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계안의 뱀파이어.(2)
3. 경계안의 뱀파이어.(2)
스쿡의 말에 의하면 눈앞의 마을은 늙고 병든 이들을 모아 인간들이 먹을 식량을 생산하는 곳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사료 공장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어쩌다 한 번씩 진입하게 되는 인간들을 구류해 놓는 곳이기도 하고.
이런 곳은 경계 안에 몇 곳이 존재하고 있다.
어기적거리며 밭일하는 노인들의 모습은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늙고 병들어 음식으로도 쓸 수 없는 이들.
그런 이들이 최후로 오게 되는 곳.
죽기 직전까지 밭일하다 마지막에는 좀비나 구울로 한 번 더 그 쓰임을 다하게 된다.
같은 인간으로서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다.
빠악.
-우읍!-
감정이 실린 손바닥이 스쿡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내 갈겼다.
하지만 수쿡은 고통을 입으로 내뱉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이나 경험해 보았지 않는가.
눈길을 끄는 행위를 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모진 매질이 쏟아지는지 말이다.
“좆 같은 모기 새끼들. 저 안에 우리 일행들이 있는 거 맞지?”
-네! 그 사이 단장님이 데려가지 않았다면 분명 저곳에 있을 겁니다!-
“이런~ 개새꺄! 있을 겁니다는 뭐야? 응? 없으면 그냥 뒈질 줄 알아.”
강인한의 으름장에 스쿡의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저 새끼가... 과연 나를 살려는 줄까?’
아니,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절대로 살려 둘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반발하기에는 당장의 매질이 너무나 두렵고 고통스럽다.
그리고 살아 있을 거라고 말은 했지만, 어쩌면 잡힌 인간들은 이미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벌써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경계를 들어선 인간들이 없었다.
경계 안 사육되는 인간들은 밖의 인간들과는 다르게 생기를 잃어 피의 맛이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유혹을 떨쳐 낼 수 없는 신선한 피의 맛.
그 맛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모든 피를 빨려 죽었을 수도 있다.
자신과 같은 하급뱀파이어야 로드라는 억제력에 대항할 수 없었지만, 로드나 기사단장은 다르다.
그들을 억제할 것은 이곳에서 무엇도 없으니 말이다.
“우선, 내가 먼저 안을 살펴보도록 할게.”
강인한의 말에 일행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금 일행 중 가장 강한 이를 뽑자면 그이지만, 홀로 안에 진입한다는 것을 찬성할 수는 없었다.
“내가 같이 갈게.”
“아니, 제가 인한님과...”
“남자 둘이 가는 게 낫지 않아?”
“크르르~ 나야 대장의 말을 따른다.”
강인한은 한 마디씩 꺼내는 그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안에도 뱀파이어가 있겠지만, 이 주변도 경계를 한다잖아. 더군다나 우리가 경계 안에 들어와서 그 경계가 더 심해졌고. 그러니까 최대한 은밀하게 그놈들을 찾아내서 처리해 줘.”
스쿡이 말한 경계 인력의 무력은 스톤구울을 힘겹게 이겨 낼 정도.
이들이라면 충분히 처리하거나 버텨 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왜 말들이 없어? 우르르 몰려가서 집중공격을 받을 필요는 없잖아?”
그렇게 강인한이 말한 대로 일행들은 주변의 뱀파이어들을 찾아 처리하기로 했고, 그는 스쿡을 끌고 안으로 진입하기로 했다.
“허튼짓 하면 알지?”
스쿡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상처가 아물 때쯤, 강인한이 스쿡의 묶인 손발을 풀어 준다.
하루 이상을 꼬박 묶였던 손발이 자유를 되찾자, 해방감을 느낀 스쿡이 저린 손발을 천천히 마사지했다.
-넵!-
강인한은 그런 스쿡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려는 의도.
“어설프게 연기 했다가는 너부터 죽이고 볼 거야. 그러니까 안 걸리게 확실하게 연기 해.”
-알겠습니다...-
“절대로 배신 때리지 마.”
-네...-
눈앞의 인간은 어찌 된 일인지 거짓을 귀신같이 알아냈다.
스쿡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진실만을 말하며 동족을 처리하는 것에 진심을 다하기로 했다.
‘이 인간은 도대체 뭘까...’
수쿡.(뱀파이어.)
호감 : 0
신뢰 : 0
애정 : 0
적의 : 98-> 100
살의 : 25-> 5-> 0
두려움 : 75-> 95-> 100
복종 : 34
강인한은 복종이 새로 나타난 것을 보며 만족한 얼굴이 되었다.
쓰고 버릴 패이기는 하지만 복종이 오름으로서 배신을 때릴 염려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가자.”
강인한의 말에 수쿡은 어깨를 펴고 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강인한이 몸을 잔뜩 움츠리고 뒤따랐다.
***
-어이~ 스쿡~ 정찰 나가더니 가축까지 잡아 온 거야?-
-어... 어? 그... 그래.-
-상태가 엄청 멀쩡하잖아?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큭~-
노골적으로 스쿡을 무시하는 말.
강인한은 가축이라는 말에 발끈했지만, 애써 두려운 표정을 연기했다.
저들에게 자신은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가축이기 때문이다.
-나도 한다면 해! 그런데 왜 너밖에 없지?-
-너 따위가 알아서 뭐 할 거야? 잠자고 가축이나 우리에 가져다 놔라.-
강인한은 스쿡의 등허리를 쿡쿡 하고 찔렀다.
