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계안의 뱀파이어.(7)
3. 경계안의 뱀파이어.(7)
‘쩝... 부담스럽네.’
-크으윽! 크아아악!-
뻗어나간 뇌기가 수쿡의 손을 타고 그의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그 고통이 상당한 듯 허탈하게 가라앉았던 스쿡의 눈이 붉게 충혈 되었다.
이제야 느글거리던 속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다.
느끼한 새끼.
나를 향한 우수에 찬 시선이라니!
고통스러운 표정이 훨씬 만족스럽다.
-크으으으! 캬아악!-
연신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
하지만 그는 어찌 된 일인지 내 손을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두 손에 힘을 가득 싣는다.
떼어내려 한다 해도 이미 뇌기가 스며들기 시작한 이상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의지.
-주인님... 크으윽! 가... 감사했습니다!-
쥐어짜듯 말을 맺은 그가 두 눈을 질끈 감고 고통을 감내한다.
죽음의 순간에도 감사했다라...
‘쩝... 그래도 충성하나는 확실한가 보네.’
스쿡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가 보인다.
다른 이들과는 사뭇 다른 현상이었다.
마치 몸에서 더러운 것이 증발해 날아가는 모양이랄까?
‘어? 뭐야?’
사라질 것 같던 음습한 기운이 뭉치며 빨려들 듯 내 손으로 스며든다.
으르르릉.
단전을 울리는 뇌기가 기다렸다는 듯 그 기운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더불어 스쿡의 몸에 침범한 뇌기는 그의 몸을 정화시킨다.
‘뭐... 이런... 얌전히 있을 놈은 아니었지.’
그의 몸에서 증발하듯 피어오르던 음습한 기운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즈음.
털썩.
스쿡의 손이 내 손에서 떨어져 나가며 바닥에 몸을 뉘었다.
“큭... 하아... 하아... 사... 살았어?”
벌떡 몸을 일으킨 스쿡이 두리번거리더니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주인님? 이... 이건?”
그때, 수쿡의 말을 알아들은 이들이 한마디씩 했다.
“크르르~ 뭐야? 말이 통하잖아?”
“진짜? 어떻게 된 거야?”
물어본다고 내가 알 수는 없다.
나조차 이런 것은 생각지 못했으니 말이다.
“히... 힘이... 넘칩니다. 다릅니다! 이건... 주인님이 주신 힘입니까!?”
“엉? 그... 그렇지? 그러니까 앞으로 잘해.”
나를 향한 수쿡의 눈은 마치 신을 영접한 신도를 보는 것만 같다.
그 초롱초롱한 눈빛이 상당히 부담스럽다.
“이 수쿡! 주인님의 충직한 종복입니다!”
“그려그려~ 그 닭살 돋는 맨트는 좀 어떻게 해 보고.”
나는 수쿡의 외형을 찬찬히 살펴봤다.
그렇게 변한 것은 없는 듯하다.
이 전과는 달리 피부에 혈색이 돈다고 해야 할까?
하... 이 새끼... 더 잘생겨진 것 같네?
***
뱀파이어 로드라는 놈이 새로운 자극을 위한 유희를 즐기든 말든 그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놈의 그 유희로 인해 우리가 쉴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
잡혀간 일행을 구하겠다는 마음과, 경계를 꼭 벗어나겠다는 의지는 초인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해 주었다.
문제는 이 힘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무리 초월했다 해도, 신이 아닌 인간인 이상 지칠 수밖에 없다.
마을을 격파하며 이곳까지 다다르기까지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간단하게 마을에 비축된 고구마 비스무리 한 것만을 먹으며 쉬지 않고 달리고 싸웠다.
육체적인 피로는 둘째 치고, 이미 정신적으로도 깎여나가고 있을 터다.
뱀파이어를 상대하기 전부터 괴물들과 싸우며 계속해서 피를 보아왔다.
좀비나 구울은 그나마 괴물이라는 인식이라도 있지만, 뱀파이어는 거의 사람이라 볼 수 있을 정도로 흡사하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뱀파이어의 피가 차갑다고 하지만 놈들의 피는 사람만큼은 아니더라도 꽤나 뜨거웠다.
“정말 쉬어도 되겠냐? 우적~ 우적~”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꺼내는 성기형.
온 몸에 피 칠을 하고 먹는 모습은 사이코패스 살인마 저리가라다.
노인들이 농사지은 작물을 씹으며 말해 봤자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다만...
고구마를 닮은 작물은 생각보다 수분도 많고 달달해 먹을 만하다.
그렇다 해도 저렇게까지 앞에 쌓아 놓고 먹을 정도는 아니다.
“너무 늦으면 잡혀간 사람들이... 후우...”
말을 꺼내던 나연누나는 이내 고개를 살살 저었다.
그 의미에 대해 모를 리가 없다.
성기형이나 나연누나는 의찬형 그리고 여직원들과는 친분이 있었다.
나연누나야 큰 친분은 아니지만, 성기형은 자신의 직원들인 것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 그래도 우선은 우리가 살아나가는 것부터 생각하자...”
