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냥꾼.(112)
2. 사냥꾼.(112)
이은지의 날카로운 음성이 터져 나온다.
“꺄악!”
누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지 상당히 놀란 모양.
그녀의 뒤에는 은밀히 다가온 나연누나가 자리를 점하고 있었다.
나는 이를 보고 있었기에 이은지를 향해 조소를 날릴 수 있던 것이다.
이은지의 명치를 툭 하고 밀어낸 나연누나.
그와 동시에 틈을 주지 않고 그녀의 다리가 쑤욱 하고 올라간다.
길고 쭉 뻗은 다리가 올라가며 펑퍼짐한 치마가 펄럭이고 매끈한 살결을 드러냈다.
너무나 새하얗고 아름다운 다리라인의 모습에 순간 넋이 빠질 것만 같다.
태권도의 옆차기를 하듯 곧게 뻗는 다리.
퍼억.
디딤 다리와 정확하게 일자가 될 정도로 쭉 뻗은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
그녀의 발차기는 완벽에 가깝다.
내 시선은 발에서 종아리를 지나, 허벅지로 향하고.
사타구니를 지나... 하늘색... 팬티... 헙!
의도치 않게 나연누나의 사타구니와 갈라진 자국을 눈에 넣고 말았다.
슬쩍 옆을 바라보니.
입을 헤하고 벌리고, 나연누나의 다리를 빤히 바라보는 성기형의 모습이 보인다.
‘이런 씨발!’
이 미친 곰탱이가 내 여자가 될 사람 팬티를 보고 있다니!
순간적으로 치미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저 매끈한 다리와 팬티, 아름다운 도끼자국은 오로지 나만 볼 수 있는 것이다!
“꺄아악!”
턱을 적중당한 이은지가 비명을 지르며 몸이 공중으로 치솟는다.
동시에 나는 성기형에게 몸을 날렸다.
그러곤.
손가락 두 개를 쭉 펴내어 성기형의 두 눈을 콕하고 찔러 버렸다.
갑작스런 공격에 성기형이 비명을 지르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아아악! 뭐야! 이 미친 새끼야! 내 눈을 왜 찔러!”
“눈깔이 마음에 안 들어!”
그렇게 외쳐 주었다.
“크아악! 개새끼! 살려 줘서 고맙다는 건 취소야 이 새끼야! 아아악! 내 눈!”
양손으로 눈을 감싸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성기형을 뒤로하고 이은지를 향해 뛰어 들었다.
꼴사납게 땅을 구르며 몸을 세우고 있는 그녀.
이은지에게 다가가는 와중에도 나연누나의 도끼자국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지금 내 몸은.
이은지가 아닌, 나연누나의 도끼자국으로 달리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이다.
올라갔던 다리가 천천히 내려온다.
그러면서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도끼자국.
‘왓! 더! 뻑!’
으르릉.
뇌기가 암컷의 냄새를 맡고 으르렁 거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열일을 하는 듯.
아랫도리가 뻣뻣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연누나의 다리가 반쯤 내려왔을 쯤.
그녀의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와락.
내 시선과 마주치자 일그러지는 눈매.
그 눈이 표독스럽게 변하는 것은 내 착각이리라.
아니, 제발그러길 바랐다.
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그녀의 도끼자국에 시선을 고정했던 것을 걸린 모양이다.
민망함을 모른 척하며 애써 태연하게 이은지에게 몸을 날렸다.
“흐으윽!”
나연누나의 발차기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리는 그녀.
넌 뒤졌다.
쌍년아!
정신을 차린 이은지가 헛바람을 들이키며 눈을 부릅뜬다.
하지만 그래봤다 이미 늦어 버렸다.
뇌전을 튀기며 내 주먹은 벌써 휘둘러진 상황이다.
파지직. 파직.
“허업!”
이은지가 방어하기 위해 양손을 겹쳐오지만 그보다 내 주먹이 닿는 것이 빠르다.
퍼억.
“커어억!”
배에 주먹을 쑤셔 박자 새우처럼 웅크려지는 모양새.
