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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160화 (160/297)

2. 사냥꾼.(132)

2. 사냥꾼.(132)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충격.

까마득한 높이에서 물로 떨어진 충격은 생각 이상으로 어마어마했다.

위에서 보았던 것과는 다르게 놀라울 정도로 거센 물살.

어찌나 물살이 강한지 내 육체 능력으로도 몸을 가누기가 힘겨울 정도다.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은 나는 간신히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푸확~”

들어 올린 시야에 비가 내리듯 하늘에서 떨어지는 괴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뒤에서 밀어붙이는 탓에 선두에 있던 놈들이 허우적거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다리를 단단히 붙잡은 누군가의 손.

그 손은 절대 죽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마구 잡아당긴다.

다리를 붙잡고 올라오며 허리까지 도달했다.

그러곤 불쑥 튀어 올라온 다른 손이 내 머리칼을 움켜쥔다.

덕분에 몸을 가누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푸화악! 푸악! 카악!”

죽음을 느낀 인간은 때로 초월적인 힘을 발휘한다.

더군다나 떨어지며 퓨리다크니스까지 가슴에 꽂아 넣은 이은지의 삶에 대한 욕망은 실로 대단했다.

“꺼억! 꿀럭! 푸하!”

정신없이 내 얼굴을 마구잡이로 잡아채는 이은지의 손길 덕에 목구멍으로 물이 마구 들어찼다.

단번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는 입에 들어온 물을 꿀꺽꿀꺽 삼키며 외친다.

“커억! 이런 쓰바! 놔! 이 미친년아!”

퓨리다크니스를 주사한 사냥꾼 따위는 나의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지만.

삶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이은지는 초월에 초월을 거듭한 듯 나조차 버거울 정도의 힘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패닉으로 돌아버린 눈.

겁에 질린 그녀의 눈은 이미 떨어낼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허연 눈동자로 희번덕거리는 것이 물귀신을 연상케 한다.

‘미친년... 무슨 힘이! 이러다 나까지 좆 되겠네!’

제 목숨 귀한 줄 알면, 남의 목숨 귀한 줄도 알아야 하거늘.

그런 년이 인간 사냥 의뢰를 받았다는 것이 정말이지 괘씸하다.

덕분에 이런 최악의 상황까지 오게 되었고.

성기형과 나연누나와도 떨어지게 되었다.

비로소 나연누나와의 결실을 이루게 되었건만.

얼마 되지도 않아 생사도 불분명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의찬형과 두 여직원의 생사는 더욱 불투명하다.

절대로 용서가 안 되는 년임에 분명하다.

나는 강한 물살 속에서 주먹을 들어 올렸다.

‘떨어져! 쌍년아!’

그러곤 가차 없이 이은지의 얼굴을 가격했다.

퍼억.

물에 방해를 받아 충분한 힘이 실리지 않았는지 아랑곳 않고 나를 잡아채는 손길.

나는 인정사정없이 이은지를 마구 가격했다.

퍼억. 퍼억. 퍼억.

누가 본다면 잔인함의 극치가 여길 수 있겠지만.

나는 나를 해하려 한 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정도로 후한 성격이 아니다.

“흐악! 사... 살려 줘! 꺄악!”

내 주먹에 오히려 정신이라도 차렸는지 울부짖듯 외치는 이은지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어낸다.

“제... 제바알! 커...컥... 컥!”

얼마나 실랑이를 벌였을까.

그녀가 잡아채는 손에 힘이 빠져간다.

반은 정신을 잃은 듯 탁하게 풀린 눈동자.

엉망이 된 얼굴은 차마 눈 뜨고 바라보기 힘들 정도다.

그러던 이은지의 손이 힘없이 떨어져 내린다.

퓨리다크니스의 영향으로 엉망이 된 얼굴이 눈에 뛰게 회복이 되고는 있지만.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결국, 이은지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좆나 끈덕지네.”

그렇게 이은지를 떼어 내고는 강을 빠져나갈 곳을 찾으려는데.

덥썩.

또다시 다리를 강하게 움켜쥐는 손.

