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냥꾼.(114)
2. 사냥꾼.(114)
휴대폰으로 연락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자기들끼리는 주고받는 암호 같은 것이 있을 거다.
그런 내 생각대로 이은지는 순순히 이를 시인했다.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었다.
“그래? 그럼, 그 암호로 걔들을 불러내도록 해.”
사안이 사안인 만큼 이은지도 이에 동의하는 모양.
“알겠어요. 그럼, 우선 이것부터 풀어 주세요.”
“뭐? 널 어떻게 믿고 풀어달라는 거지?”
내가 도끼눈을 하고 째려보자 이은지가 몸을 떤다.
조금 전의 일로 조금은 내가 두려워진 것 같다.
저년이 쫀 것에 만족을 한 나는 그녀를 더욱 째려봐 준다.
“숲에 들어가 암호를 표시해야 해요. 그러면 지정한 곳으로 그들이 올 거예요.”
내가 턱을 매만지며 게슴츠레하게 바라보자 말을 덧붙인다.
“경계가 터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엉뚱한 짓은 하지 않아요. 목숨은 누구나 하나뿐 이니까요.”
“그래?”
그러면서 나연누나와 성기형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연누나와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얼빵한 표정의 성기 형.
“그러면 같이 가서 표시하도록 하지.”
“알겠어요.”
그녀는 감시를 한다는 말에도 흔쾌히 동의했다.
확실히 목숨이 걸리다 보니 배신 때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결박했던 것을 풀어 주자 굳을 몸을 풀며 스트레칭을 하는 이은지.
“가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오히려 더욱 적극적이지 않은가.
이은지가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내가 그 뒤를 따라나선다.
그 뒤로 나연누나와 성기형이 따라 나왔다.
나는 그런 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 혼자 다녀와도 되는데?”
“일이 틀어질 수도 있으니까 나도 함께 가.”
“그럼... 나도...”
“아니, 성기형은 안에서 기다려.”
“어?”
사냥꾼 새끼들하고 접전이 벌어지게 되면 성기형은 위험하다.
잠시 안면을 찌푸리고 고민하던 그.
“휴... 알겠다. 조심히 다녀와라.”
마음에 들지는 않으나.
자신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인지한 모양이다.
그렇게 나와 나연누나가 이은지의 뒤를 따랐다.
이은지는 숲으로 들어가 나무에 암호를 그려 넣었다.
저들끼리 정한 암호인 듯.
내가 봐선 뭐라 적은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사냥꾼들이 쓰는 암호인가?”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냥, 혹시 모르니 일 시작 전에 맞춰 둔 거지요.”
아... 그냥 급조한 거구나.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병신이란 티를 낸 거구나.
“생각보다 이 쪽 지식이 별로 없는 것 같네요.”
그리고 기회라는 듯 정곡을 찌르는 이은지.
‘씨발년.’
아무래도 이 년은 내가 쥐어 팬 것을 이런 말로 복수라도 하는 모양이다.
“헛소리 말고 마무리나 해.”
“흥!”
그그극. 그그극.
잔뜩 쫄았던 것이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기어오르다니.
깡이 좋은 것인지, 그냥 대가리가 맛이 좀 간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왕이면 깡이 좋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대가리가 맛이 갔다면, 미쳐서 헛짓거리라도 할지 모르니 말이다.
“됐어요.”
“그래? 뭐라고 한 건데?”
“변수가 생겼으니 일단 상의하자고 했어요.”
“그래? 어디서 기다리면 되는데.”
“별장 뒤 쪽 숲으로 오라고 했어요.”
그렇게 우리는 별 장 뒤 쪽의 숲으로 들어가 나머지 사냥꾼들을 기다렸다.
지금 시각은 9시 45분.
놈들이 작전을 실행하기 15분 전이었다.
그렇게 기척을 숨기고 기다리고 있으니 괜히 감각이 더욱 예리해지는 것 같다.
경계가 뿜어내는 기분 나쁜 기운이 점점 더 짖어지는 느낌이랄까?
이은지와 한차례 충돌을 일으키며 기운의 발산이 있었기 때문인가?
슬그머니 나연누나를 바라보니, 마침 누나의 시선도 나를 향해 있었다.
그러곤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아마도 내가 느낀 것처럼 나연누나도 이를 느낀 것 같다.
자신이 반푼이라고 했지만.
이 정도면 보통 사람이라 볼 수도 없다.
그렇다면 진짜 초인들은 얼마나 대단한 걸까 싶기도 하다.
내 능력이 발전하며 콧대를 세울라치면 어김없이 망치로 정수리를 내려찍히는 것만 같다.
그럴 때마다 세상의 주인공은 아닐까 싶던 내 마음은 어김없이 진창 속으로 쳐 박힌다.
‘쓰벌... 알면 알수록 끝이 없네.’
바스락. 바스락.
그때, 미약하게 낙엽이 밟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숲 안에 있으면서도 귀를 기울이고 집중해야 할 정도로 작은 소리.
아마 숲 밖이었다면 알아채지도 못했겠지.
물론, 보통 사람이라면 이곳에서도 눈치 채지 못 했을 거다.
당연히 나연누나도 들은 듯 얼굴이 심각하게 변한다.
그리고 멀찍이 사람형상으로 보이는 실루엣이 나타난다.
조금씩 가까워지던 형상이 전부 드러날 쯤.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은지. 뭐지?”
철컥.
무언가를 조작한 듯 철컥이는 소리.
너무나 미약하지만 훈련을 받을 때 질리도록 들렸던 소리 아닌가.
