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냥꾼.(140)
2. 사냥꾼.(140)
이 년이 돌았나?
공손함은 어디 가고 반말 짓거리야?
아차! 이게 문제가 아니지.
이은지가 떨어져 나가고 저 거대백사가 이은지를 따라가는 것만큼 좋은 그림은 없겠지만.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세라 필사적으로 뒤따르고 있었다.
내 육체 능력이 이은지보다 훨씬 월등하기에 떨쳐 낼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앞을 가로막는 빌어먹을 나무들과, 이은지의 살고픈 의지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것인가 보다.
“허억! 허억! 우리가 찢어져야 한 사람이라도 살 거 아니야!”
간절한 음성으로 외쳐보지만.
이은지는 말없이 내 뒤를 따를 뿐이었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무참히 씹어버리다니.
콰지직. 콰지직.
그 와중에도 거대백사는 엄청난 속도로 장애물들을 깔아뭉개며 다가오는 중이었고.
이건 도저히 방법이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지녔을 것으로 보이는 괴물과 싸우고픈 마음은 들지 않는다.
아니, 어떠한 경우의 수를 두더라도 필패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그때,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오싹한 살기.
내 예민한 감각은 위기의 순간에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흐어억!”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동시에 머리 옆을 스쳐 지나가는 거대백사의 거대한 아가리가 눈에 들어온다.
‘조... 좆 될 뻔 했다.’
꽈드득.
목표물을 잃고 엄한 나무를 입에 문 거대백사가 입을 앙다물자 두꺼운 나무 기둥이 스티로폼이라도 되는 듯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
“괘... 괜찮아요?”
“워씨! 깜짝이야!”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나를 따라 몸을 날린 이은지가 어느새 따라붙고 있었다.
‘끈질긴 년.’
가히 대단한 생존본능이라 볼 수 있겠다.
그 찰나의 순간 내가 몸을 날리는 것을 보며 한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함께 움직인 모양이다.
-키에에에엑!-
분노한 거대백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하게도 거대백사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커다란 아가리를 들이밀었고.
나와 이은지는 이리저리 펄쩍펄쩍 뛰며 아슬아슬하게 놈의 아가리를 피해냈다.
“으아아악! 저 뱀 새끼는 언제까지 따라오는 거야! 야! 뭐라도 해 봐!”
“인한님도 못 하는 걸 제가 어떻게 해요!”
“내가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줬는데! 한 번쯤은 널 희생하라고!”
“그래서 당신한테 몸도 줬잖아!”
“네 몸이 처녀도 아니고 목숨 값에 타당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빠구리 한 게 나 좋자고 한 거야? 너 살리려고 한 거야!”
“몰라요! 그럼 살아남아서 은혜를 갚으면 되잖아요!”
“진짜 말 안 통하네! 그러니까 어떻게 살아남겠다는 거야! 어어억! 피해!”
나는 백사의 아가리를 피해 바닥에 몸을 굴리곤 벌떡 일어나 다시 달렸다.
이은지 또한 쌍둥이라도 되는 듯 몸을 굴리며 일어나 따라붙는다.
정말 이대로 도망만 가서는 어떠한 방법도 없다.
커다란 덩치 때문에 체력이 저질일 것이라는 희망도 쓸모가 없어 보인다.
어째 점점 더 힘이 넘치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와중에도 나는 눈앞의 나무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미친 듯이 내달렸다.
여전히 아가리를 들이미는 뱀 대가리의 공격도 피하며 말이다.
그렇게 미친 듯이 달리던 중 눈앞에 흐릿하게 하나의 인영이 비춰진다.
순식간에 좁혀지는 인영과의 거리.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교묘히 길막하고 있는 인영의 정체는 웨어비스트인 장수언이었다.
‘오호~ 반갑다 호랑이 대가리야!’
놈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는지 호랑이 얼굴 위로 경악의 표정이 드러난다.
“크르르르르?”
아마도 우리 뒤에 따라붙은 거대백사를 보고 잠시 뇌기능이 정지라도 한 모양이다.
막 장수언의 앞에 당도할 무렵 또다시 아가리를 들이미는 거대백사.
“뭘 멍청하게 보고 있어! 저리 꺼져!”
나는 멍청하게 서 있는 장수언을 그대로 발로 차 버렸다.
퍼어억.
“크어억!”
갑작스레 발에 차인 장수언이 배를 부여잡고 대굴대굴 구른다.
동시에 나도 땅을 박차며 다이빙을 하듯 몸을 날리며 몇 바퀴나 굴렀다.
‘하...’
이제는 웃기지도 않다.
나와 같은 포즈로 바닥을 구르며 오뚝이처럼 일어나 달리는 이은지.
콰지직.
또다시 백사의 아가리에 뜯겨 나가는 거대고목을 뒤로한 채 그대로 달려 나간다.
장수언이 미끼가 되어 놈을 유인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건만.
벌떡 일어난 장수언은 이은지처럼 내 뒤를 바짝 쫓아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먹을!’
더욱 전력을 다해 차버렸어야 했거늘.
경황이 없어 너무 미약한 발차기가 되어 버렸나보다.
“크르르르! 허억! 허억! 도대체 저... 저 괴물은 뭐요!?”
“나도 몰라!”
“크르르! 아무튼 덕분에 목숨을 구한 것 같군!”