덕분에 얼굴이 또 물에 감겨 버린 나는 다량의 물을 뱃속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

“후욱... 후욱... 후욱...”

찰팍. 찰팍. 찰팍.

힘겨운 숨을 내쉬며 물속을 벗어나는 내 손에는 누군가의 머리칼이 움켜줘 있었다.

정신을 잃었음에도 끝까지 내 다리를 잡고 놓지 않았던 이은지.

“하악... 하악... 끈질긴 년.”

정말이지 지독하게도 삶에 애착이 큰 년이다.

죽어서 사후강직이 와 내 다리를 꽉 잡고 굳은 것이 아니라는 듯.

그녀의 몸은 가늘게 전신을 떨며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이은지의 머리칼을 그대로 움켜쥐고 완전히 뭍으로 걸음을 옮겼다.

적당히 걸어 나와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털썩.

온몸의 진이 다 빠진 듯 손가락도 움직일 힘이 없다.

나는 눈앞에 미친 듯이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막상 나와서 보니 태풍과 폭우로 불어난 물의 범람에 비할 바가 아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온몸이 찌부러졌을지도 모를 정도다.

물속에서는 몰랐으나.

이렇게 밖에 나와 위협에서 벗어나고 나니.

온몸이 망치로 때려 맞은 듯 욱신거린다.

어쩌면 정말로 물에 빠져 익사했을지도 모르는 상황.

그 상황은 저 빌어먹을 년 때문에 현실이 될 뻔했다.

움찔. 움찔.

시퍼렇게 변한 얼굴로 경련을 일으키는 이은지.

잔뜩 들이마신 물로 인해 기도라도 막힌 것인지 숨을 못 쉬는 듯하다.

그래도 퓨리다크니스의 영향인지 끈질긴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러던가말든가 이은지의 얼굴에서 시선을 외면한다.

저딴 년을 살리기 위해 인공호흡을 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없다.

그때, 다리를 움켜쥔 이은지의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마치 살려달라고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듯.

간절함이 느껴지는 움직임.

“카악. 퉷!”

나는 까끌한 목을 가다듬으며 입에 모인 침을 거칠게 내뱉었다.

절로 찌푸려지는 인상.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온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만든 원흉.

당장에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을 판에.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왜란 말인가.

“에이! 씨발! 짜증나네. 그래! 네가 쉽게 죽으면 재미없지. 네 바람대로 살아남은 것이 얼마나 후회되는지 깨닫게 해 주마!”

비척비척 몸을 세우고는 이은지의 위로 이동했다.

여전히 놓고 있지 않은 손이 짜증났지만.

구태여 빼 내지는 않았다.

심폐소생술이야 대한민국 남자라면 몇 번쯤 연습경험이 있기에.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우선 평평한 바닥에 눕혀야 하지만.

그딴 것은 생략했다.

살던 죽든 그것은 이은지의 운에 달린 것.

그리고 손을 가져가 가슴부위를 더듬어 중앙의 뼈 부분을 찾아냈다.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말랑한 가슴을 더듬게 되었지만.

기절한 여자의 몸을 더듬는다는 죄책감 따위는 일지 않는다.

제법 말랑말랑 보드라운 가슴을 몇 번 주물러보고는.

명치 아래쪽 가슴뼈 부위에 양손을 얹었다.

그러곤 체중을 실어 힘껏 압박을 가한다.

갈비뼈가 나갈 수도 있겠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

갈비뼈가 부러져 장기를 찌르게 되어도 다 제 운명이라 생각했다.

가슴을 몇 번이나 압박하며 눌러준 후.

고개를 살짝 젖힌 후 기도를 확보하고 코를 막았다.

그러곤 입술을 가져가 숨을 후 하고 불어 넣는다.

가슴이 볼록하게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한 번 더 숨을 들이켜 불어 넣어 주었다.

그래도 여자의 입술이라고 제법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나는 그 작업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반은 야매와 같은 심폐소생술.

세 번인가 반복했을 때, 이은지의 몸이 움찔하고 반응해 왔다.

“쿨럭! 컥! 컥! 컥!”

