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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131화 (131/297)

2. 사냥꾼.(103)

2. 사냥꾼.(103)

나를 진정으로 죽이려 하는 여인.

그런데도 죽이고 싶지 않았다 말하는 여인.

그 여인은 죽이고 싶지 않지만 나를 위해 죽여주겠다는 모순을 부리며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다.

‘살벌한데?’

독이 들어오고 당황했던 것도 잠시.

이물질이 들어오는 순간 단전에 똬리를 들고 있던 뇌기가 움직였다.

어떠한 독인지는 모르겠으나.

독 따위는 우습다는 듯 뇌기의 공격이 이어졌다.

몸 안에서 들썩이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리엔을 속이기 위해 고통을 연기했다.

몸이 들썩이는 것도 하나의 고통으로 인한 것처럼.

물론, 아예 고통이 없던 것은 아니다.

미친 듯이 매운 켑사이신을 들이킨 고통이라고 할까?

속이 활활 타오르는 기분이 들기는 했다.

당장이라도 입에서 불을 뿜을 것 같이 말이다.

으드득.

당장에 리엔을 제압해 주리를 틀어 버리고 싶었지만 애써 참아내었다.

처음과는 달리 그녀에게서 선명하게 보이는 어둠.

그 어둠의 실루엣은 그녀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대신, 궁금한 것들을 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이어진 대화.

낮의 자유로웠던 표정과는 달리 무표정을 고수하는 그녀.

그런 그녀의 얼굴이라도 작은 표정의 변화는 있다.

무언가를 생각할 때 움직이는 눈썹.

아무리 가면을 썼더라도 버릇을 고치기란 쉽지 않은 일.

확실히 그녀는 나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 것 같다.

어떤 교육을 받아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의 정보만을 주며 진실을 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리엔은 무조건 나를 죽이려 한다는 것도 알겠다.

빌어먹을 년.

생각지도 않았던 적들의 등장에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한다.

리엔의 말들을 종합해 본 결과, 사냥꾼 웹은 확실히 정의로운 곳은 아니었다.

또한, 그 사이트조차도 어떠한 곳에 소속된 것이라는 것.

모종의 실험을 행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개돼지만도 보지 않는다는 것.

눈앞의 리엔 또한 살인이라는 것에 상당히 익숙해 보인다.

보통 사람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 감정이 결여된 것 같은 느낌.

피를 토해내며 독으로 추정되는 것을 모두 뱉어내고는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그랬군... 만약에 내가 독에 당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려고 했지?”

“휴우... 왜 그런 것이 궁금한지 모르겠군... 독이 아니더라도 나는 너를 죽이려고 했을 거야. 나에게 당할 정도면 너는 결국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까.”

그렇군.

결국은 죽이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도 그냥 당할 수만은 없지.

제압한다.

“후우... 그래. 이야기는 잘 들었다. 리엔. 이름은 본명이 맞아?”

“그냥 그렇게 불리어 왔으니 리엔일 뿐이다.”

나는 고개를 번쩍 들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리엔의 무표정한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렸다.

“어... 어떻게?”

파직. 파지직.

나는 양손에 뇌전을 튀겨 대며 리엔을 향해 이죽거렸다.

“크크큭. 그냥 잘~”

해독했어.

뒷말은 그저 속으로 삼키며 그대로 리엔을 향해 손을 뻗어냈다.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내밀어진 손이 리엔의 목덜미를 향했다.

스스슥.

“어엇?”

당연히 손아귀에 잡힐 것이라 생각했거늘.

내가 움켜쥐는 순간 연기처럼 흩어지며 리엔의 모습이 사라진다.

그러곤 어느새 내 옆으로 돌아가 손날로 목을 내리치고 있다.

“으흡!”

눈으로 인식하기도 전 당도한 리엔의 손날을 초인적인 감각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러자 이어서 턱을 노리고 나이프가 솟아오른다.

따끔.

날카로운 날붙이가 턱을 스치며 지나가고.

몇 개의 핏방울이 방울져 흩어지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젖힌 그 상태로 뒤로 백덤블링을 하며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빠르군.”

어느새 안정을 찾은 것인지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온 리엔이 중얼거린다.

“턱 쪼개질 뻔했잖아!”

“흥! 그러라고 휘두른 거다.”

“냉정한 년.”

그 말에 리엔의 눈썹이 한 차례 움찔거렸다.

냉정한 년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그런 리엔에게 더욱 험악하게 욕설을 퍼부어 준다.

“매정한 년! 정 없는 년! 개 같은 년!”

입술 끝이 움찔거리는 것을 보니 애써 욕설을 참아내는 모양이다.

보통 사람이 본다면 그저 한 표정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겠지만.

내 시력은 그녀의 미세한 얼굴근육의 움직임을 전부 포착하고 있었다.

휘이익.

리엔은 별다른 말없이 날다람쥐처럼 날아든다.

그녀의 손과 나이프가 정신없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허공을 지날 때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등줄기를 차갑게 만든다.

쉬이익. 팡.

쉬이익. 팡.

나 또한 리엔의 공격을 피해내며 어김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파밧. 팟. 팟.

뇌전이 이리저리 튀며 굴다리 안을 비춰댔다.

“에라이 예쁜 년아! 죽일 거면 한 번 대주기라도 하던가!”

움찔.

