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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145화 (145/297)

2. 사냥꾼.(117)

2. 사냥꾼.(117)

느릿느릿 다가오는 좀비.

그 숫자는 최소 오십에 가까워 보인다.

“크르르... 모두 나가서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조용히 낮게 깔고 내뱉는 그의 말에 나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저 놈들을 나가서 처리한다니 거부감이 살짝 든 것이다.

“모두 나가자고?”

“크르르. 총을 쏘면 다른 것들이 몰려오지 않겠나?”

사냥꾼웹에서 구한 총기는 일반 총과는 달리 소음기능이 말도 안 될 정도로 향상되어 있다.

총이라는 것이 아무리 소음기를 달았다 해도, 엄청난 소음을 동반한다.

아무리 소음이 적다해도 결국은 총.

저런 것들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 지금.

유인을 자처할 필요는 없다.

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연누나와 성기형을 바라본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연누나와.

긴장한 듯 한껏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성기형.

“인한아. 걱정하지 마라. 내가 방해 될 일은 없을 거다.”

장수언도 그저 일반인에 불과했던 성기형이 모종의 힘을 얻는 걸 보았다.

그렇지만 성기형은 세상의 이면을 처음으로 마주한 상황.

인력이 아쉬운 지금.

어이없이 잃는 것만큼 아까운 것도 없다.

“크르르. 저것들은 생각보다 위협적이지 않다. 보통 성인 남성의 두 배 정도 힘을 지닌 것 같지만, 움직임은 보다시피 아주 느려. 공략방법은 뇌를 헤집어 놓으면 되다.”

고맙게도 그 것을 정확하게 깨닫고 있는 장수언은 아낌없이 정보를 풀었다.

“크르르. 두개골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단단한 부위는 아니야. 일반인도 힘이 좋은 편이라면 단숨에 단검으로 꿰뚫을 수 있을 거다.”

.

.

.

.

.

혹시 모를 상황에 저격을 해 줄 득구를 옥상에 둔 채.

모두 1층으로 내려왔다.

총기는 갈무리하고 각자의 날붙이를 손에 들었다.

“후욱... 후욱... 후욱...”

모두가 긴장하는 가운데 유독 성기형의 숨소리가 더욱 거칠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따르는 긴장.

아니, 두려움.

성기형을 제외한 이들은 세상의 이면을 겪은 이들이다.

그렇기에 그의 반응을 새삼스럽게 바라보는 이는 없었다.

“괜찮아?”

“후욱... 후욱... 걱정하지 마라.”

“크르르. 준비들 되었으면 나간다. 놈들에게 둘러싸이지 않게 흥분하지 말고 주위를 잘 살피도록.”

하나의 전력이 아쉬운 지금.

그는 친절하게도 몇 번이나 주의사항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윽고 그의 손에 현관문이 조심스레 열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잠시 잦아들었던 놈들의 으르렁거림이 귓가로 스며들었다.

-크아아아...-

-쿠어어어...-

-크어어... 크어어...-

두리번거리며 마당을 배회하는 좀비들.

놈들은 아직 우리를 제대로 인식하지는 못한 듯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는 듯 보였다.

“산개!”

장수언이 외치며 튀어 나가자 좀비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한다.

그러곤 느린 몸을 이끌고 그를 향해 밀려들었다.

어슬렁거리던 것에 비해 몇 배나 빨라진 모습이지만, 그래 봤자 일반인이 경보를 하는 수준.

푸욱.

장수언의 날카로운 손톱이 좀비의 두개골을 그대로 파고들었다.

-끄르르르...-

이를 기점으로 모두가 좀비들의 뒤꽁무니를 향해 튀어 나갔다.

장수언이 처음 시선을 끌어 주는 그 순간에 더 많은 놈들의 두개골에 날붙이를 쑤셔 넣기 위해.

날렵하게 좀비의 뒤에 선 나연누나의 대검이 목을 깔끔하게 가르고 지나갔다.

서걱.

툭.

그 신속한 움직임에 나조차 놀랄 정도.

어딜 봐서 저게 반푼이라는 말인가.

사냥꾼 명우와 이은지도 좀비들의 머리에 대검을 쑤셔 넣고 있다.

퓨리 다크니스를 주사하지 않았음에도 상당히 날렵하고 깔끔한 동작.

확실히 전문가는 전문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육중한 몸을 날린 성기형이 좀비의 머리에 대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성기형의 단검은 머리를 제대로 찌르지 못하고 빗겨 나간다.

재차 단검을 찔러 넣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성기형의 대검은 좀비의 머리를 제대로 뚫어내지 못했다.

“제기랄!”

성기형의 탄식이 귓가에 박혀든다.

역시나 무기라는 것이 무작정 휘두른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것이 마음대로 된다면 정욱아저씨에게 그런 모진 훈련도 받지 않았겠지.

혹시나 해 한 템포 늦게 출발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성기형의 곁으로 다가들어 눈앞 좀비의 머리를 향해 손도끼를 찍어 내렸다.

콰직.

단단한 뼈를 파고들며 뇌를 후벼 파는 그 느낌이 그대로 손에 전해진다.

콱 틀어박힌 손도끼를 힘껏 뽑아내자 점액질마냥 걸쭉한 뇌수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 짜릿함에 여운을 느끼던 것도 잠시.

뇌기가 몰아치며 흥분이 밀려오지만 지금은 정신을 잡아 놓을 때다.

“형! 이걸로 써.”

“어어?”

눈앞에서 뇌수를 뽑아내며 허물어지는 좀비를 보며 성기형의 눈은 다소 멍해진 상태.

각오는 하였겠지만.