여자를 패는 취향은 없지만, 이렇게 속이 후련할 줄이야.
나는 사정 봐주지 않고 무릎을 들어 올리며 이은지의 관자놀이에 니킥을 처박아 주었다.
뻐억.
“꺄아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터지는 비명 성.
비틀. 비틀.
비틀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아직 안 끝났다. 개 년아!’
그대로 앞차기를 날려 버리자 중심을 잃고 바닥을 굴러버린다.
휘이익.
바닥에 널브러진 이은지의 몸 위로 훌쩍 올라탔다.
“어억!”
경악으로 물든 이은지의 예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녀를 보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내 말대로 잡혔지? 쌍년아.”
나는 그녀를 향해 뇌기를 품은 주먹을 들어 올린다.
하염없이 흔들리는 눈동자가 눈에 들어온다.
“아... 안 돼... 하지 마... 나... 난 여자라고!”
“어쩌라고! 그냥 뒤져 이년아!”
나는 그런 이은지를 향해 거침없이 주먹을 떨어트렸다.
퍽. 퍼퍼퍼퍽. 퍽. 퍽.
“꺄아악! 꺄악! 아악! 그... 그만! 제발 그만! 흐아악!”
성기형을 찌르려 했다는 분노와.
내 몸을 갈라버린 분노를 마음껏 표출한다.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이 쌍년은.
이미 인간이 아니다.
그러기에 거리낌 없이 마구 난타했다.
이은지의 얼굴은 금세 부어오르며 피투성이가 되어갔다.
터업.
거의 광기에 휩싸일 무렵.
내 어깨를 잡아 오는 감각이 전해졌다.
“놔!”
그 손을 뿌리치고 다시 이은지를 내리치려는 찰나.
날카로운 음성이 귓가를 때린다.
“강인한! 그만해!”
그러곤 조금 전보다 더 우악스럽게 팔을 잡아챘다.
“허억... 허억... 허억...”
나는 음성의 주인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눈을 부릅뜨고 있는 나연누나.
다소 화가 난 표정에 타올랐던 광기가 조금은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그러다 죽어. 얘한테 물어볼 것이 있잖아!”
나연누나의 말에 잠시 놓았던 정신이 돌아왔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만신창이가 되어 숨을 쌕쌕 내뱉고 있는 이은지가 보인다.
필요 이상으로 흥분했던 것 같다.
나는 손을 가져가 딱딱하게 굳은 안면에 얹었다.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이 세세하게 전해진다.
‘지금 내 얼굴...’
거울이 없기에 정확한 표정은 알 수 없으나.
살인마의 얼굴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표정을 나연누나에게 보여주다니...
급 자괴감이 밀려든다.
내가 어쩔 줄 모르고 우물쭈물하자 나연누나가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고생했어. 옆구리부터 동여 매.”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푹 하고 숙여 버렸다.
그리곤 옆구리의 상처를 겉옷으로 동여맸다.
고생은 무슨...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이은지를 잡는데 일등 공신은 나연누나다.
나는 그저 무방비한 이은지를 스틸해 버린 것이고.
“미안...”
이은지에 몸에서 일어선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일단... 심문부터 하자.”
“응.”
터벅. 터벅.
멀뚱히 서 있던 성기형도 곁으로 다가왔다.
성기형의 얼굴은 꽤 복잡한 표정이다.
이은지를 잡기는 했지만 아직 상황이 혼란스러운 모습.
보통 사람이 살인의 위협을 언제 느껴보겠는가.
당연한 반응이다.
“으음... 심각하게 팼네... 그래도 나쁜 년 이니까 불쌍하지는 않아. 야! 그런데 도대체 왜 내 눈을 찌른 거냐?”
성기형이 아직도 눈이 쓰라린 듯 꿈벅이며 윽박지른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발끈해 버렸다.
성기형이 소중한 나연누나의 팬티를 봤다는 생각에 화가 치민다.
“형이 나연누나 팬티를 뚫어지게 쳐다봤잖아!”
“뭐... 뭐? 야! 그... 그건!”
“것 봐! 왜 말을 더듬어!”
“넌 안 봤어?”
