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냥꾼.(129)
2. 사냥꾼.(129)
김나연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숨기고 외면했던 감정을 인정함으로서 모든 응어리가 풀려 버리는 느낌이었다.
지금껏 참아왔던 것이 억울할 정도의 황홀함.
이제껏 친한 동생으로만 여겨 왔던 그와의 관계가 다소 서먹할 것 같았지만.
일을 치르고 난 지금.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을 푸근하게 감싸줄 든든한 거목이 생긴 것 같았다.
그녀의 상황이 그러했기에.
혹은 동생이라고만 여겼기에.
외면했던 감정은 한 번 터지기 시작하자 거칠 줄 모르고 넘쳐흘렀다.
관계를 마친 후 자신의 비부를 살살 더듬어 오는 손.
“흐윽! 하... 하지 마.”
예민해진 음부는 살짝 손길이 스쳤을 뿐인데도 전기가 오는 것처럼 저릿저릿하다.
“뭐를? 이제 시작인데. 설마, 벌써 끝내려고 한 건 아니지?”
말과 함께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어온다.
열락으로 흐른 땀이 온몸에 범벅이 되었지만, 사랑스러운 아기처럼 안겨 오는 강인한을 막지는 않았다.
살과 살이 맞닿는 이 기분.
탄탄하고 탄력 있는 그의 몸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나 좋은 기분을 모르고 살았다니.
29년의 삶을 헛산 것만 같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자궁에 씨를 뿌림과 동시에 퍼지기 시작한 저릿한 뇌기.
어설프게나마.
간접적으로 들었던 섹스와는 다른 무언가.
몸 안에 진한 흔적을 남기겠다는 듯.
미지의 기운은 전신을 활보하며 그녀의 신체를 바꾸어 놓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느낄 수 없었겠지만.
김나연은 그에게서 시작된 기운이 자신의 몸을 바꾸는 과정을 고스란히 느꼈다.
몸속에 존재하는 모든 노폐물들을 태워 버리며 막혔던 모든 것들이 뚫려 버리는 것 같은 시원함.
그렇게 한 번의 섹스를 마쳤을 때.
김나연은 느낄 수 있었다.
반푼이로만 여겨졌던 자기 몸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절대로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일.
“너도 느꼈어?”
“응?”
“내 몸의 변화.”
“응. 질 안이 변했지. 이제는 뚫려 버렸으니까.”
농담으로 받아치는 강인한의 옆구리를 강하게 꼬집었다.
“아악! 아파아~”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아... 알았어~ 좀 놔 줘~”
김나연이 꼬집은 손을 놓아주자 강인한이 짙은 미소를 머금는다.
“일단! 더 예뻐졌네. 역시 내 여자야~”
내 여자라는 말이 부끄러웠을까?
“바... 바보! 그 말이 아니잖아!”
예쁘게 눈을 흘기는 그녀를 보며 재차 입을 연다.
“하하하~ 미안. 그래도 누나는 너무 예쁜걸~”
그 말이 싫지는 않은 듯 살짝 얼굴을 붉힌다.
“아마도 몸이 최상의 상태로 변했을 거야.”
김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상의 상태가 된 것뿐이 아니다.
그동안 알면서도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 가능할 것만 같았다.
오로지 직계에게만 이어져 내려온 초월자의 능력.
신체의 능력과 함께 따라오는 고유의 권능.
오로지 초인과 초인의 결합에서만 가능한 그 권능을 말이다.
일반인을 엄마로 둔 김나연은 불가능했던 것.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가능할 것만 같았다.
강인한의 말을 들으며 김나연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러곤 허공에 손을 들어 올리며 가능할 것만 같은 권능에 집중해 본다.
그 모습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강인한.
감겼던 김나연의 눈이 천천히 뜨여졌다.
너무나도 맑고 깨끗한 푸른 눈동자가 눈에 들어온다.
신비하고 황홀한 그 눈빛에 홀린 듯 그녀의 시선을 마주했다.
화아아악.
동시에 그녀의 손에서 청명하고 맑은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푸른빛의 오오라를 뿜어내듯 은은하게 비치는 푸른빛.
강인한의 시선이 그 신비한 빛으로 향한다.
“이건...?”
자신이 뿜어내는 뇌전처럼 푸른빛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진정한 커플이 된 것 같지 않은가.
“우리 가문의 고유 능력. 말하자면 권능이야.”
“정말?”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김나연.
“가능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어. 네 덕분이야...”
“정말 축하 해! 그런데 어떤 능력인데?”
궁금한 듯 묻는 그의 말에 김나연이 답했다.
“치유.”
“치유?”
“응. 최악의 경우 잘린 부분까지 이어 붙일 수 있어.”
“오오~ 완전 힐러잖아!”
이런 상황이 된 지금.
간절할 정도로 필요한 권능이다.
마치 짜여 진 각본처럼 발현된 권능.
‘혹시. 지금의 내 능력도 권능인가?’
“계속해서 쓸 수 있는 거야?”
“약간의 제약이 있기는 해.”
“제약?”
“치료하는 이의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거. 큰 정신력이 필요하겠지.”
“그럼... 꼭 좋은 것만은 아니잖아. 절대로 다치지 말아야겠네...”
