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냥꾼.(131)
2. 사냥꾼.(131)
“다 끝났어...”
내 뒤를 따라온 덩치와 점핑들을 본 이은지의 눈이 패닉으로 빠져들었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저 숲에 몇 마리의 괴물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내 뒤를 따라오기라도 한 듯 바글바글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놈들을 바라보는 나 또한 놈들의 끔찍한 모습에 등이 축축하게 젖어간다.
“왜! 왜! 이쪽으로 다 몰고 온 거야!”
격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던 이은지가 돌연 나를 향해 절규를 내뱉는다.
“너 때문에! 죽게 생겼어!”
궁지에 몰려 좆같은 기분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 탓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이은지가 곱게 보일 리 없다.
내 입에선 자연적으로 욕설이 내뱉어진다.
“뭐라고? 이런 씨방년이!? 지금 내 탓을 하는 거야? 야이 쌍년아! 네가 우리를 이 딴 곳에 데려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있었겠어?! 어!?”
몸을 바들바들 떨며 살벌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은지.
이렇게 죽게 된 것이 그렇게도 억울한 모양이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황당함만이 들 뿐이다.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이기에 저딴 개 같은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좆같은 눈빛은 내가 아니라 저 괴물들에게 날리라고!
당장에 목숨이 위험함에도 저년부터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차오른다.
본능을 억지로 내리 누르며 협곡 아래를 살펴본다.
다행이라면 아찔한 높이의 협곡 아래는 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
협곡의 깊이는 너무나도 깊기에 못해도 100미터는 되지 않을까 싶은 높이.
저곳으로 뛰어내리면 살 가망성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이렇게 사방이 뚫린 곳에서 괴물군단에게 달려드는 것보다는 살 가망성이 높을 것 같았다.
애초에 놈들과 전투를 벌일 생각이었으면 숲이 나았다.
그 것이야 이미 늦어버렸지만.
나에게 이런 절벽이 다시 나타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뭐, 그래도 다행이라면 한 번은 경험이 있다는 것을 위안삼아야 할까?
그때는 이곳보다 높이도 낮고 육체 능력도 보잘것없을 때였다.
저 밑에 흐르는 물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지만.
한 번 뛰어내려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그냥 뛰어 내리기는 그렇고.
조금은 발악이라도 해 보고 결정해야겠다.
덩치를 상대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후에 도움이 되리라.
그 것은 내가 살아남아야 쓸모가 있겠지만.
각오를 다진 나는 지척까지 다가온 점핑과 덩치를 향해 달려 나갔다.
한 손에는 단검을.
한 손은 푸른 뇌기를 머금은 채.
“꺄아! 뭐 하는 거야! 죽을 작정이야!?”
미친년.
내가 죽을 작정이던 말던 무슨 상관이라고.
그것보다 소리치지 말고 돕기나 하던가.
“미친년아! 너도 거들어!”
“너 혼자 가서 뒤져 버려!”
이런 씨발.
저년이 아무래도 덜 맞은 모양이다.
미인을 패는 취향은 없지만.
저년의 농간으로부터 시작된 이 일이기에.
팬다는 것에 부담은 없다.
그렇다고 돌아가서 쳐 팰 수는 없으니 그냥 한 귀도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놈들과 내 거리는 급속도로 좁혀졌다.
애초에 크게 떨어지지 않았으니 놈들과 내가 맞닿는 것은 금방이었다.
나는 폴짝 폴짝 뛰어 공격해 들어오는 점핑들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공중에서 떨어지는 공격이라고 해 봐야 너무나도 단조롭기에.
놈들을 처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몇 번의 공방으로 익숙해지기도 했고.
-크에엑!-
-크엑!-
목을 부여잡고 나가떨어지는 점핑 두 마리를 보며 덩치를 향해 몸을 날린다.
-꾸어어어어!-
후웅. 후웅.
두터운 팔을 휘두르며 위협적으로 다가서는 덩치.
