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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170화 (170/297)

2. 사냥꾼.(142)

2. 사냥꾼.(142)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는 거대백사.

놈은 요란하게 몸을 움직이며 흉포하게 날뛰었다.

드문드문 비늘위로 스크래치가 보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는 비늘을 깨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다만, 내가 공격한 부위들이 시커멓게 그을려 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모두가 백사의 몸짓에 튕겨져 나갔다가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의미 없는 몸짓을 해대고 있었다.

이건 싸움이 아니라 몸부림에 가까워 보인다.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기분.

저 뱀 대가리는 재앙이라 봐도 무방한 존재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놈을 살폈다.

이 상태로는 누구 하나 살아나갈 수 없을 터.

나의 간절한 바람이 닿았을까?

놈의 몸 위로 드러나는 붉은색들.

그 붉은색들은 놈의 촘촘한 비늘 틈 사이로 은은하게 세어 나오고 있었다.

약점?

비늘 안쪽이 약점이라는 건가?

“하...”

나도 모르게 세어 나오는 실소.

당연히 저 단단한 비늘 안쪽은 연약한 살덩이가 있겠지.

문제는 그 비늘을 지금껏 깨부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쿠웅.

떨어져 내리는 거대백사의 꼬리를 피해내며 놈의 몸 위로 타고 올랐다.

파충류특유의 차가운 비늘 위를 아슬아슬하게 균형 잡아 달린다.

-키아아아악!-

누군가가 몸 위로 올라왔다는 것에 기분이 나쁜 듯 요동을 치는 놈.

나는 극도의 정신력을 발휘해 몸통 위에서 중심을 잡았다.

틈.

보인다.

촘촘하게 나 있는 비늘과 비늘의 겹치는 연결 부위.

차르르르륵. 차르르르륵.

놈의 몸이 움직일 대마다 겹쳐진 비늘이 부딪치며 거슬리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나는 단검에 뇌기를 주입해 최대한 미세하게 조정했다.

뇌기를 단검에 감싸며 최대한으로 날카롭게 벼린 것.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집중력은 위기의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날카롭게 벼린 단검을 비늘과 비늘 틈 사이로 밀어 넣는다.

그그극. 그극.

너무나 촘촘해 쉽지 않았지만 결국은 놈의 비늘사이를 파고들었다.

-캬악!?-

놀란 놈이 잠시 몸을 들썩였다.

속살이 헤집어지는 것은 처음이라는 듯 당황한 놈의 감정이 느껴진다.

나는 그대로 힘껏 단검을 찔러 넣고는 모든 뇌기를 쑤셔 넣는다.

-캬아아아아악!-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몸부림과.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

통한다!

“흐으윽!”

나는 찔러 넣은 단검을 단단히 붙잡고는 놈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비늘과 비늘사이에 틈이 있어! 거기가 약점이야!”

몸이 마구 들썩이는 중에도 고래고래 소리를 쳐 일행들에게 알렸다.

반쯤은 포기의 모습을 보이던 그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내가 잡아 놓는다!”

무식한 근육을 부풀리며 성기형이 놈의 꼬리를 양팔로 힘껏 감쌌다.

무모해 보이는 모습에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는다.

“흐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는 성기형의 이마와 팔에 투두둑하고 힘줄이 돋아났다.

걱정과는 달리 믿어지지 않게도 버둥거리던 놈의 꼬리가 성기형의 힘에 잠시나마 붙들린다.

‘저게... 가능해?’

터질 듯 벌게진 얼굴의 성기형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빨리 공격해!”

이은지와 장수언이 백사의 시선을 어지럽힌다.

그 뒤로 땅을 박찬 나연누나가 나비처럼 날아올랐다.

엉망인 와중에도 그 자태만큼은 너무나도 우아하다.

그녀의 검에서 피어오른 시퍼런 오오라가 반원을 그리며 세 갈래로 갈라졌다.

