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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137화 (137/297)

2. 사냥꾼.(109)

2. 사냥꾼.(109)

자리를 슬쩍 이탈해 애마가 있는 곳으로 왔다.

트렁크를 열어 무기가 든 가방을 연다.

겉옷을 벗고 안에 홀스터를 착용했다.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을 홀스터에 고정하고 대검도 쑤셔 넣었다.

손도끼를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가져가기로 한다.

멜빵홀스터에 전부 고정을 시키고 겉옷을 다시 걸친다.

이내 무기들은 펑퍼짐한 겉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무기를 쥐자 그나마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그렇다고 무엇도 해결된 것은 없다.

사냥꾼들이 언제 이빨을 드러낼지 모르는 일.

가장 좋은 방법은 이은지를 제압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무작정 제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행들을 이해시킬 방법이 없기에.

참으로 난감하다.

이미 평범한 삶을 살수 없음에도 이렇게 놀러 온 것 자체가 잘못인 걸까?

나로 인해 아무것도 모르는 지인들마저 위험에 처했다는 생각에 입맛이 쓰다.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후우... 내 주제에 무슨...

“무슨 말이야?”

화들짝.

너무 생각에 심취해 있던 걸까?

그렇다고 지척까지 다가온 것을 알아채지 못하다니.

뒤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놀라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시야에 들어오는 커다랗고 깊은 눈동자.

틀어 올린 머리카락과 미처 묶이지 못해 살랑바람에 휘날리는 잔 머리칼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간다.

“누나?”

바로 서서 양손을 살포시 모으고 심유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나연누나가 눈에 들어왔다.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뒤에 서 있는지도 몰랐을 거다.

“어... 언제부터 뒤에 있었어...?”

어디부터 어디까지 본 걸까?

설마, 내가 무기를 꺼내 장착하는 것도 전부 본 건 아니겠지?

저렇게 차분한 것을 보면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네가 트렁크를 열 때쯤.”

하지만 이내 들려온 대답에 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트렁크를 열 때부터라면, 가방에서 무기를 꺼내 장착하고 있던 것도 전부 보았다는 말 아닌가.

“봐... 봤어?”

나도 모르게 떨려오는 음성으로 묻는다.

“응.”

잠시 이어지는 정적.

귓가에 들려오는 천막안의 웃음소리만이 허공에 머문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내 고민과는 달리 나연누나의 표정은 겁을 먹거나 놀란 표정이 아니다.

정적을 먼저 깬 것은 나연누나였다.

“그... 무기...”

그녀의 시선이 내 몸으로 향한다.

겉옷 안에 숨겨져 있을 무기들을 향한 것이라고 봐야 했다.

누나는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을까?

나를 살인마로 오해는 하고 있지 않을까?

괜한 걱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든다.

“.......”

“무슨 이유인지 알려줄 수 있어?”

그리 묻는 나연누나의 눈이 파란 안광을 발한다.

그리고 그녀의 눈이 한 차례 깜빡이고 뜨여졌을 때는 원래의 검은 눈동자로 돌아와 있었다.

“누나... 눈이?”

흠칫.

그 말에 나연누나가 눈가를 어루만졌다.

본인도 인식하지 못한 모양.

하지만 자신의 눈이 푸르게 변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봤니?”

끄덕 끄덕.

“먼저, 무기를 챙긴 이유부터 알려줄래?”

“그... 그게... 오해는 하지 말고...”

“오해는 안 해. 네가 사이코페스 살인마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으니까.”

“그게... 이곳이 조금 위험할 것 같아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냥 있는 사실을 말하면 될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나연누나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

“그 말은 이 숲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말하는 걸까?”

“어?”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낀다.

이은지에 정신이 쏠려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던 찜찜함.

이곳에 들어서면서부터 느껴지던 위화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의 놀란 반응에도 대답을 기다리듯 주시하는 그녀.

나는 그녀의 말에 긍정했다.

“맞아.”

그리고.

“하나 더 있어.”

일순 나연누나의 눈이 번쩍이는 착각을 느낀다.

“더 있다고?”

끄덕.

고개를 끄덕이곤 한 마디 더 내뱉는다.

“사냥꾼.”

***

김나연은 얼굴이 굳어져 좀처럼 펴지 못하는 강인한을 보았다.

그러던 그가 슬쩍 일어나 밖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따라나선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저럴 이유가 있을까?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에 걱정스러운 마음도 든다.

승용차로 다가가 트렁크를 여는 모습에 의아함도 잠시.

강인한이 꺼내 든 가방 안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이 들어 있었다.

쉽게 구할 수 없는 총까지 장착하는 모습.

‘설마...’

그도 숲의 위화감을 느끼고 위기의식을 느낀 것일까?

처음 당도했을 때부터 느껴지던 위화감.

그 위화감은 날이 어두워질수록 더욱 진해져갔다.

