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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139화 (139/297)

2. 사냥꾼.(111)

2. 사냥꾼.(111)

1분1초가 길게만 느껴진다.

막상 맨 정신으로 사냥꾼을 사냥하려니 긴장감이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구상두를 상대할 때는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사냥꾼 세 놈과 마물이 된 김동운을 상대할 때는,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제임스 패거리는 정욱아저씨에 비하면 떨어지는 수준.

문제는 그 제임스 패거리의 수준이 사냥꾼들 중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는 거다.

정욱아저씨 정도 되는 놈들이 퓨리다크니스를 빨고 달려든다는 생각을 하자 괜스레 불안해진다.

그때보다 강해진 것은 확실하지만.

아직 경험이 미천한 나에게 미지의 적은 불안 요소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재수 없게 경계인지 결계인지가 터져 나가면 전부다 좆 되는 거다.

생각해 보니 미천한 경험으로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기왕이면 나연누나와 성기형에게 대검이라도 한 자루씩 쥐여 주는 건데.

내 짧은 생각을 한탄하고 있을 즈음.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온다.

저벅. 저벅.

쿵. 쿵. 쿵. 쿵.

요괴를 대면한 것도 아닌데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려면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겠지.

“허허허~ 공기가 좋죠? 은지씨.”

“아무래도 숲이 있다 보니까...”

“날씨가 좋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날씨요? 아... 그러네요.”

“허허허~ 확실히 시골이라 그런지 별이... 음... 적네요. 내일은 날이 안 좋으려나.”

웩...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 나가려 발연기를 하는 성기형의 음성에 소름이 돋는다.

낮까지는 날씨가 좋았으나 어두워지며 구름이 잔뜩 끼었다.

조급한 마음에 아무 말이나 내뱉는 모양인데.

저렇게 해서는 나라도 수상하게 여기겠다 싶다.

“그런데... 무슨 일로?”

“아... 그냥 은지씨랑 이렇게 걷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왜...? 땀을 그렇게 흘리세요?”

“어? 하하하... 제가 원체 땀이 좀 많습니다. 어렸을 때 별명이 땀쟁이라고... 하하하~”

땀쟁이라니... 보고 있지 않아도 성기형의 어색한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다.

저런 맨트를 날리니 지금까지 여자가 없는 거다.

“왜 자꾸 두리번거리세요? 뭐 있나요?”

“아... 아니. 이상하게 으슥한 것도 같고...”

“그래요? 성기씨 덩치에 비해 은근히 겁이 많으신가 보다.”

대화에서 이상함을 느꼈음인가?

이은지의 말투가 조금씩 쌀쌀맞게 변하는 것 같다.

참지 못한 나는 두더지처럼 조심스럽게 담 위로 얼굴을 올렸다.

눈만 빼꼼 내밀어 주변을 살피려던 나.

달과 별도 구름 뒤로 숨은 지금 천막근처를 제외하곤 시커먼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그런 것쯤은 내 시력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안력에 집중하자 뒤돌아 있는 성기형과 조금 떨어져 마주 보고 있는 이은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은지의 눈동자가 빼꼼이 내민 내 눈과 마주쳤다.

‘이... 이런 씨발...’

분명히 내가 여기에 숨어 있는 다고 했거늘.

저 멍청한 곰탱이 성기형은 자리선정을 어떻게 한 거란 말인가?

머리가 있다면 이은지를 등지게 만들어야 하는 거 아냐?

이은지와 시선이 마주치며.

나는 일이 틀어졌음을 깨달았다.

‘곰탱이! 미련 곰탱이!’

곰 같아도 여우처럼 영악하다 생각했던 것은 오늘부로 취소다.

그때, 이은지의 안광이 번쩍이는 착각을 느낀다.

마물이나 요괴를 사냥하는 사냥꾼이.

위기 대처능력이 떨어질 리 없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뒤로 훌쩍 몸을 날렸다.

퓨리다크니스를 주사하지 않은 상황일 텐데도 고양이처럼 신속하고 빠른 움직임.

