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냥꾼.(144)
2. 사냥꾼.(144)
까드드드득.
호랑이로 변한 장수언의 이빨에 단단한 비늘이 우그러들었다.
-캬아악!-
고개를 휘저어 얼굴을 들이미는 거대백사의 면상을 커다란 발바닥으로 후려쳤다.
콰앙.
그 반동에 거대백사의 얼굴이 밀려나고 장수언도 수 미터나 밀려나버렸다.
그때, 백사의 몸통 중앙에서 혹이 올라오듯 여기저기 불룩해졌다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캬아악! 캬악! 캭캭!-
그것이 고통스러운 듯 미친 듯이 버둥거리는 백사의 몸짓에 달려들었던 이들이 황급히 물러났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발광.
그리고 몸을 뚫어버릴 듯 솟구쳤다 들어가는 저 혹은 대체 뭐란 말인가?
강인한의 죽음으로 반쯤 이성을 잃었음에도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은지만이 눈이 돌아가 타액을 질질 흘려대며 집요하게 백사의 몸뚱어리를 가격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에 김나연이 기운을 실타래로 만들어 이은지를 꽁꽁 묶은 후 잡아당기자, 발버둥을 치며 딸려오는 그녀.
“캬아아아악! 놔! 놔! 놔!”
이미 인간의 눈빛이라 볼 수 없는 이은지는 실타래를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쳐 댔다.
그 힘이 만만치 않은 듯, 김나연은 실타래를 더 뽑아내어 이은지를 꽁꽁 묶었다.
그녀를 꼭 살려야겠다는 의무는 들지 않았지만, 저 괴물을 상대할 전력을 무의미하게 잃을 필요는 없었다.
지금 김나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강인한을 잡아먹은 거대백사의 죽음.
이를 위해 김나연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한 시선으로 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아앙! 도대체 무슨 일이지!?-
호랑이로 변한 장수언이 훌쩍 물러나며 의문스럽게 말을 꺼낸다.
“허억... 허억... 우리 공격 때문인가?”
김나연은 중얼거리는 둘의 말에도 암세포가 분열하듯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들어가는 거대백사의 몸통을 유심히 바라봤다.
자신들의 공격은 분명 통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고통스러워할 정도의 공격은 아니었던 것.
도대체 저 올록볼록 튀어나오는 돌기들은 뭐란 말인가?
뱀이 탈피라도 하는 것일까?
-크르릉... 은인을 먹고 배탈이라도 난 것 같군.-
말을 꺼냈던 장수언이 싸늘한 살기에 흠칫 몸을 떤다.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너무나도 차가운 김나연의 눈빛.
온몸이 찢겨나갈 것 같은 살기에 장수언이 슬쩍 시선을 외면했다.
-그... 그저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런 그들의 눈에 한눈에 봐도 과할 정도로 솟아오르는 돌기.
-키아아아악!?-
뻣뻣하게 치켜 든 거대백사의 머리통이 경직되었다.
살기로 번들거리던 붉은 눈동자는 겁이라도 먹은 듯 거침없이 흔들린다.
“뭐... 뭐야!?”
-크르릉! 심상치 않군.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공격하는 것이 좋겠어!-
그런 와중에도 점점 더 커지는 혹은 단단한 비늘마저 뚫어버릴 듯 한계치까지 솟아오르고 있었다.
쩌저적. 쩌적.
도저히 파괴되지 않을 것 같던 거대백사의 비늘이 혹을 중심으로 균열이 간다.
“저... 저거 왜 저래?”
-크르르르르... 서... 설마...?-
그리고 균열이 생긴 비늘의 틈을 타고 튀어나오는 푸른 스파크.
파지지직. 파직. 파직.
퍼져 나오는 푸른 뇌전에 김나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인한이... 인한이야!”
경악과 반가움이 들어 찬 김나연의 외침에 푸른 실타래에 묶여 있던 이은지가 한순간 얌전해진다.
“인한... 인한님... 크흐으으...”
***
“죽어! 죽어! 죽어! 으하하하하하!”
뇌에 광기라도 도졌는지 너무나 즐겁다.
놈이 괴로움에 꿈틀거릴 때마다 느껴지는 환희.
감히 뱀 주제에 나를 꿀꺽하다니.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러운 뇌기의 흐름에 몸을 실었다.
혈맥을 타고 흐르는 뇌기가 주먹을 강철보다 단단하게 만든다.
뻐엉. 뻐엉. 뻐엉.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붉은 살점들이 터져 나간다.
놈의 몸속은 출혈로 인해 붉은 피가 무릎까지 차올랐다.
얼마나 고통스러워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통쾌하다.
“으아아아! 워류겐~~~”
꼬꼬마시절 아버지와 함께 하던 고전 게임의 낱말을 내뱉었다.
열약한 오디오 셈플링으로 정확한 발음은 알 수 없다.
그 후의 게임에서는 소류켄으로 들렸던 것 같은데.
지금,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고.
나는 게임의 무술을 흉내 내며 힘껏 바닥을 박차며 어퍼컷을 쳐 올린다.
정말 게임의 캐릭터라도 된 것처럼 타오르는 뇌기가 주먹을 감싸며 시퍼렇게 번쩍였다.
퍼어억.
뇌전을 머금은 주먹이 놈의 살점을 파고들며 전진한다.
꾸우우우욱.
-키아아아악! 캬악!?-
고통스럽게 울부짖던 놈의 괴성이 멈췄다.
또한, 발광하던 몸짓 또한 멈춘다.
쩌저적. 쩌적.
