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냥꾼.(115)
2. 사냥꾼.(115)
적당한 합의.
이미 결계를 쳐 놓은 이상 시간이 지날 때까지 누구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렇기에 결계가 풀릴 때까지 이런 불편한 대치를 해야만 한다.
저들이 총구를 치웠지만.
내가 치우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사냥꾼을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
저들은 그저 결계에 가둬놓고 여유롭게 우리를 잡으려 했을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해서 완전히 포기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나연누나가 일성의 일원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 연락도 닿지 않는 상황.
어떠한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별장 안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빠져나가는 것.
“총구는 이만 치우지 그래?”
앞마당으로 나오자 제일 처음으로 꺼낸 말.
“그럴 수 없다는 거 잘 알 텐데?”
스포츠머리 웨어비스트가 어깨를 으쓱인다.
1분 1초가 한없이 느리게만 느껴졌다.
더불어 숲의 공기도 점점 노골적인 위화감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기운의 충돌이 있게 되면 경계가 터질 수 있다 했는데.
아무래도 나와 이은지의 영향이 없지 않아 있던 것 같다.
창 안쪽에 이 쪽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성기형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기절했던 이들도 깨어났는지 두려운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는 일행들도 눈에 보인다.
총을 겨누고 있는 나와.
군복 비슷한 차림의 사냥꾼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대치를 보며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거다.
나는 성기형을 향해 손짓 했다.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성기형이 창을 열었다.
“형. 사람들하고 차에 타.”
“지금?”
“응.”
저들이 결계는 3시간이 유지된다고 했지만.
온전히 믿을 수는 없는 일.
다행스럽게도 내 눈은 결계의 유무를 파악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새벽이 넘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성기형이 사람들을 이끌고 현관을 나선다.
사냥꾼들이 그 모습을 위협적인 표정으로 바라봤다.
험악한 이들의 눈빛에 움찔한 표정의 일행들.
그 모습을 보며 낄낄 거리는 두 사내.
“도대체...”
의찬이형이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여직원 둘은 두려움으로 잔뜩 물들어 각각 성기형과 의찬형의 팔에 매달려 움츠린다.
“인한아.”
“응.”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일단, 차에 타. 그리고 내가 말하면 그때 뒤도 돌아보지 말고 빠져나가.”
“너는!”
결계가 깨짐과 동시에 나는 저들을 견제해야 한다.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가 없기에.
“형. 다른 사람들은 진짜 방해밖에 안 돼. 사람들 살리고 싶으면 내 말을 따라 줘. 나는 걱정하지 말고. 나가서... 나가서 다 설명할게.”
“큭...”
저들과 대면하기 전 성기형에게 결계라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임에도 그 말을 꿋꿋이 믿어보려 한 성기형.
성기형의 곰 같은 얼굴 위로 굵직한 물방울이 차오른다.
그때, 점점 크기를 불려가던 위화감이 그 크기를 급격히 불려갔다.
화들짝 놀란 내가 나연누나를 돌아봤고.
이를 느낀 것은 나와 나연누나만이 아닌 듯, 사냥꾼들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으드득... 이런 씨발...”
키가 작고 땅땅해 보이는 사냥꾼 사내가 이를 갈았다.
“형님... 이거 아무래도...”
홀쭉한 사내의 말에 스포츠머리 사내도 심각하게 표정이 굳어진다.
드드드드드드.
그리고 이어지는 지면의 울림.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땅이 마구 흔들린다.
“이런 씨발!”
숲의 중앙에서 퍼지기 시작한 녹색 빛이 어두운 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묘한 환각을 불러일으키듯 공간이 일그러진다.
마치 진득한 늪에라도 빠진 것처럼 몸이 늘어지는 느낌.
세상과 단절되는 그 느낌에 뒷머리 끝까지 한기가 스며들었다.
“뭐... 뭐야!”
“꺄아악!”
“지... 지진이야!”
차로 향하던 이들이 비명성을 토해내며 문을 열고 후다닥 탑승했다.
운전석으로 착석한 의찬이형이 시동을 걸며 외쳤다.
“왕성기! 강인한! 빨리 와!”
패닉에 빠져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
성기형이 내 어깨를 붙잡는다.
“인한아! 가자!”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스포츠 머리의 사내가 큭큭 거린다.
“크크큭~ 좆 됐구만. 어떻게 빠져나가려고?”
“끝났어... 으으으... 내가 이러려고... 이러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야!”
이은지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악했다.
이거 아무래도 정말 좆 된 것 같다.
이성적인 나연누나마저 표정이 무너져 버렸다.
“큭... 형...”
“인한아! 어서 가자고!”
이제는 우악스럽게 내 몸을 흔드는 성기형.
“강인한. 상황 파악은 했나 보군. 어쩔 수 없이 힘을 합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결계가 터지면 이를 처리하기 위한 이들이 올 거다. 그때까지 버티면 살 수 있는 희망이라도 있겠지. 뿔뿔이 흩어져 봤자 개죽음이라고.”
저 새끼의 말이 맞았다.
나연누나도 얼굴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인다.
“형. 빌어먹게도 저 새끼 말이 맞는 것 같아.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해. 형이 다른 사람들을 좀 챙겨 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방이 막힌 상황에서 도망갈 곳도 없었다.
“이런 씨발... 너랑 나연씨만 앞세울 수는 없다.”
