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냥꾼.(113)
2. 사냥꾼.(113)
나는 부어터진 눈덩이를 들이밀며 차갑게 말했다.
“이은지. 제임스 패거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줄까?”
도리도리.
이은지는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죽이러 왔으면 너도 죽을 거라는 각오쯤은 했겠지? 제임스 패거리도 날 죽이려고 했고. 그 다음은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거야.”
그녀를 향해 으스스한 눈빛을 흘려보내자.
“아... 아니야. 죽이려던 게 아니야. 우리가 받은 의뢰는 사로잡는 거라고!”
“그으래? 그런데 성기형한테 칼을 들이밀어?”
“제... 제압만 하려고 했어!”
“요즘은 제압을 나이프로 하나 봐? 제압이 안 되었으면 죽였을 거 아냐!”
“그건...”
성기형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쓰벌... 나 진짜 뒈질 뻔 한 거야?”
이은지가 불안한 눈으로 고개를 푸욱 숙이자 나연누나가 입을 열었다.
“이은지씨.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죠?”
“사... 상황이요?”
“당신들이 어떤 의뢰를 받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일명을 건드렸다는 것이 중요하죠.”
일명? 나는 일명이란 단어가 상당히 낯이 익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바르르 떠는 이은지를 바라본다.
“이... 일명...을 건드렸다니 무슨 말이신지...”
이은지는 일명이라는 말에 상당히 두려운 반응을 보였다.
뭐지? 사람인가?
“내가 일명그룹의 딸이라는 것은 몰랐나 봐요?”
이에 이은지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일명그룹이라니.
설마 그 유명한 대기업 일명을 말하는 건가?
일명그룹이라면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재벌그룹이다.
나는 냉정하게 이은지를 바라보고 있는 나연누나를 향해 시선을 가져간다.
평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일명그룹의 딸일 줄이야.
황금수저를 넘어 다이아몬드 수저이지 않은가?
그나저나 내 다이아는 팔렸나 모르겠네.
‘씨발... 사이즈가 너무 크잖아?’
내 여자로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오랜 시간을 봐 왔다.
그런데 그 여인이 올려다보지 못할 커다란 나무였을 줄이야.
고아인 내 주제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위치의 그녀였다.
괜스레 입맛이 쓰게 느껴지는 것을 느끼며 턱을 긁적였다.
제대로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다.
나연누나의 얼굴이 살짝 돌아 내시선과 마주쳤다.
괜스레 민망해진 나는 얼굴을 돌려 버렸다.
지금 내 표정이 어떠할지 알 수 없던 까닭이다.
‘젠장.’
그런데 나연누나에게서 가문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이 이면과 관련된 가문이었다니.
이건 또 새로운 충격이다.
그러면 다른 재벌그룹도 관련이 되어 있을까?
어쩌면... 리엔이 말한 회사도 그런 대그룹이 관련이 된 걸까?
“그... 그런 말은... 듣지 못했어요... 죄... 죄송합니다. 당장에 동료들에게... 이... 이런...”
횡설수설하던 이은지는 마지막에 말끝을 흐렸다.
지들이 전파를 통제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하아... 열시에... 열시에 이곳으로 향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요.”
이은지는 일성이라는 이름에 순순히 자신들의 계획을 밝혔다.
그녀의 말에 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해 본다.
지금 시각은 9시 20분.
앞으로 40분 후면 동료라는 놈들이 이곳을 들이닥칠 것이다.
“몇 명인가요.”
“세... 세 명입니다...”
일성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크기는 큰가보다.
나연누나가 묻는 족족 대답이 튀어나온다.
“당신들은 이곳에 이면의 경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나요?”
“네에~?”
나연누나의 말에 경악에 찬 눈을 드러내는 이은지.
“이 근처에는 이면의 경계가 있어요. 이런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겠죠?”
“어... 어떻게... 마... 말려야 해요...”
그래. 네년이 말 안 해도 말리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속으로 그 말을 곱씹으며 이은지를 노려보았다.
“어쩐지... 이번 의뢰... 너무 쉬워 보인다 했어... 으드득...”
지금, 이빨을 갈 사람은 여기 있는데 홀로 분노하는 이은지를 보며 입을 열었다.
“누가 의뢰한 거지?”
“그건...”
“어차피 그 의뢰자 놈은 니들이 다 죽어도 상관없다 여긴 것 같은데?”
“.......”
“이렇게 된 거 순순히 협조하는 게 좋지 않겠어? 아니면 뒤질지도 몰라 짜증나는 상황에서 얻어터지기라도 해야 입을 열거야?”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야리는 개 쌍년이었다.
일성은 무섭고 내 주먹은 우스운 모양이다.
괘씸한 년.
더 무자비하게 팼어야 했는데.
지금 나연누나가 옆에 있어서 가만히 놔두니까 가마니로 아는 것 같다.
그래도 주제 파악은 한 것인지 묻는 말에 대답은 해 온다.
나중에 두고 보자. 이년아.
아까 했던 다짐은 필히 지켜 줄 테니 말이야.
“사냥꾼 웹에서 의뢰가 들어왔어요.”
“쌍둥인가하는 놈들 말이지?”
“네? 그것까지는...”
“의뢰 조건이 뭔데?”