바닥에 착지하면서도 마찰음마저 나지 않는다.

“어어?”

이에 성기형이 놀란 듯 어버버 거리며 들썩였다.

이은지의 재빠른 움직임에 넋이라도 나간 듯.

성기형에게서 물러난 이은지가 품에서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검붉은 액체가 들어 있는 주사기.

마침 고개를 내민 달이 그 모습을 유유히 비추었다.

“은지씨!?”

당황한 성기형이 이은지의 이름을 부르는 찰나.

푸욱.

주우욱.

이은지는 심장부위에 주사기를 찔러 넣고 퓨리다크니스를 주사해 버린다.

그러곤 허리 뒤편으로 손을 가져가 날카로운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흥! 나를 유인했구나!”

이은지의 녹색 아우라가 더욱 짙어졌다.

눈동자마저 녹색 안광이 번쩍이며 이글거리는 시선을 던진다.

나는 담에서 튀어 나가며 성기형에게 외쳤다.

“성기형! 피해!”

‘이런...’

피하라는 외침에 바보같이 왜 뒤를 돌아 보냐고!

성기형의 고개가 나를 향해 돌아드는 동시에 이은지가 몸을 날린다.

번쩍이는 날붙이가 차가운 달빛을 받아 더욱 요사하게 비춰졌다.

성기형에게 날아드는 나이프를 바라보며 폭발적으로 땅을 박찼다.

마음은 급한데 몸은 답답할 정도로 굼뜨게만 느껴진다.

1초가 마치 1분이라도 되는 것처럼 늘어지는 느낌에 이를 악문다.

“으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몸을 한계치까지 움직였다.

조금씩 가까워지며 눈을 동그랗게 뜬 성기형의 시선이 마주친다.

무언가 말을 내뱉으려는 듯 벌어지는 입.

이은지의 나이프도 내 움직임에 맞춰 성기형에게 다가들고 있었다.

모든 것이 느려져 버린 세상 속에서 핑핑 도는 뇌와는 달리 몸은 물속에 잠긴 것처럼 무겁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결국, 내 몸은 목표한 지점까지 아슬아슬하게 도달한다.

성기형을 지나 성기형과 이은지의 중앙에 한 발 앞서 도착했다.

바짝 다가선 이은지의 나이프가 가슴 중앙을 노리고 찔러 들어온다.

“이... 인한아! 안 돼!!!!!”

푸욱.

성기형의 고함 소리와 함께 어지러울 정도로 세상이 휙휙 돌아가기 시작했다.

뇌를 직접 쑤시는 고통과 함께 이은지의 칼날이 내 몸을 파고들었다.

후두둑.

‘제기랄...’

주르륵 흘러내리는 핏물이 바닥을 적신다.

보통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육체가 이리도 쉽게 갈라질 줄이야.

이은지가 손에 쥔 나이프는 보통의 나이프가 아닌가 보다.

이에 더해 퓨리다크니스로 각성시킨 그녀의 육체 능력은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낸 듯하다.

“으아아악! 흐어엉! 안 돼!”

비틀.

내가 잠깐 비틀거린 사이 성기형이 크게 흐느끼며 곰 같은 몸을 날려 이은지를 들이 받는다.

퍼억.

퓨리다크니스로 각성했다지만 100kg이 훌쩍 넘는 커다란 남자가 힘껏 들이받자 날아가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흐윽!”

몸이 붕 뜨며 날아간 이은지가 낮은 신음성과 함께 몸을 빙글 돌리며 착지했다.

태생자체가 축복받은 신체를 다고난 성기형.

그런 성기형이 온 힘을 향해 들이 박았음에도 그저 잠시 뒤로 물리는 것이 전부였다.

“인한아! 피... 피! 이런 개 쌍년!”

시뻘겋게 출혈된 눈으로 눈물 콧물까지 줄줄 흘리는 사내의 모습이란.

‘추하다.’

성기형이 우악스러운 두 손으로 나를 움켜잡고는 울부짖는다.

