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계안의 뱀파이어.(4)
3. 경계안의 뱀파이어.(4)
쭉 뻗은 뱀파이어의 팔.
그 끝에는 길게 자란 손톱이 날카롭게 번뜩인다.
쉬이익.
팔의 안쪽으로 강인한의 손이 파고든다.
어설픈 뱀파이어의 공격은 강인한에게는 너무나도 단조롭게 보일 뿐이었다.
-커억!-
단숨에 울대를 잡아 챈 강인한이 뱀파이어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꽂는다.
콰앙.
-쿨럭! 컥... 컥...-
등에서부터 시작해서 뱃속의 장기를 울리는 충격에 뱀파이어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뭐야? 이 새끼들은 제대로 싸울 줄도 모르잖아?”
충격이 어느 정도 가셨는지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공격해 오는 뱀파이어.
강인한의 반대 손에 쥐어진 단검이 시퍼런 게 번뜩였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네 번의 음산한 소리가 들려오고 단검이 지난 뱀파이어의 팔과 다리가 잘라져 나갔다.
-크아아악! 아... 아파앗! 크아악!-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대는 뱀파이어는 팔과 다리가 잘려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런 고통을 언제 느껴봤겠는가.
뱀파이어의 눈에선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그러게 말로 할 때 들었으면 좋았잖아.”
-커어억! 컥! 컥! 주... 죽여 줘! 아파! 커흐흑...-
강인한이 뱀파이어의 팔다리를 잘라 낸 이유는, 놈들의 재생력이 얼마나 되는지 보기 위한 것이다.
“스퍽.”
-네? 저... 전 스쿡입니다. 인한님...-
“내가 쓰퍽이라면 쓰퍽인 줄 알어.”
-죄송합니다...-
“혹시 저 팔을 가져다 붙이면 회복이 되나?”
-네. 가능합니다.-
“신기하네. 팔 하나 가져다 붙여 봐. 회복에 얼마나 걸리나 보게.”
-알겠습니다. 인한님.-
스쿡이 버둥거리는 뱀파이어의 잘린 팔을 가져다 붙이자 어설프게나마 금세 팔이 붙기 시작했다.
5분 정도가 지나고 강인한이 붙은 팔을 발로 툭 하고 쳐 본다.
-크아아악!-
강한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툭 하고 떨어져 버리는 팔.
“이 정도로 쉽게 붙지는 않는 모양이군. 혹시 완전하게 붙으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
-그건... 가진 힘에 따라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놈의 경우는 며칠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예상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린 팔이 며칠이면 완벽하게 붙는다니.
완전히 도마뱀이 아닌가?
그렇다면 기사단장이나 로드라는 놈은 얼마나 빠르게 회복되는 걸까?
사냥꾼이 퓨리다크니스를 복용했을 때도 엄청난 회복력을 보인다.
문제는 그로 인해 마물화의 진행 속도가 수배는 강해진다는 것이지만.
‘기사단장이나 로드라는 놈을 상대할 때는 조심해야 할지도...’
강인한이 단검을 치켜든다.
궁금증을 해결했으니 이제 나머지 놈들을 처리하고 사람들을 찾아 가야 할 터였다.
-이... 인한님... 저놈을 제가 죽일 수 있는 영광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엥? 이 새끼 대단한 배신자네? 네 동족인데 네 손으로 죽이겠다고? 내가 불리하면 당장에 배신 때릴 놈이잖아?”
-아... 아닙니다! 저... 전 뱀파이어들을 증오합니다!-
“증오한다고? 어이없는 놈이네. 하긴, 인간이 인간을 증오할 수도 있으니까.”
얼핏 본 결과, 저 겁쟁이 놈은 무리에서도 왕따 비슷한 것을 당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보니 종족혐오라도 생긴 모양이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던 강인한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동족을 증오하는 놈이라면 나가기 전까지 꽤 좋은 안내인이 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호의를 보이면 더 열심히 하겠지 싶었다.
“알았다.”
-가... 감사합니다!-
강인한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스쿡이 팔다리가 잘린 뱀파이어를 스산하게 바라본다.
증오로 이글거리는 눈빛.
그의 입에는 비릿한 웃음마저 서려 있다.
-스... 스쿡... 크으윽... 이... 이 배신자... 네놈은... 절대로 쉽게 죽지 못할 것... 크으윽...-
-크크큭~ 곧 죽을 놈이 말이 많네. 네놈들이 말하는 미천한 잡종에게 죽는 주제에. 크흐흐흐흐~-
-역시... 잡종은 태어나는 순간... 없앴어야 해... 어미랑 함께 죽여 버렸어야...-
-네놈들을 전부 없애버리고,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면 뭐라도 할 거다.-
동시에 스쿡의 손날이 뱀파이어의 심장에 꽂혀 든다.
푸욱.
-커어억!?-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으로 부릅떠진 뱀파이어의 눈.
뱀파이어의 가슴에 손을 찔러 넣은 스쿡이 움켜쥔 심장을 뽑아냈다.
푸화악.
심장이 뽑혀 나옴과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 붉은 핏줄기.
-크크크큭~ 죽였어... 내 손으로 죽였다고! 크흐흐흐흐~-
스쿡이 뱀파이어의 심장을 입으로 가져가 아그작아그작 씹어 먹었다.
심장을 먹어치운 스쿡이 손에 범벅된 붉은 피를 혀로 핥아 올린다.