성기형의 눈은 이미 각오를 마친 듯.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성기형은 움직이지 않을 터다.
사실 이곳을 벗어난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이곳에 있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빨리들 오라고!”
그 와중에도 인찬이형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오빠! 그냥 출발해요!”
“어서! 어서 가욧!”
계속해서 흔들리는 대지와 확연하게 주변을 가득 채운 녹색 빛.
저들에게는 그저 어둠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피부를 스치는 이 이질적인 기운을 확연히 느끼고 있을 터다.
나는 결정을 내렸다.
“의찬형! 차에서 내려! 빠져나갈 수 없어! 여기가 제일 안전해!”
그 말을 외치기 무섭게 승합차가 움직였다.
이면의 경계로 인해 나 또한 당혹스러운 상황이었기에.
결정이 늦어 버리고 말았다.
뿌연 먼지를 날리며 사라져가는 승합차의 뒤꽁무니가 보인다.
우리를 두고 간다고 해서 서운하서나 아쉽지는 않다.
떠나가기 전 분명 우리를 챙기기 위해 악을 써 댔다.
하지만 극한의 두려움을 끝내 견디지 못한 것일 뿐.
일반인이 이런 기운에 노출되고도 다른 이를 수습하려 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었다.
부우우웅~
다만, 저들의 생사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 여행은 결국, 나를 위해 준비된 여행이었으니 말이다.
괜한 사람들이 엮이고 말았다.
이금까지 몇 번의 위험들을 겪어 놓고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 같다.
이렇게나 허술한 내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인한아.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저... 저년의 농간에 넘어가서... 크흑...”
나는 그런 성기형에게 시선을 돌린다.
당장에라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릴 것처럼 일그러진 얼굴.
그리고.
성기형의 전신에서 희미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저건?’
왕성기. (가족.)
호감 : 100
신뢰 : 100
애정 : 100
성기형의 정보가 모두 100을 찍었다.
나에 대한 믿음이 확실시 되면서 그의 능력을 일깨울 수 있는 타이밍.
지금 상황에서 반겨야하는 걸까?
느껴지는 위화감으로 보아 하나의 손이라도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형 잘못은 없어. 애초에 수락한 내 잘못이야.”
“먼저 내가 주선을 한 거다. 그러니 너야말로 죄책감을 갖지 마. 사실... 지금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널 믿으마. 그러니 살아나가자. 꼭...”
성기형의 눈은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원망하지 않겠다는 듯 결연해 보인다.
그 눈빛을 보며 나는 이내 결정을 내렸다.
의찬이형을 붙잡지 못한 것처럼.
성기형이 무력하게 죽어 버린다면 그 보다 후회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성기형에게 손을 내밀었다.
스윽.
“형. 지금 내 손을 잡으면 형은 앞으로 평범하게 살 수 없을지도 몰라.”
성기형이 의문가득한 눈으로 나와 내 손을 번갈아 본다.
“하지만 무력하게 형이 무언가에 당하는 것은 볼 수 없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내 손을 잡아.”
“후회? 새꺄! 내가 후회 따위 할 리 없잖아! 넌 내 동생이야!”
우렁차게 외치며 성기형이 내 손을 움켜쥔다.
동시에 내 안의 뇌기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단전에 웅크렸던 기운이 팔을 타고 푸른 스파크를 발산한다.
그러곤 손을 통해 성기형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 이게!?”
파지직. 파직. 파직.
“으... 으아아아악!”
갑작스러운 성기형의 비명에 주변의 모든 이들이 놀라며 뒤로 재빨리 물러났다.
그러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한아! 왜!?”
나연누나의 눈에는 내가 성기형을 공격한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누나! 기다려!”
한동안 맞붙었던 성기형과 내 손이 떨어지고.
커다란 덩치의 성기형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린다.
야외임에도 성기형의 몸에선 엄청난 악취를 동반했다.
이에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더욱 멀리 떨어졌다.
“저 새끼, 뭐 하는 거야?”
“왜 지금 엉뚱한 사람을 공격해!? 그런데 왜 이런 악취가...”
사냥꾼의 두 사내가 중얼거리고.
얼마 후 바닥으로 쓰러졌던 성기형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천천히 자신의 몸을 훑어본다.
눈에는 알 수 없는 희열마저 비춰진다.
“강인한... 이... 이게 무슨 일이야..!? 힘이 넘쳐... 뭐... 뭐야 도대체!”
그러곤 발을 굴려 힘껏 뛰어올랐다.
커다란 덩치로 무려 2m를 훌쩍 넘게 뛰어오른 그.
그 모습에 나연누나와 사냥꾼들이 일제히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뭐야?”
“저 인간... 사냥꾼이었어? 아니면... 초인이야?”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서 있던 성기형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궁금한 것이 많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나연누나도 이를 알기에 궁금함을 묻지 않았다.
사냥꾼들이야 설명할 가치도 없는 놈들이고.
어차피 나가기 전까지만 협력할 따름이다.
누군가를 각성시키는 내 모습을 보았으니.
빠져나간 후, 살려두면 안 될 지도 모르겠다.
“뭔지는 몰라도... 특이한 능력을 가졌군.”
조금은 심각한 듯 스포츠머리의 사내가 웅얼거린다.
“하지만... 뭐, 전력이 하나 늘어났나?”
그와 동시에 거대한 초록의 물결이 우리를 향해 덮쳐왔다.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