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냥꾼.(107)
2. 사냥꾼.(107)
남자들이 천막을 들고 헤매는 동안 여자들은 이미 준비를 마쳤다.
고기나 술 음료 등은 모든 준비가 완료된 후 꺼내는 것이 좋기에 냉장고에 넣어 놓은 상태.
“야 거기 좀 잡아 봐.”
“이렇게?”
“너 처음 해 보냐? 인한이처럼 잡아서 당기라고.”
“아아~”
성기형이 가져온 천막은 엄청나게 큰 천막이었다.
높이가 높아야 안에서 고기를 구울 수 있다나 뭐라나.
어찌 되었든 우여곡절 끝에 천막을 완성할 수 있었고.
두 인간이 하는 것을 보니 숯불은 내가 피우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둘 다 야생에서 놀 것처럼 생긴 것에 반해 할 줄 아는 것이 너무 없다.
“불은 내가 피울게.”
대형 그릴 안에 숯을 넣고 토치를 준비했다.
숯은 벌겋게 변할 때까지 충분히 불을 붙여주어야 그을음이 나지 않는다.
그때 우리 곁으로 다가온 이은지가 성기형에게 말했다.
“성기씨. 잠시 차키 좀 주세요. 읍내 좀 다녀올게요.”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차가 커서 힘들 텐데. 제가 다녀올게요. 뭐 사다 드려요?”
성기형의 말에 이은지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답했다.
“그게... 그... 챙기지 못 한 것이 있어서...”
머뭇거리는 이은지를 보며 성기형은 눈치도 없이 재차 물었다.
“그...? 그게 뭔데요?”
이를 본 의찬형이 혀를 차며 성기형을 나무랐다.
“쯧쯧~ 눈치가 없냐. 얼른 키 드려.”
“어...어? 내가 뭘?”
성기형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 차 키를 건넸다.
“그럼... 다녀올게요.”
“네? 네...”
이은지가 차로 향하고 의찬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 임마. 딱 봐도 말하기 곤란해 보이잖냐.”
“아니 뭘, 말하기 곤란 한 게 뭐 있다고.”
“쯧쯧. 눈치 없긴. 그러니까 네가 항상 실패하는 거야. 그날인데 그걸 못 챙겨 왔다는 거 아니겠냐~”
“그날? 아... 다른 여자들 챙겨 온 거 없나...?”
“민감한 여자들은 쓰던 것밖에 못 쓴다더라~”
“진짜? 그런데 형이 그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내가 너처럼 숫총각인 줄 아냐?”
그 말에 성기형의 얼굴이 잔뜩 붉어진다.
믿어지지 않게도 성기형은 지금까지 숫총각이다.
나는 숯을 뒤적거리며 그 모습을 보고 낄낄 거렸다.
***
함께 준비를 마치고 2층 방으로 올라온 김나연.
창을 통해 티격 거리며 떠들고 있는 남자들을 내려다봤다.
그녀의 눈은 그중에서도 강인한에게 고정되어 있다.
“즐거운가 보네.”
연신 웃으면서 숯을 피우고 있는 모습.
언제부턴가 그를 보면 즐거운 기분이 들다가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결정적인 계기가 언제였을까?
아마도 병실에 나타났던 여자를 본 이후부터 더욱 심해졌던 것 같다.
그저 조금은 친한 동생이라 여겼거늘 언제 마음속에 이리도 크게 차지하게 되었는지.
자신은 정해진 혼처가 있기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단단한 자물쇠로 마음을 잠가놓았다 생각했는데.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닌가 보다.
오늘 하루는 정말이지 꿈이라 생각해도 좋을 만큼 즐거웠다.
가족 여행을 빼고는 어딘가로 떠나 본 적이 없기에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강인한과 둘이 오기까지의 그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둘 만의 시간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그의 모습도 좋았다.
마치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듯.
“미... 미쳤어...”
아무도 없건만 얼굴을 잔뜩 붉히며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강인한은 그저 조금은 친한 동생일 뿐이다.
동생으로서 그저 친구로서 생각해야 할 존재.
내년이면 결혼 할 여자가 어찌 이런 생각한단 말인가.
“후우...”
어느 정도 열기가 식자 김나연은 한숨을 포옥하고 내쉬었다.
지인들과의 여행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오게 되면서 너무 감성적으로 변한 모양이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자물쇠가 헐렁해진 모양.
그녀는 다시금 모질게 마음을 먹는다.
“하아... 짜증 나...”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더욱 심란해졌다.
병실에서의 여성이 떠오르며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자리 잡는다.
강인한이 그동안 몇몇 여자를 만났던 것은 알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 골빈 것들과 헤어질 때 통쾌했던 것 같기도 하다.
재력을 따라다니는 한심한 것들.
괜찮다 싶으면 이리저리 들쑤시는 천박한 것들이기에.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병실에서 마주친 그 여자는 확실히 달라 보였다.
여자인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나 예쁜 외모.
자연적으로 풍기는 모자람 없는 삶이 보이는 듯 했다.
더군다나 그녀의 눈에는 강인한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길을 따라가 강인한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 또한 그녀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그런 강인한의 눈빛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있었다...
단 한 사람...
이 전에는 알 수 없었지만.
