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냥꾼.(143)
2. 사냥꾼.(143)
김나연의 얼굴은 완전한 분노로 일그러졌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처럼 분노했던 적이 있었던가?
인간들에게서 나는 악취에 적응하려 점점 감정을 죽여 왔다.
어지간한 일은 무던하게 넘길 정도의 무심함을 유지해 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의 얼굴은 언제나 일그러진 상태였을 거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 큰 균열이 생겨 버린 것이다.
-캬아아악! 캬아악! 캬악!-
강인한을 삼킨 후 무슨 일인지 더욱 미쳐 날뛰는 거대백사.
어쩌면 이곳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더랬다.
하지만 강인한을 잃게 된 지금.
그러한 두려움보다,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허탈함이 가슴속을 가득 메웠다.
일그러졌던 김나연의 표정에 어느새 원래의 무심함이 깃든다.
무표정함과는 달리 그녀의 마음속에는 놈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다.
‘죽인다.’
화아아아악.
김나연의 전신에서 푸른 오오라가 폭사 되었다.
뻗어낸 양손의 손가락을 타고 실타래처럼 뻗어나가는 기운.
각각의 손가락에서 뻗어나간 기운이 거대백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 전보다 훨씬 강렬해진 기운.
푹. 푹. 푹. 푹. 푹.
길게 늘어진 기운이 거대백사의 비늘 틈 사이를 파고들며 살집을 마구 헤집었다.
-키에에에엑!-
쿵. 쿵. 쿵.
거대백사의 거대한 동체가 연신 땅을 울린다.
벌린 아가리에서 이빨을 타고 흐르는 독액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강인한!!! 으아아아아!”
백사의 꼬리에 치여 피투성이가 된 왕성기가 커다란 주먹을 쥐고 백사의 몸통을 두드렸다.
퍼엉. 퍼엉. 퍼엉.
드러난 살 위로는 터질 듯한 근육과 불끈 솟아오른 힘줄이 어지럽게 드러났다.
자신의 한계까지 몰아붙인 왕성기.
그의 눈에선 실핏줄이 터져 피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으아아아! 인한이를 뱉어 내라고!”
놀랍게도 왕성기의 주먹에 거대백사의 몸이 마구 들썩일 정도다.
“인한님~~~~~~!!”
강인한이 거대백사의 아가리에 삼켜지는 것을 본 이은지의 눈은 충격으로 얼룩져졌다.
마치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다는 듯.
찢어지는 음성으로 강인한의 이름을 부른 이은지.
그녀의 손에는 하나 남았던 퓨리다크니스가 들려 있었다.
육체의 한계를 돌파했기에 이제는 필요 없다 생각했던 퓨리다크니스.
하지만 강인한이 놈의 아가리에 먹히면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무의식이 그녀를 움직인 것이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모든 이성을 마비시켰다.
푸욱.
심장에 퓨리다크니스를 꽂아 넣은 이은지.
“흐으윽...”
그녀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강인한의 기운으로 육체를 초월한 그녀.
이 전에는 몰랐으나 느껴지는 더러운 기운에 구역질이 올라온다.
마치 깨끗한 백지를 검게 물들이는 느낌에 이를 악물었다.
“꺄아아아악!”
고통스러웠다.
더러움에 물드는 이 순간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 와는 반대로 더러워지는 지금에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고통에 괴로워하며 몸을 움츠렸던 이은지의 고개가 번뜩 들려졌다.
“키키키키킥... 죽여 버릴 거야... 더 이상 내 것을 빼앗기지 않을 거야...”
푸화아악.
이은지의 몸 위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잿빛의 기운.
그녀의 머리칼은 강풍이라도 맞은 듯 마구 휘날렸다.
그 기운과 더불어 그녀의 눈은 완전한 광기로 뒤덮인다.
“내 놔!!!”
이은지의 가녀린 살결위로 지렁이 같은 혈관들이 불쑥 솟아올랐다.
벌어진 입 사이로 흐르는 타액이 바닥을 적시며 뚝뚝 떨어져 내린다.
“내 놓으라고!”
그렇게 소리친 이은지가 거대백사를 향해 돌진했다.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움직임.
손에 쥔 단검위로 잿빛의 음울한 기운이 덧씌워졌다.
크카캉. 캉. 가가각.
단단한 비늘을 갈라내지는 못했지만, 단검에 실린 힘이 만만치 않은 듯, 적중당한 부위가 움푹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비늘을 지나 그 안쪽에 충격이 가해지게 된 것이다.
-캬아아악! 캬아악!-
“크르르! 재미있구나!”
비록 은인 강인한은 백사의 한 줌의 양식이 되었지만, 그로 인해 분노한 일행들은 놀랍게도 놈에게 타격을 주고 있었다.
왕성기가 강인한으로 인해 인간이상의 힘을 내게 된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상일 뿐.
그 정도로 웨어비스트인 자신을 압도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저 정도라면 웨어비스트인 자신이라도 감히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듯하다.
그리고 이은지.
뿔뿔이 흩어진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왕성기처럼 육체의 각성을 이루었다.
그것 또한 강인한에 의한 것일 테다.
거기에 더해 퓨리다크니스를 거리낌 없이 주입하면서 인간이라기엔 믿을 수 없는 힘과 몸놀림으로 거대백사를 압박하고 있었다.