나 또한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그 사람들이 여기 있는 이들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냉정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성기형과 나연누나는 무엇보다 중요했고, 새로 합류한 호랑이와 이은지, 스쿡은 나의 든든한 전력이다.
그런 이들을 다른 이들로 인해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우리가 이곳을 빠져나가는데 있어 구할 수 있다면 구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행히 그 성기형과 나연누나도 그 것을 인정은 하는 듯하다.
되도 않는 호기를 부리며 고구마짓을 하는 인물들은 아닌 것이다.
이은지와 장수언을 돌아보자 동료에 대한 걱정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말을 들어 보면 애초에 동료의식 같은 것도 없는 계약관계였다.
“누나는 좀 괜찮아?”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이 중에 가장 고생한 사람을 뽑자면 단연코 나연누나다.
정신없이 몰아치며 여기까지 왔지만, 일행들이 부상을 입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부상들을 홀로 치료하며 고통을 감내해 왔다.
괜찮다고는 하지만 내 여자가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것은 정말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다.
“걱정하지 마. 이것도 계속하다 보니 익숙해지는 것 같아.”
‘그런 건 익숙해지지 마.’ 라고 외치고 싶지만, 나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제 마을 하나만 더 지나면 되니까...”
도저히 조금만 더 고통을 참아달라는 말은 못 하겠다.
스윽.
마음을 알아 챈 것인지 나연누나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손길이 너무나 포근해 나도 모르게 잠이 들 것만 같다.
“네가 가장 힘들다는 거 알아. 한 숨 자...”
“앗! 여기! 인한님! 여기 누우세요!”
기회를 엿보던 이은지가 재빨리 다가와 허벅지를 내민다.
정말로 잠들 것 같던 정신이 번쩍하고 깨어났다.
분위기 좋았는데 이를 깨버리는 이은지의 모습에 한 차례 쏘아 보자 나연누나가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준다.
“은지씨도 좋은 마음으로 그러는 건데 너무 매몰차게 그러지 마.”
‘으응?’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나연누나를 바라봤다.
이어서 이은지에게 시선을 돌리자 특유의 생글거리는 얼굴이 들어온다.
전에 둘이 숲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눈 후, 나연누나의 반응이 부드러워졌다 싶었는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왔는지 모르겠다.
조금은 떨떠름한 마음이 되어 이은지의 허벅지에 머리를 가져갔다.
“헤헤~”
적당히 살집이 잡힌 말랑하고도 탄력적인 허벅지.
세상 어느 베개보다 푹신하지 않을까 싶다
“킁... 흠흠...”
귓가에 들려오는 성기형의 민망한 헛기침 소리가 들려오고.
‘아... 저 형이 이은지 좋아했었지? 쩝... 이래도 되나?’
모르겠다.
어차피 우리에게 개 같은 년 이었고, 나는 그것을 고쳐 쓰는 것뿐이니 말이다.
“저 새끼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안 들린다고 생각한 것인지 툴툴거리는 목소리.
저 말은 성기형에게 골백번도 더 들어 본 것 같다.
나는 마음속으로, 부디 성기형이 빠른 시일 내에 총각딱지를 때기를 기원해주며 눈을 감았다.
***
살아 있는 것에 처음으로 날붙이를 꽂아 넣은 느낌은 절대로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마지막에는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겨 완전하게 목숨을 끊어냈다.
구상두에게 쇠 파이프를 들고 달려들었던 것과는 다르다.
그때는 그저 강인한을 살리고 싶은 마음에 발악이라도 해 보려던 행위이다.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지만, 정말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떨쳐 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마물이라는 괴물로 변해 버렸지만, 어찌 되었든 사람이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죽이지 않았다면, 끔찍한 일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을 일.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배어 있는 가치관을 뜯어고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날 이후로 이상연은 집에 박혀 은둔하며 강인한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살인에 대한 기억은 까마득하게 지워지고 새로운 걱정거리가 잠식하기 시작했다.
2박3일의 여정으로 떠났던 강인한이 돌아오지 않는 것.
벌써 오일 차에 접어들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의 행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함께 갔던 모든 이들의 행적이 지워져 버린 것이다.
“아직도 찾지 못했나요?”
나대명과 고정욱의 얼굴에도 수심이 깊어졌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후우...”
이상연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수척해져 있었다.
자신의 전부와 마찬가지인 강인한이 실종되었으니 그 수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일단, 뭐라도 먹으면서 기다리게. 인한이가 돌아오면 그 얼굴을 보고 웃을 수나 있겠나?”
“네...”
강인한이 실종되고.
그에 맞춰 사냥꾼 웹이 닫혔다.
그것이 그의 실종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으리란 생각이었다.
“대표님은 살아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기운을 차리시길 바랍니다.”
걱정은 되지만 돌아온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셋은 은연중 강인한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걱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가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을 당하고 있을지가 걱정인 것이다.
강인한에 의해 각성하게 된 그들은 미약하게나마 그의 생존을 느낄 수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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