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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176화 (176/297)

3. 경계안의 뱀파이어.(3)

3. 경계안의 뱀파이어.(3)

촘촘하게 늘어선 낡은 목조건물들.

그리고 그 사이로 기계처럼 몸을 움직이는 노인들.

그들의 피부는 밖의 사람들과는 다르다.

칙칙하게 죽은 회색빛 피부.

아마도 햇빛이 들지 않는 경계 안에 살기 때문이 아닐까?

대체적으로 체구가 작은 것은 둘째 치고 등도 심하게 굽어 있다.

최악의 환경에서 육체는 점점 퇴화를 거듭한 모양이다.

흐리멍덩한 눈동자는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가축이라도 된 것처럼 어떠한 의지도 엿볼 수 없다.

그야말로 이지를 상실했다고 볼 법하다.

“인간이라 볼 수 없을 정도의 상태군.”

-죄... 죄송합니다... 너무 오래 사육이 된 터라...-

경계 밖의 뱀파이어들은 그래도 나름 인간들과의 공존을 하는 중이다.

피가 필요한 이보다 헌혈하는 이들이 그토록 많음에도 국가나 단체에서는 언제나 헌혈을 종용한다.

헌혈되어 보관된 혈액의 반 이상이 뱀파이어들에게 판매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을 아는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보기에 좋지는 않네.”

음산하게 중얼거리는 강인한의 목소리에 스쿡의 등허리로 소름이 피어올랐다.

그는 애써 그의 중얼거림을 외면하며 인간들이 구류된 곳으로 향했다.

강인한과 스쿡이 도착한 곳은 마을에서 가장 큰 창고 형태의 목조건물.

문 앞에 선 스쿡이 슬며시 뒤를 돌아본다.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인지를 묻는 모습.

“안에 둘. 상대하게 되면 너는 문 앞을 지켜라.”

이 전보다 예민해진 감각 덕분에 뱀파이어의 기척을 보다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스쿡이 고개를 끄덕이며 창고의 문을 열었고,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두 뱀파이어가 나른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뭐야. 네가 왜 여길 들어와?-

휴식을 방해한 스쿡에게 불만이 있는 얼굴의 뱀파이어.

-어? 뒤에 가축이네? 네가 잡아 온 거냐?-

두 뱀파이어의 대답에도 입을 다물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에 그들의 얼굴이 짜증으로 물든다.

그러곤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창고 내부를 살피는 스쿡.

강인한도 그를 따라 창고 안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잡혀 왔다던 인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점차 일그러지는 스쿡의 얼굴을 보며 두 뱀파이어의 인상이 절로 험악해진다.

-이 새끼가? 얼굴을 찡그리네? 가축이나 던져두고 당장 꺼져!-

뱀파이어의 호통에 스쿡이 억눌린 음성으로 물었다.

인간들이 잘못되면 자신의 목숨 또한 보전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인간들은 어디 있지? 벌써 데려간 거야?-

자신이 호통을 쳤음에도 일그러진 얼굴로 묻자.

입을 연 뱀파이어가 벌떡 일어났다.

-저게 쳐 돌았나?!-

-대답해라. 어떻게 됐냐고.-

이쯤 되니 오히려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짝퉁 뱀파이어 주제에 엉뚱한 말로 되묻고 있다니.

그때, 스쿡을 밀치며 강인한이 앞으로 나섰다.

투두둑.

스쿡의 앞으로 나서며 임시로 묶어놓았던 결박을 간단히 끊어낸다.

“묻잖아? 잡아 온 사람들 어디 있냐?”

-뭐야? 저 가축새끼가 우리말을 알아들은 거야?-

-지금 무슨 상황이야?-

가축이 나서며 자신들에게 묻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진 두 뱀파이어.

그러곤 이내, 지금의 상황이 웃기 다는 듯 낄낄 거린다.

-킥킥킥~ 뭐야? 저 새끼 혹시 가축한테 잡혀서 여기까지 끌려 온 거야?-

-설마, 그 정도로 모질이일라고?-

‘병신들 그래 그냥 뒈져 버려라.’

