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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129화 (129/297)

2. 사냥꾼.(101)

2. 사냥꾼.(101)

처음에 조심스럽게 사냥꾼들을 보내 사내를 제거하려던 훈과 현.

그들은 계획을 실행하면서 점점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갔다.

살인이라는 것을 계획하며 예전에 느끼던 그 쾌감을 다시금 맛보게 되었던 것.

그러다 보니 일은 점차 크기를 불려갔다.

세상에는 많은 불가사의가 있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떠한 장소에서 헛것을 본다거나.

길을 잃고 해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그로부터 무사히 돌아온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한바탕 꿈을 꾼 것이라 여기거나.

주변인으로부터 반쯤 미친놈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겪었던 일은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

소수만이 아는 사실이지만, 세상에는 이면의경계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 경계너머는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 은연중 퍼져 있었다.

경계너머에서 또한, 현실로 넘어오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 인외의 존재들은 대부분 현실에 적응을 못 하고 척살 당한다.

물론, 넘어와서 적응을 하고 잘 살아가는 것들도 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며, 그곳에 발을 디디더라도 그저 지나칠 뿐이기에.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그곳에서 폭발이나 기운의 충돌 등이 발생하게 되면 경계면이 찢어져 안에 있는 잡것들이 터져 나오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훈과 현은 그 이면의 경계 중 한 곳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도 예민함이 극에 달하면 은연중 느끼기도 하는데.

왜 있지 않은가?

산길을 걷다 저도 모르게 오싹한 기운이 느껴진다거나, 괜히 조급해져 발걸음이 빨라지는 경우가.

더군다나 초인이라 일컬어지는 능력을 지닌 이 쌍둥이는, 그런 보통 사람들보다 더욱 예리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고, 이를 우연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다만, 위험한 기분에 호기심을 꾹꾹 눌러 담았을 뿐.

그러던 중 회사에 붙잡혀 사냥꾼 사이트의 운영자가 되었고.

그 기억은 차츰 잊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살인이라는 과거의 쾌감을 떠올리며 생각이 났다.

그리고 훈과 현의 계획은 점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

아무래도 좋았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거나 누군가에게서 피눈물이 흐르더라도.

리엔이 바라는 것은 그저 회사의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지는 것.

따라서 훈과 현이 일을 크게 벌일수록 그녀에게도 나쁠 것은 없었다.

그로 인해 회사의 일부가 드러나면 더없이 좋은 일.

그녀는 훈과 현의 계획을 들여다보며 강인한이라는 사내에게 접촉하기로 마음먹었다.

과연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내일지.

훈과 현이 조사한 것을 살펴본 바.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한계를 뛰어넘은 초인일지도 모르겠다.

자신과는 다른 축복받은 존재.

여전히 그런 이들을 보면 부러움과 질시가 일고는 한다.

그렇다고 자신이 할 일을 망각하지는 않았다.

유혹, 잠입, 암살은 그녀의 전문 분야다.

지금껏 회사의 요청에 수많은 일을 해 왔고.

단 한 번도 임무에 실패해 본 일도 없었다.

특히, 목표가 남자라면 더더욱 쉬운 일.

그 남자가 동성취향이 아니라면 그녀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진다.

그렇게 생각했건만...

예상대로 강인한은 그녀의 유혹에 뭇 사내들처럼 홀딱 넘어와 버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을 볼 때면 한 번씩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주시할 때면 자신의 내면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리엔의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절대로 거짓말하지 말라고.

스파이와 같은 처지에서 거짓말을 하지 말라니...

하지만 리엔은 그 말도 안 되는 감각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다수의 경험이 이를 실행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만큼 그녀의 촉은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했으니 말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그 경계가 참으로 모호하다.

하지만 리엔은 노련하게 뭉뚱그려 자신에 대한 사실을 강인한에게 흘렸다.

정체는 드러내지 않으며 적당히 지레짐작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그러다 보니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을 들여다보던 눈매는 언제부턴가 보통의 사내처럼 변한다.

‘훗... 당연한 건가?’

이렇게 홀라당 넘어온다면 이 사내는 오늘로써 생을 마감하게 될 거다.

하지만 살아남는다면 어느 정도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도 좋겠지.

기본적인 암살도 피하지 못한다면야 아무런 쓸모가 없다.

사내의 능력이 좋을수록 판은 더 커질 테니 말이다.

조금 안타깝다면 은연중 사내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너무 푸근하다는 것.

외모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미남까지는 아니지만, 다소 순해 보이는 얼굴은 절로 정감이 간다.

더군다나 사내가 보이던 호의는 진심까지 느껴지지 않던가.

‘풋... 운동화를 사다 줄 줄이야...’

뭔가 풋풋하면서도 간질간질한 감정이 들었다.

감정이라니...

“저랑 호텔에서 한 잔 더 하실래요?”

“네? 아니... 뭐라고?”

“싫으면 말고요.”

강인한이 당황하며 양손을 허공에 마구 저었다.

“아니! 절대 싫은 건 아니지. 그냥 리엔이 부담스러울까 봐 그랬어.”

