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냥꾼.(105)
2. 사냥꾼.(105)
보기만 해도 영롱한 벤틀리의 시동을 켠다.
시동을 켜고 있는 지금도 이 차가 내 것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강남역 4번 출구라고 했나?’
주차장을 빠져나와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가는 도중 스타박스에 들려 따뜻한 커피도 두 잔을 주문한다.
다시방 위에 커피 두 개를 꽂아 놓고, 정성스레(?) 만든 토스트도 얹어 놓았다.
‘나 제법이잖아?’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도착한 강남역 4번 출구.
손목에 착용한 롤x스의 시간을 확인한다.
7시 20분.
완벽하다.
그런데... 내가 먼저 도착하려 했거늘.
나연누나는 벌써 캐리어를 들고 서 있었다.
푸른색의 하늘하늘한 긴 치마와 흰색의 카디건을 걸쳤다.
‘커플 카디건~ 히히~’
어깨에는 작은 핸드백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쭉 뻗은 체형과 다소 묵직해 보이는 볼륨은 가려지지 않는다.
조금은 이른 시간임에도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길을 끄는 모습.
대학생이라 생각될 만큼 풋풋해 보이면서도 함부로 다가가기 어려운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존나... 예뻐!’
미리 나올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서두르는 건데.
보통 여자들은 일부러 늦고 그러지 않나?
어찌 되었든 늦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그녀의 앞에 차를 정차했다.
도어를 열고 나가 나연누나에게 손을 흔든다.
“여어~ 누나~”
고급 차가 정차하며 아는 척을 하자 느린 걸음으로 걷던 이들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재빨리 지나간다.
그 모습에 괜히 내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다.
포식자들 사이에서 홀로 당당히 승리한 느낌.
“어. 인한아.”
새하얀 얼굴에 머리를 묶어 올려 고정시킨 그녀.
아침 햇볕을 받아 드러나는 가녀린 목덜미.
살짝 미소를 품은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청초해 보였다.
나는 빠르게 그녀의 곁에 다가가 캐리어를 받아 든다.
“오래 기다렸어?”
“아니, 나도 이제 나왔어. 이게 샀다는 그 차야?”
“응. 히히히~”
“이거 비싼 차 아냐?”
“비싸지.”
“로또라도 맞았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 오는 그녀.
아무래도 보통 여자들과는 달리 차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이다.
“로또?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나?”
그 말에 나연누나가 쌍심지를 켜고 말한다.
“야! 그렇다고 이 비싼 차를 사? 너 정신이 있는 거니? 로또가 당첨 되었으면 잘 모아두었다가 미래에 투자해야지! 넌 로또 당첨된 사람들이 왜 전부 망하는지 아는 거니?”
얼굴까지 붉어져 잔소리하는 모습이 꼭 마누라 같다.
그것이 싫지는 않아 능글맞게 웃으며 나연누나의 손을 이끌며 말했다.
“진정해~ 기분 좋은 날 왜 그래~”
“왜 그러긴! 후우... 이 차 유지비가 얼마나 나가는지는 알고 산거야? 너 일이년만 살고 말거니?”
“자자~ 진정하시고~ 마누라님~ 여기 계속 있으면 딱지끊어요~ 일단 차에서 이야기합시다~”
“뭐어?”
마누라라 한 것에 딴지를 걸기 전에 빠르게 조수석 도어를 열어 나연누나를 밀어 넣었다.
그러곤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는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자~ 그럼 출발~ 히히히~”
히히 낙낙 하는 나를 보며 나연누나의 어이없다는 눈빛이 느껴진다.
그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
“모르겠다.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하겠지.”
누나가 이렇게나 내 걱정이 많았던가?
철벽녀의 끝판왕에게 이런 관심을 받는 것이 마냥 좋았다.
신호에 걸려 정차하게 되며 나연누나의 정보를 확인해 본다.
김나연.
호감 : 85
신뢰 : 65
애정 : 70
그와 함께 보이는 푸른 아우라?
그녀의 정보를 확인한 순간 화들짝 놀라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말았다.
“강인한! 앞에!”
“어어!”
재빨리 브레이크를 다시 밟고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달랬다.
출발부터 조질 뻔했다.
자동 뭐시기가 있다는 것 같은데.
아직은 제대로 기능을 사용할 줄 모른다.
“조심 좀 해. 너 운전 얼마나 했어?”
여자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으... 자존심상해.’
잘하던 못하던 남자의 운전에 대한 부심은 누구나 있다고 본다.
시작부터 이런 어설픈 모습을 보이다니.
“미... 미안. 잠깐 다른 생각 좀 하느라고.”
그나저나 이 정도면 당장에라도 일을 벌여도 되는 거 아닌가?
언제 이렇게나 나에 대한 호감이 늘어났을까?
그전에는 색으로만 보였기에 수치를 알 수 없으나.
분명히 이 정도라면 분홍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뿐만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푸른 아우라는 내가 놀라기에 충분했다.
“내가 운전할까?”
그때 들려오는 자존심을 뭉개는 한 마디.
“하하하... 진짜 잠깐 다른 생각해서 그래. 나 운전 많이 했어. 면허 딴 게 언젠데~”
“그래? 그런데 난 네가 운전하는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그 말에 찔끔하기는 했지만.
