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계안의 뱀파이어.(1)
3. 경계안의 뱀파이어.(1)
털썩.
“뭐야? 그 사람은?”
모든 괴물들을 처리했을 쯤.
네 마리를 상대하던 강인한이 돌아오며 던지듯 팽개친 사람.
“크르르... 왜 뱀파이어가 이곳에 있는 거지?”
“뱀파이어? 쓰벌... 이제는 별의별 게 다 나오네. 내가 겪는 게 지독하게 긴 꿈은 아니겠지?”
왕성기의 말에 강인한이 쓰게 웃었다.
자신으로 인해 세상의 이면과 마주한 왕성기에게 미안함이 든 탓이다.
“우리가 이면의 경계에 먹힐 때 근처에 있던 뱀파이어일까요?”
김나연이 의문스럽게 의견을 내었다.
장수언과 함께 온 것이 아니라면, 재수 없게 지나가다 휘말렸다는 말인데, 그런 우연이라 하기엔 참으로 공교롭다.
“뱀파이어라... 확실히 사람하곤 조금 다른 것 같네.”
강인한은 뱀파이어의 머리칼을 잡고 이리저리 돌리며 살펴보았다.
확실히 영화에서처럼 보통 사람보다 창백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크게 다르진 않지만, 사람의 귀보다 끝이 뾰족한 귀의 모양.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를 주워 입술을 열어 보니 양쪽에 기다란 송곳니가 자리하고 있다.
“뱀파이어면 사람 피 빨아먹고 그런 거 아녀?”
“그러니까 송곳니가 있겠지? 죽여 버려야 하나?”
“크르르~ 얼음땡이놈들은 음흉하기 그지없지. 그냥 죽여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군.”
“혹시 모르니 말이라도 들어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는 인한님 판단에 맡기겠어요.”
움찔.
바닥에 던져졌을 때 정신이 들었던 스쿡은 인간들의 대화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중이었다.
먹이들에게 자신의 생사가 오가는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비참했다.
그는 그저 인간들이 자신을 버리고 가기를 로드의 이름으로 빌고 또 빌었다.
“뒤가 찜찜한데. 그냥 죽이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들려 온 인간의 말.
그 음성은 자신을 잡아 온 인간의 목소리와 동일했다.
스쿡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며 황급히 외쳤다.
-자... 잠깐!-
양 손바닥을 번쩍 들어 올리며 다급히 외치는 뱀파이어의 모습에 강인한의 손이 멈춰졌다.
“뭐야? 이건 무슨 언어야?”
강인한의 말에 일행 또한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그들도 뱀파이어가 하는 언어를 듣지 못하는 모양.
-제... 제기랄! 미천한 가축이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인가?-
인간은 하등한 종족답게 언어의 장벽에 막혀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미천한 가축이라고?”
움찔.
-어... 어떻게?-
“뭐야? 너 뱀파이어 언어도 아는 거야?”
왕성기가 놀란 듯 묻자, 강인한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역시, 인한님은 제가 따를 만한 분이에요.”
“크르르~ 뱀파이어 언어라니 잘 모르겠군.”
이들이 아는 뱀파이어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했기에,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
고개를 끄덕거리며 강인한은 뱀파이어를 지그시 노려봤다.
그도 뱀파이어의 언어를 알아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눈에 보인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특별한 눈은 뱀파이어 언어를 볼 수 있게 해 주고 있었다.
그것을 어떤 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야.”
강인한이 부르는 소리에 스쿡이 불안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정말로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말인가?
“너 다시 한 번 말해 봐. 미천한 가축?”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스쿡이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을 보며 일행들은 언어를 알아들은 것을 따지기보다, 먼저 뱀파이어를 흉흉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강인한이 뱀파이어가 하는 언어를 알아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 이곳에 뱀파이어가 있으며, 자신들을 가축이라 표현한 것인지가 더 중요할 뿐.
뱀파이어의 반응으로 보아 자신들의 말을 알아들음은 물론이거니와, 강인한이 뱀파이어의 말을 확실히 알아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모기 새끼가? 가축? 일단 좀 맞아야겠다.”
강인한이 도끼눈을 뜨고 손을 들어 보였다.
손에 맺힌 뇌기의 기운에 스쿡은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확신 할 수 없었으나, 이렇게 가까이에서 느껴보니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저 인간이 품은 기운은 자신들과는 상극인 뇌전이다.
모든 것을 정화시킨다는 저주받은 기운.
저 주먹에 맞는다면 자신의 피는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으며 말도 못 할 고통을 느끼리라.
-자... 잠깐! 커어억!-
강인한의 주먹이 뱀파이어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퍼억. 퍽. 퍽. 퍽.
뇌전을 품은 기운이 전신을 난타하기 시작하자 스쿡은 지렁이마냥 바닥을 기며 꿈틀거렸다.
-크아악! 그만! 그만! 죄송합니다! 흐어억!-
***
수쿡이라는 뱀파이어로부터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면의 경계.
그 안쪽은 까마득히 오랜 옛날부터 이들의 터전이었다.
