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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144화 (144/297)

2. 사냥꾼.(116)

2. 사냥꾼.(116)

상처 입은 짐승.

머리가 굵어지면서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상처를 감추기 위해 더욱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고아원에서 생활하며 남들보다 성장이 느렸기에 많은 이들의 표적이 되었다.

너무나 두렵고 무서웠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더욱 사납게 날뛰었다.

그 것만이 나를 조금이라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라 여겼다.

짓밟히고 짓밟힐 때마다 더욱 거칠고 흉포하게 물어뜯었다.

그런데도.

작고 왜소한 채구와 순한 얼굴.

거기에 더해 고아라는 꼬리표는 나를 점점 궁지로 몰아넣었다.

매일 매일이 괴로웠고 지옥이었다.

아무리 날뛰고 날뛰어도 다수의 핍박은, 정신조차 여물지 않은 십대가 겪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웠다.

그런 나의 손을 잡아 준 최초의 사내.

그 사내가 바로 성기형이다.

일진 놈들에게 둘러싸여 다구리를 맞고 잔뜩 웅크리고 있는 나에게 내려왔던 하나의 빛줄기.

-뭐야 이 새끼? 왜 이렇게 엉망이야?-

다리 사이에 묻고 있던 얼굴을 들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학생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손이었다.

-살아 있냐? 일어나라.-

평범한 아이들에게는, 사회의 기초를 배우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추억을 만들어가는 학교.

나에게는 지옥 같기만 하던 그곳에 내려온 최초의 동아줄이었다.

***

나는 우리를 향해 덮쳐 오는 초록의 물결을 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제는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오래전 버릇.

항상 초조하고 불안했던 나는 손톱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물어뜯는 버릇이 있었다.

딱. 딱. 딱.

그런 내 손을 포근히 감싸오는 따뜻함이 전해진다.

옆을 돌아보자 새하얀 얼굴의 나연누나가 눈에 들어왔다.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나연누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 준비해!”

스포츠 사내의 고함이 터져 나오고.

두 사내가 재빨리 총을 꺼내 들며 초록의 물결을 노려본다.

잠시 패닉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이은지도 사냥꾼답게 이성을 되찾았다.

우리에게까지 명령질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지금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은 아니다.

‘정신 차리자!’

말도 안 되는 일은 꾸준히 겪고 있다.

이도 그의 연장선일 뿐.

반대쪽을 돌아보자 정신을 차린 성기형이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듬직하고 믿음직스럽다.

다만... 지독한 악취는 별개의 문제다.

이어서 명령을 내렸던 스포츠 머리 사내에게서 아우라가 뻗어 나왔다.

불끈. 불끈.

입고 있던 옷이 크게 부풀며 덩치를 불려갔다.

얼굴과 손 위를 뒤덮는 노란 털.

180cm 정도였던 사내의 키는 성기형을 뛰어넘을 정도로 커졌다.

매직아이의 흐릿한 시야가 아닌.

실제로 웨어비스트가 변한 모습은 처음으로 본다.

마치 인간과 호랑이를 적절하게 섞어놓은 모습.

노란 눈동자와 날카롭게 튀어나온 송곳니.

길게 자란 손톱은 짐승의 것에 더 가까웠다.

정염귀나 마물, 아귀가 변하는 모습을 보아왔지만.

이건 또 색다른 모습이다.

“쓰벌... 장르가 판타지로 바뀌었네.”

냄새를 풍기는 성기형이 그 모습을 보더니 중얼거렸다.

확실히 성기형의 간담은 보통 사람이라 보기 힘들 정도다.

고등학생 때 조폭들을 상대로 주먹질을 하던 것만 봐도 그러하다.

세상의 이면을 미리 겪어본 나도 아직까지 떨리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우리를 향했던 초록빛 물결이 모든 세상을 덮어 버린다.

화아아악.

잠시 현기증이 나는 듯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시야가 암전되었다.

암전되었던 시야가 돌아오고 정신을 차렸을 때.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웨어비스트의 모습으로 변한 스포츠머리 사내.

“크르르... 경계가 터진 것인가?”

이게 지금 경계가 터진 거라고?

나 또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주변의 모습은 초록빛의 물결이 우리를 덮치기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만 조금씩 일그러져 보이는 시야가 다르다면 다를 뿐.

“경계가 터진 건 아닌 것 같아.”

나연누나가 내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흠칫.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한 거지만 귀에서 느껴지는 숨결은 괜히 야릇한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 나연누나에게서 나는 향기가 코를 간지럽게 한다.

“어...어? 아닌 것 같다고?”

“크르르. 일성의 딸. 이면의 경계에 대해 잘 알고 있나?”

웨어비스트의 물음.

나연누나는 그를 슬쩍 바라보고는 이내 나에게 다시 속삭인다.

“아무래도... 경계가 영역을 먹어 버린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

“경계가 터질 때는 그곳에 있던 것들이 일제히 튀어나오거든.”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그 질문에는 나연누나도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보였다.

“나도 잘은 몰라. 그저 기록에 나와 있던 것일 뿐이니까. 이런 상황은 기록에 나와 있지 않아. 결계가 터진 것을 본 이들은 아주 극소수거든.”

결국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나는 긴장을 풀지 않으며 주변을 계속해서 살핀다.

다소 이질적인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공기가 달라졌다.’

보통 숨 쉬는 것이 그저 물을 마시는 것 같다면.

지금은 마치 진하게 탄 소금물을 들이키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마냥 짜다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습하고 진득하게 달라붙는 불쾌감도 든다.

“크르르. 일성의 딸 말이 맞는 것 같군. 지금, 이곳은 이면의 경계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당장은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을 모양이군. 차라리 별장 안에 들어가서 앞으로의 일을 상의해 보는 것은 어떤가?”