“난 상관없지!”
“넌 왜 상관없는데!”
“이... 이... 아무튼! 눈깔 후벼 파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
“이런 미친 새끼!”
그때, 나연누나의 앙칼진 음성이 들려왔다.
“그만!”
그녀의 날카로운 음성에 동시에 입이 다물어진 나와 성기형.
나연누나는 얼굴이 벌게져 나와 성기형을 찌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수... 수영복도 입는데 어떻다고 그래!”
어떻게든 수치심을 몰아내려는 듯 말하는 나연누나의 음성에 나도 모르게 또 발끈했다.
수영복을 입고 그렇게 옆차기를 날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녀의 사타구니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새하얗고 매끈한 사타구니가 말이다.
“이 형이 도끼자국을 봤단 말이야!”
“뭐... 뭣!? 내가 언제! 내가 봤으면 너도 봤다는 거 아냐!”
“이런 변태 같은 곰탱이가!?”
“뭐 이 새끼야? 내 눈 찌르고 넌 계속 본 거 아니야!?”
“도... 도끼자국...”
티격 거리는 음성 속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귀를 스쳐 지나갔다.
멍하게 중얼거리는 나연누나의 얼굴은 새빨갛다 못해 터질 듯 붉어져 있었다.
“어... 어?”
“으응?”
“이... 변태 새끼들이!”
악귀처럼 일그러지는 나연누나의 얼굴에 등줄기가 차가워진다.
지금껏 저렇게 화난 얼굴을 마주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성기형도 마찬가지인 듯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누나... 잠깐만...”
“나연씨... 저... 전 눈이 찔려서 진짜 못 봤어요...”
“이런 개새끼들아! 이런 상황에서 그런 게 보여!?”
***
건물 안으로 이은지를 끌고 와 의자에 묶었다.
그녀의 몸을 꼼꼼하게 결박하는 내 눈과, 몸을 바르르 떨고 있는 성기형의 눈탱이는 큼지막하게 부어 있었다.
설마 저 나연누나가 정말로 주먹을 쓸 줄이야.
그 주먹이 어찌나 매운지 초월적인 내 눈두덩이도 어김없이 부어올랐다.
팔짱을 끼고 싸늘한 눈빛을 흘리는 나연누나의 눈치를 보며 이은지를 완벽하게 결박했다.
“누... 누나... 다 묶었어.”
“깨워.”
“응.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소란이 일었음에도 아무런 반응도 없고.
이렇게 조용한 것이 못내 궁금해 물어보았다.
“기절시켰어. 특히 의찬씨는 너무 말이 많아서 독하게 손을 좀 썼어.”
그 말에 갑자기 의찬형이 불쌍해지는 기분이 든다.
자기 말로는 반푼이라고 하지만.
나연누나의 손은 살벌하게 매서웠다.
“야~ 야~ 일어나.”
나는 나연누나의 명령에 따라 이은지를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그녀는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해서 눈을 감고 있었다.
퓨리다크니스의 회복력을 알기에.
그녀의 귓가에 낮게 으르렁거린다.
“야... 쌍년아. 안 일어나면 아까처럼 좆나게 터질 줄 알아.”
흠칫.
그 말에 몸을 한차례 떤 이은지가 낮은 신음을 흘린다.
“으으음...”
‘가증스러운 년. 기절한 척하고 있었네.’
그러곤 슬며시 눈을 뜨며 놀란 척하고 자빠졌다.
“이... 이건... 흑... ”
나에게 쳐 맞았던 얼굴의 붓기도 상당히 가라앉은 모습.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이은지의 모습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이은지를 보며 나연누나가 차가운 어조로 묻는다.
“정신 차렸군요. 저희가 무엇을 물을지는 알고 있겠죠?”
얼음처럼 차가운 음성에 이은지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세요. 동료들은 몇 명인지. 그리고 언제 오는지 말이에요.”
이은지의 눈동자가 잘게 경련을 일으켰다.
꾸물거리는 이은지를 보자니.
아직 매가 덜한 모양이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주먹을 들어 보였다.
파직. 파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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