“그럼, 일어나요. 생각보다 많이 마셨더니 조금 취하는 것 같아요.”

“그럴까? 호텔은 묶고 있는 곳 있어?”

“아니요. 근처 아무 곳이라도 좋아요.”

“그럼. 잠시만?”

후다닥 일어난 강인한이 재빠르게 카운터로 가 계산을 마쳤다.

그러고는 직원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직원의 야릇한 눈동자가 잠시 리엔을 향했지만,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도 근처 호텔에 대해 묻는 것이겠지.

“리엔. 근처에 괜찮은 곳이 있다네. 그런데 다리는 이제 괜찮아?”

강인한이 손을 뻗어 팔을 부축했다.

덕분에 그의 체향이 리엔의 코로 스며들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더욱 예민한 오감을 지니고 있기에.

그녀는 냄새에 민감한 편이었다.

하지만 강인한에게서 맡아지는 체향은 상당히 산뜻한 느낌을 준다.

팔을 부축하는 커다란 손과, 옆에선 모습은 굳건한 나무처럼 보였다.

“인한오빠, 손이 굉장히 커요.”

“내 손? 남자니까 그렇지.”

“그리고 편안해요.”

“.......”

흠칫.

말을 한 리엔 자신도 잠시 놀랐다.

순간 편하다는 생각을 해 버리다니.

처음부터 느끼던 것이지만,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더러운 기운이 정화되는 기분이랄까?

문제는 자기 의지와는 달리, 자꾸만 튀어나오려는 기운이다.

마치 천적을 만나기라도 했다는 듯.

이런 상황은 처음이기에 혼란스러운 마음이 일기도 한다.

더러운 기운이기에 정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일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리엔이 피식하고 웃었다.

“갑자기 왜 웃어?”

“그냥요.”

“잠깐 기다려줄래? 택시 좀 부를게.”

“아니에요. 그냥 좀 걸어요. 오빠랑 걷고 싶어요.”

“다리는 어쩌고?”

“장어 먹고 나올 때쯤부터 괜찮아 졌어요.”

“어어?”

“뭘 그런 눈으로 봐요. 누가 그렇게 챙겨 주는 건 오랜만이라 나도 모르게 즐겨 버렸네요.”

씁쓸한 미소의 리엔을 보며 강인한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마도 리엔은 보기완 달리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세상에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하며, 슥 하고 손을 올렸다.

흠칫.

강인한의 손이 정수리 위로 향하자 살짝 몸을 떠는 리엔.

덩달아 강인한도 아차 싶은 표정으로 손을 멈춘다.

“아~ 미안.”

“풋. 괜찮아요.”

리엔은 팔을 들어 그런 강인한의 손을 맞잡았다.

두툼하고 거친 사내의 손바닥이 느껴진다.

그렇게 강인한은 리엔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하염없이 걸었다.

풋풋한 데이트라도 하는 기분에 괜히 가슴이 간질거린다.

이 여자는 무슨 불행을 겪었던 걸까?

무저갱 같은 검은 눈동자 안에는 아련한 무언가가 있다.

너무도 아련해 모든 것을 빨아들여 버릴 것 같은.

그리고 그 색으로 한껏 물들여 버릴 것만 같다.

강인한이 정처 없이 리엔을 따를 때, 리엔은 교묘하게 은밀한 장소로 이동한다.

그녀에게 지리를 파악하는 것쯤은 세뇌당시에 지겹도록 한 교육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가 원하는 위치를 찾게 되었다.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그녀를 따르는 강인한.

“리엔. 어디까지 걷는 거야?”

그녀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인기척 없는 으슥한 곳에 당도했다.

‘길을 알고 가는 건가?’

불량청소년들이 밤에 모일 것 같은 으슥한 공원은 쥐 새끼 한 마리보이지 않는다.

서울에 이런 장소가 있다니.

공원의 뒤편으로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굴다리마저 있지 않은가?

리엔은 강인한을 이끌고 굴다리로 들어간다.

‘시바... 이거 무슨 상황이지? 밖에서 하자는 건가?’

그때, 리엔이 강인한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생각보다 강한 힘에 잠시 헛바람을 들이킨 그는, 턱 하고 등에 와 닿는 차가운 콘크리트를 느꼈다.

굴다리의 벽면에 등을 댄 상태가 된 강인한이 의문스러운 눈으로 리엔을 바라본다.

번뜩.

보수를 하지 않는 것인지, 90년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노란 가로등이 꺼져가는 생명을 붙잡고 껌뻑인다.

그리고 자신을 또렷하게 바라보는 리엔의 두 눈동자가 야릇함을 발산했다.

주변의 어둠과 리엔의 눈동자가 합쳐져 암흑을 만들어낸다.

“리엔? 훕!”

강인한이 리엔을 향해 입을 벌리는 동시에 그녀의 얼굴이 확 하고 다가들었다.

보드랍고 따뜻한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다.

리엔은 입을 마주치고 양손으로 강인한의 양손을 깍지를 꼈다.

벽에 밀쳐져 강제로 키스를 당하는 상황.

강인한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읍... 야... 야외에서 하고 싶었구나? 대담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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