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냥꾼.(137)
2. 사냥꾼.(137)
점핑들을 처리한 김나연이 왕성기를 향해 몸을 날렸다.
높이 쳐 올려진 덩치 괴물의 커다란 발이 왕성기를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안 돼!’
그녀에게 인간관계는 그렇게 쓸모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문의 처우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인생.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는 반푼이로 태어난 대신 하나의 능력이 있었는데.
그 능력은 그녀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을 힘들게 하였다.
능력이라기 보단 저주에 가까운 재주.
인간에게서 맡아지는 특유의 악취.
온갖 더러운 시선과 악취들이 그녀를 괴롭게 만들었다.
어정쩡한 위치의 김나연은.
방계의 시기와 질투.
직계의 모멸과 멸시를 받아야만 했다.
더러운 감정이 뿜어내는 지독한 악취를 견디지 못하고 구역질을 하는 김나연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저 싸늘한 시선뿐이었다.
그저 정신에 이상이 있는 문제아.
그런 김나연에게 유일한 아군이라곤 구집사와 아버지.
아버지가 가문의 수장이라곤 하나.
그녀를 오롯이 감쌀 수만은 없었다.
가문을 이끌어가는 수장에게는 수장이 할 일이 있는 법.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이는.
결국 구집사가 유일했다.
‘인한...’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구집사에게서도 미약한 악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 것이 자신을 향한 더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믿고 의지할 뿐.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강인한에게서는 그 어떤 악취도 나지 않았다.
단단히 닫혀 있던 그녀의 마음도 자연적으로 조금씩 열리게 되었는데...
그 결실을 이제야 맺게 되었거늘.
그의 소중한 이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유일하게 곁에서 마음껏 숨을 쉴 수 있는 사내.
자신의 처음을 가져간 사내.
그리고 반푼이인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어 준 사내의 소중한 이.
김나연의 눈이 한기가 맺히듯 시퍼렇게 변했다.
그녀의 단검에 시퍼런 기운이 일렁인다.
한계까지 육체능력을 끌어올려 왕성기가 있는 곳으로 날아든다.
몸의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이미 보통의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육체 능력을 지니고 있던 그녀.
강인한과의 관계로 고유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음과 더불어 더욱 완벽한 육체를 지니게 되었다.
파앙.
김나연의 시퍼런 단검이 춤을 추었다.
모자란 자신이기에.
언제나 한계까지 몰아붙여 훈련을 하곤 했다.
으레 적으로 시행하는 실전을 언제나 필사적으로 참여했다.
스가가각. 스각.
덩치 괴물의 다리를 지나는 날카로운 날붙이가 스산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꺼어어어~-
파파팟.
절대로 잘리지 않을 것 같던 덩치 괴물의 살갗이 갈라지며 꾸덕한 붉은 피가 뭉텅뭉텅 쏟아진다.
쿵. 쿵. 쿵.
발을 내빼며 물러나는 덩치의 모습.
김나연은 그런 덩치 괴물을 향해 재차 달려들었다.
후우웅. 후웅.
손과 발을 뒤섞어 재빠른 김나연을 잡기 위해 허우적대는 모습이 이 전의 여유는 보이지 않는다.
덩치 괴물은 김나연이 자신에게 충분히 위협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김나연의 단검은 그러한 사정을 봐주지 않고 어김없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꾸어어어엉!-
갈라지는 부위가 많아질수록 덩치 괴물의 괴성이 구슬프게 변해 갔다.
의미 없이 날아드는 주먹을 피하며 단검을 휘두른다.
서걱.
쿠웅.
단검의 날 길이보다 한참이나 두꺼운 덩치 괴물의 팔이 떨어져 내린다.
무협지에서나 볼 법한 검기라도 뿜어낸 것일까?
서걱.
-꾸어어어엉~-
덩치 괴물의 또 다른 팔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양팔을 잃은 덩치 괴물이 뒷걸음질을 치며 김나연에게서 떨어지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런 놈의 지척까지 파고든 김나연이 땅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그러곤 냉정한 눈으로 단검을 가로로 베어낸다.
-꺼억... 꺽...-
놀란 듯 부릅떠지는 덩치 괴물의 눈동자.
광기에 얼룩져 있던 눈빛은 어느새 두려움으로 물들어 있다.
꺽꺽 거리던 덩치 괴물의 목에 실핏줄이 그려진다.
그러곤 좌로 기울며 쩌어억 하고 벌어지기 시작했다.
쿠웅.
육중한 소리를 내며 땅을 구르는 덩치 괴물의 머리통.
“후우... 후우... 후우...”
거친 숨을 달랜 김나연이 빠르게 왕성기에게로 향했다.
이미 기절을 했는지 미약한 숨소리만을 내뿜고 있는 그.
“늦지 않았어.”
왕성기의 몸 위에 손을 얹은 김나연이 눈을 살짝 감으며 치료에 집중한다.
기습을 당한다면 난감한 상황이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미약한 숨마저 멎고 말 것이다.
손 위로 드리워지는 푸른 오오라.
그녀의 손에서 시작된 푸른빛이 왕성기의 몸을 감싼다.
“으으윽...”
빛의 크기가 커 질수록 왕성기의 망가진 몸이 점점 수복되어갔다.