주먹으로 전해지는 단단한 갑각. 아니, 비늘.
아무리 두드려도 흠집이상은 나지 않던 비늘에 균열이가고 있었다.
“흐아아압!”
기합과 함께 모든 힘을 나의 승룡권에 쏟았다.
쩍. 쩍. 쩍.
조금씩 갈라지는 틈새로 드러나는 잿빛의 하늘.
거대백사의 어두운 암흑 속에서 맞이하는 잿빛은, 지금의 나에겐 천상의 내리쬐는 햇볕만큼 눈부시게 다가왔다.
파자작. 파자작.
균열을 뚫고 솟구치는 뇌전이 세상을 환이 비춘다.
가득 들어찬 독기 사이로 섞여 들어오는 맑은 공기.
비록 잿빛으로 물든 음울한 경계 안이지만.
공기만큼은 정말 맑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흐아아아아! 내가 살아 돌아왔다!”
뱀 새끼에게 먹혀 꼼짝없이 죽었다 생각했던 나.
놈의 몸통을 뚫고 솟아오르며 밀려드는 환희에 아무 말이나 마구 지껄여 본다.
“인한아!”
“강인한!”
-크아앙!-
“크으으으... 인한... 크으으...”
한참이나 솟구쳐 공중에 떠오른 내 눈에.
엉망진창의 모습으로 올려다보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불도저로 밀어 버린 듯 완전한 공터가 되어 버린 숲의 중앙.
쿠웅.
-키아악... 키악...-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있던 거대백사가 무거운 동체를 땅에 누인다.
‘뭐야? 호랑이 새끼는 진짜 호랑이가 됐네? 그리고 쟤는 상태가 왜 저래?’
솔직히 성기형이나 나연누나는 목숨을 도외시하고 거대백사에게 달려들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인 것이, 이은지와 장수언이 끝까지 남아 있다는 것.
모든 수치가 100을 찍었음에도 제 목숨에 집착을 보이던 이은지.
수치 맥스가 만능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과는 달리 끝까지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모습을 보니 뭔가 헤까닥한 상태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나마 이은지야 모든 수치가 100을 찍었으니 이해하겠으나.
더러운 짓이나 하고 다니는 사냥꾼 녀석이 남아 있을 줄이야.
은혜니 어쩌니 하던 그 말을 정말 지킬 줄이야.
어찌 되었든 저 둘이 남았기에 내 사람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이겠지.
나는 바닥에 착지하는 동시에 거대백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일행들도 반가움을 내색하기보단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거대백사를 보며 경계를 한다.
콸콸콸콸.
내가 뚫고나온 구멍에서 댐이 뚫린 것처럼 붉은 피가 뭉텅뭉텅 쏟아져 나온다.
-키아... 키아악... 키아악...-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쏘아보는 거대백사.
생명이 꺼져가는 놈의 눈동자는 나를 향한 저주와 원망이 가득 담겨 있다.
마치 ‘승천이 얼마 안 남았거늘... 인간 따위에게...’ 라고 말하는 듯하다.
한참을 노려보던 놈의 눈에 생기가 빠져나가며 회색빛으로 물든다.
쿠웅.
그러곤 어렵게 비틀어 올렸던 머리마저 땅으로 처박는다.
“하아...”
“허허허... 끝난 거야...?”
-크아아앙! 이겼다! 내가 승리를 했노라!-
털썩하고 바닥에 주저앉는 나연누나와 성기형.
장수언은 거친 포효를 하며 홀로 승리를 자축했다.
마치 저 혼자 무찔렀다는 듯이.
“쟤는 어떻게 된 거야?”
내 물음에 조금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오는 장수언.
그의 몸의 털이 빠지며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간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며 묵묵히 그의 모습을 바라봤다.
“후우... 후우... 아마도 퓨리다크니스를 주사한 것 같다.”
“으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마지막 발악이었겠지. 나도 이은지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럴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는 반쯤 미친 것처럼 타액을 줄줄 흘려대며 켁켁 거리는 이은지를 바라봤다.
분명 개 같은 년이긴 한데, 괜히 입맛이 씁쓸해진다.
아무래도 저런 짓을 한 이유가 나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니, 어쩌면 도망이 무의미하다 생각해 마지막 발악을 한 것일 수도.
어찌되었든 남아있다는 것이 조금쯤은 기특하게 생각되었다.
“미친년... 쯧.”
“쿨럭! 크으윽...”
그때, 돌연 기침을 한 장수언의 입에서 핏덩어리가 뭉텅이로 뿜어져 나온다.
나는 그런 그를 조금은 놀란 눈으로 주시했다.
“뭐야? 외상은 없어 보이는데 다친 거야?”
“크크큭...”
털썩.
바닥에 주저앉으며 낮에 웃는 장수언의 모습.
강인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초연하게 해탈한 것 같은 표정이다.
그런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뇌를 다친 건가?”
“내가 한 번 볼게.”
“어? 그건...”
나연누나의 고유 능력이 치료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치료라는 것이 대상자의 고통을 자신이 감내해야 한다.
상처가 옮겨 오는 것은 아니지만, 고통만이라도 쉽지 않은 일임에는 분명하다.
물론, 내 여자가 다른 놈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더군다나 한시적 동맹뿐인 원수 같은 놈이지 않은가.
“없었으면... 버틸 수 없었어. 이은지씨도 마찬가지고.”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연누나가 장수언에게 다가가자 그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크크큭... 소용없다. 지금, 이것은 부상이 아니야. 내 생명을 불태웠기에 오는 부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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