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는 다보여-179화 (179/297)

3. 경계안의 뱀파이어.(6)

3. 경계안의 뱀파이어.(6)

무료하다.

이곳에 갇히게 된 것도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가 없다.

갇힌 후 수백 년 단위의 연수를 헤아렸고, 천 단위가 넘어갈 즈음에서는 세는 것을 포기했다.

자신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세상.

그나마 괴수라 불리어도 모자랄 것 없는 생명체가 간간이 보일 뿐인 곳.

어쩌다 밖에서 들어오는 인간들을 제외하면 별다른 사건이 없는 곳일 뿐이다.

인간을 가축으로 기르고, 그나마 조금의 즐거움을 주는 인간들을 잡아 길들이며 특식을 즐긴다.

이마저도 최근 백 년 사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마지막 인간이 이곳에 발을 들이고 55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인간들이 발을 들여놓았다.

그것도 상당히 많은 수의 인간들이 말이다.

사로잡은 인간은 다섯.

그리고...

사로잡은 인간들의 동료라 짐작되는 인간들.

그들의 저항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무료함밖에 없는 이곳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라 볼 수 있다.

마을을 하나하나 지나며 자기 자식과 같은 뱀파이어들을 처치하며 다가오고 있다.

이 어찌 재미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후후후...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진혈의 뱀파이어이기에 자신의 생명이 얼마나 길지는 짐작도 할 수 없다.

그 긴 세월을 갇혀 지낸다면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것이 인간이 아닌, 뱀파이어라 할지라도 말이다.

따라서 경계에 침입자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언제나 자신을 봉해 수면에 빠져들었다.

권속의 정신 상태는 로드인 자신에 의해 좌지우지되기에 권속들에 대한 걱정은 없다.

오로지 자신만이 똑바른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될 일이다.

-로드시여. 인간들이 여덟 번째 마을을 돌파했나이다.-

자신의 피를 먹인 직접적인 권속.

기사단장 중 하나가 부복하며 말을 전했다.

이미 패밀리어들을 보내 보고 있던 터라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기사단장이 하는 말은 죽어 나가는 뱀파이어들에 대한 안타까움일 뿐이었다.

권속을 만들기 위해서는 본인의 피로써 가능했으며, 힘의 일부가 소모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뱀파이어들은 무분별하게 권속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재미있어. 후후후... 정말로 재미있어.-

-로드시여. 하지만 로드의 자식들이 희생되고 있나이다.-

피식.

로드는 그런 기사단장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자식들이라 칭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힘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만이리라.

-너는 재미있지 않은 것이냐? 이 멈춰있는 세계에 이러한 흥밋거리가 생긴 것이?-

-충분히 흥미롭기 그지없습니다. 다만...-

기사단장 또한 비범한 가축들에 대해 충분한 호기심이 있었다.

권속들이 죽어 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기사단이나 하급뱀파이어들의 대부분은 기사단장들의 자식과도 같다.

자신들은 로드에 의해 힘을 얻었지만, 기사단과 하급뱀파이어는 단장인 자신들에 의해 만들어진 자식과도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뱀파이어가 죽는 것은 자신들의 힘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 번이 아니라면 언제 또 이러한 흥미를 느껴볼 수 있겠느냐. 힘을 축척해 봐야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이 뜻하지 않게 찾아온 즐거움을 즐겨보자꾸나.-

한껏 즐거움으로 물든 로드의 눈동자를 보며 기사단장의 고개가 숙여진다.

로드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자신들의 효용가치는 로드의 명령을 따름으로서 생긴다.

이곳이 아니었다면 한낮 도구로 전락했을 처지다.

권속이란 그저 필요에 의한 소모품일 따름이니.

자신들이 권속들을 아깝게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

아무리 뛰어난 육체 능력을 지녔다 해도 계속되는 전투는 피곤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여덟 번째 마을을 기점으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뱀파이어들을 처리하고 스쿡이 심장을 씹어 먹는다.

물론, 그것을 보고 싶어 하는 이가 없기에 일행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먹었다.

이 번 기사들과의 전투는 꽤 치열하게 벌어졌다.

스물이나 되는 기사들이 몰려오며 물량으로 몰아붙인 탓이다.

“정말, 쉬었다 가도 되겠어?”

성기형의 물음.

“다들 지쳤잖아. 어차피 상황 보니까 그래도 될 것 같아.”

지금의 상황은 마치 마을 하나하나 퀘스트를 깨는 것 같은 느낌이다.

뱀파이어 로드가 정말로 조치를 취했다면 모든 놈들이 몰려오지 않았을까?

스쿡의 말에 의하면 단 한 번도 이러한 일은 발생한 적이 없다고 한다.

내가 수 백, 수천 년 동안 갇혀 있는 뱀파이어 로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지금 우리의 발악은 놈의 입장에서 즐거운 유흥거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잿빛 하늘 위로 날아다니는 날짐승을 흘깃 바라본다.

이상하리만치 우리를 따라다니는 날짐승.

새보다는 박쥐에 가까운 모습이다.

패밀리어.

로드의 눈이라 할 수 있는 패밀리어라고 했다.