푸른 실처럼 얇게 퍼진 기운이 비늘의 뒤쪽의 틈을 향해 뻗어 나갔다.

퓨퓨퓩.

내가 벼린 뇌기보다 더욱 얇은 푸른 실들이 거대백사의 비늘 틈 사이를 파고들며 헤집어 놓는다.

-캬아아아악! 캬악! 캬악!-

그 고통이 만만치 않은 듯, 밟힌 지렁이처럼 요동치는 거대백사.

피피픽.

푸른 실선이 파고든 부위에서 푸확하고 터져 나오는 시뻘건 핏물이 하늘을 물들인다.

-크어어어어!-

고개를 번쩍 들고 포효하는 거대백사가 몸을 뒤틀며 붉은 눈을 번들거렸다.

그 어느 대보다 분노와 광기로 물든 모습.

-캬아악!-

놈이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단검을 꽂고 있는 나를 향해 입을 벌렸다.

놈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너 때문이라고.

분노한 놈의 눈은 오로지 나만을 향해 있었다.

꼬리를 잡은 성기형이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귀찮게 구는 이은지나 장수언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연누나의 공격이 살 속을 파고들고 있음에도 전부 외면했다.

‘이런... 씨바알?’

놈의 거대한 아가리가 오로지 나만을 노리고 다가온다.

나는 쑤셔 넣은 단검을 뽑아내기 위해 힘껏 잡아당겼다.

“어엇!”

하지만 박힌 상태로 꼼짝도 하지 않는 단검.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놈의 아가리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한대는 무난히 삼킬 것 같은 엄청난 크기의 동공처럼 보인다.

어둠 속 동공과도 같은 놈의 목구멍에서 후욱하고 불어오는 열기와 코를 찌르는 악취.

겉과는 달리 속은 뜨거운 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꺄아아! 안 돼!”

“허어억! 강인한!”

“인한님!”

“제기랄! 은인!”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

이것도 어쩌면 경험 부족이랄 수 있겠지.

나는 단검을 빼려하기보단 몸부터 날리고 봤어야 했다.

하지만 후회한들 그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미 놈의 아가리는 나를 덮어 버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덥썩.

놈의 입에 삼켜진 나는 순식간에 식도를 타고 떠밀려 내려갔다.

‘아... 안 돼!’

나는 손톱을 세워 놈의 살점을 마구 잡고 늘어졌다.

미끈.

‘씨... 씨발!’

놈의 속은 너무나 미끄러워 도저히 손톱이 파고들 수가 없었다.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열기가 훅훅하고 폐를 파고든다.

이 느낌.

이건 마치 리엔에게 독을 주입 당했을 때와 비슷한 증상 같았다.

‘독?’

씨발... 이번에야말로 정말 이대로 죽는 건가?

좆나 거대한 뱀의 뱃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줄이야.

뇌는 이미 죽음을 예감하기라도 했는지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회귀를 하고 상연누나와 새롭게 관계를 맺은 것부터 해서.

수지의 처음을 피트니스센터의 계단에서 가졌던 것.

‘하하... 먹튀 당했는줄 알았지.’

수지가 연락이 없어 먹튀 당한 줄 알고 얼마나 초조했던가.

그리고 구상두에게 죽을 뻔 한 순간 나타났던 수지.

‘상연누나완 오해를 풀게 되었지.’

기억을 찾고 정욱아저씨도 만났고.

그 기억으로 인해 괴롭기도 했다.

오로지 복수만이 머릿속에 가득했으니 말이다.

또한 마마와도 재회하게 되었는데, 마마가 설마 나를 구했던 그 여성일 줄이야.

처음 사람을 죽였던 것도 생각이 난다.

정말로 총질을 하는 것에 얼마나 식겁했는지 모른다.

그 후에 사냥꾼 놈들의 아지트에 갔더니 김동운이 있어 얼마나 황당했던지.

그리고 반쯤 정신이 붕괴되어 룸에서 포썸을 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처음 웨어비스트를 보게 되었고.