더불어 김나연의 얼굴은 점점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그녀의 능력은 웬만한 상처정도는 완벽하게 치유할 수 있지만.
하나의 리스크가 발생한다.
상대의 고통을 자신이 감내해야 한다는 것.
뚝... 뚝... 뚝...
일그러진 김나연의 얼굴을 타고 굵은 땀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그만큼 그녀가 느끼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
바닥에 드러누운 두 구의 시체.
특이하게도 목이 잘린 시체의 아랫도리 중간은 사이좋게 말끔히 잘려나가 있다.
사냥꾼 웹의 운영자 훈과 현의 시체 앞에 무심히 서 있던 리엔.
그녀의 시선이 허공을 향한다.
천천히 뻗어진 손이 허공을 더듬었다.
그렇다고 무언가 잡히는 것은 없다.
이상하리만치 안타까워 보이는 손짓.
한참이나 허공을 더듬던 리엔의 무표정한 얼굴에 금이 간다.
“후우...”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그가 죽는 것이 무슨 상관이라고 이런 짓을 벌인 것인지 지금의 마음을 도저히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경계와 사라진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태.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지워졌다 해도 무방하다.
터지기 직전의 경계가 모습을 감춘다는 말은 들어 본 적 없지만.
지금의 상황이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지워질 수 있다고.
정말 그는 이렇게 사라져 버린 걸까?
그녀가 초인의 존재를 모르는 것도 아니다.
막상 아랫도리와 머리통을 잃은 시체 두 구도 초인이지 않은가.
하지만 강인한에게선 특별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저주받은 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
“후후후...”
리엔의 입에서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날뛰어야 할 놈들이 날뛰지도 못하고 자신의 손에 죽어 버렸다.
아무리 은밀히 움직였다곤 하나.
회사의 눈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을 터.
손에 훈과 현의 피를 묻힘과 동시에 그녀의 계획은 모두 틀어졌다 봐도 무방하다.
어이없는 감정에 휩쓸려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이제 회사는 자신에게 걸어 둔 세뇌가 풀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피를 통한 온갖 실험으로, 억제할 무언가를 만들어 놓았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강인한에게 묘한 감정이 생겼던 것일까?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라고...
어차피 그는 이면의 경계에 먹혀 사라져 버렸고.
회사를 완전히 등지게 되었다.
‘남은 건... 마루타가 되거나...’
꼭두각시가 되는 것뿐이리라.
그렇다고 순순히 협조해 줄 의향은 없지만...
***
경계와 현실의 시간차는 10분의1.
왜 그렇게 생각 하냐고?
600을 세면 휴대폰의 1분이 지나고, 열을 세면 손목시계의 초심이 1초를 지난다.
그렇다고 순순히 믿는 게 정상이냐고?
이미 세상의 이면을 알게 된 상태이고.
이면의 경계에 들어선 상태이다.
못 믿을 일 따위는 없는 것 아냐?
밖의 시간과 이곳의 시간차는 10분의1.
그렇다고 배가 고픈 것을 어찌할 방도는 없는 것 같다.
배꼽시계는 지극히 정상으로 가는 모양이다.
아무리 인간을 초월한 신체라 하더라도 아예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물 한 모금만이라도 마시고 싶다.
이 지긋지긋한 동굴을 해맨 것도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을 못 하겠다.
몇 번의 싸움에서 소중한 롤x스 손목시계도 명을 다해 버렸다.
‘내 애마는 무사하려나...’
우리가 지나는 통로는 하나가 아니었다.
몇 번이나 갈림길이 나왔고.
이제는 미궁에 빠져 버리기라도 한 듯.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도 없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무작정 걸을 뿐.
“으아아아아! 씨바알!”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이에 이은지가 움찔하는 기색이 느껴지지만.
코딱지만큼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저 년은 더 반성하고 조아려야 한다.
이미 내 몸과 마음은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연누나와 성기형의 생사를 걱정하기에 앞서.
이 지긋지긋한 굴에서 굶어 죽게 생겨 버린 것이다.
물론, 비틀거리며 따라오는 이은지의 상태는 나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괴물들이 습격해 오는 것은 눈에 뛰게 줄었지만.
차라리 먹으면서 쉼 없이 싸우는 것이 행복하리라.
그렇다고 저 썩어 문드러진 괴물들을 먹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 년보고 먹어보라고 할까?
나는 도끼눈을 뜨고는 이은지를 노려봤다.
움찔.
몸을 떤 이은지가 시선을 회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원망이 이은지에게로 쏠린다.
저년만 아니었어도 이런 곳에서 이따위 일을 당하고는 있지 않았을 터다.
“아앗! 이... 인한님... 무... 물소리... 물소리가 들려요!”
“뭐? 물소리는 뭔 개소리야?”
“그... 물 흐르는 소리...”
“어?”
나는 이은지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들린다.
미약하지만 확실히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 진짜 들린다!”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향해 눈을 빛냈다.
그러곤 뒤도 안 돌아보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가... 같이 가요!”
이은지의 힘겨운 외침이 들려왔지만.
정중하게 쌩 까 주었다.
저도 살고 싶으면 어떻게든 따라 올 터였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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