스쿡은 그들을 비웃으며 강인한의 얼굴을 슬쩍 훔쳐본다.

밖에서 사육되는 인간들을 봤을 때의 표정도 살벌했지만, 지금의 얼굴은 더욱 살벌해 보인다.

어떻게 저런 순박한 얼굴에서 저렇게나 악귀 같은 얼굴이 나올 수 있을까?

강인한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꺼내 든다.

그 모습에 두 뱀파이어는 더욱 배를 잡고 낄낄 거렸다.

-크하하하하~ 내가 살다 살다 가축에게 협박을 당해 보네?-

-낄낄낄~ 밖에서 제법 강한 놈이었나 보네. 하긴 나중에 잡힌 두 놈도 저항이 심하기는 했지. 어이~ 어떻게 우리말을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말로 할 때 내려놔. 소중한 가축에게 괜한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야.-

강인한을 조롱하는 두 뱀파이어를 보며 스쿡이 은밀하게 창고의 문으로 다가가 가로막아 선다.

‘다 뒤져 버려라.’

스쿡의 눈에는 동족에 대한 증오로 이글거렸다.

자신이 왜 이런 취급을 받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간들이 들어왔던 그때, 임신한 여인이 한 명 포함되어 있었다.

막 들어선 신선한 인간들은 별미 중에서도 별미이기에.

경계의 환경에 찌들기 전 한동안은 로드에게 생으로 피를 빨린다.

오랜 만의 생식에 흥분한 로드는 병신같이도 혀를 씹어 버렸고, 그 피는 임신한 인간에게로 흘러 들어가 버렸다.

진혈이나 순혈의 뱀파이어에게 목을 물리고 그 피를 주입 당하게 되면 뱀파이어로 변하게 된다.

여인의 배 속에 있던 태아가 바로 스쿡이다.

원래라면 죽었어야 정상이지만, 운이 나쁘게도 이렇게 태어나서 온갖 멸시를 당하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어린 스쿡을 죽이려는 뱀파이어들로부터 모진 고초를 겪었던 어머니.

스쿡이 어른이 될 무렵.

결국 어머니는 무참히 살해되고 말았다.

그것도 벌써 30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이다.

‘저 자가 로드를 죽일 수 있을까?’

스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인한이라는 인간이 강한 것은 맞지만, 로드는 진혈의 뱀파이어.

뱀파이어 중에서도 왕과 같은 자이다.

‘그리고 저들은 이곳을 빠져나갈 것이라 했다.’

정말 이곳을 나갈 방법이 있는 걸까?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방법이 있더라도 일차적으로 로드의 눈을 피하거나, 처치해야만 한다.

‘그래도 이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나고 싶어.’

일말의 희망이 있다 해도 강인한이 자신을 살려서 데리고 나갈지는 미지수.

하지만 자꾸만 그것에 희망을 걸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진다.

인간에 비하면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가는 뱀파이어.

보통의 뱀파이어와는 달리 자신은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그 시간이 인간에 비해 매우 느리다지만, 또한 그들과는 달리 아주 빠르게 늙고 병들어 죽을 것이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어머니가 그리워하던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

결국은 로드에게 잡혀 죽을지라도 한 번쯤은 희망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인간이나 모기 새끼들이나 말로해서는 안 듣는 건 똑같네. 일단 한 놈 죽어라.”

-이런 건방진 새끼가?-

조폭 똘마니 같은 말을 내뱉으며 주먹을 들어 올리는 뱀파이어를 보며 피식하고 웃는다.

“일단 너부터!”

땅을 박찬 강인한이 주먹을 들어 올린 뱀파이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서로 간의 거리가 5미터 남짓이라곤 하나, 그가 땅을 박차고 눈앞에 당도하기까지는 눈 깜짝할 시간도 되지 않는다.

번쩍.

파지짓.

푸른 뇌전이 뒤덮인 단검이 유려한 곡선을 그린다.