결국은 쇼부를 쳐 세 여자를 빼오기 까지 했다.

‘수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제발 괜찮아야 할 텐데...’

내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상연누나는 얼마나 슬퍼할지 상상도 못하겠다.

피식.

연지는 아직 못 따먹었는데...

내 얼굴을 가지고 시비 걸던 윤지도 생각난다.

귀신주제에... 쯧.

그나저나 나연누나는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겨우 누나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남자로서 지켜 주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

하아... 성기형은 하필 나와 엮여서는...

이은지는 내가 먹히는 걸 보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 갔으려나?

워낙에 제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년이니 그러고도 남겠지.

아... 이렇게 죽기는 너무 억울하다.

소설에서나 볼 법한 하렘을 만들어볼 수도 있었는데.

복수는 가능하다면 꼭 해야 하지만.

이제는 우선순위를 내 사람들로 채우고 싶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씩만 더 볼 수 있다면 죽어도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으르르릉.

‘어엇?’

그때, 미약하게 울리는 단전의 뇌기.

전부 소진했다고 여겼기에 희망 따위는 없었다.

이런 무협지의 클리쉐가 벌어지다니.

세상은 아직 내가 죽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다.

치이이이익.

놈의 타액에 옷들이 녹아내린다.

하지만 피부는 붉어졌을지언정 멀쩡하다.

아니, 아직은 괜찮아 보인다.

따끔따끔한 것이 심해지는 것으로 보아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피부 또한 녹아내릴 것 같다.

나는 미약하게 존재감을 보이는 뇌기에 집중했다.

어쩌면 마지막 발악이 될 수 있는 희망.

파파팟.

내공을 운용한다는 상상을 하며 뇌기를 마구 굴려대자 불씨가 피어오르듯 점점 크기를 부풀려간다.

‘된다!’

놈의 독기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으나.

리엔에게 직접 주입 당한 독도 무난하게 견뎌 냈다.

그 독보다 더 강하더라도.

직접 주입당하지 않는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나는 타오르기 시작한 뇌기를 전신 혈맥으로 퍼트렸다.

내공심법이나 혈맥에 대해 제대로 아는 건 없지만.

그저 상상에 맞기고 몸 안의 흐름에 집중한다.

파파팟. 파팟.

온몸으로 퍼진 뇌기를 전신의 모공을 통해 배출했다.

빠져나온 뇌기를 미세하게 조절해 온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그러자 살갗을 따끔하게 하던 독기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이건 쉴드인가? 무협과 마법의 조화지.’

아무래도 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쿵.

꿀렁꿀렁.

마침내 놈의 식도를 넘어 위장에 도착한 것 같다.

투두둑. 투두둑.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지독한 위액이 온몸으로 뿌려졌다.

‘으으으... 좆나 독하네.’

뇌기로 보호하고 있음에도 호흡기로 들어오는 전부를 막을 수는 없었다.

몸속으로 들어온 독기를 뇌기가 쉬지 않고 태운다.

속이 화끈화끈한 것이 독한 바카디를 나발로 마신 기분이다.

터엉. 터엉.

꿀렁. 꿀렁.

밖에서는 아직도 놈을 향해 공격하는 것인지 내 몸은 위 속에서 이리저리 튕겨졌다.

‘으윽... 졸라 어지럽네. 그만 좀 움직여라!’

아니 얌전해지면 안 되는 거잖아?

그렇다는 건 밖에 있는 이들이 전부 잘못되었다는 말일수도 있으니 말이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해서 뇌기에 집중했다.

이대로 뱃속에 있을 수만은 없기에.

최대한 뇌기를 모아 안에서 놈을 공격한 생각이다.

뱀 대가리새끼도 내가 멀쩡히 살아 있다곤 생각하지 못하겠지.

감히 죽음이라는 위기를 느끼게 한 대가는 톡톡히 치러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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