그 말에는 확실한 반응을 보이듯 몸이 잠시 움찔거린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허점.

나이프를 휘두르고 비어 버린 옆구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리엔의 가녀린 옆구리를 향해 힘껏 주먹을 찔러 넣었다.

뻐걱.

제대로 들어갔다.

쪼개지는 갈비뼈의 느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흡!”

그 충격에 리엔의 발이 공중으로 한 치 정도 짧게 떠오른다.

상당한 충격이 있었을 터인데 이를 악문 그녀의 몸이 휘리릭 하고 회전했다.

그러곤 연기처럼 사라지듯 멀찍이 물러난다.

옆구리를 그렇게 강하게 쳐 맞았으면 비명이라도 지를 법한데, 그녀의 입에선 헛바람을 내뱉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나였으면 그렇게 참지는 못 했을 거다.

아마도 전문적인 훈련이라도 받은 걸까?

“미... 친... 놈...”

칠흑 같은 검은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바라보는 리엔의 눈빛.

옆구리를 쳐 맞아 한을 품은 여인의 눈빛은 실로 무섭구나.

나는 오싹한 한기를 느끼며 여유로운 척 몸을 풀었다.

“그거 알아?”

리엔이 험악한 눈으로 바라본다.

“나 태어나서 여자 처음으로 때려 봐.”

“.......”

“완전히 개 같은 년이 있었는데, 그 년도 주먹으로 때리진 않았거든.”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첫 경험을 겪게 해 줘서 고맙다고. 앞으로 개 같은 년들은 거리낌 없이 팰 수 있을 것 같거든.”

“독을 마시고 미치기라도 한 거야?”

“그럼, 정상이겠냐? 좋은 일 하고 뒈질 뻔했는데?”

“.......”

“왜 말이 없어? 찔리기는 하나 보지?”

나는 리엔의 말을 들으며 진실을 알아보고 싶었지만 그녀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타악. 타악.

그러던 그녀가 발을 디디며 몸을 뒤로 빼 내었다.

멀찍이 물러난 리엔의 눈동자가 내 얼굴을 주시했다.

그녀를 따라잡으려던 나는 리엔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몸이 멈춰버렸다.

지금 따라붙는다면 정말로 생사결을 나누겠다는 다짐이 보인다.

“너 정도면 충분히 변수를 만들어 낼 것 같아.”

“변수?”

“악착같이 살아남아 그놈들을 괴롭혀주길 바래. 몰론, 네가 잘못되어 끔찍한 고통을 받게 되더라도 날 원망하지는 말아.”

“원래 산 사람은 알아서 잘 살아가는 법이야. 그놈들이 어떤 놈들이던 간에 날 노린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를 거다.

그리고 리엔! 오늘의 보답을 위해 나를 죽이겠다고 했었나? 네가 뭔데 한 사람의 생명을 마음대로 손에 쥐고 판단하려는 거지?

왜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네 멋대로 판단하느냐는 말이야! 네 손에 죽는 것이 오히려 행운이라고? 네가 내 미래를 봤어? 설령 네가 신적인 능력이 있어서 미래를 알고 있어도, 네가 알기에 그 미래는 이미 바뀐 거야. 사람은 스스로 자기 미래를 개척해나갈 자유가 있어. 그 사람의 미래가 빤히 보이더라도 네가 그것에 관여할 자격 따윈 없다고!”

“네가 아직 그들을 몰라서 그래.”

“아무리 그래도 네가 오늘 하려던 것은 그저 살인에 불과해.”

사냥꾼들과 김동운을 죽이고.

정은식과 그 마누라를 죽이려던 내가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리엔은 나 이상으로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겠지.

하지만 그런데도 불과하고 이상하게 리엔에게 분노가 들지 않는다.

마치 민감하게 발톱을 세운 상처 입은 고양이처럼 처량하기 그지없다.

물론, 저 죽여주는 외모가 한몫했는지도 모르겠다.

“주제넘은 소리. 마치 넌 결백한 것처럼 말하는군.”

나는 그런 리엔을 향해 어깨를 으쓱여 보인다.

“뭐~ 알아서 생각하라고. 그런데 지금 모습이 마치 달아날 것 같은 모습인데? 날 죽이는 것은 포기한 거야?”

“흥! 네가 직접 느껴보는 것도 좋겠지.”

“이야~ 이거 좀 아쉬운데. 아까 키스는 정말이지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말이야.”

리엔의 얼굴이 애매모호하게 변한다.

마치 쓰고 있던 가면에 금이라도 간 모습이다.

“미친놈...”

“그럼. 이 미친놈하고 하던 거는 마저 하고 가던가.”

리엔의 얼굴이 살짝 붉게 달아오른다.

그것을 느꼈는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모습.

의외의 귀여움에 나도 모르게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다시는 볼일이 없었으면 좋겠네.”

“어어? 진짜 가게? 내가 네 이름을 발설하면 어떻게 하려고?”

리엔의 얼굴이 순간 울그락붉으락 붉게 물든다.

그러곤 빽 하고 소리를 지르곤.

“맘대로 해!”

몸을 돌려 몸을 날린다.

그 모습이 정말로 야생의 고양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그녀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허... 참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나이프에 기스 난 턱을 더듬거리며 나는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쌍둥이 싸이코패스라... 어떤 새끼들이야?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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