그것은 바로 총을 장전하는 소리였다.
“자... 잠깐!”
이은지가 다급한 목소리로 사내의 말을 받아친다.
“사정이 있어!”
그녀의 말에도 사내는 총구를 그녀에게 겨누었다.
그러곤 그가 고갯짓을 하자 뒤에 있는 놈들의 총구가 나와 나연누나가 있는 쪽으로 향한다.
우리가 숨어 있는 것을 알아채다니.
정확하게 겨누고 있지는 않지만, 눈 먼 총알에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놈은 생각 이상으로 감각이 뛰어난 놈인가 보다.
“그 사정이 배신인가?”
“아... 아니야! 우린 속았어!”
“속았다고? 무슨 말이지?”
“여기에 이면의 경계가 있다고!”
흠칫.
무심하게만 들려오던 사내의 목소리.
그 사내가 몸을 한 차례 떨었다.
“이면의 경계...?”
“그래!”
“그 말의 책임은 작지 않다. 그 것을 어떻게 안 거지?”
“저... 저들이 알려주었어.”
“그렇다는 것은 거짓일 수도 있다는 말이겠군.”
그 사이 나는 품에서 이미 권총을 꺼내 그들에게 겨누었다.
그리고 나연누나에게도 대검을 건넨 상황.
그렇다고 말을 꺼내 위치를 완벽히 드러낼 필요는 없다.
필요한 말은 이은지가 알아서 할 테니 말이다.
“이 바보들아! 목표들 중에 일성의 딸도 있다고!”
이은지가 버럭 하며 말했다.
그녀는 우리가 나서주길 바라는 것 같지만.
이은지가 저들에게 죽든 말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저들이 겨눈 총구가 치워지지 않는 이상에는.
사내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다.
“빌어먹을... 개 같은 운영자새끼들. 어이~ 우선 모습부터 드러내지?”
사내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말했다.
여전히 총구는 치워지지 않은 상황.
나와 나연누나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답답함이 밀려온 듯 이은지가 입을 연다.
“총부터 치워. 그래야 나오지 않겠어?”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 그런데 총을 치우라고?”
“그럼.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데?”
고민하던 사내는 결국은 결정했는지 총을 거두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두 사내도 총을 갈무리 한다.
이를 본 나는 몸을 일으키며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 내 손에 쥔 총은 놓지 않은 채.
“큭... 씨발... 저 새끼.”
사내가 속았다고 생각했는지 낮게 중얼거린다.
나는 그에게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어이~ 쏠 생각은 없어.”
“그러면 그것부터 좀 치우지? 그깟 총을 겨누었다고 유리한 건 아니라고~”
짐짓 여유 있는 척 입을 여는 사내.
어쩌면 놈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쉽사리 총을 집어넣지 못했다.
“유리한 게 아니라면 겨누고 있어도 되는 거 아니야?”
“큭~ 우리를 불러 낸 것은 협력하자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있어서야 어디 신뢰가 생기겠어?”
“나를 죽이러 온 놈들에게 신뢰를 바라지는 않아. 그냥 서로 이 상황만 피해보자고.”
사내를 자세하게 눈에 담는다.
180cm 정도의 키에 한눈에 보기에도 탄탄한 몸매.
짧은 스포츠머리와 날카로운 인상.
전형적인 군인과 같은 모습이지만.
사내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에게서 보이는 그의 본질.
웨어비스트.
호랑이의 얼굴이 언뜻 비춰진다.
곰은 이미 본 적이 있고, 늑대도 지나치듯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호랑이는 처음 본다.
“웨어비스트...”
그 말에 사내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정체를 특정하자 놀란 모양이다.
“어떻게 알았지?”
뒤에 있던 사내와 이은지도 몰랐던 사실인 듯.
경악스러운 얼굴로 스포츠 머리의 사내에게 시선을 던졌다.
“만났던 적이 있었나?”
“아니, 그냥 짐승냄새가 나서.”
“네놈은 협력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군.”
“오해하지 마. 그냥 내 능력일 뿐이니까.”
“그 말을 믿으라고?”
“죽이러 온 놈들을 신뢰하라는 것 보다는 믿을 만 할 것 같은데?”
그때, 나연누나가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자 스포츠머리의 사내가 나연누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당신이 일성의 딸인가?”
“맞아요.”
노랗게 눈을 빛내며 주시하던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군. 낯이 익어.”
“저를 아나요?”
“크큭... 이런 생활하면서 그 정도는 파악을 해야지.”
“그렇다면 이야기가 쉽겠군요.”
“과연 그럴까? 무사히 나간다 해도 우리가 무사할 거라는 보장이 없는데? 그 지독한 일성에서 딸을 노린 이들을 얌전히 놓아둘까?”
“저만 말을 아낀다면 될 일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믿지? 어차피 죽을 거라면 여기서 죽나, 나가서 죽나 마찬가지 일 텐데.”
“일단, 믿어달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군요. 하지만 분명히 약속하겠습니다. 일성은 절대로 당신들을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러곤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내 의중을 묻는 모양이다.
나는 날 죽이려고 한 놈들을 살려 보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은 협력해야 할 터다.
그리고 저 새끼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나는 개인인데. 내가 두려운 것은 아니겠지?”
“크크큭... 뭐, 좋다. 서로의 은원은 나가서 풀자고.”
어찌 되었든 서로 간에 협의를 본 것 같다.
나갈 때 까지는 두고 보지만.
밖에 있는 내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전부 찢어죽일 거다.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