“그 정도도 없이 대가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지. 그러니까 절대 다치지 마.”
“응. 절대 안 다칠게. 꼭 무사히 나가자. 내가 꼭 그렇게 만들 거야.”
“그래. 믿어...”
강인한은 믿는다는 그 말이 너무나 좋았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김나연을 바라보며 천천히 머리칼을 쓸어 넘겨준다.
관계하기 전보다 더욱 생기가 넘치고 아름다워진 그녀를 보자, 또다시 아랫도리에 힘이 쏠린다.
그녀는 알까? 지금 자신의 모습이 미치도록 아름답다는 것을.
“누나는 이제 내 여자야. 절대로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노골적인 강인한의 말에 김나연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말이 민망했는지 주먹으로 단단한 가슴을 콩콩하고 두드린다.
“그런, 민망한 말 좀 하지 마.”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바보...”
“그리고 이것도 이제 시작이야.”
강인한이 김나연을 강하게 안아 밀착하자 단단한 기둥이 그녀의 아랫배를 꾸욱하고 찔렀다.
다시 봐도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크기의 양물.
저렇게 큰 물건이 자신의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아...?”
“한 군데도 빠짐없이 내 흔적을 남길 거야.”
강렬한 강인한의 시선에 김나연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멈춰 졌던 열기가 달아오른다.
이제는 동생으로서가 아닌, 남자로서의 강인한이 그녀의 눈앞에 있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가져가겠다는 듯.
그 시선이 너무나도 강렬해 당장이라도 불타오를 것만 같았다.
더 퍼스트 나잇!
김나연과의 첫날밤은 이제시작인 것이다!
***
어둠이 물든 잿빛하늘.
마치 소설 속 아포칼립스처럼 밀어닥치는 좀비 때와의 혈전을 수차례나 이어왔다.
이런 상황이 된 것도 벌써 이삼일은 지난 듯하다.
과할 정도로 많은 장을 봐서 온 성기형.
덕분에 어찌어찌 음식을 섭취하고는 있지만.
그것도 곧 한계를 들어 낼 것이 자명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장수언의 말에 거실에 모인 모두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진다.
전부 피와 땀으로 얼룩진 모습.
계속해서 밀려드는 좀비들과의 혈투로 씻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좀비들이 재차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내가 불침번을 서던 그때부터였다.
처음의 좀비들과는 다른 개체가 섞여 온 것이.
그놈들은 일반 좀비들보다 훨씬 크고 단단했으며 움직임도 자연스럽고 빨랐다.
마치 너희의 능력을 보겠노라며 조금씩 강한 개체를 보내는 느낌마저 들었다.
살길을 찾아 나가게 된다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
거실에 앉아 있는 모든 이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인간은 익숙해진 환경의 변화를 극도로 꺼려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이는 누구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 고 있었다.
이곳에서 안주하고 있다가는 언제고 불행한 결말에 다다를 것이라는 걸.
나는 암막커튼 사이로 밖을 주시하며 홀로 독백을 한다.
“좆갔네... 씨바.”
참고로 나는 욕을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런데도 내 입에서 욕이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이겠지.
거기에 더해 또 한 가지...
시야에 보이는 암울한 잿빛하늘과 넓은 마당.
그 마당에는 좀비들의 시체로 꽉 들어차 있다.
창문이 닫혀 있음에도 은은히 세어 들어오는 지독한 악취.
그리고 멀찍이 주차된 아름다운 외형의 벤틀리가 쓸쓸하게 서 있다.
‘씨발...’
고작 한 번 몰아봤을 뿐인데.
수억이나 하는 차를 저대로 놓아두어야 할까.
속이 뒤집어지고 아까운 마음이 밀려들지만.
그깟 돈이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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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갈아 가며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나연누나도 청초한 원피스와 카디건을 벗어 버리고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무엇을 입어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예쁘다.
저 여자가 내 여자라고!
그런데 진한 로맨스를 꿈꾸고 온 그녀와의 첫 여행이 이런 판타지 속 아포칼립스물이라니.
이제는 이곳에서 꼭 살아나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그녀를 위해.
그리고 밖에서 기다릴 상연누나와 수지를 위해.
내 여인들을 위하여 나는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그래!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꽤 감명 깊게 읽었던 아포칼립스물이 생각나 버렸다.
내가 그 아저씨였다면 기둥을 제대로 후리고 다녔을 텐데... 쩝...
어찌되었든!
나 또한 옷이 엉망이기에 새 옷으로 갈아입고는 무기들을 점검한다.
나연누나에게 단검하나를 건넸고, 성기형에게 손도끼를 건넸다.
나도 단검하나와 총을 홀스터에 꽂아 넣고는 여분의 탄창도 잘 챙겨 넣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결연한 표정으로 준비를 마쳤다.
그러던 중 이은지와 눈이 마주친다.
나도 모르게 절로 찡그려지는 얼굴.
그녀도 그 시선을 느꼈는지 애써 고개를 돌려 버린다.
‘쌍년.’
사냥꾼 전부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시작점에 있는 저년이 유독 더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해도 어쩌겠는가.
지금은 협력해 살아나가는 것이 우선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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