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냥꾼.(110)
2. 사냥꾼.(110)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
나연누나가 지금의 사태를 받아들여 다행이긴 하다만.
그렇다고 뾰족한 방법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다른 사냥꾼들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어떻게 찾으려고?”
“이은지가 읍내에 다녀올 때 일행들을 만났을 거야. 저기 봐봐.”
포장이 되어 있지 않기에 잔뜩 나 있는 바퀴자국.
그 중 가장 최근의 선명한 바퀴자국이 보인다.
이곳으로 올 당시에는 도로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아 구시렁거렸지만, 지금에 와선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타이어... 자국?”
“응. 놈들은 분명 근처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야. 이 타이어자국이 끝나는 부분. 그 근처에 놈들이 숨어 있지 않을까?”
고개를 끄덕이던 나연누나의 얼굴이 걱정스럽게 변한다.
내가 어느 정도로 잘 싸울 수 있는지 모르기에 오는 불안함이리라.
“몇 명인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
“괜찮아. 경험은 있으니 자신 있어. 그리고 이은지는...”
막상 가려니 남은 이들이 걱정되었다.
나 역시, 나연누나가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추었는지 모르는 지금.
그녀가 이은지를 상대할 수 있는지 여부조차 알 수 없었다.
평범한 상태에서 상대를 할 수 있더라도.
퓨리다크니스를 주사하게 되면 육체의 능력이 단숨에 늘어난다.
내 걱정을 깨달았는지 나연누나가 입을 열었다.
“반푼이라곤 하지만. 사냥꾼하나 견제 못 할 수준은 아니야.”
“흐음... 성기형에게라도 이야기해야 할까?”
“쉽게 믿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 그래도 성기씨가 너를 신뢰하는 만큼 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놈들이 언제부터 활동할지 모르는 지금.
한시가 급한 상황.
그렇다고 이곳을 위험한 상태로 둘 수는 없다.
조력자는 많을수록 좋다.
“말하자.”
“그래. 그리고 그보다 이 숲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이 더 문제야.”
“이 찜찜한 느낌?”
“그래. 아무래도 가문에 연락을 취해야 할 것 같아.”
“그놈들이 뭔가를 한 거 아닌가?”
“아니. 절대 아니야.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어... 이건... 이면의 경계와 흡사해. 처음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어.”
“이면의 경계?”
“모르는 거야? 그런데 어떻게 느낄 수 있어?”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것은 아직도 많은 모양이다.
“그냥, 자연적으로 느껴져.”
“흐음... 자세히 모르는 것 같으니까 간단하게 설명할게. 경계근방에서 힘의 충돌이 이어지면 경계가 터져 나갈 가능성이 있어.”
“터져?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온갖 잡것들이 튀어나오겠지. 최악의 경우... 대대적인 토벌이 필요하게 될지도 몰라. 밝혀진 곳들은 대부분이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지정되어 있어. 아마도... 상부의 지시가 아닌, 운영자 중 누군가가 단독으로 일으킨 것이겠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놀랄 겨를도 없었다.
사냥꾼 때문에 골치가 아픈 상황에, 더욱 골치 아픈 일에 부딪힐 줄이야.
“그렇게 되면 지들도 문제가 되는 거 아니야? 살아서는 나가야 할 거 아냐?”
“아마도 저들은 이곳에 이면의 경계가 있다는 것을 모를 거야. 안다면 절대로 오지 않았겠지.”
그때, 허공에 피어오르는 오오라가 눈에 들어온다.
이에 화들짝 놀라 사방을 살펴본다.
어디선가 보았던 공간의 일그러짐.
마마가 다스리는 구역의 결계가 이것과 비슷했던 것 같다.
사방을 채우며 둘러지는 결계의 모습에 나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결계가 쳐졌어!”
“결계? 결계가 보여?”
“내 능력 중 하나가 결계를 보는 능력이야.”
능력이라 치부하며 누나에게 외쳤다.
일일이 설명할 시간은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다행히 입을 앙다물고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나연누나.
그녀가 손에 쥔 휴대폰을 보며 아쉬운 얼굴로 말한다.
“휴대폰이 안 터져... 아무래도 빠르게 제압 하는 게 우선일 것 같아.”
“이은지?”
“그래.”
“괘... 괜찮을까?”
“괜찮고 말고를 따질 겨를은 없어졌어. 우선, 성기씨라도 먼저 설득을 시켜.”
***
나연누나가 천막으로 향하고 그 뒤를 따랐다.
전화로 부르려 했지만, 휴대폰이 터지지 않기에 나도 안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제법 술들에 취해 왁자지껄 떠드는 상황.
내가 성기형에게 다가가자 이를 따라오는 이은지의 시선이 느껴졌다.
‘개 같은 년.’
최대한 자연스럽게 성기형에게 다가가 툭 하고 쳤다.
“어? 화장실 다녀왔냐?”
“응.”
“왜?”
“잠깐 나와 봐.”
“갑자기?”
“술 한 잔 한 김에 형한테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뭘?”
“회사도 그렇고, 대표가 되었다는 것도 그렇고.”
“새끼~ 말할 마음이 생긴 거냐?”
나와 성기형의 대화를 무심한 척 귀를 기울이는 이은지의 모습이 보인다.
애써 그 모습을 무시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성기형이 따라 나온다.
“어디까지 가?”
“형 벤틀리 옆자리 한 번 앉아보라고. 흐흐흐~”
이은지에게 들리라는 듯 크게 지껄였다.
“오오~ 그래. 한 번 앉아봐야지. 그래도 운전은 안 된다?”