“난 괜찮아! 정신 차려!”

나는 몸을 바로 세우며 성기형을 향해 호통을 쳤다.

그러곤 꾹 누르고 있던 옆구리에서 손을 떼어냈다.

이은지가 찌른 나이프는 옆구리를 할퀴며 지나갔을 뿐.

몸을 관통하지는 않았다.

피가 주르륵 흐를 정도로 살이 갈라지기는 했지만.

나름 견딜 만 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대로 관통당할 뻔했다.

“흐엉엉~ 이... 인한아! 다행이다! 다행이야!”

“아씨! 정신 차리라고! 이 곰탱이야!”

나는 질질 짜는 성기형은 밀어내며 이은지를 주시했다.

“칫! 빗나갔군.”

안타까운 듯 입술을 곱씹으며 말하는 개 같은 년.

“그래 씨발년아! 넌 뒤졌어!”

“흥! 어떻게 알아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사냥꾼 개 쌉년아! 이제부터 네 동료들이 어디 있는지 불어야 할 거야.”

내 입에서는 자연적으로 고운 말이 나갈 수 없었다.

아무리 예쁘더라도 날붙이로 옆구리를 찢은 년에게 호의를 보일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건, 내가 잡혔을 때 이야기지. 난 이대로 달아나면 그만이야.”

“뭐? 쫄았냐? 쌍년아! 하던 건, 마저 해야지!”

“호호호~ 내가 왜? 곧 있으면 내 동료들이 올 텐데. 내가 왜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지?”

“이런... 개 같은 년... 으드득.”

조금씩 거리를 벌려 멀찍이 선 이은지.

작정하고 도망가면 놓칠 것이 분명했다.

옆을 보자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성기형이 보인다.

“형! 정신 좀 차려!”

아무래도 정말 이은지가 이런 일을 벌일 줄은 몰랐으리라.

“어? 어! 나... 난 괜찮아! 훌쩍.”

“형은 뒤로 물러나 있어.”

“아니야. 나도 도울 게.”

“그렇게 넋이 빠져서 무슨 도움이 된다고!”

“정신 차렸어! 괜찮아!”

표정을 보아하니 발을 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네.”

“그런 말은 나중에 하고.”

나는 성기형과 대화하면서 조금씩 이은지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얄미운 년은 피식거리며 슬슬 뒤로 물러난다.

“호호호~ 잔머리 굴리면서 자꾸 앞으로 다가오네?”

“뭐래냐! 쌍년아! 넌 꼭 내가 잡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아직도 머리가 쿡쿡 쑤시고 옆구리 통증도 상당하다.

“확실히 실력은 꽤 있나 보네. 그 거리에서 막을 줄은 몰랐어. 제임스를 죽였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가 봐.”

“네년도 똑같이 만들어 줄게. 그리고 온갖 치욕이란 치욕은 다 줄 거야.”

그 말은 진심이었다.

저 망할 년을 잡아 온갖 고문을 하고 발아래 깔아 치욕스럽게 능욕하고 말테다.

“호호호~ 어디 한번 해 봐. 그러면서 자꾸 앞으로 슬금슬금 오는 게 존나 우스운 거 알아?”

“도망가는 네년이 더 우습거든?”

개 쌍년. 눈치는 좆나 빠른 것 같다.

그래도 네년이 잡히는 것은 확정이다.

쑤시던 머리도 통증이 잦아들고, 옆구리도 조금씩 버틸 만해졌다.

그리고.

나는 이은지를 향해 씨익 하고 웃어 준다.

“흐흐흐~”

“쳐 웃지 마. 정들라~ 호호호~”

“미친 살인자 년. 그냥 잡혀라!”

말과 동시에 땅을 박차고 이은지를 향해 뛰었다.

“지랄! 너야말로 앞으로를 걱정하라고~ 바이바이~ 이따 보자~”

그렇게 몸을 돌리던 이은지가 깜짝 놀라며 비명성을 터트렸다.

“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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