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냥꾼.(108)
2. 사냥꾼.(108)
숲은 도심보다 해가 빨리 저문다.
아직 5시밖에 되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짙어져가는 어둠 속에서 천막 안의 랜턴이 주변을 밝혔다.
치이익. 치이이익.
믿을 수 없는 남정네 둘을 제쳐놓고 집게를 잡은 것은 나였다.
고기를 얼마나 먹으려고 이렇게나 많이 사왔는지.
워낙에 많은 양에 사분의 일만 내어 왔음에도 충분히 먹고도 남을 양이다.
우선 돼지고기보다 소고기를 먼저 구웠다.
기름기가 많은 돼지고기를 먼저 먹으면 소고기가 퍽퍽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노릇하게 익어가는 소고기를 보며 양파와, 파, 버섯등도 위에 올린다.
기다림의 미학을 모르는 성기형의 주둥이가 나불거렸다.
“여어~ 빨리 빨리 구우라고~”
옹기종기 모여 입을 벌리고 있는 아기새들처럼 나에게 집중된 시선사격.
소고기를 먼저 굽는 또 하나의 이유.
이렇게 보채는 이들에게 빠른 배달을 하기 위해서이다.
“자~ 접시 가져와~”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성기형이 접시를 냉큼 대령하고.
그 위로 적당히 구워진 고기들을 얹어준다.
“와~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역시 고기는 인한이가 잘 구워~”
나는 중얼거리며 소고기를 날름 입에 넣는 의찬형에게 말한다.
“내가 구워주는 고기 언제 먹어봤다고 그래?”
“언제긴~ 회식할 때 네가 굽잖아~”
“아... 그런가?”
이렇게 단체로 놀러 온 적은 없어도.
성기형은 회식을 자주 주선하는 편이긴 하다.
초창기와는 다르게 반이 참석하면 많이 참석하는 거긴 하지만.
의찬형의 말대로 회식자리에서도 도구를 드는 것은 나였던 것 같다.
“자~ 굽는 사람 한 잔 받으시고~ 그런데 어떻게 줄까? 말아 줘?”
“응. 말아 줘.”
“한 잔씩들 합시다. 모두 잔 드세요~”
성기형이 잔을 들어 외치자 각자의 잔들을 들어 보인다.
의미가 좀 퇴색된 것 같기는 하지만, 엄연히 오늘은 내 송별여행이다.
내 목적이야 그저 나연누나와 여행한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이렇게들 함께 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인한아! 그 동안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그럼~ 오늘까지 함께 해 준 인한이를 위하여 건배~”
“건배~”
“건배~”
“오빠 자주 놀러오세요~”
“그동안 수고 많았다~”
술을 거부할 줄 알았던 나연누나도 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며 씨익하고 웃어주자 슬쩍 고개를 돌리는 모습.
‘왜 저래?’
낮까지는 사이가 꽤 좋았는데 갑자기 시선을 피해 버리지 뻘쭘하기 그지없다.
“오빠! 그런데 왜 일 그만두는 거예요? 혹시 로또 맞음? 차도 완전 좋던데? 저 차는 얼마짜리 에요?”
그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남자인 성기형과 의찬형도 궁금한 듯 눈을 빛내며 바라본다.
이 두 사람이 여태 차에 대하 묻지 않은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남자라면 으레 차에 대한 로망이 있기 마련이니.
“로또는 무슨~ 이번에 들어 간 회사에서 해 준거야.”
“회사? 뭐지뭐지? 혹시 오빠 알고 보니 금수저. 이런 거 아니에요?”
“아니야~ 무슨.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칫~ 말해주기 싫으면 말고요~”
성기형과 의찬형의 눈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뀐다.
참지 못한 의찬형이 결국 입을 열었다.
“야~ 강인한~ 솔직히 말해. 정말 로또 아니야? 무슨 회사에서 수 억짜리 차를 해 주냐? 우리가 뭐 사달라고 할까봐 숨기는 거지!?”
그 말에 놀란 여직원들이 호들갑을 추가한다.
“며... 몇 억?”
“차가 그렇게 비싸?”
“아니라니까~ 정말 회사에서 뽑아 준 거야. 어쩌다보니 회사 대표가 돼서...”
“대표? 뭐야~ 진짜 신비주의에요?”
내 말에 성기형의 눈이 진중하게 변한다.
조금은 걱정이 담긴 눈초리.
갑자기 회사 대표니 뭐니 하는 게 의문이 들 수밖에 없겠지.
“너... 이상한 것에 휘말리고 그런 거 아니지? 떳떳한 일 맞지?”
아마도 안 좋은 것에 내가 발을 들였을까 먼저 묻지 못했던 모양이다.
“형은!? 나를 몰라? 내가 이상한 짓 하고 다닐 사람이야?”
갑자기 심각해지는 분위기를 보며 성기형이 애써 웃어 보인다.
“그래. 네가 안 좋은 일 할 턱이 없지. 대신 나중에 꼭 말 해 줘야 한다?”
“으휴~ 알았어~”
“크크큭~ 그래 엉아가 한 잔 따라주마.”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성기형이 술잔을 채워준다.
다른 사람들도 이를 배려해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성기형한테는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기에.
조만간 이야기를 각색해서 해 주기는 해야 할 것 같다.
나에게 질문을 했던 직원이 화재를 돌리려는 듯 이은지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은지씨 삼촌은 엄청 부자신가 봐요?”
여직원 중 한 명이 물었다.
“네... 네? 호호호~”
“삼촌이 이 정도면 은지씨도 잘 사는 집안의 아가씨인가 봐요~ 으~ 부러워요~”
“그런 거 아니에요~”
“에이~ 정말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뭐를요?”