그날을 기점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눈빛은 항상 자신을 향해 있었던 눈빛이었다는 것을.
‘그 건 내 것이었는데...’
짜증이 솟구친다.
그 눈빛은 오로지 자기 것이었기에.
화가 났다.
앞으로는 그 눈빛을 받을 수 없을 것이기에.
비참 했다.
그 여인처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에.
질투가 난다.
마치 내 것을 남에게 빼앗긴 것처럼.
화아악.
순간 김나연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질투...?’
그랬다.
지금 김나연은 병실에서의 그 여자에게 질투를 하고 있었다.
“정말로... 내가...?”
믿을 수 없지만...
오늘 하루 짧은 시간을 보내며 확신하게 되었다.
자신은 강인한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자 그녀의 가슴에 회오리 같은 파문이 일어났다.
지금까지완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파도가.
모든 것을 인지하고 나자 당장에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강인한은 이미 만나는 여자가 있었고, 자신은 결혼할 내정자가 있다.
여기서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마음은 다잡을 길이 없다.
이미 인지하는 순간.
마치 고여 있던 둑이라도 터진 듯 마음을 마구 휘저었다.
‘정신 차려. 김나연!’
고개를 돌려 시선에서 강인한을 쫓아낸 그녀는 모질게 마음을 먹었다.
자신이 흔들리면 둘 다 불행해지고 말 것이다.
오늘 그의 행동으로 알겠고.
지금 그녀의 마음으로 확신했다.
이 마음을 절대로 들켜선 안 된다는 것을.
***
숲길의 중간에 차를 세운 이은지.
승합차에서 내려 길 없는 숲길을 내달렸다.
길이 없음에도 거침없이 나가는 모습.
그녀는 이리저리 뻗은 나뭇가지들을 고양이처럼 빠져나가며 어딘가로 향했다.
그 움직임이 보통의 여자라고는 생각하지 못 할 만큼 민첩하다.
내달리던 그녀의 눈에 일단의 인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세 명의 사내들은 마치 군인처럼 무장을 갖춘 채 다가온 그녀를 응시했다.
군화에, 대검, 홀스터에는 총까지 착용하고 있다.
“늦었잖아.”
그중 스포츠머리의 각진 얼굴 사내가 입을 열었다.
“미안 해. 마트에서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어.”
“맛있는 건 많이 샀어?”
그 옆의 호리호리한 남성이 물었다.
“한우로 듬뿍.”
“키키킥~ 일마치고 제대로 즐길 수 있겠네.”
키가 작고 짱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사내가 킥킥 거렸다.
그곳에 있는 여자만 셋.
각자 한 명씩 붙잡고 만찬을 즐길 생각에 기분이 좋은 듯했다.
이에 이은지가 사내를 날카롭게 쏘아본다.
“왜? 살려만 놓으면 되는 거 아냐?”
“두당 2억이라는 거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일벌이다 죽으면 네 몫에서 깔 테니까.”
일반인들은 2억.
목표물은 5억의 미션이다.
“누가 보며 네가 대장인 줄 알겠네~”
“흥! 아무튼 당신들 전부 명심했으면 좋겠어.”
“깐깐하긴~ 그런데 숫자가 너무 줄었잖아. 일이나 제대로 하고 말하지 그래?”
원래의 인원은 최소 열을 상정했더랬다.
그 것이 여섯으로 줄어버린 것이다.
무려 8억이란 돈이 증발해 버린 셈.
“지랄하네. 나 없었으면 이렇게 쉽게 유인하지도 못했어!”
“그러면 더 확실히 했어야 하는 거 아냐? 두당 2억인데?”
둘의 말싸움이 조금씩 과격해지자 스포츠머리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만!”
이에 둘 다 살벌한 눈빛만을 유지한 채 입을 다문다.
“함께하는 이상 같은 팀이다. 불화는 용납하지 않는다.”
“치잇.”
“흥!”
“실행시각은 10시. 목표물은 어떤 것 같나?”
스포츠머리 사내의 물음에 이은지는 강인한에 대해 떠올려다본다.
사냥꾼이라는 말은 듣기는 했지만.
업계에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
한 번씩 예사롭지 않은 눈빛을 제외하곤.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을 꿰뚫어보듯 다가드는 그 눈빛이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알려지지 않은 사냥꾼.
수년에서 많게는 10년 가까이 사냥꾼으로 살아남은 이 멤버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신체 능력은 좋아 보여. 뭐, 이 멤버면 충분하고도 넘치지.”
“알겠다. 그럼 이만 돌아가 봐라.”
그의 말에 이은지는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사냥꾼 웹 운영자의 특별 미션.
많지는 않지만 더러운 일을 해 주는 조건으로 간간이 몫 돈을 받아왔다.
이런 일은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꿀 미션이다.
사냥꾼 한 명과, 일반인의 생포.
생포 후, 그들이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을 배불려 줄 먹잇감일 뿐.
그 대상이 요괴나 마물에서 인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어차피 살아 숨 쉬는 것은 같지 않은가?
오랜 사냥꾼 생활로 감정 또한 점점 메말라 갔다.
아마도 그들은 오늘 이후 수많은 실종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다.
언제나 그러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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