가만히 서서 강인한을 바라보던 김나연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화들짝 놀라며 당황하는 강인한.

그가 미친 살인마여서 여기 있는 이들을 죽일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녀가 가문에서 반푼이 취급을 당하긴 하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충분한 능력 정도는 있다.

어릴 때부터 받아왔던 가문의 혹독한 훈련과.

반푼이라 해도 보통을 뛰어넘는 육체 능력이 있기에.

그리고 자신 이외에 누구도 알지 못하는 후각의 능력.

그녀의 코는 생명체들의 고유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추악할수록 그 냄새가 지독했기에.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였다.

강인한과 친분을 다지게 된 이유 중 하나.

그에게선 다른 이들과 달리 악취가 풍기지 않았다.

그녀가 맡는 냄새는.

사람의 몸에서 나는 땀이나 불순물의 냄새가 아니다.

악의를 가진 이들에게선 시체 썩는 냄새만큼 고약한 냄새가 난다.

아무리 호의를 가진 이라도 미약하게나마 나기 마련.

그러한 냄새조차 강인한에게서는 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요즘 들어 조금은 이상하게 여겨지던 부분들이 있기는 했다.

심한 부상이후 보이던 빠른 회복력.

갑작스레 일을 그만둔 것도 마찬가지.

매일 보내던 메시지도 어느 순간부터 확연하게 줄어 버렸다.

하지만 막상 얼굴을 맞대고 있으면 자신을 대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상황과 더불어 그 이유는 좁혀진다.

“그 말은 이 숲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말하는 걸까?”

“어?”

놀란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뜬 강인한이 재차 말을 이었다.

“맞아... 하나 더 있어.”

“더 있다고?”

끄덕.

고개를 끄덕이곤 한 마디 더 내뱉는다.

“사냥꾼.”

이로써 확신하게 되었다.

세상의 이면을 알지 못한다면 사냥꾼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을 거다.

“사냥꾼... 그들이 이 위화감과 관련이 있다고?”

“누나도 사냥꾼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김나연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강인한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어찌하여 그가 세상의 이면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일까.

“세상의 이면을 보았구나.”

“맞아. 누나가 그런 사실들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일단, 지금의 상황부터 이야기할게.”

“그래...”

“이은지는 사냥꾼인 것 같아.”

강인한의 말에 김나연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그렇구나.’ 라는 듯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한다.

유달리 악취가 심했기에 어느 정도 경계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동료들도 있다고 생각해. 아마도... 나를 잡기 위해서 인 것 같아.”

그 말에 김나연의 미간이 잔뜩 좁혀진다.

사냥꾼이라고 일상생활을 즐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극히 희박하지만 어울리는 이들 중 사냥꾼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냥꾼이 강인한을 노리고 있다니...

“왜 그렇게 생각해?”

“전에 병원에 입원했던 거. 정염귀랑 싸우다가 다친 거야. 그리고...”

강인한은 구상두에 관련된 이야기 외에도 사냥꾼 제임스패거리의 일과 김동운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무기를 들킨 이상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좋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그놈들을 사냥꾼 웹 운영자가 뒤를 봐주고 있었나 봐. 그 때문에 나를 노리는 거고.”

“듣기는 했어. 그들이 그렇게 올곧은 이들은 아니라는 걸. 어쩌면 그것이 필연적인지도 모르지. 퓨리다크니스라는 약물은 그만큼 불안정하니까... 한 가지 물을게. 인한이 너는 초인이니?”

김나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강인한이 사냥꾼이라면 지독한 마물의 악취가 배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에게선 여전히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초인일 가능성이 있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아.”

“자연적으로 능력이 생긴 건가...?”

“그런 경우가 있나 봐?”

“그래. 그런 경우가 종종 있어.”

“이제, 누나 이야기를 해 봐. 누나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어?”

강인한의 눈에 김나연은 아무리 봐도 사냥꾼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오히려 초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중점이 맞춰진다.

그녀에게서 보이는 푸른 아우라와.

신비하게 변하는 푸른 눈동자.

“우리 가문은 애초에 세상의 이면을 알고 있는 가문이니까.”

“가문...?”

“그래. 인외의 존재들과 대적해왔던 가문. 그 가문 중 하나가 내 가문이야.”

김나연의 말에 강인한은 충격을 받았다.

인외의 존재들과 대적하는 가문이 있을 줄이야.

정말로 소설 속에서나 볼 법한 설정이 아닌가.

물론, 지금의 현실자체도 판타지 소설과 다를 바 없지만 말이다.

“누나야말로... 초인이라는 존재야?”

그 말에 고개를 저어 보이는 김나연.

“나는... 반푼이에 불과 해...”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답변에 강인한은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일단,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가 우선인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그러니...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자.”

강인한의 말에 김나연도 동의하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모두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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