-크하하하하! 전부 죽여 버릴 거야!-
그러곤 먼저 죽어 버린 뱀파이어의 심장까지 꺼내 먹기 시작했다.
전부 먹어 버린 후 또다시 광소를 뱉어낸다.
-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어 재끼던 스쿡의 뒤통수로 묵직한 충격과 함께 눈앞이 번쩍였다.
뻐억.
-아악! 감히!-
“이런 미친놈이? 쳐 돌았나? 어딜 눈을 부라려?”
-허억! 주... 주인시시여...-
뒤통수를 날린 이가 강인한인 것을 확인한 스쿡이 황급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수쿡.(뱀파이어.)
호감 : 0->72
신뢰 : 0->37
애정 : 0->44
복종 : 78
충성 : 85
고개를 조아린 수쿡의 정보가 눈에 들어온다.
적의와 살의 두려움이 없어지고, 호감 신뢰 애정이 변화되었다.
복종이 78로 올랐으며, 새롭게 충성이 85라는 수치로 생성되었다.
심장을 씹어 먹으며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연출했던 스쿡.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광경이었으나, 눈앞에 보이는 스쿡의 기운이 이 전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뱀파이어는 같은 뱀파이어의 심장을 먹으면 강해지는 건가?”
강인한의 물음에 수쿡이 성심성의껏 답한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특이한 경우이기에 일어난 현상이라 생각됩니다.-
“특이한 경우?”
-그렇습니다. 저는 완전한 뱀파이어라 할 수 없던 존재입니다.-
스쿡은 자신에 대해 짧게 설명해 주었다.
강인한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복종과 충성이 붙어 있다 보니 스쿡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어찌 보면 성장 치트키를 쓸 수 있는 수하가 하나 생긴 것.
강인한의 처지에서 나쁠 이유는 없었다.
물론, 모든 수치가 100을 찍을 때까지는 방심할 수 없지만 말이다.
“내가 버리라고 했던 놈의 심장도 먹어치웠나?”
-죄송합니다...-
“뭐 됐어. 나머지도 처리하자고.”
‘뒤에 적을 남겨둘 필요는 없지.’
***
그 후로 교대를 위해 들어 온 두 놈을 더 처리했다.
겁쟁이 녀석 답지 않게 뱀파이어 한 놈을 처리할 수 있게 된 수쿡.
“강인한!”
수쿡이 막 두 마리 뱀파이어의 심장을 취했을 무렵.
창고 안으로 들어서는 일행들의 모습이 보였다.
“누나!”
“여어~ 나연씨만 보이는 거야?”
김나연의 뒤로 왕성기와 이은지, 장수언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왜 여기까지 온 거야?”
“다섯 마리를 처리하고, 더는 보이지 않아서 들어와 봤어.”
“그래? 그럼, 여기 있는 뱀파이어는 다 처리한 것 같네.”
“정말? 다섯 마리나 혼자 처리한 거야?”
“스톤구울보다 오히려 쉽더라고.”
“크르르~ 전투 경험이 미천하더군.”
“인한아. 다른 사람들은?”
“아무래도 끌려간 것 같아.”
“그렇군... 젠장. 무사해야 할 텐데... 그나저나 밖에 있는 노인들 봤어?”
“보기는 했지...”
“그냥 두어도 될까?”
“우리가 어떻게 해 줄 수는 없지 않아? 구한다 하더라도 이미 보통 사람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은데...”
그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뱀파이어들을 처리하면 저들끼리 어떻게든 살아가지 않을까 싶었다.
무책임하다 볼 수도 있겠지만, 아직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불확실하다.
-주인이시여. 지금쯤이면 로드에게 뱀파이어의 죽음이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뱀파이어들은 로드와 피로 이어졌기에 눈치를 챘을 거라 여겨집니다.-
“주인? 설마, 저 뱀파이어를 받아들인 거야?”
왕성기가 불신의 표정으로 스쿡을 보며 물었고.
“어? 어쩌다 보니.”
“야! 배신이라도 때리면 어쩌려고 그래.”
“흐음... 설명하기 난감하기는 한데...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
“크르르... 확실한 건가. 대장?”
“그래. 호랑이 너는 날 배신할 생각이 있어?”
“허... 대장은 아직도 날 불신하는 것인가? 우리 웨어타이거! 호랑이는 은혜를...”
강인한은 주저리주저리 떠들기 시작한 장수언의 말을 막았다.
“그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돼.”
“크르르... 알 듯 말 듯 하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주시는 하겠다.”
“그래. 그건 알아서 하고. 야. 쓰퍽. 뱀파이어들이 피로 이어져 있다면 너도 그렇다는 거냐?”
-주인이시여... 그것은 아닙니다. 저는 뱀파이어들에게 혐오당하는 존재. 로드는 제가 태어나는 순간 저와의 끈을 놓아버렸습니다.-
“그렇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주인께 충성을 할 수도 없습니다.-
“뭐, 그렇다면야...”
강인한은 스쿡을 포함 주변 인물들을 슥 하고 돌아본다.
한 명 한 명, 면면을 살펴보니 저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나오려 한다.
김나연은 가문의 반푼이.
왕성기는 상냥꾼조차 아니었던 일반인.
장수언은 자신의 힘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반푼이 웨어비스트.
이은지는 초인도 아닌 반푼이 사냥꾼.
스쿡은 반푼이 뱀파이어.
의도하지 않게도 무언가 하나씩 결여되었던 이들이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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