“우리 사장오빠가 마음에 있는 거요~”
갑작스런 폭탄 발언에 성기형이 얼굴을 잔뜩 붉히며 버럭한다.
“야! 이현주! 가... 갑자기 무슨 말이야!”
저 이현주라는 직원은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편이다.
그 것이 장점이기도 하면서 단점인 부분인데.
성기형을 공격하는 것은 꽤나 재미있기에 오늘은 장점으로 보인다.
“푸흐흐~ 갑자기는 무슨~ 당사자들 빼고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을 걸요? 은지씨도 조금은 마음이 있어서 이런 호의를 베푼 거 아니에요?”
그녀의 말에 이은지의 얼굴도 살짝 달아오른다.
꽤나 당황한 표정의 얼굴.
나는 두 여자의 대화를 관심 있게 바라봤다.
여기 있는 전부가 궁금한 부분이겠지.
성기형도 아닌 척 하며 은연 중 이은지의 대답을 기다리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윽고 이은지의 입이 달싹였다.
“조... 조금은 있죠...”
이은지를 바라보던 나는 일순 얼굴이 굳어져 버렸다.
그 순간 나연누나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그녀는 내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것에 의문이 든 듯 입을 벙긋 거린다.
‘왜?’
나는 고개를 저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쓴 웃음을 지었다.
이은지가 관심이 있다는 말은 거짓.
그녀를 주시하고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매직아이를 발동시켰던 모양이다.
이은지의 진심을 알게 되다보니 괜히 입맛이 쓰게 느껴졌다.
불쌍한 성기형은 이렇게 또 헛물을 켜는가 보다 싶다.
‘어...? 그런데 왜?’
이번에도 망했구나 싶어 술잔을 입에 가져가던 나는 의문이 생기고 말았다.
이은지는 왜 성기형에게 관심도 없는데 이런 호의를 베풀었을까?
어릴 적 잠시 꿈꿨던 모델 일을 해 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러왔던 그녀.
몇 번 보고 말 사이에 아무런 마음도 없이 관심을 보였다?
거기에 더해 이런 별장까지 거리낌 없이 대여를 해 준다니.
보통사람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 아닌가?
“꺄하하~ 역시~”
“와... 충격.”
성기형은 이은지의 말을 철썩 같이 믿는 듯.
얼굴에 어색함을 한가득 품고 있었다.
‘저 년 뭐야? 도대체?’
나는 지울 수 없는 찜찜함에 이은지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성기형 어떤 부분이 괜찮은 거 같아요?”
“네?”
“성기형 매력이 뭔가 궁금해서요.”
“아... 저는 덩치 크고 남자다운 사람을 선호해서...”
진실.
“오오~ 딱 성기형이네. 흐흐흐~ 은지씨도 조금은 성기형이랑 잘 해 볼 마음이 있는 거네요~”
“아? 네... 사실 제가 조심스러운 성격이라서. 천천히요~ 호호호~”
거짓.
“요즘은 일단 만나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은지씨는 신중한 편이군요. 예쁜 사람치고 은지씨 같은 분은 드문 것 같아요.”
“호호호~ 칭찬이죠?”
“그럼요. 은지씨 성격을 아니까 삼촌도 이런 곳을 빌려주는 것 아니겠어요?”
“네... 맞아요.”
거짓.
“그래도 기회 되면 이런 좋은 곳 대여해주신 것 인사드리고 싶네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 송별여행인데.”
“그런 거 신경 쓰시는 분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래도 성기형이라도 선물을 사서 보내던가 해야 할 것 같아요. 외삼촌이에요?”
“네? 네... 외삼촌 맞아요. 호호호~”
거짓.
“야~ 강인한~ 무슨 취조 하냐? 그만 해라. 은지씨 난처해하잖아.”
내 질문이 너무 노골적인 듯 성기형이 말을 막아섰다.
“아~ 미안. 너무 고마워서 나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은지씨.”
“아니에요. 두 분이 서로 아끼시니 그런 것 아니겠어요~ 후훗.”
그렇게 말하는 이은지의 주변으로는 초록의 아우라가 은은하게 비치고 있었다.
나연누나에게서 비쳐지는 푸른 아우라에 비해 미미하지만 확실히 무언가가 있어 보인다.
바로 어제 겪지 않았는가?
검은 아우라가 비추던 리엔으로부터 암살을 당할 뻔 했던 것.
나연누나는 내 능력이 개화되기 전부터 알았던 사람이지만.
이은지는 아니다.
충분히 수상한 부분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이은지가 나를 노리는 사냥꾼일 가망성이 농후했다.
그 것에 여기 있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만들 수는 없었다.
문제는... 과연 이 일에 관여된 이들이 몇이나 되는지가 큰 문제였다.
이은지가 읍내에 다녀온다고 했을 때, 협력자들을 만나고 온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이다.
이를 생각하자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내 사람들이 나로 인해 피해를 받는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사냥꾼들과는 한 차례 대적을 해 보아서 알고 있다.
그들은 훈련으로 다져졌으며, 퓨리다크니스라는 최악의 약까지 사용한다.
모두가 하하호호 웃고 있지만.
지금 내 심정은 전혀 옷을 기분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무기를 품에 챙겨 놓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씨발... 어떻게 해!’
이은지를 아무도 모르게 제압해서 고문이라도 해야 하나?
내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무기부터 챙기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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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2연참을 하려 했는데 늦어버렸네요.
오늘은 한 편 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항상 지켜봐 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좋은 밤 되시고요!
눈꽃송이73님, 전우좌우상하님, 미르..님 후원쿠폰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