당도함과 동시에 어느새 어깻죽지에 닿아 있는 단검.

-허어업!-

놀란 뱀파이어가 황급히 어깨를 빼려 하지만 이미 뇌기를 품은 단검이 파고들고 있다.

-크아아악!-

살을 뜨겁게 익히며 파고드는 고통에 뱀파이어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

옆의 다른 뱀파이어가 손톱을 날카롭게 벼리며 강인한을 향해 뻗어냈다.

아무리 방심했더라도 뱀파이어는 뱀파이어.

보통 인간을 한참이나 초월한 뱀파이어의 공격은 너무나도 신속했다.

서걱.

그 사이 어깨를 깊숙이 파고들어 옆구리까지 떨어져 내린 단검.

뱀파이어의 팔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끄아아악!-

강인한은 팔이 떨어져 내린 뱀파이어의 뒤로 빙글 돌아가, 등을 찍어 내려오는 공격을 피했다.

콰직.

방패로 삼은 뱀파이어의 가슴에 동료의 손톱이 박히며 뼈를 박살낸다.

깜짝 놀란 놈이 황급히 손을 회수해보지만, 강인한의 단검이 재빠르게 뱀파이어의 목을 잘라버렸다.

스걱.

-커... 커... 커...-

투욱.

불과 몇 초도 안 되는 사이 벌어진 일에 남은 뱀파이어의 눈이 경악으로 물든다.

뱀파이어만이 존재하는 경계 안에서 언제 전투를 해 봤겠는가.

육체 능력은 인간을 한참 초월했지만, 뚜렷한 서열로 인해 싸울 일 따위는 없다.

지금껏 경계에 발을 디딘 인간들은 너무나 보잘 것 없기에 경험을 쌓을 여지도 없었다.

-어... 어떻게... 가축이...!-

“이런 씨발 놈이? 아직도 가축소리하고 자빠졌네?”

뱀파이어의 동공이 급격히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배회하다 스쿡과 눈이 마주쳤다.

-스쿡! 뭐 하는 거야! 어서 공격해!-

스쿡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보지만 그의 눈은 이상하리만치 싸늘하다.

-이런 반푼이 새끼! 어서 공격하라고! 서... 설마...?-

뱀파이어의 눈에 비릿한 웃음을 띤 그의 얼굴이 들어온다.

-배... 배신 한 거냐? 우리를 배신하고 가축에게 붙는다고? 로... 로드가 두렵지도 않은 거냐!? 빌어먹을 새끼! 넌 로드에게 죽고 말 거다! 아니, 네 어미처럼 가축보다 못한 처지로 전락 할 거다!-

-크크큭~ 가축보다 못한 처지? 그럼... 언제는 그 보다 좋은 처지였나? 피만 빨리지 않았을 뿐이지 나는 가축이상도 아니었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 당장 가축을 공격하지 못할까!-

“아 좆나게 씨끄럽네. 야! 할 말 다 했냐?”

스윽.

강인한이 단검을 겨누며 말했다.

-허... 헉! 으드득... 가축 따위가!-

뱀파이어는 가축에게 위협을 느꼈다는 것에 모멸감을 느끼며 이를 갈았다.

“어쭈? 지금, 이빨 간 거야? 너도 저렇게 되고 싶어?”

-크흐흐흐~ 가축 따위가... 네놈 또한 먹이가 되어 갈기갈기 찢길 거다.-

“이 새끼는 기개가 좀 있네? 그래도 여기 있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좀 말해주라.”

-크크큭~ 이미 기사들이 로드께 바치러 데려갔다. 곧 너도 같은 신세가 될 거다.-

그의 말에 강인한이 스쿡에게 물었다.

“야~ 쓰퍽~ 너 거기 어딘 줄 알지?”

-네? 아... 알고 있습니다.-

“그럼 됐어.”

-크아아! 죽어랏!-

강인한이 스쿡과 대화를 하며 고개를 돌리자 그 틈을 노리고 뱀파이어가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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