웨어비스트의 말이 맞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제대로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서로가 적이었으나.

지금은 같은 편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것이 언제 동전 뒤집듯 바뀔지는 알 수 없으나.

“좋아.”

그렇게 조심스럽게 별장 안으로 들어왔다.

우선적으로 성기형에게서 너무나 지독한 냄새가 나기에 욕실로 들여보냈다.

웨어비스트는 부하 둘을 창 측에 배치시켜 경계를 지시했다.

커튼을 닫고는 약간의 틈만을 벌리고 밖을 주시하는 둘.

당연히 별장안의 불은 소등된 상태이다.

털썩.

웨어비스트가 거실의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며 입을 연다.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이지만 여기서 이에 곤란함을 겪을 이는 없다.

꾸준히 퓨리다크니스를 주입한 사냥꾼들은 보통사람들보다 육체의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

그 것이 축복이 아닌 부작용의 증상이긴 하지만.

“앉지?”

마치 주인이라도 된 양 권유하는 그.

굳이 지금 적대할 필요는 없기에 나도 소파에 앉았다.

그 옆으로 나연누나가 착석한다.

이은지도 반대편에 엉덩이를 묻었다.

초록빛의 물결이 덮치기 전과 다름없는 별장 안이지만, 살짝 일그러지며 울렁이는 시야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들어오기라도 한 기분이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욕실에서 냄새를 빼고 온 성기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파에 다가와 비어 있는 이은지의 옆을 힐끔거리던 그는.

콧방귀를 뀌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성기형의 새로운 사랑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이윽고 웨어비스트의 입이 열렸다.

“크르르...우선, 통성명부터 하지. 나는 보다시피 사냥꾼이다. 장수언. 그냥 편하게 장이라 불러라. 그리고 저 홀쭉한 놈은 득구, 옆에 땅딸보는 명우. 이은지는 알고 있을 거고.”

말을 마친 웨어비스트 장수언이 나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강인한.”

“김나연이에요.”

“왕성기요.”

우리도 짤막하게 이름을 밝혔다.

“크르르... 좋든 싫든 이곳에서 나가야 하는 것은 일맥상통하니. 서로 돕도록 하자고.”

범대가리가 대장을 자처하듯 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한눈에 보기에도 그가 경험이 제일 많아 보인다.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지지만, 주변에는 아직 접근하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무언가 나타날 때를 대비해 이곳에서 농성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그의 말에 안의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면의 경계라 생각되는 곳을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다소 날카로운 어조로 묻자.

“크르르...결계가 해제 될 시간이 다 되어 가는군. 그곳을 살펴보는 것은 어떤가?”

“결계를 확인하고 오자는 말인가?”

“크르르. 확인은 해 봐야 하지 않겠나?”

그의 말이 맞다.

어쩌면 결계가 해제되고 이곳을 손쉽게 빠져나갈 수도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럼 전부 그곳으로 이동하면 되는 건가?”

내 물음에 장수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곳도 지켜야지.”

문제는 누가 그 곳까지 다녀오느냐 이겠지.

그 말을 끝으로 모두는 입을 다물고 정적에 휩싸였다.

그렇게 계속해서 시간이 지나갔다.

어떠한 뾰족한 방법도 내어놓지 않은 채.

.

.

.

그러던 중, 고요한 정적을 깨우는 으르렁거림이 들여왔다.

-우우우우~-

-캬아아아~-

그 소리는 하나가 아닌 듯 점점 숫자를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밖을 살피던 홀쭉한 사내 득구가 말했다.

“대... 대장. 밖에...”

그의 말에 우리는 전부 창으로 몰려들었다.

어두운 숲속에 어른거리는 무언가.

그 숫자는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비척거리며 별장을 향해 걸어오는 악의.

그 불쾌함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간다.

“크르르! 모두 전투 준비. 득구는 옥상에서 저격을. 나머지는 2층으로 간다!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발포는 하지 마.”

장수언의 명령이 떨어지자 득구가 빠르게 옥상으로 향한다.

그가 저격총을 들고 옥상으로 향하자, 우리는 2층의 테라스로 향했다.

그러곤 테라스에 엎드려 별장으로 느릿하게 향하는 악의를 눈에 담았다.

흔들. 흔들.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눈에 들어온다.

아니. 그것은 팔다리가 달린 사람과 같았다.

다만 짓이겨진 살덩이는 이리저리 패여 있고, 썩어 들어가는 몸뚱이를 질질 끌며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

“좀... 비?”

그랬다.

살아 있는 시체를 연상시키는 그것들은 영화에서 보던 좀비와 닮아 있었다.

“흑마법...”

내가 건넨 대검을 든 나연누나가 중얼거렸다.

“크르르. 흡혈귀 마법사라도 있는 것인가?”

아무래도 나연누나나 장수언은 저것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는 좀비에 흡혈귀 마법사라니.

놀라는 성기형과는 달리 나는 이상하리만치 무덤덤하다.

초록빛의 물결이 덮치기 전까지의 떨림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오히려 저것들을 보자 깨부수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에 맞춰 뇌기가 단전에서 들끓는다.

마치 당장에라도 저 삿된 것들을 멸하라는 듯이.

“크르르. 일성의 딸. 가능한가?”

장수언이 나연누나에게 말을 건넸다.

이에 고개를 저어 보이는 그녀.

“당신은 내 소문에 대해 듣지 못했나 보군요.”

“설마... 크르르...”

이에 장수언의 범대가리가 일그러진다.

그는 나연누나에게 상당한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맞아요. 제가 일성 막내딸이에요.”

“어쩔 수 없군. 크르르르...”

알 수 없는 말을 나눈 둘.

장수언의 시선이 다시금 좀비들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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