될지.
그 전에 몸보신을 해 준다면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
그런데... 내일 일찍 나연누나 데리러 가야 하는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때,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병원에서 리엔에게 느껴지던 이상한 기분.
같은 현상은 아니었지만.
그 비슷한 기분을 분명히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성기형 회사 회식 자리에서였지?
나연누나를 바라보던 중 잠시 신비한 분위기에 물들었던 그때.
누나의 눈이 파랗게 빛난다는 착각을 했더랬다.
‘어쩌면 착각이 아니었을 수도...’
아마도 그때의 기분이 병원에서와 비슷했던 기억이었던 것 같다.
완전히 비슷하지는 않으면서도.
이상야릇한 기분이라는 것은 비슷한 면이 있었다.
‘도대체 그건 무슨 느낌이지?’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연지한테서도 비슷한 것이 느껴지던 것 같은데.
둘 다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리엔도 그냥 비슷한 거로 생각했다.
마마나 수지.
그리고 나로 인해 각성한 상연누나나, 나대명, 정욱아저씨는 확실한 존재감이 있다.
그들이 이제는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구분할 수 있기에.
초인이라는 자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런 느낌이 아닐까?
거기에 비해 나연누나나, 연지 그리고 리엔은 미미한 이상 기운일 뿐.
그냥 보통사람보다 기운이 좋은 건가 싶기도 하고.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