놈의 팔이 휘둘러 질 때마다 풍압이 몰아친다.
풍압만으로도 놈의 주먹에 담긴 힘이 절로 느껴진다.
덩치에 비해 매우 빠른 움직임이지만 스피드는 내가 훨씬 우위에 있었다.
“얼마나 단단한지 보자!”
바위처럼 커다란 주먹을 옆으로 흘리고는 비어 버린 옆구리를 향해 단검을 내질렀다.
가가가각.
놈의 피부는 돌이라도 되는 듯.
단검은 표면만을 긁어 버리며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
옆구리가 간지럽다는 듯이 빠르게 몸을 돌리며 주먹을 내리찍어 온다.
후우웅.
뒤로 몸을 빼 내려던 나는 그대로 뒤로 굴러버렸다.
어느새 깔짝거리며 다가선 점핑의 공격.
눈앞에 있던 내가 뒤로 구르며 목표를 잃어버린 점핑.
퍼억.
내가 맞을 주먹을 대신 머리로 받아 낸 점핑은.
덩치의 주먹에 그대로 짜부라졌다.
‘휘유. 살벌 하구만.’
주먹 한 방에 으깨지는 것을 확인하며 다가서는 점핑들에게 단검을 휘둘렀다.
노리는 곳은 전부 목.
좀비의 업그레이드버전답게 뇌를 헤집어 놓거나 목을 자르지 않으면 죽지를 않는다.
그때 덩치가 발길질을 해 왔다.
옆차기!?
거대한 덩치로 속도도 무시무시한데 날렵하게 옆차기까지 시전 하는 모습에 기가 질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단검으로 방어를 하며 흘리려 했다.
그러곤 이내.
무슨 실수를 했는지 깨닫고는 최선을 다해 땅바닥을 구른다.
이미 한 번 들었던 단검이 놈의 발끝에 치이며 손을 벋어나 버린다.
태엥.
“크헤엑!”
겨우겨우 피했다 싶었더니 얼굴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쿵. 쿵. 쿵.
나를 짓밟기 위해 떨어져 내리는 발바닥.
내 몸의 절반이나 되는 발이 떨어져 내리는 광경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오싹했다.
“으아아! 씨발! 그만!”
알아들을 리 없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굴리며 벌레처럼 바닥을 기며 소리친다.
뇌기가 더욱 거세게 몸 안을 주유했다.
살기위한 본능이 한계까지 쥐어짜는 모양이다.
바닥을 구르며 두 주먹에 뇌기를 듬뿍 담는다.
죽더라도 한 방은 먹인다.
“개새끼야!”
쿵.
떨어져 내린 덩치의 다리를 힘껏 가격했다.
누워서 내지른 주먹에 충분한 힘이 실리지는 않겠지만.
나는 충만하게 느껴지는 뇌기를 믿기로 했다.
파지지직.
퍼엉.
주먹에서 느껴지는 반발력.
그리고 주먹이 가격한 덩치의 종아리 부분이 시커멓게 물든 것이 보인다.
-끄어어어어!-
놈이 놀란 듯 화들짝 다리를 뒤로 빼 내었다.
그 틈을 타 벌떡 일어나 다가드는 점핑의 면상에 주먹을 틀어박았다.
뻐억. 뻐억.
시커멓게 변하며 무너져 버리는 안면.
점핑 두 놈이 가격당해 튕겨져 나간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덩치의 안쪽으로 단숨에 파고들었다.
뇌기에 적중당하며 당황한 것인지 부산스럽게 팔을 휘두르는 덩치.
몸을 살짝살짝 비틀며 다가가 그대로 팔을 위로 쳐 올린다.
퍼억.
뇌기를 품은 주먹이 놈의 턱에 적중되었다.
-꾸어어어어!-
쿵. 쿵.
머리를 휘저으며 비틀거리며 주춤하는 덩치를 향해 도약했다.
타앗.
도약하며 몸을 휘감아 그대로 발을 내 뻗는다.