이 웨어비스트놈은 아무래도 내가 지 목숨을 구해 주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미끼작전이 실패한 지금 그런 오해쯤은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겠지.
“당신도 저런 괴물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거야!?”
“크르르. 나도 처음 본다. 어찌 되었든 목숨 갚은 꼭 갚도록 하지. 호랑이는 은혜를 잊지 않지. 곰이나 늑대 새끼들 같은 비열한 놈들하곤 다르거든!”
그런 새끼가 협력하기로 해 놓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갔냐?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그런 걸 따질 정도로 생각이 없지는 않다.
그나저나 왜 반 존대를 했다가 반말을 깠다가 지 멋대로야?
뭐, 나는 그냥 말을 까고 있으니 상관은 없나?
“그것보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어?”
“크르르. 싸워서는... 죽을 것 같군...”
그러더니 품에서 총을 꺼내 들더니 백사를 향해 겨눈다.
푸슛. 푸슛. 푸슛.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총질에 쏴라마라 할 틈 따위는 없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일말의 가능성에 기대하며 힐끔하고 백사를 뒤돌아본다.
티잉. 티잉. 티잉.
총탄에 적중당한 백사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마치 비늘이 갑옷이라도 되는 듯 튕겨져 나가는 총알.
그뿐이라면 놈의 방어력을 확인한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놈은 상당히 기분이 나쁜 모양이다.
-키아아아아악!-
고막이 터져 나갈 듯 지르는 괴성과.
더욱 미쳐 날뛰며 주변을 마구 갈아버리기 시작했다.
붉은 눈을 번들거리며 줄기줄기 뿜어내는 살기에 절로 머리가 쭈뼛하고 선다.
“이런 미친! 왜 갑자기 총질을 하고 난리야!”
은근히 총질이 먹히길 바랐던 마음은 어디 가고 총질을 한 장수언에게 원망가득한 말을 내뱉었다.
“그래요! 왜 그런 거예요!”
날카롭게 장수언을 쏘아보며 동조하는 이은지가 제법 기특해 보인다.
“크르르... 미... 미안하군.”
씨발 새끼. 미안하면 자진해서 희생양이 좀 되면 좋겠는데.
“미안하면 유인이라도 해 주시던가요!”
오오~ 이은지 잘하고 있어.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주 적절하게 말을 꺼내주었다.
나는 기대감어린 눈으로 장수언을 바라본다.
-캬아아악!-
그때, 눈치도 없이 아가리를 들이밀며 분위기를 깨는 빌어먹을 백사.
“어흐흥! 피... 피해!”
장수언의 외침에 우리는 몸을 숙여 백사의 아가리공격을 피해냈다.
덕분에 이은지의 말은 무참히 씹혀 버리게 되었다.
그 후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입을 다문 장수언.
개새끼...
그렇게 둘에서 셋이 된 우리는 기약 없는 도주를 계속해 나갔다.
“하악... 하악... 하악...”
못해도 반나절은 긴장 속에서 백사의 공격을 피해내며 뛴 것 같다.
일반인이라면 몇 분도 불가능했을 뜀박질을 반나절이나 지속한 것이다.
백사가 만들어낸 흔적의 길이만 해도 엄청난 것이었다.
놈의 몸이 만들어내는 길은 버스 두 대는 지나갈 정도로 넓기까지 했다.
도로교통공사에서 일을 한다면 단숨에 에이스로 등극하고도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우리 삼인이 모두 초인의 영역에 있다지만.
거대백사의 공격을 피하며 달리는 것에도 한계는 있었다.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며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는 이은지만 봐도 그렇다.
나로 인해 퓨리 다크니스를 주입한 사냥꾼 이상으로 힘을 발휘하게 된 이은지이지만.
이제 곧 그녀는 한계를 맞이할 것 같아 보인다.
옆에 달리고 있는 호랑이놈도 혀를 길게 늘어트리고는 헥헥거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혀 한 번 참 더럽게 길군.
나 또한 뇌기까지 끌어다 쓰며 달리고 있기에 상당히 지친상태이다.
그런 우리의 눈에 점핑에게 둘러싸여 전투를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살아있는 것을 확인했기에.
안도함과 동시에.
이 암울한 상황에 걱정이 든다.
“나연누나! 성기형! 달려!”
나는 그 두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다.
그 음성에 점핑은 물론, 두 사람도 우리를 향해 시선을 던진다.
-키에에에엑!-
그리고 뒤따라오는 거대백사를 발견하곤 점핑들이 혼비백산하며 흩어졌다.
어느 정도 지능이 있는 놈들이니만큼, 저 거대한 놈과 충돌하면 어찌 될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아는 모양이다.
“인한아!”
“강인한!”
반가움과 두려움이 섞인 두 사람의 음성.
하지만 지금 서로를 향해 반가움을 표할 여유 따위는 없다.
그것은 나연누나와 성기형도 아는지 그대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한다.
이제는 둘에서 셋, 셋에서 다섯이 된 마라톤 동지들.
이은지와 호랑이놈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나연누나와 성기형은 이야기가 틀려진다.
이거 아무래도... 뭔가 수를 내야 할 것 같다.
몸을 섞으면서 더욱 애틋해진 나연누나.
그리고 학창 시절부터 친형처럼 나를 챙겨 준 성기형.
이 둘이 잘못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빌어먹을...
어울리지 않는 영웅 짓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저 둘을 위해서는... 싫어도 나서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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