놈은 저 패밀리어를 통해 우리가 뱀파이어를 처치하는 걸 전부 보고 있다는 의미다.

“찝찝해.”

나연누나의 말에 조용히 손을 잡아 주었다.

나 역시도 찝찝하기는 마찬가지.

충분한 자신이 있기에 방송을 보듯 우리가 발악하는 것을 보고 있겠지.

“걱정하지 마. 마지막에는 진즉에 우리를 처리 안 할걸 후회할 거니까.”

“크르르~ 역시 대장이군. 대장을 따르길 잘한 것 같다.”

“저는 인한님을 믿어요!”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이은지의 시선을 외면하며 나연누나의 손을 더욱 강하게 움켜쥔다.

이에 빙긋이 웃어 보이며 미소로 화답하는 그녀.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연인을 두고 죽을 수는 없지.

무사히 나가서 두고두고 박아 줄 거다.

찌릿.

옆통수가 간지러워 바라본 곳에는 역시나 이은지의 생글거리는 시선이 있다.

나에게 완전히 복종한다는 것은 알지만.

틈만 나면 훔쳐보는 모습이 부담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나마 못난이가 아니라 다행이네.’

아마 기준이하의 외모였다면 그 때 내 다리를 잡은 팔을 냉정하게 잘라내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내 성격도 정말 많이 바뀐 것 같다.

이런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저벅. 저벅.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오고.

쉬기 위해 자리 잡은 건물 안으로 스쿡이 들어온다.

스쿡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다가온 그가 내 앞에 부복하듯 끓어 앉아 고개를 숙였다.

‘이건 또 왜 지랄? 어?’

그의 몸에서는 은은하게 아지랑이가 올라오고 있다.

그것이 뜻하는 것은 단 하나.

스쿡을 바라보며 정보를 확인해 본다.

수쿡.(뱀파이어. 권속.)

호감 : 72->100

신뢰 : 37->100

애정 : 44->100

복종 : 78->100

충성 : 85->100

-주인님. 주인님 덕분에 완전한 뱀파이어의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수쿡 충성을 다해 주인님을 모시겠습니다.-

다소 닭살 돋는 멘트로 비장하게 말하는 그.

하급뱀파이어에게도 무시를 당하던 그는 기사뱀파이어를 둘이나 상대해 죽이는 결과를 냈다.

반푼이의 처지에서는 감회가 새롭겠지.

나연누나와 성기형은 원래부터 믿었던 사람이고.

이곳에서 오롯이 나를 따르는 이들을 셋이나 만들게 되었다.

사냥꾼이었던 호랑이와 이은지, 더불어 뱀파이어까지.

이 정도면 건방지던 곰대가리 새끼를 눌러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것은 이 곳에서 무사히 나가고 나서의 이야기지만...

갑작스럽게 내 앞에 부복하는 수쿡의 모습에 궁금증이 동한 일행들의 모습.

그를 향해 내가 손을 내밀어가자 일행들의 눈에 이채가 돈다.

내가 여성도 아닌, 남성에게 손을 내미는 것에 대한 의미를 알고 있기에 흥미로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뱀파이어도 되는 거야?’

아직은 손을 잡기 전.

확실한 것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웨어비스트를 각성시키기는 했지만.

웨어비스트의 기운은 삿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그저 인간이상의 육체와 능력을 지녔을 뿐.

나의 뇌기는 삿된 것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

그런데 뱀파이어의 음습한 기운은 요기와도 닮은 부분이 있었다.

‘수지의 요기도 정화한 적이 있는데 괜찮겠지.’

그것은 이런 각성이 아닌, 섹스를 이용한 것이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잘 못 되면 그저 조금 아쉬울 뿐이다.

괜찮은 전력을 잃는 것에 대한...

“잡아.”

-주인님...?-

손을 내민 의미가 자신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한 듯 눈물까지 글썽이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그다지 보기 좋지는 않지만.

뱀파이어 수하라니 꽤 쓸모 있지 않겠는가?

스쿡이 내 힘으로 각성을 하고 부하가 된다면 이까짓 손 몇 번이라도 잡아줄 수 있다.

그가 두 손을 공손히 들어 내 손을 감싸 잡는다.

일어선 모습으로 한 팔을 내민 모습의 나와, 글썽이며 우수에 찬 눈으로 올려다보며 공손하게 잡아오는 손.

빌어먹게도 수쿡은 영화에서 나오는 뱀파이어처럼 상당히... 아니, 굉장히 잘 생겼다.

놈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BL소설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 같아 기분이 불쾌해졌다.

파지직. 파직. 파직.

맞잡은 손을 통해 뇌전이 번뜩인다.

-허억! 주... 주인님!-

놀란 수쿡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뇌기가 뱀파이어에게 얼마나 치명적으로 작용하는지 보아온 그.

피어오르는 뇌기를 바라보던 스쿡의 눈이 어딘가 모르게 허탈해 보였다.

아마도 내가 자신을 버리는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나에 대한 적의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나는 한 점 후회 없이 사랑했습니다...’ 라며 아련하게 바라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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