사람형상의 좀비머리에 손도끼가 박히는 모습은 상당한 충격을 준 모양이다.

“정신 차려!”

“헉! 미안!”

고개를 힘차게 털어 낸 성기형이 내가 내민 손도끼를 건네받았다.

“옆에 조심!”

그러곤 뒤돌아서서 썩은 팔을 휘젓는 좀비를 향해 도끼를 찍어 내린다.

콰직!

성기형의 눈이 잠시 흔들리는 것을 보았지만, 그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눈을 부릅뜬 그가 좀비들을 향해 재자 몸을 난리는 것을 보고는 나도 대검을 움켜쥐었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네 개의 팔.

두 마리의 좀비가 동시에 덤벼든다.

코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악취와 너덜거리는 살점이 크게 다가왔다.

‘느려!’

너무나 느리고 단조로운 공격.

내 대검은 놈들의 팔을 뱀처럼 교묘하게 파고들며 머리에 박혀 들었다.

푸욱.

단전에 똬리를 튼 뇌기가 힘차게 전신을 활보한다.

나머지 손으로 다른 놈의 머리를 붙잡았다.

살에 닿는 것이 상당히 불쾌했지만 실험해 볼 것이 있었다.

파지직.

손바닥을 통해 뇌기가 힘차게 피어오르며 놈의 머리를 뜨겁게 달구었다.

푸시식.

좀비의 머리는 단숨에 검게 그을리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뇌까지 단숨에 푹 익어 버린 듯 무너져 내리는 신형.

너무나도 손쉽게 처리한 좀비구이를 무심하게 내려다보고는 다른 먹잇감을 찾아 몸을 날렸다.

주변을 살피니 모두가 수월하게 좀비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웨어비스트인 장수언과, 나연누나.

나연누나의 몸놀림은 사냥꾼이 퓨리다크니스를 주사한다 해도 보이지 못할 정도로 대단했다.

실로 엄청난 신체 능력이다.

저것이 말로만 듣던 초인의 육체능력이라는 걸까?

어제의 나연누나와 오늘의 나연누나 사이에서 괴리감마저 느껴진다.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움직임.

장수언도 대단했으나 나연누나는 웨어비스트인 그보다 더욱 대단했다.

사냥꾼인 명우와 이은지도 나름 선전을 하고 있었다.

육체 능력이 진일보한 성기형보다 더욱 빠르게 좀비들을 처리하는 모습.

퓨리다크니스를 주사하지 않았음에도 성기형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크아아아!-

또 한 마리의 좀비가 나를 향해 부나방처럼 달려든다.

스걱.

빠르게 움직인 오른손이 놈의 목을 말끔하게 절단했다.

툭.

최대한 성기형에게서 떨어지지 않은 상태로 놈들을 처리해 나갔다.

아무리 육체의 능력이 갑작스레 진일보 했더라도 경험이란 중요한 것이다.

또한 넘치는 힘에 익숙해지는 것도 문제인 상황.

형이 적응할 때까지는 내가 이렇게 도움을 주는 수밖에 없다.

.

.

.

.

.

30분.

별장 주위로 몰려든 좀비들을 모두 처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다.

장수언의 말대로 그렇게 어려운 놈들은 아닌 덕에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다만, 명우와 이은지가 다소 지쳐 보일 뿐이다.

아무래도 퓨리다크니스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기에.

둘에게는 체력적으로 고된 싸움이었을 거다.

오십 정도라 여겼던 좀비들.

하지만 후에 더 몰려온 놈들 때문에.

땅에 드러누운 놈들의 숫자는 거의 백에 가까운 숫자였다.

싸움이 끝나자 피투성이가 된 몰골로 멍하게 서 있는 성기형에게 다가갔다.

“형.”

내 부름에 화들짝 정신을 차린 성기 형.

“그래... 인한아... 후우... 후우...”

“이것들은 산 사람이 아니야. 너무 신경 쓰지 마.”

걱정스러운 듯 말하자.

“고맙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말은 그렇게 하지만 괜찮을 리가 없었다.

늘어선 좀비들의 사체와 붉게 물든 땅.

살이 썩어 들어가는 악취와 비릿한 혈 향은 멀쩡한 사람도 돌아버리게 만들 만큼 지독했다.

더군다나 땅을 뒹굴고 있는 좀비들의 사체는 언뜻 보면 사람처럼 보이기에 그 충격은 더욱 상당할 터였다.

사냥꾼들이야 이보다 더 혐오스러운 것들을 겼어 봤을 터이니 문제가 없지만.

나연누나마저 익숙한 듯 멀쩡한 모습에 다소 놀랍기는 하다.

누나는 이런 놈들과 싸워 본 경험이 있는 걸까?

“누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물음에 고개를 돌리는 그녀.

끄덕.

“현장 경험은 있으니까...”

일성그룹에서 태어났다 해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저 남들의 위에서 고고하게만 생활할 것 같던 이들이 이런 역겨운 경험을 한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저 정도의 반응이라면 한두 번의 경험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그것을 들추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나도 그저 고개를 끄덕여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더 이상의 인기척은 없기에.

좀비들을 처리한 우리는 다시 별장 안으로 들어왔다.

일부는 밖을 경계하고 일부는 욕실로 들어가 좀비들의 피와 살점을 씻어냈다.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뜻밖에 싱거웠던 싸움.

이곳에서 벗어날 때까지 이 정도의 싸움이라면 참으로 다행이지 않은가.

어느덧 시각은 새벽을 넘어 아침에 다다르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검게 물들어 있다.

아무래도 이곳의 하늘은 밝아오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허기와 피곤이 몰려올 시간.

“간단하게 먹고 잠들을 자두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장수언에게 묻자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장수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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