“알아~ 그냥 이야기 하려고 그러는 거야.”
운전석을 열어 좌석에 앉자 이내 조수석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산처럼 커다란 성기형이 좌석에 엉덩이를 묻었다.
쿠션 죽는 거 아니겠지?
“와~ 안에는 더 죽이는구만?”
“그렇지?”
“언제 한 번 타보게 해 주라.”
“오케이~”
큭큭거리며 이것저것 만져 보는 성기형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 형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있어?”
“엉? 갑자기 웬 뜬구름 잡는 소리여~”
“어서 그것부터 답해 줘.”
장난스럽게 받아치던 성기형의 눈이 침중해진다.
“심각한 이야기야? 말해 봐. 내 가족보다 믿는 사람이 너니까.”
그렇게 말해주니 가족이 없는 나는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나 역시 성기형을 가족처럼 의지하고 있다.
“고마워. 정말 형이 꼭 믿어 줘야 할 말이야. 지금 시간이 촉박해. 언제 일이 벌어질지 모르거든.”
“도대체 무슨 말이기에 그렇게 무게를 잡아?”
“나를 처리하려는 이들이 있어.”
“뭐... 뭣!? 처리?”
“잡아가거나 죽이거나.”
“너... 깡패들하고 연관된 거냐!?”
“아니... 그건 아니지만. 사냥꾼이라는 놈들이 일을 벌일 거야. 그놈들은 정말로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죽여 버리는 놈들이야. 전에도 놈들에게 죽을 뻔 했어.”
“허... 허허허... 이게... 무슨... 어떤 놈들이야! 싹 조져버리게!”
“그 놈들... 보통사람들하곤 달라. 보통사람이 보면 괴물이라 생각할 정도로... 총 같은 무기도 거리낌 없이 쏘는 놈들이야.”
그러면서 겉옷의 지퍼를 내려 무기를 보여 주었다.
“헉... 초... 총!? 너 도대체 무슨 일하고 다니는 거야!”
“나중에 꼭 설명할게. 정말 위험할지도 몰라. 그러니 내 말을 믿어 주었으면 좋겠어.”
“허... 허허허... 허허허허...”
“휴... 형 은지씨 많이 좋아해?”
“은지씨? 은지씨는 왜? 설마... 은지씨가 연관되어 있다는 건 아니겠지?”
자연적으로 성기형의 언성이 높아졌다.
아무래도 술을 마신 영향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았다.
“형이 생각해 봐. 이곳... 이상하다는 생각 안 해봤어? 그리고 은지씨가 아르바이트부터 해서 이곳을 빌려준 것까지... 그리고 이곳은 건축허가도 나지 않을 곳이잖아? 아무리 미쳤다 해도 불법적으로 전기도 수도도 안 들어오는 곳에 건물을 가져다 놓고 발전기랑 물탱크까지 비치해 놓느냐고... 형은 이 곳에 오면서 뭔가 작위적인 느낌이 하나도 안 들었어?”
성기형의 미간에 주름이 잔뜩 잡혔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표정 또한 심각하기 그지없다.
“그 말... 확실한 거냐...”
“확실해. 은지씨는 사냥꾼이야.”
“후우...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일단, 은지씨부터 제압할 거야. 사냥꾼들 능력은 일반인의 범주로 생각하면 안 돼. 아무리 형이라도 은지씨를 당해내기 힘들 거야.”
성기형의 굵은 눈썹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어릴 적부터 운동으로 단련된 그.
학생 때에도 조폭마저 꿇려 버린 무시무시한 인물이 성기형이었다.
연약한 여자를 당해내지 못한다는 말에 자존심을 건드리게 된 모양이다.
하지만 이내 숨을 크게 내뱉고는 이성을 되찾는다.
“후우... 그래. 사람까지 죽인다면 보통 사람들하고는 다르겠지.”
“되도록 자리부터 마무리하자. 그리고 이은지에게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고 유인해 줘.”
“이곳을 나갈 생각은... 흐음... 네가 못 했을 리가 없지...”
“맞아. 지금은 나갈 수 없어. 믿을 수 없겠지만 우리는 여기에 갇혔어.”
사냥꾼들은 결계부까지 설치해 빠져나갈 구멍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렸다.
“알겠다. 유인만 하면 되는 거냐.”
“형이 제압하려 하지 말고. 꼭 유인만 해줬으면 해. 난 저쪽에 몸을 숨기고 있을게. 나연누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 누나 눈치는 보지 않아도 돼.”
“나연씨도 알고 있어?”
“응. 그 부분도 다음에 이야기 해. 지금은 언제 놈들이 덮칠지 몰라. 지금은 내 말에 따라주었으면 좋겠어.”
“그래... 알겠다.”
왕성기.
호감 : 90
신뢰 : 85
애정 : 95
혼란 : 45
성기형의 정보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만, 혼란이라는 문구가 생겼고.
그 수치는 45를 넘어가고 있었다.
적지 않은 그 수치에 조금은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 이외의 것들이 압도적으로 높기에 애써 마음을 달랜다.
“혼란스럽겠지만 금방 다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단 한 번만 날 믿어 줘.”
고개를 끄덕이며 성기형이 문을 열고 차를 빠져나갔다.
나도 차에서 내려 둘러진 담 반대쪽으로 몸을 숨겼다.
이제는 성기형이 이은지를 유인해 오는 것을 기다리면 된다.
나연누나는 알아서 주변을 살피리라 생각했다.
메시지라도 보내 확인하고 싶지만, 휴대폰은 먹통이 된 상황.
제발 별일이 없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숨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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