“두당 2억. 당신은... 5억.”
“헐~ 아주 작정을 했구만. 5억의 현상금이면 대한민국 최고 현상금 아닌가?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이제 동료들에 대해 읊어봐.”
이은지의 미간이 또 짜증스럽게 변한다.
순간 욱하는 것을 가까스로 달래며 빤히 바라보고 있자.
낙담한 듯 다시금 입을 연다.
저렇게 열 거, 꼭 저따위 표정을 해야 하나 싶다.
그래 봤자 지한테 좋을 건 없을 텐데.
생각보다 자존심이 상당한 듯하다.
“둘은 전문적인 용병을 했던 이들이에요. 사냥꾼이 되기 전부터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에요.”
“거 살벌한 놈들 이구만.”
“그리고 한 명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보통 사람은 아니에요. 그는 퓨리다크니스를 주사하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초인이거나 인간이 아닌지도 모르죠.”
다른 종족도 사냥꾼으로 활동하는군.
퓨리다크니스가 없이 사냥꾼 생활을 이어 나간다는 것은.
인외의 존재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니면 초인이거나.
나는 물었다.
“회사에 대해 알아?”
“회사요? 어떤... 회사...?”
미간을 좁히며 눈을 찌푸리는 것으로 보아 모르는 모양이다.
나는 이은지에게 향했던 시선을 나연누나에게로 돌렸다.
눈이 마주친 나연누나는 살짝 당황한 얼굴을 내비친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나연누나는 회사를 의미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음...’
그렇다고 지금 묻기에는 그렇고.
일단은 사냥꾼들의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결계는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지?”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없어져요.”
나는 답답하다는 눈길로 윽박질렀다.
“이 빡 대가리야. 누가 그 걸 물어본 거야? 당장에 나갈 방법을 말하라는 거지?”
“뭐... 뭐라고요?”
빡 대가리라는 말에 발끈하는 이은지.
“어? 눈 안 풀어? 지금 한번 해 보자는 거야?”
“흥! 만약에 경계가 터지면 한 사람의 힘이라도 필요할 텐데요?”
어쭈? 이 쌍년이 갑자기 뻣대네?
“너 같은 년 협조는 필요 없어. 그냥 뒤져라.”
나는 주먹을 들어 올리며 뇌전을 피워 올렸다.
파지직. 파직.
“지... 지금 정말 날 패려는 거예요!?”
“아니. 그냥 저세상으로 보내려고.”
터억.
그때 나연누나가 다시 내 손을 잡아 이를 저지한다.
“지금은 참아.”
“후우... 우릴 죽이려던 거 생각하면 정말 못 참겠어. 그런 주제에 아직도 저렇게 고개가 뻣뻣하잖아.”
안도하는 이은지의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눈을 한껏 째려주었다.
“물을 건 다 물었어?”
나연누나의 말에 나는 더 물을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음...”
그러던 중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떠오른 것이다.
그 운영자라는 새끼들은 정욱아저씨에게도 꼬리를 붙였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확정된 지금.
어쩌면 상연누나도 위험할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자 또다시 광기가 도질 것만 같다.
만약에 상연누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정말로 참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단숨에 이은지의 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가 그녀를 공격이라도 하는 줄 알고 저지하려는 나연누나가 움직인다.
하지만 내 손이 먼저 이은지의 턱에 닿았고.
그녀의 턱을 강하게 움켜 쥘 수 있었다.
“으윽!”
그리고 뒤 늦게 도착한 나연누나의 팔목을 반대 손으로 잡아챘다.
터업.
놀란 나연누나의 표정이 눈에 들어오지만.
돌아보지도 않은 채 이은지의 눈을 정면으로 직시했다.
내 눈은 그 어떤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은지. 마지막으로 묻겠다. 의뢰는 여기 있는 이들에 대한 것이 전부냐?”
덜덜덜.
턱을 잡힌 이은지의 몸이 과하게 떨려온다.
몸을 빠져나온 뇌기가 으르렁거리며 넘실거렸다.
이에 나연누나도 내 손을 떨쳐 내고는 뒤로 몸을 빼 낸다.
나연누나에게까지 위협을 가하진 않았지만, 사방으로 튀는 뇌전은 그만큼 위협적으로 보인다.
“그... 그... 흐읍...”
나는 더욱 뚫어지게 이은지를 쏘아보았다.
내 손은 어느새 그녀의 턱에서 목으로 이동했다.
“컥... 컥컥... 으윽...”
파직... 파지직.
손을 타고 흐르는 스파크에 이은지의 몸이 마구 들썩인다.
“이... 인한아!”
성기형의 음성이 귓가를 울린다.
하지만 나는 더욱 험악한 눈으로 이은지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말해.”
“커억... 컥... 의... 의뢰는 두 가지... 큭...”
“두 가지라...”
나는 이은지의 목을 쥐었던 손을 내팽기치 듯 뿌리쳤다.
그 말만으로도 이미 짐작을 한 것이다.
쿠당탕.
“흐윽!”
의자 채 바닥에 엎어지며 짧은 신음을 흘린 썅년의 시선이 두려운 듯 나를 향한다.
나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만약에 상연이나 정욱아저씨가 잘못되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될 거야. 그들이 제발 무사하기를 비는 게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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