-으음... 먼저 잡은 가축들은?-
수쿡의 말에 어이없는 표정이 된 뱀파이어.
-허... 그냥 닥치고 우리에나 가져다 놔. 새꺄~-
스쿡을 향해 험악한 표정으로 으르렁거리며 주먹을 들어 보였다.
정문을 중심으로 설치된 울타리는 꽤 높아 앞에서는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근처에는 인기척이 없어.’
-치... 치려고? 쳐 봐!-
스쿡도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대담하게 외친다.
그의 반응에 황당한 얼굴이 된 뱀파이어.
-와 씨... 요즘 내가 좆나 만만해졌나 보네? 너 이리 와 봐!-
성큼 다가온 뱀파이어의 모습에 스쿡의 몸이 잘게 떨렸다.
겁을 집어먹은 모양.
그런 상황에서 강인한을 향해 불안한 시선을 던진다.
아무도 없으니 어떻게 해 달라는 듯 간절한 눈빛.
뱀파이어의 손이 스쿡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으윽! 놔 이 새끼야!-
-이런 찐따 같은 새끼가? 오늘 제대로 버릇을 고쳐주마.-
뱀파이어가 움직이지 못하게 멱살을 잡아 놓고는 주먹을 들어 올린다.
간절한 마음으로 흘깃거리는 스쿡.
-이 새끼가~ 왜 이렇게 힐끔거려!?-
‘뭐 하는 거야! 인간 새끼야!’
차마 입 밖으로 욕설을 뱉지는 못하고 속으로 삼키던 스쿡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바라보다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그때, 스쿡의 겨드랑이 사이로 불쑥 튀어나오는 날붙이.
너무나 은밀하고 신속해 뱀파이어는 그 날붙이가 턱 밑에 당도하고 나서야 눈치를 채고 말았다.
-허업!-
저런 단검 따위에 관통 당한다 해도 죽지는 않겠지만, 덧씌워진 정체불명의 푸른 기운이 너무나도 불길하다.
뱀파이어는 화들짝 놀라며 스쿡을 놓고 물러서려 했다.
푸욱.
-꺽... 꺼어억... 컥...-
하지만 그의 생각보다 날붙이가 파고든 속도가 몇 배는 빨랐다.
턱에서부터 관통해 뇌까지 헤집어놓은 단검.
눈앞에 관통당해 꺽꺽거리는 뱀파이어를 보는 스쿡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허... 허어어업!-
그의 뒤로 낮게 울리는 음성.
“쉿.”
끄덕. 끄덕.
“비켜. 피 튀니까.”
끄덕 끄덕.
스쿡이 비켜나자 강인한이 뱀파이어의 턱에 꽂힌 단검을 쑤욱하고 빼 내었다.
뇌기에 뇌가 지져진 뱀파이어는 그대로 절명했는지 힘없이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머리를 꿰어 죽인 이답지 않게 너무나 무심한 눈동자.
그 안에 깃든 광기가 얼핏 보이는 듯하다.
풀썩.
-.......-
“야.”
-네... 네!?-
“치워. 안 보이게.”
-넵!-
스쿡이 널브러진 뱀파이어를 치우는 동안 강인한은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뇌기의 움직임을 보다 선명하게 느끼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언제부턴가 계속해서 덩치를 불리기 시작한 뇌기.
이 탐욕스러운 뇌기는 삿된 것들을 박멸하며 그것들이 지닌 불쾌한 기운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먹어치운 기운은 서로 마찰을 일으키며 그의 정신에 문제를 일으켰다.
‘기운이 클수록 미치는 영향이 큰 건가?’
그리고 상충되는 기운은 뇌까지 퍼져 광기로 물들인다.
살육에 무심해지고, 피를 갈구하는 마음이 들게 되는 것.
어두운 존재들의 가장 어두운 기운을 흡수하여 자신의 정신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 삐뚤어진 욕망 중에는 정도를 넘어선 양기로 인한 색욕도 포함된다.
다행이라면 정욕을 풀며 상대 여성의 음기가 강할수록 넘치는 양기를 잡아주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제야 과할 정도로 넘치는 성욕의 진실을 알게 된 그.
이 전에도 섹스를 과하게 즐기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발정 난 듯 마구 쑤시지는 않았다.
이로써 여러 여자와 관계를 하는 것에 정당성을 찾았다.
‘흐흐흐~ 좋은 핑곗거리가 되겠는데?’
애초에 뇌기가 먹어치우는 기운이 문제이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그런 것 따위는 금세 지워져 버렸다.
‘별일 있겠어? 좆됐다 싶으면 박으면 되는데?’
-저기... 인한님...?-
“어? 어~ 다 했냐?”
-네... 다른 놈들이 나타나기 전에 빨리 들어가심이...-
“그냥 이 앞에서 나타나는 놈들 하나하나 처리하는 게 낫지 않나?”
-그러다... 잡힌 인간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 그렇지? 빨리 드가자~”
지금은 오히려 스쿡의 마음이 더 조급했다.
만약에 인간들이 죽기라도 했으면 그의 명줄에 비상등이 켜질 요지가 있었다.
-네! 이... 이쪽으로.-
스쿡은 강인한을 안내하며 부디 잡힌 인간들이 멀쩡히 살아 있기만을 빌었다.
그래야 쓸모를 확인한 그가 자신을 더 부려 먹지 않겠는가.
스쿡이 커다란 빗장을 풀고 통나무로 엮어진 문을 밀어 연다.
강인한의 눈에 울타리 안 마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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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연참 갑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