정확하게 덩치의 관자놀이를 향해 날카롭게 다가서는 뒤꿈치.
동시에 품 안에서 꺼내 든 권총을 난사한다.
타앙. 탕. 탕. 탕.
뻐억.
뒤꿈치가 덩치의 관자놀이를 뚫고 박히는 동시에.
나를 향해 뛰어들던 점핑들의 머리에 총탄이 처박혔다.
내가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몸놀림.
누군가가 본다면 영화의 한 장면과 같으리라.
더군다나 권총으로 정확하게 머리 중앙을 뚫어 버린 것도 놀라울 지경이다.
그만큼 내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타악.
내가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허공에서 절명해 떨어져 내리는 점핑들.
그리고 관자놀이가 뚫려 꿀렁꿀렁 진득한 피를 흘려내는 덩치가 비틀거리며 무너져 내린다.
나는 그대로 땅을 박차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파파팟. 파지직.
양손에 넘실거리는 뇌기가 잿빛어둠을 파랗게 물들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피스톨 샷.
마구 내뻗는 두 주먹이 덩치의 단단한 겉가죽을 두드렸다.
두두두두두.
퍼퍼퍽. 퍼퍽.
검게 그을리며 으깨지는 덩치의 단단한 갑주.
-끄어어어...-
“죽어라!”
연타를 먹인 즉시 장전을 하듯 팔을 힘껏 잡아당긴다.
그러곤 놈의 배를 향해 힘껏 쏘아냈다.
뻐어엉.
담긴 힘이 얼마나 컸는지 육중한 놈의 몸체가 수 미터나 밀려나며 땅을 굴렀다.
별거 아니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욱 강한 모양이다.
-키에에!-
-캬아악!-
호들갑을 떨던 점핑들이 덩치의 빈자리를 매꾼다.
-꾸어어어어!-
-꾸어어!-
쿠웅. 쿵. 쿵. 쿵.
그리고 들려오는 또 다른 덩치들의 괴음.
뒤쪽에서 불쑥 솟아오른 두 개의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흉흉한 기세로 귀찮다는 듯 점핑들을 쳐 내며 황소처럼 돌진한다.
이에 놀란 점핑들이 파도가 갈리듯 길을 내주었다.
아니, 강제로 길을 만들었다.
“최악이네. 쓰바.”
참고로 나는 욕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 입은 튀어나오는 욕을 집어삼킬 수 없었다.
마치 최후의 전장이라도 되는 듯 더욱 몰려 든 괴물들.
내 강함을 확인했지만.
저 두 마리와 점핑들을 동시에 상대한다면 필패.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내 힘을 더욱 정확하게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돌린 시선에 경악으로 물든 이은지의 얼굴이 들어온다.
예쁘기는 하다.
악연이 아니었으면 따 먹고 싶을 만큼.
그렇다고 용서가 되는 건 아니다.
‘개 같은 년이 돕지도 않아?’
내가 발악하는 동안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 자체도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등을 돌려 달리자 금세 협곡의 끄트머리에 다다랐다.
“개 같은 년아! 살고 싶으면 도와야지!”
버럭하고 치는 호통에 이은지가 화들짝하고 놀랐다.
위기라도 느낀 듯 방어 자세를 취하는 그녀.
나는 거리낌 없이 그녀의 몸통을 발로 밀어 차 버렸다.
“까악! 크흑!”
덩치에 비해 너무나도 가냘픈 이은지의 몸은.
날듯이 떠밀려 협곡의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 이런 개새꺄악!”
“크크큭~”
나는 허우적거리는 이은지를 시선에 담으며 미련 없이 몸을 날렸다.
등 뒤로 점핑들과 덩치들의 끔찍한 아우성이 들려온다.
붕 하고 떴던 몸이 빠르게 협곡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번지점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아찔함.
스카이 점프정도면 비교할 수 있을까?
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
그리고 이은지의 자지러지는 비명성도 귓가를 어지럽힌다.
“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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