“에이~ 누나랑 나랑 어디 간 적도 없잖아. 중간중간 자주 했어.”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그 말과는 달리.
내 손은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마터면 내 사랑하는 애마를 조질 뻔했다는 생각에 아직도 심장이 쿵쿵 울린다.
“알았어. 그나저나 정말 로또 당첨 된 거야?”
나연누나는 내가 이런 차를 몬다는 것이 꽤 궁금한 모양이다.
로또 당첨된 부자라는 것에 관심이 든 것일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돈 많은 짐승 놈들이 그녀에게 치근덕거리던 것이 얼마던가.
“로또는 아니고. 뭐... 비슷하기는 하지. 그... 그래. 회사를 물려받게 되어서. 회사에서 품위유지로 뽑으라고 하더라.”
“회~사~? 네가? 갑자기?”
내 주면사람들은 대략적이 내 상황에 대해 알고 있다.
나연누나 역시 내가 고아라는 것을 알기에.
“응. 자세한 설명은 좀 어렵고. 그렇게 됐어. 내가 스스로 이런 차를 살 거라고 생각해?”
나연누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도 내가 얼마나 짠돌이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
“아니지. 네가 그렇게 담이 크지는 않지.”
“읔! 담이랑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어찌 되었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니 그냥저냥 수긍은 한 것 같다.
그나저나 푸른 아우라라니.
그전에는 눈동자만 푸르게 보였던 것 같은데.
검은 그림자가 비치던 리엔.
결국, 그녀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혹시... 아우라가 보이는 사람들이 초인이 아닐까?
‘나 초인이다.’ 라며 자신을 소개한 사람은 본 적이 없기에.
그저 그렇지 않을까 짐작을 해 본다.
꽤 오래 알아왔지만 상당히 당혹스럽기는 하다.
어쩌면 나연누나가 초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다.
“아침 안 먹었지?”
“응.”
“그 위에 도시락 통 보이지? 그거 열어 봐.”
나연누나가 다시방 위의 도시락 통을 들어 열어본다.
“와~ 토스트? 네가 한 거야?”
“내꺼 만드는 김에 혹시나 해서 누나 것도 만들었어. 거기 커피랑 같이 먹어.”
“오~ 우리 인한이 센스가 좀 있네?”
“내가 좀 그렇지?”
“풋 귀엽긴~”
“귀엽다고? 난 남자다운데?”
“남자는 무슨.”
그렇게 말하곤 냅킨에 토스트를 싸서 나에게 건넨다.
확실히 예전하고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때도 다른 이들에 비해 친분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달달한 기분은 느끼지 못했다.
“오오~ 땡큐. 마누라~”
“쪼끄만 게~ 까분다?”
“뭐라는 거야? 내가 어딜 봐서 쪼끔 해? 난 뭐든지 다 큰데?”
그러면서 엉덩이를 들썩거리자 나연누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 무슨 더러운 짓이야?”
“엥? 뭐가 더러운데?”
“드... 들썩 거렸잖아?”
“무슨 생각한 거야? 자리가 불편해서 그런 건데?”
“너... 진짜~ 운전하고 있어서 봐 준다.”
“크크큭~ 그럼, 앞으로 누나 옆에 자주 태워줘야겠다.”
그렇게 차는 서울을 벋어나 경기도로 진입했다.
막 의정부를 지나치고 있을 즈음.
성기형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디쯤이냐?-
“막 의정부 지났어.”
-우리는 가면서 장보고 갈 거거든? 아무래도 점심은 둘이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는 모양이다.
나야 단둘이 있는 것이 더욱 좋았기에 당연히 수긍했다.
“누나, 점심은 우리 둘이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어디서 먹을까?”
“그쪽 근처에 가면 많지 않겠어?”
“거기 완전히 시골이라던데.”
“내가 한 번 검색해 볼게.”
“오키~”
그렇게 우리는 느긋하게 목적지를 향해 갔다.
아무래도 성기형과 다른 이들은 점심이 한참 지나야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가는 길에 이곳저곳을 들리며 연인처럼 데이트(?)를 즐겼고.
나는 지금까지 나연누나를 알아 온 시간 중에서 가장 밝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갇혀 있던 새가 자유를 찾아 날아오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언제나 자신의 내면을 꽁꽁 숨기듯 행동했던 그녀.
지금의 저 표정이 나연누나의 진짜 표정이 아닐까?
그녀는 어떠한 삶을 사는 걸까?
은연중 느끼는 것이지만.
나연누나의 배경이 평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고고함이 있었다.
나와 같은 하층민은 가질 수 없는 그런 것.
언제나 느끼던 것이지만.
참으로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오늘은 많은 것을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진실 된 내면을 어느 정도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푸른 하늘 아래 푸른 오오라를 뿜어내며 나연누나가 손짓했다.
“야! 강인한~ 사진 찍어 봐!”
씨익 웃어 보이며 선사박물관의 입구에 서서 브이자를 그리고 있는 모습.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한참이나 넋을 놓고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정신을 일깨우는 음성이 들려온다.
“뭐 해! 빨리 찍어!”
“어? 어. 알았어!”
나는 밝은 미소의 청초한 그녀를 내 휴대폰에 가득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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