정말로 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끄어억! 허억! 컥!”

막혔던 숨을 토해내며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온다.

한참을 요란하게 쿨럭이던 이은지.

그녀의 떨리는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다... 당신...”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

“뭐.”

퉁명스럽게 바라보는 나를 향해 갑자기 입을 다무는 그녀.

“.....”

“.....”

말이 없는 이은지를 불만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이은지의 입이 열리고.

“살려 줘서... 고마워요...”

“지랄.”

내 입에선 고운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 말에 푸욱 하고 고개를 숙인 그녀.

“미안합니다...”

나는 그저 시선을 돌려 외면하고는 말없이 휴식을 취했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이은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으윽!”

퓨리다크니스의 효력이 떨어진 것은 오래.

완전히 회복이 되기 전 효력이 떨어졌기에 온몸에 격통이 오는 듯 이은지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다.

***

적당히 체력을 회복한 나는 몸을 일으켰다.

물길에 쓸려오면서 뭍을 찾아 겨우 빠져나오기는 했는데.

깍지 바르게 솟아있는 이 절벽을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족히 100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높이.

처음 뛰어내렸을 때는 흐르는 물이 꽉 들어차 보였기에 가능했지만.

이 곳을 오르다 떨어지면 그대로 땅으로 추락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떻게든 올라가려면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그 정도의 모험을 할 담력이 없다.

아무리 나라도 저 높이에서 떨어지면 즉사라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하다.

그러던 중 잿빛으로 우중충한 가운데 동공으로 보이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보통사람이라면 발견할 수 없었겠지만.

내 시야에는 확실하게 동공으로 보였다.

10여 미터 높이에 뚫려있는 동공.

어째서 저런 곳에 굴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적인 것이든, 인공적인 것이든, 지금 상황에선 가보는 수밖에 없다.

피곤하기는 하지만 나연누나와 성기형의 생사가 걱정되어 도저히 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몸을 움직이자 이은지가 불안한 시선을 보내온다.

나는 그 시선을 외면하고 절벽을 오르기 위해 다가갔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음성.

“저... 저도 데려가 주세요.”

나는 그녀의 음성을 무시한 채 힘껏 땅을 박찼다.

단숨에 5미터 높이까지 치솟은 몸.

돌출부위를 손끝으로 잡아채고는 힘껏 당겨 몸을 튕긴다.

휘익.

한 번 더 떠오른 몸이 굴의 입구에 닿았다.

손으로 끄트머리를 붙잡고는 위로 올라오는 것에 성공한다.

올라서자마자 경계를 하며 굴 안을 주시한다.

다행히 무언가의 인기척은 없는 상황.

굴은 안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어두운 탓에 그 끝을 가늠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암흑의 입구라도 되는 듯 어둠에 휩싸인 안 쪽은, 내 눈으로도 명확하게 보기가 힘들었다.

품속에 손을 넣어보니 총은 물살에 빠져나간 것인지 잡히지 않았고.

단검 하나만이 손에 잡힌다.

그나마 다행인가?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뒤에서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10m나 되는 절벽을 기어 올라온 이은지의 지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손톱이 죄다 빠지기라도 한 것인지 바들거리는 손끝으로 핏물이 맺혀 떨어진다.

“가... 같이 가요.”

이은지가 간절한 얼굴로 말했다.

그 얼굴에는 안 쪽으로 이어진 어둠에 대한 두려움도 보인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별로 도움도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심드렁한 내 얼굴에 위기를 느낀 것일까?

“싸... 싸울 수 있어요!”

“그래? 그런 년이 싸우라고 할 때 거들지도 않았던 거야?”

“죄송해요... 제발... 데려가 주세요.”

그러더니 품에서 퓨리다크니스를 꺼내 들었다.

“비... 비상 상황에서 확실하게 싸울게요.”

콧웃음을 치며 몸을 돌려 뚜벅뚜벅 걸었다.

그 뒤로 이은지가 따라오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뭐, 열심히 살아남아 봐라.

살아남아도 지옥일 테니까.

평생을 치욕 속에 살게 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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