아니, 어떤 모종의 이유로 이곳에 유폐되었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
“세상에 있는 뱀파이어가 이면의 경계에서부터 온 것일 수도 있겠어. 나도 처음 접하는 정보야.”
가문대대로 인외의 존재들과 대적해온 나연누나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크르르~ 우리 웨어비스트도 어쩌면 이면의 경계에서 온 것이 아닐까?”
스쿡이라는 뱀파이어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는 애초에 뱀파이어밖에 살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외에는 발을 잘못 들인 인간들을 잡아서 사육하는 것이 고작.
인간을 사육한다는 말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이들로부터 그 인간들을 구해야 한다는 대의 따위는 없다.
그나마 의리를 지키자면.
의찬이형과 성기형의 여직원들.
조금 더 나아가자면, 호랑이놈의 부하 둘 정도?
수쿡.(뱀파이어.)
호감 : 0
신뢰 : 0
애정 : 0
적의 : 98
살의 : 25
두려움 : 75
놈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원래 뱀파이어가 이렇게 겁이 많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묻는 족족 술술 답변을 해 온다.
말은 진실이 되, 놈의 마음에는 어쩔 수 없는 적의와 살의가 보였다.
적의가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살의가 25밖에 안 된다.
아마도 자신이 어떻게 해 볼 수 없다 여겨, 적의만을 보내는 중인 것 같다.
아니면 두려움이라는 것이 너무나 진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거나.
“이 번 말고 가장 최근에 인간이 들어선 것이 50~60년 전이라고?”
-네! 그... 그렇습니다!-
이면의 경계는 이곳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이면의 결계가 많은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구상에 있는 인외의 존재들은 이면의 경계가 터치면서 방출된 것들이 아닐까?
“최근에 온 사람들은 살아 있다고 했지?”
-네.-
“확실한 거야? 아니면 우리를 유인해서 수작을 부리려는 거야?”
-저... 절대 아닙니다!-
거짓.
나는 거짓을 지껄이는 놈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아악! 왜... 왜!?-
“씨발넘아. 왜는 반말이고!”
퍼억. 퍼억. 퍽. 퍽.
-커억! 컥! 큭! 어흑!-
“다시 묻는다. 그들은 살아 있냐?”
-네! 사... 살아 있습니다... 커흐윽...-
진실.
“그곳으로 안내해.”
-알겠습니다!-
잡아들인 사람들은 한 마을에 구류 중이라 했다.
당분간 그곳에서 머물다 로드에게 바쳐진다고.
그리고 암컷은 새끼를 낳는 것에 이용된다고 한다.
물론, 외모가 뛰어나면 그 이외의 것들도 병행해야 했다.
그곳을 지키는 뱀파이어는 대략 열 명.
마을의 주변으로는 좀비나 구울들이 둘러싸고 있기에 인간이 탈출하는 것은 요원하다.
전부를 구할 순 없지만, 같이 들어온 이들 정도는 구해야겠지.
의찬이형의 경우도 나와는 가까운 사이이고, 여직원들도 하루 이틀 보아온 사이가 아니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스쿡의 안내를 받아 구류된 이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놈의 마음이 언제 바뀔 줄 모르기 때문에 중간 중간 질문을 던져 거짓과 진실을 파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엉뚱한 생각으로 거짓을 이야기할 때마다 주먹의 응징이 이루어졌다.
무언가를 꾸밀 때마다 주먹이 날아오니 놈도 미치고 환장할 노릇일 거다.
수쿡.(뱀파이어.)
호감 : 0
신뢰 : 0
애정 : 0
적의 : 100
살의 : 5
두려움 : 95
하루 만에 변화된 놈의 수치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가는 동안 우리는 괴물들의 공격을 한 번도 받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뱀파이어놈이 지닌 돌멩이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맨들맨들한 돌멩이 위에는 어지럽게 그려진 도형이 있었는데 부적 비슷한 무엇인가라고 생각되었다.
이것으로 좀비나, 구울, 스톤구울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아쉬운 점이라면 뱀파이어 전용이라는 것.
-거... 거의 다 왔습니다.-
뱀파이어답게 나에게 맞은 부위들이 빠르게 아물어가고 있었지만, 뇌전이 닿은 곳은 확실히 회복이 더뎠다.
스쿡의 말로는 뇌기는 자신들과 상반되는 기운이기 때문이라 했다.
몇 번이나 쥐어 터져 붓고 찢어진 입을 열어 말하는 스쿡.
입 뿐 만이 아니라 드러난 곳곳은 붓고 멍들어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손은 거대백사의 가죽으로 단단하게 묶여 있었고, 발도 종종걸음 이상은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묶여 있다.
수쿡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숲 밑으로 드러나는 마을.
판자촌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노후 된 집들과 여기저기 느릿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구릉 위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마을.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이곳에서 탈출하기란 요원해 보이는 지형이다.
높고 가파른 비탈길로 둘러싸여 있고, 높다란 울타리로 막혀 있는 마을은 말 그대로 가축우리라는 표현이 적당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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