단지 문제라면 마물화가 진행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지만.
마지막으로 김나연은 그야말로 초인 그 자체.
은연중 반푼이라는 소문을 접했던 그녀는, 누구보다 압도적으로 거대백사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처음부터 저런 실력을 내보였다면 강인한이 불행한 일을 당하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왕성기, 이은지, 김나연을 보는 장수언의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웨어비스트 특유의 호승심.
그중에서도 호랑이의 호승심은 남다르다.
어쩌면 저 거대한 괴물을 처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어찌 이 뜨거운 전투를 마다할 수 있겠는가.
또한, 웨어비스트 중 호랑이는 절대로 은혜를 외면하지 않는다.
비록 그 당사자는 명을 달리했지만, 그 복수쯤은 이루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것이 자신의 생명을 장담할 수 없을지라도.
“크아아아앙!”
장수언의 입에서 거친 포효가 울려 퍼졌다.
생명을 불태워 모든 능력을 향상시키는 웨어비스트의 비장의 한수가 펼쳐진 것이다.
전신을 뒤덮은 황금빛 털.
사람과 호랑이의 중간 모습이었던 장수언의 모습이 완전한 호랑이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높이 2미터, 길이 5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의 호랑이가 백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전설에서나 나오는 산군과도 같다.
***
뇌기에 집중함에 따라 점점 시퍼런 뇌기에 둘러싸였다.
크기를 불린 뇌기가 미친 듯이 요동을 친다.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는 것에 분노라도 한 듯.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뇌기가 올올이 전해진다.
‘감히, 뱀 따위가 나를 죽이려 들어?’
하찮은 미물 따위가 나를 해하려 했다는 것에 분노가 일었다.
주먹을 쥐고 시퍼렇게 타오르는 뇌전을 바라본다.
스파크를 튀길 때마다 뚝뚝 떨어지는 독액들이 시커먼 연기가 되어 소멸된다.
놈의 위벽은 나와 닿을 때마다 거멓게 물들어 타들어갔다.
이따위 놈에게 무력하게 당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치욕스럽다.
“감히! 뱀 따위가!”
콰앙.
내가 휘두른 주먹에 놈의 위장이 크게 출렁이며 구멍이 뚫린다.
“캬하하하하! 별것도 아니구나! 그냥 뱀 고기가 되어라!”
콰앙. 콰앙. 콰앙.
내 주먹이 닿을 때마다, 미쳐서 팔딱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뚫린 구멍에선 댐에 구멍이라도 난 듯 붉은 피가 뭉텅뭉텅 쏟아졌다.
“너도 고통스럽냐! 캬하하하하! 그러게 상대를 제대로 골랐어야지!”
나는 놈의 장기들을 마구 두드리며 달렸다.
살기 위한 발버둥인 듯 살점을 조여 압박해 오면 죄다 찢어발긴다.
-크에에에에엑!-
놈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 것인지 그 울부짖음이 안까지 전해졌다.
하지만 내 손에는 어떠한 자비도 없었다.
이 새끼는 나를 식사거리로 먹어버린 놈이니 말이다.
그저 야들야들한 속살들을 마구 갈라내고 짓이겼다.
상대할 방법조차 떠오르지 않던 놈을 이렇게 마음대로 유린하다니.
그 짜릿함에 전신으로 쾌감이 몰아쳐 온다.
이것은 섹스와는 또 다른 쾌감이다.
내 안에 잠들었던 살육의 본능이 불쑥하고 튀어나온 것이다.
언제 이런 기분을 느꼈더라?
그래. 처음 사냥꾼들을 쳐 죽일 때도 알 수 없는 쾌감이 몰아쳤었다.
나는 미련하게 그것을 외면하려고만 했지.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무참히 찢어발기는 그 쾌감이 어떤 것인지.
떠오른다.
마물이 된 김동운을 깨부술 때의 그 기분이.
나에게 악의를 품은 것들을 때려 부수는 그 기분.
그것은 나의 숨겨진 내면의 욕구를 해소하는 방법이다.
어차피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남을 해하려는 놈들은 자신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
이 뱀 대가리새끼는 알아야 했다.
우리를 장난감으로 여겼다면 자신 또한 그렇게 될 수 있음을.
그렇기에 사냥꾼 놈들이 내 손에 뒈지게 된 거고.
김동운이 마물이 되어 내 손에 뒈지게 된 거다.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죄책감이 전부 해소되는 기분이다.
“난 이곳에서 나간다!”
퍼어엉.
-키에에에엑!-
“그리고! 우선 사냥꾼 웹부터 없애주지!”
모든 것을 떨쳐 내자 뇌기가 더욱 날뛰며 몸을 부풀린다.
퍼엉. 퍼엉. 퍼엉.
주먹이 적중될 때마다 놈의 몸이 당장에라도 뚫릴 듯 크게 출렁였다.
더불어 날뛰는 강도가 더욱 거세어진다.
위장에서 녹아 한 줌 양식이 되었어야 할 인간이.
멀쩡히 살아서 속을 헤집어 놓는데 멀쩡하다면 거짓말이겠지.
어쩌면 이놈은 지금, 이 안에 가득한 핏물이 흐르며 피똥을 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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